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에도 지갑 문을 닫지 않는다는 명품족. 소위 ‘대한민국 1%’로 통했던 이들이 ‘한국의 명품 불패’를 이끈 주역들이다. ‘사모님’들의 전유물로 통했던 수입명품 시장에 최근 ‘영(Young)품족’으로 불리는 2030세대가 소비 주력군으로 떠올랐다. 올해 3월 문을 연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의 7월 구매 고객 중 20~30대 소비자가 48%에 달했을 정도다. 소비층이 확산되면서 콧대 높던 명품 브랜드들에도 등급이 매겨지는 시대가 됐다. 이에 <이코노미플러스>가 수입명품에 대한 선호도·인지도를 조사해 한국인이 좋아하는 명품의 순위를 매겼다.

※본 기사 작성에는 윤현정 인턴기자(yoonhj1213@chosun.com)가 참여했습니다.



 “옷은 구찌, 가방은 루이 비통, 화장품은 샤넬을 주로 삽니다.”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69평에 사는 김정미씨(가명·25). 자택서 10억원대 자금을 굴리는 주식투자자인 그녀는 갤러리아 명품관 ‘이스트’의 S(슈퍼)VIP 고객이다. 지난 6월 구입한 2억원대 페라리 자가용을 몰고 한 달에 한 번꼴로 명품 쇼핑에 나선다. 아멕스 카드를 주로 쓰는 김씨의 1회 쇼핑 지출금액은 평균 200만~500만원선.

 오일균 갤러리아백화점 명품팀장은 “연간 카드로 3500만원 이상 구매하는 SVIP 고객은 숫자면에서 4.3%에 불과하지만 전체 매출액의 35%를 차지한다”면서 “최근엔 김씨 같은 전형적 명품족 외에 평범한 직장인 신분의 ‘신명품족’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들려준다.

 패션쇼 기획연출 일을 하는 직장인 최성열씨(33)는 “평소엔 ‘짠돌이 쇼핑’을 하지만 좋아하는 제품만큼은 명품을 주로 산다”고 말한다. 직업 특성상 명품 정보에 밝은 데다, 회사도 청담동에 있어 자연스레 명품을 접했다고 한다. 그가 보유한 명품 리스트엔 400만원대 양가죽 베르사체 코트, 40만~50만원대 루이 비통 지갑, 150만~200만원대 아르마니 양복 등이 있다. 최씨는 “처음엔 몰랐는데 명품을 써보니 왜 쓰는지 이유를 알겠다”면서 “(명품은) 괜히 비싼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박진 우리투자증권 유통 애널리스트는 “명품엔 ‘중독성’이 있다”고 말한다. 브랜드 로열티가 강해 한번 ‘팬’이 되면 ‘마니아’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갤러리아·현대·롯데백화점에서 명품 구입한 108명 대상 조사


 그렇다면 국내 명품 팬들은 어떤 브랜드를 가장 좋아할까. 우선 가장 처음 구매한 브랜드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명품을 구입해본 경험이 있는 108명이 총 22개 브랜드를 골랐다. 다양한 브랜드가 나와 국내 명품족들이 자기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함을 알 수 있다.

 ‘처음으로 구매한 브랜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구찌’라는 대답이 24.1%(26명)로 가장 많았다. 구찌그룹코리아는 지난해 1118억원 매출액으로 국내 수입 명품업체 중 최고 매출을 올린 회사답게 한국인이 가장 먼저 구매한 명품 브랜드 1위로 꼽혔다. 이어 20명이 샤넬을 골라 18.5%였고 루이 비통은 16명(14.8%)이 골라 3위였다.

 페라가모(8.3%)와 프라다(4.6%)가 뒤를 따랐고 크리스찬 디올과 셀린느가 각각 3.7%, 버버리와 에트로가 2.8%였다. 불가리까지 2명 이상 복수 응답이 나온 반면, 에르메스와 안나 수이, 까르띠에, 발리, 테스토니 등 12개 브랜드는 각 1명만이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품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선 샤넬이 1위를 차지했다. 샤넬은 전체 응답자 중 42명이 응답, 38.9%로 명품 인지도 면에서 최고였다. 한국 명품 소비자 10명중 4명 가량이 샤넬을 명품의 대명사로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여론조사전문업체 시노베이트가 ‘명품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인지도 조사’(2002년 말)때 2위였던 샤넬(19%)이 당시 1위였던 구찌(22%)를 앞질렀음을 보여준다. 샤넬 한국법인은 타사와 달리 유한회사다. 구조도 백화점 유통을 위한 샤넬유한회사(1991년 10월 설립)와 면세점 유통을 위한 샤넬듀티프리유한회사(1998년 1월 설립)로 이원화돼 있다. 향수, 화장품 사업부와 패션 사업부를 비롯, 2002년 뛰어든 주얼리 사업부 등 3개 사업부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한편 구찌는 이번 조사에서 루이비통(27.8%)에 이어 14.8%로 한국내 인지도 3위에 올라 여전히 국내 명품 시장에서 강자임을 재확인시켰다.

 ‘고가’의 대명사로 알려진 에르메스를 꼽은 사람도 6.5%로 높게 나왔다. 페라가모와 크리스찬 디올(각각 2.8%)도 수치는 높지 않았지만 첫 구매 브랜드에 이어 나란히 5위권에 올라 인기 브랜드임을 보여줬다. 반면 80~90년대 명품 코트의 대명사로 불린 버버리는 단 한 표도 나오지 않아 과거의 명성이 퇴색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시노베이트 조사 때 인지도 3위(15%)에 올랐던 브랜드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에르메스, 페라가모, 크리스찬 디올은 2위 그룹

 ‘어떤 브랜드를 가장 좋아하나’라는 질문에선 루이 비통과 구찌가 나란히 19.4%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품으로 기록됐다. 샤넬도 15.7%로 3위에 들었다. 인지도 면에선 샤넬이, 선호도 면에선 구찌와 루이 비통이 한국인이 뽑은 최고 명품인 셈이다. 이는 한국 명품시장이 샤넬, 루이 비통, 구찌 등으로 구성된 ‘쓰리톱 체제’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4~7위권은 에르메스, 크리스찬 디올, 까르띠에, 페라가모가 차지, 인지도에 이어 선호도 측면에서도 상위권 ‘쓰리톱’을 잇는 추격자로 떠올랐다. 특히 에르메스는 지난해 매출액 833억원으로 루이비통코리아(585억원)보다 많고 순익(40억원)면에서도 짭짤한 장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질문에 대한 총 108명의 유효 응답자 중 24개 브랜드가 나열돼 개인별 선호 브랜드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프라다와 불가리, 에트로까지는 2명 이상 복수 응답자가 나왔고 버버리, 티파니, 아르마니, 마크 제이콥스 등 14개 브랜드는 1명이 대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명품 하면 연상되는 색깔에서도 소비자들은 구찌와 루이 비통이 즐겨 쓰는 브라운(갈색)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대답(45.4%)이 가장 많았다. 흰색과 검정색을 주로 쓰는 샤넬의 영향인지 검정색이 떠오른다는 응답(36.1%)이 그 뒤를 따랐다.

 그렇다면 명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뭘까. 갤러리아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브랜드는 현재 142개. 다양한 명품 중에서 한국 소비자들이 뽑은 명품의 첫째 조건은 디자인이 우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명품 선택 이유로 ‘디자인’이라고 답한 사람은 총 108명 중 54명으로 절반이 디자인을 꼽았다. 이는 ‘품질’(31.5%)과 ‘브랜드 파워’(9.3%)를 능가하는 대답이었다. 특히 명품의 본질적 측면인 ‘희소성’(7.4%)이라는 대답은 8명으로 낮게 나왔다. 백화점 명품 바이어들은 “과거엔 희소성과 브랜드 파워를 보고 구매하는 고객이 많았던 반면, 최근엔 디자인이 구매 결정의 핵심 열쇠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인지도, 선호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 질문을 통해서 한국인들은 명품에 있어서도 디자인이 일단 마음에 들어야 구매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디자인 좋아야 진짜 명품

 이에 ‘디자인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브랜드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화장품과 향수로잘 알려진 샤넬은 디자인에서도 23.1%로 1위에 올라 ‘인지도’와 함께 ‘2관왕’에 올랐다. 첫 구매 브랜드 면과 선호도 면에서 1위에 오른 구찌와 함께 소비자 평가가 가장 좋은 셈이다. 샤넬코리아가 지난해까지 국가고객만족도(NCSI) 여성용 화장품 부문에서 7년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고객층을 넓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디자인 분야에서도 역시 루이 비통(14.8%)과 구찌(13%)가 상위권에 포진, 3강 체제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인지도 면에서 단 한 표도 얻지 못한 마크 제이콥스는 디자인 부문에서 불가리, 까르띠에와 함께 2.8%로 공동 6위권에 올라 ‘고정 마니아층’이 탄탄하다는 사실을 반증했다.

 명품을 구매하는 루트는 백화점이 가장 많았다. 올해 백화점들은 그야말로 ‘명품 전쟁’을 치르고 있다. 3월 롯데가 명동에 개점한 ‘에비뉴엘’이 신호탄이었다. 신세계는 이명희 회장이 평소 숙원사업이라고 말해온 본점 재오픈(8월10일)으로 맞불을 놓았고 강남의 터주대감 격인 갤러리아와 현대 압구정 본점은 ‘총성 없는 전쟁’을 치러온 지 오래다.

 전체 응답자 중 백화점을 통한 구매가 절반이 넘는 56.5%로 가장 많았고 면세점이 36.1%로 국내 명품 유통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특이한 점은 해외 구입(4.6%)이 국내 개별 브랜드숍(2.6%)보다 높게 나타난 점이다. 전문가들은 “해외여행이 늘어난 데 따른 예상된 결과”라고 말한다. 명품 구입처로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고객은 단 1명(0.9%)에 그쳤다.

 가장 관심 있는 명품 분야는 핸드백/가방/지갑류가 47.22%로 가장 많았고 구두/신발(20.4%), 패션/의류(17.6%)가 그 뒤를 따랐다. 상대적으로 화장품/향수(8.3%)와 시계(4.6%), 액세서리와 선글라스(각각 0.9%)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회 구입 50만~100만원 가장 많아

 명품 구매 횟수 면에선 1년에 1~2번 구매가 가장 많은 38.9%를 차지했다. 1년 3~4회 구매자(32.4%)를 포함하면 국내 명품 소비자 10명 중 7명은 분기별 1회 미만으로 명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년에 5번 이상 수시로 구입한다는 의견도 총 24%에 달했다.

 1회 명품 구매 시 평균 지출비는 50만~100만원이 49%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100만~300만원대가 18.5%로 두 번째로 많았다. 1회 구입 때 500만원 이상 쓴다는 답변은 5.6%였다. 반면 50만원 이하로 쓴다는 응답도 23%에 달해 의외로 많았다. 이에 대해 오일균 팀장은 “과거엔 40대 이상 강남 부유층이 주고객이었는데, 최근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조사는 갤러리아백화점(명품관), 현대백화점(압구정 본점) 고객들과 롯데백화점 숍매니저 등 명품 소비 경험이 있는 실 수요자 중 유효 응답자 108명을 최종 대상으로 삼았다. 조사는 8월 첫주에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