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많은 과학자들이 노화 현상을 막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지만 아직까지 인간 세포의 노화를 조절할 수 있는 화합물은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꿈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단초를 개발한 과학자가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바로 김태국(42)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교수.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로장생을 꿈꾼다. 하지만 인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수많은 세포가 활동을 정지하고 이러한 세포가 쌓여가면서 늙게 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인체를 구성하는 체세포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늙어가도록 프로그램 돼 있다.

젊은 세포가 활발하게 분열하면서 증식하는 데 비해 나이든 세포는 분열을 멈추고 모양도 찌그러진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세포들이 이처럼 전체적으로 퇴화하며 몸이 늙고 각종 질병도 발생한다.

김 교수는 인간 세포의 노화를 조절해 세포의 수명을 크게 연장시킬 수 있는 물질을 발견했다. ‘CGK733’으로 명명된 이 물질은 이미 노화된 인간 세포에 반응을 시켰을 때 분열을 멈추었던 세포가 분열을 재개했으며, 세포의 모양도 정상적인 젊은 세포로 변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상태에서 ‘CGK733’을 제거하면 세포는 다시 노화 상태로 돌아갔으며, 다시 투여했을 때 젊은 세포로 변화됐다.

이를 통해 김 교수는 노화와 관련된 세포 프로그램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음을 규명했다. ‘CGK733’이 인간의 노화 세포를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 물질이 세포의 노화 시계를 원점으로 되돌려 막 분열하는 젊은 세포로 만드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김 교수는 밝혔다.

김 교수는 “연구 결과 CGK733이 살아있는 인간 세포 내에서 에이티엠(ATM)이라는 단백질과 결합함으로써 노화 작용을 조절한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과학 잡지인 <네이처>의 자매지인 <네이처 케미컬바이올로지>에 ‘세포의 노화 과정을 가역적으로 재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조절 물질 개발’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로 다뤄지기도 했다.

‘CGK733’은 노화 방지 연구 수준을 크게 높이고 관련 치료제 개발에 한 발 다가서도록 했다는 게 세계 과학계의 평가다. 현재 ‘CGK733’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등으로부터 미래 유망 신약 개발 등과 관련된 각종 제안을 받고 있다.

연구팀은 이번 물질을 활용해 우선 상처 치료제나 주름 개선제를 개발하고 장기적으로는 노화 억제제와 치매 등 노화 관련 질환 치료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주름 개선제 등은 스킨케어 제품으로 단시간 내에 제품화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예상했다. 이미 국내외 화장품회사들과의 제품 개발과 관련 각종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는 단순 노화 억제 효과 뿐 아니라 정상세포 숫자를 필요한 양만큼 만들 수 있어 신약 개발에 간접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라며 “이를 통한 경제적 효과도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신약 개발 원천기술 확보”

하지만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마치 마술과 같은 기술로 불리는 ‘매직(MAGIC: MAGnetism-based Inter action Capture)’이라는 신약 개발을 위한 원천기술. 김 교수는 고효율 신약물질 발굴 방법인 ‘매직’ 기술을 이용해 노화 방지와 같은 메커니즘을 규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기술은 지난해 <사이언스>에 ‘살아 있는 세포에서 분자 간 상호작용을 검출하는 자성 나노프로브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기도 했다.

매직기술의 특이한 점은 지극히 상식적인 아이디어로부터 창의적인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매직의 원리는 바로 자석. 약효가 알려지지 않은 약물에 아주 미세한 자성체(철)를 붙여 세포에 투입한 뒤 자석을 갖다 대면 약물은 세포 내에서 자신과 반응하는 특정 단백질과 함께 끌려나오게 된다. 이렇게 분리한 단백질을 분석하면 약물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기술은 특히 살아있는 세포 내부를 들여다보면서 약물이 인체의 어떤 단백질과 반응하는지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신약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통상 수년 이상 걸리는 신약 개발 연구를 짧게는 수주일 내에 끝낼 수 있다.”

한 마디로 이 기술은 살아 있는 세포 내에서 다양한 물질의 결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기술이다. 따라서 곧바로 신약 개발에 응용될 수 있다.

이번에 찾아낸 노화 방지 물질도 이 기술을 응용해 개발한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매직 기술을 발표한지 1년여 만에 새로운 신약 후보 물질을 규명해내 또 한 번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 받게 된 것이다.

김 교수는 “매직 기술은 살아있는 세포 내에서 인간 질병과 생명 현상을 규명할 수 있는 원천기술”이라며 “이번 물질 개발을 통해 신약 연구를 앞당길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임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활용해 이번 노화 억제 물질뿐만 아니라 항암제 기초물질도 개발, 전임상시험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우려도 많았다. 세포 노화 억제 신약 후보 물질에 대해 국내 언론이 ‘불로장생’, ‘회춘’ 등 화려한 수식어를 붙여가며 찬사를 보낸 것을 두고 혹시 ‘제2의 황우석’이라거나 ‘거품 띄우기’로 보는 곱지 않은 눈길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세포를 대상으로 한 기초실험 결과여서 수명을 연장하는 노화 방지 신약 등으로 실용화하기 위해서는 몇 년 이상 걸리는 많은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과장되지 않기를 바랐다.

“환상은 갖지 않았으면”

그는 “임상실험을 시작하지 못한 초기 연구결과를 두고 마치 불로장생약이라도 나온 듯 과도하게 포장하면 대중을 현혹할 수 있다”며 “아직 가능성만을 확인한 것 일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황우석 교수 문제가 불거진 후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김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록펠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하버드대 교수를 거쳐 2003년 KAIST 교수로 부임했다.

그가 신약 개발을 위한 원천기술 개발에 매달린 것은 오래전부터다. 대학 시절 분자생물학을 전공하면서 질병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고 생각한 그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그때 절박한 사람에게 필요한 연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러한 뼈저린 경험이 그를 기초연구보다는 실용주의적 연구로 이끌었다.

그의 실용주의적인 연구는 신약 개발을 위한 원천적인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 의문은 ‘신약 개발 과정의 대부분은 세포 밖에서 이뤄지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였다. 그는 “임상시험을 거쳐 하나의 신약이 나오는 데는 수조 원의 돈이 들어가고,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신약 개발이 세포 밖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몸 안의 복잡한 생명 활동에는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처럼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거의 도박 수준이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엄청난 시설과 노하우를 가지고도 신약 개발에 10년이나 걸리는데, 똑같은 방식으로는 이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

이러한 의문과 호기심을 가졌던 그는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했던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으며, 셀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매직’기술을 개발하게 됐다. 이 기술은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국립보건원은 김 교수에게 공동연구센터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앞으로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매직기술을 자동화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매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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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기업의 역할 분담해 개발기간 줄여

최근 세포 노화 억제 물질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는 김태국 교수는 바이오 벤처기업인 씨지케이와 한 팀이다. 이들은 단순히 일회성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화하는 관계가 아니다. 이 회사의 대표이사를 비롯한 주요 연구원들은 김 교수의 대학 선후배들로, 제약사와 바이오 기업 등에서 신약 개발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해왔다. 그러다가 지난 2004년부터 신약 개발을 위한 원천기술 개발 등을 위한 기초 연구와 사업화를 함께 하기로 하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김 교수는 기초 연구를 수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화합물을 합성하는 등 신약 개발에 응용하는 연구는 씨지케이가 담당했다. 연구 분야와 사업화를 완전 분리한 것.

‘매직’ 기술과 인간 세포 노화 억제 물질인 ‘CGK733’은 사실 씨지케이와 김 교수팀이 공동으로 개발했지만 이를 응용한 사업화는 씨지케이가 하고 있다. 실제로 노화 억제 물질과 관련해 국내외 화장품회사 등과 논의를 진행 중인 곳은 씨지케이다.

김 교수는 “우린 신약 개발에 대한 문제점을 알고 있는 과학자”라면서 “서로의 역할에 맞게 기초 연구에서부터 실용화에 이르는 전 과정을 원스톱으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김진환 씨지케이 대표도 “교수와 기업이 함께 초기 단계부터 기초 연구와 상용화 연구를 전략적으로 추진하면 상용화 기간을 줄이고 성공률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씨지케이는 매직기술 등을 이용해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있다. 이미 대중화되고 검증된 약에서 새로운 효과를 재창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작용도 거의 없고, 광범위하게 쓰이는 약인 해열제 등을 매직기술을 이용해 이 약이 다른 생명회로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석해 새로운 효능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10년 이상 걸리는 신약 개발 기간을 불과 몇 년이나 몇 개월로 줄일 수 있게 된다.

씨지케이는 이 같은 매직기술의 혁신성을 높이 평가받아 세계적 바이오 기업으로부터 조인트 벤처회사 설립을 제안받기도 했다.

김 대표는 “매직기술을 이용한 신약 개발을 위해 김태국 교수뿐만 아니라 화학연구원, 생명공학연구원 등과 공동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