서울 신촌에 위치한 이화여대 종합과학관 4층. 200평 정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연구실에는 열 명 남짓한 연구원들이 자유로운 복장으로 각종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연구 공간 뒤편으로 설치된 유리문에는 ‘나노하이브리드(주)’라는 회사명이 붙어 있다.

이화여대 사내 벤처기업인 나노하이브리드는 에프엠 24 화이트닝 에센스라는 이름의 화장품을 제조 판매하고 있다. 2006년 초 출시된 이 제품은 지난 상반기까지 약 3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하반기까지는 5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직원은 20명으로, 그 중 15명이 R&D 인력이다. 창업자이자 CTO를 겸하고 있는 최진호 교수는 “장기적인 수익 모델도 중요하지만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찾던 중 화장품을 주목하게 됐다”고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배경을 설명했다.

나노하이브리드의 당장의 매출만을 놓고 대기업들과 비교하면 ‘구멍가게’ 수준이다. 그러나 매출이나 회사 외형과 달리 나노하이브리드는 나노-바이오 융복합 분야에서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주목받는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현재 4건의 특허 외에 5건의 미공개 부문을 포함해 모두 9건의 특허를 신청해 놓고 있다. 이중 유전자 보관 및 전달이 가능한 생무기 하이브리드 복합체 및 그 제조방법은 미국 특허를 취득한 상태. 회사 측은 미국은 물론, 유럽과 세계 여러 국가에 특허 등록을 지속하고 있다.

“나노-바이오 융복합체라고 하면 어려운 말 같지만 우리가 어릴 때보던 공상과학만화를 떠올리면 아주 쉽다. 혈관 등을 통해 인체 내부를 여행하는 만화처럼 무기물을 이용해 인체의 특정 부분에 약물 등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캡슐(전달체)을 만든 거다. 뼈나 인체의 구성 성분으로 만들어진 이 캡슐에 약물을 실어 환부 세포에 도달시키면 기존 약물 투여 방법보다 적게는 수 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의 효과를 낼 수 있다. 그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 중 하나다. 우리가 올해 내놓은 화장품도 같은 원리로 만든 것이다.”(최진호 교수)

약물을 인체의 필요한 부분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연구는 세계의 많은 연구기관에서 연구, 개발 중인 분야 중 하나다. 최 교수와 나노하이브리드측은 인체의 다수를 차지하는 유기물질을 이용한 전달체 개발은 이미 세계 많은 나라에서 진행하고 있고, 무엇보다 성공 확률이 낮다는데 주목했다. 유기물질을 이용한 전달체는 ‘폴리마’라는 물질을 주로 이용하는데 인체 내부에 들어가면 산성화돼 독성을 갖는다는 단점이 있었던 것이다. 세계 각처의 연구는 바로 독성 없는 폴리마를 찾는데 집중돼 있었다. 인체 내에는 유기물 외에 철분, 아연 등 혈액이나 뼈 등을 구성하는 무기물질도 있다. 최 교수 팀은 그 중에서 아연계 화합물을 이용, 약물 전달 등에 쓸 수 있는 나노 주머니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이 나노 전달체는 인체 내에 용해될 경우 항산화작용을 해 인체에 전혀 무해하다는 장점까지 가지고 있다.

“10년 후 지금의  반도체 만큼 각광받을 것”

나노-바이오 융복합 기술은 당장의 1~2년보다 10년 후 더 각광받을 미래 산업이다. 나노-바이오 융복합산업은 지금의 반도체산업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처럼 미래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2000년부터 예견돼 온 분야다. 미국 클린턴 정부가 ‘나노 2000 백서’를 통해 나노 분야를 집중 조명하면서부터 뒤늦게 나노 분야에 관심이 촉발됐다.

이화여대 대학원 나노과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최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 교수로 있던 지난 2001년, 서울대 창업보육센터를 통해 나노하이브리드를 창업했다. 2000년과 2001년에 걸쳐 무기질을 이용한 나노캡슐 개발에 성공, 일약 세계적인 나노-바이오 융복합 분야 권위자로 떠오른 그는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보다 전문적,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산업화하기 위해 벤처기업으로 출범시켰다”고 했다.

2004년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나노하이브리드도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창업 초기 경영도 책임졌던 최 교수는 “경영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도저히 연구와 병행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후 SK그룹에서 대표이사를 지낸 경력을 가진 박세신 대표이사를 전문경영인으로 영입, 최 교수는 연구에만 전념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업 부문은 크게 기능성화장품, 제약, 식품첨가물, 유기농 판별법, DNA바코드로 설정하고 있다. 그중 나노하이브리드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제약이다. 신약 개발에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요되지만 개량신약이나 특허가 만료된 신약을 만드는 일은 국내 제약업체와의 제휴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부가가치도 다른 분야에 비해 높아 회사 측은 국내 제약사와 병원, 각 기업체와 다양한 제휴 및 사업 계약을 통해 나노-바이오 융복합산업의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최 교수는 “현재 국립암센터와 공동으로 나노 전달체를 통해 유전적 질병이나 암 등에 DNA치료제를 투입하는 연구의 동물 임상단계까지 통과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단계라는 큰 장벽이 아직 남아 있지만 최 교수와 나노하이브리드 측은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이밖에도 모든 제품의 원료 단계에서 고유의 ‘DNA바코드’를 심을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여 나노하이브리드가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동차 뺑소니 사고가 발생했을 때, 차체 조각이 아주 극소량만 있어도 이를 역추적하면 해당 차량이 어디에서 만들어졌고, 누가 소유하고 있는 차량인지 알 수 있는 기술이다. 특히 위변조나 짝퉁 문제가 불거지는 명품이나 화폐에는 당장이라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업과 관련 단체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의 NTT사에서 이 기술에 대한 제휴를 의뢰해 오기도 했다고 나노하이브리드는 밝혔다. 최 교수는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를 획득하는 일은 자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해당 기술을 최종 제품으로 만들거나 응용하는 분야는 연구 영역을 넘어서는 일인 만큼 최 교수는 “국내 다양한 기업과 단체에서 관심과 투자가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