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순당은 국내 약주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전통주의 절대 강자. 백세주에 힘입은 바가 크다. 제2의 백세주를 만들기 위해 ‘술’에 묻혀 사는 연구소를 찾았다.

계의 주류 브랜드들이 경쟁적으로 국내 주류 시장에 들어오면서 술을 찾는 소비자들의 입맛도 다양해졌다. 이에 따라 우리 술이 차지하는 자리가 그만큼 좁아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술만이 가지는 특유의 ‘맛’을 소비자들은 외면하지 않고 있다. 전통 발효주는 술 담그는 사람의 손맛이 그만의 독특한 멋과 맛을 전하면서 술 마시는 사람들의 정을 더욱 커지게 한다. 모내기가 한창인 농번기 들녘에서 거친 손으로 전해지는 막걸리가 그렇고, 조상의 차례 상에 놓인 전통주도 그렇다.

백세주를 생산하는 국순당은 한국 주류 시장에서 사장(死藏)돼 있던 전통주 시장을 부활시켜 맥주, 소주로 대별되던 대중주 시장에 전통주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주인공이다.

경기도 남한산성 등 서울 외곽의 업소부터 공략한 ‘게릴라식 마케팅’과 업소별로 메뉴판을 색다르게 제공하는 ‘맞춤형 마케팅’이 먹혀들며 백세주의 신화가 시작됐고 그 아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백세주는 2004년 11월엔 항암 및 위 보호에 효과가 있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입증돼 건강주로 인정받기도 했다.

국순당은 2004년 연간 최대 2억 병의 백세주를 생산할 수 있는 횡성공장을 준공해 생산기반을 마련했다. 해외 시장 개척에도 역량을 집중해 주요 수출국인 일본, 미국에서는 현지인 마케팅 활동 전개 및 영업망 확대에 주력하고 중국 등 신시장 공략도 강화할 예정이다. 미국과 일본에 현지 지사를 운영 중이며 지난해 4월엔 베이징에 백세주 전문 외식업소 ‘백세주가(白歲酒家)’를 설립했다

전통주 복원에 주력

국순당은 우리 술의 근본인 전통적인 누룩 제조법을 계승해 현대인의 입맛에 맞도록 개선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36년 역사의 부설연구소는 국내 유일의 전통누룩 연구소로 전통주 복원에도 앞장서고 있다.

서울 삼성동 국순당 본사의 6층 연구소. 복도에서부터 ‘술 익는’ 냄새가 향긋하다. 하지만 연구소 내부는 ‘술 연구소’라기보다는 어느 ‘화학실험실’을 방불케 한다. 각종 실험도구와 장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단지 한 켠의 전통 독과 유리 항아리에서 발효되고 있는 누룩이 술 연구소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주로 전통 발효주를 연구하는 여기서는 더 좋은 술맛과 향을 내는 우리의 토종 누룩과 효모, 미생물을 찾아 그 기반 기술을 개량하려는 연구를 벌이고 있다.

“미생물에 대한 기초연구가 있으면 어떤 술이라도 만들 수 있어요. 와인의 경우에는 이에 대한 깊은 연구가 있었지만 아직 우리 전통주에는 이러한 연구가 없습니다. 더 좋은 미생물을 찾기 위해 이에 대한 연구를 확대할 겁니다.”

김계원(50) 연구소장은 백세주가 언제나 같은 맛을 내는 것은 백세주만의 누룩과 효모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뜸 발효되고 있는 백세주를 먹어보라며 내밀었다. 병에 담긴 백세주와는 다를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그 맛이 일품이었다. 미생물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병에 담긴 제균 처리된 술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 연구소에서는 미생물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전통주의 우수성을 규명하고, 이를 복원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백세주 함유성분의 다양한 기능성에 대한 연구 개발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통을 오늘에 맞게 복원한 신기술에는 백세주를 만드는 ‘생쌀 발효법’이 대표적이다. 지난 1982년 특허를 취득한 생쌀 발효법은 조선시대까지 대표적인 전통주였던 백하주(白霞酒) 제조방법을 복원한 것으로 술이 완성될 때까지 높은 열을 가하지 않고 가루 낸 생쌀과 상온의 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기술이다.

생쌀과 찐쌀을 혼합해 누룩, 끓는 물을 부어 발효시켰던 백하주의 제조법은 한동안 전승이 끊어졌는데 고문헌 등에서 제조법을 찾아내 복원에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생쌀 발효법으로 빚은 백세주는 기존에 쌀을 쪄서 만든 약주와 달리 영양소 파괴가 적을 뿐만 아니라 필수아미노산과 비타민이 다량 함유돼 있다.

여기에다 지난해 5월에는 산수유와 울금이라는 약재를 추가해 알코올 도수를 높이고 맛과 품질을 향상시켰다. 또 지난해 1월엔 고급 약주인 강장오미자주와 강장오자주를 개발했고, 8월엔 국내 최초로 전통적인 누룩과 제조법으로 빚은 차례·제사 전용 술인 ‘국순당 차례주’를 출시했다. 최근에는 술뿐만 아니라 옛 양반가에서 즐기던 전통식품인 ‘반가식품’ 복원에도 나섰다. 반가식품 복원을 위해 이화여대 등 5개 대학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한 전통주 복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미 강원도 정선군과 ‘국순당 정선 농주’를 설립했고, 정선군에서 생산되는 오가피를 이용한 술도 개발했다. 지자체의 특산물과 국순당의 기술이 빚은 산물이다. 정선군의 경우 논농사에 비해 단위면적당 3배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에서는 현재 10여종의 새로운 술이 연구되고 있다. 시장 트렌드나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다면 언제든지 제품화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전통주 복원 및 발굴뿐만 아니라 시장의 트렌드에 맞는 술도 개발하고 있는 것.

특히 ‘제2의 백세주’ 개발이 국순당으로서는 최대 과제. 천천히 하강곡선을 그리는 백세주가 끌 수 없는 고객층을 공략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세주 매출이 고착화하면서 국순당의 매출이 2003년 1319억원에서 2004년 1100억원으로, 그리고 지난해에는 986억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1000억원대 이하로 떨어졌다.

소비자 유행 제품화

이러한 과제를 안고 국순당이 최근에 내놓은 술이 바로 ‘별(別)’이다. 별은 올해 100억원을 시작으로 향후 3년 내 5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는, 국순당의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별’은 직장인 사이에 한 때 유행이었던 오십세주(백세주와 소주를 절반씩 혼합할 술)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개발자인 신우창(39) 박사는 회사 차원에서는 백세주를 장려해야 했지만 소비자들의 유행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며 별은 한마디로 소비자들의 유행을 제품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왜 오십세주를 좋아하는지 분석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드디어 새로운 소비자들의 트렌드를 찾아낸 거죠. 백세주의 약재 냄새와 소주의 역한 맛을 싫어하는 소비자들이 있었고, 도수도 16~17도 정도가 적당한 걸로 조사가 됐어요.”

이러한 소비자들의 트렌드를 바탕으로 ‘깔끔’한 콘셉트의 술 개발에 착수했다. 원형이 되는 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도 확보했다. 알코올 발효 시 최적의 조건에서 청정산소를 공급해 효모를 활성화시켜 잡미를 제거해 자연 그대로의 깔끔한 맛이 살아 있도록 한 새로운 청정산소 발효공법으로 만들었다.

“기존의 소주보다 부드러우면서 약주보다는 도수를 올려 대중적인 소주와 약주의 단점을 보안하고 장점을 살린 것이죠. 한 마디로 ‘하이브리드’스타일의 새로운 술이죠.”

오십세주를 즐기는 25~35세를 메인 타깃으로 삼아 백세주를 잇는 제2의 성장 동력으로 삼은 것. 그래서 별은 제품 개발부터 마케팅까지 철저히 젊은 층의 니즈를 파악한 후 정조준한 것이 특징이다.

별이라는 브랜드와 알코올도수 16.5는 3개월간 약 1000여 명의 젊은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조사와 테스트를 통해 결정됐다. 과거처럼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기보다는 술을 즐기는 젊은 층의 문화를 반영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술을 소비자가 개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별은 2004년 초부터 개발에 들어가 2년만인 올해 초 소비자들에게 선보였다.

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술을 먹을까. 김 소장의 주량은 백세주 5병 가량. 신 박사가 자신은 2병 정도라고 말하자, 김 소장이 아마 식전에 2병일 거라며 웃었다. 부서 회식 때는 당연히 백세주? 아니다. 김 소장은 연구원들이 다양한 술을 먹어봐야 한다며 회식 때 여러 종류의 술을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고 한다. 주종은 전통주에서부터 포도주, 양주 등 가리지 않지만, 마시는 양은 많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그래도 다른 직장인보다는 많이 마신다는 게 김 소장의 우스갯소리다.

 plus tip

술맛 테스트의 진실

연구소 5층에는 매일 아침 술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국순당에서 생산하는 8종의 술을 매일 같이 마시는 게 하루 업무의 시작인 사람들이다. 어떤 때는 하루 두 번이나 마시기도 한다. 바로 국순당의 술맛을 책임지는 ‘장금이’들, 패널테스트(관능테스트)를 하는 패널리스트들이다. 그래서인지 여느 술자리와 달리 진지한 모습이다.

패널리스트는 사내에 100여 명, 사외에 100여 명 등 총 200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보통의 패널테스트는 연구원 4명 정도가 번갈아 가며 매일같이 수행한다. 패널테스트를 하는 여성 연구원의 경우 립스틱을 발라서는 안 되는 등 화장은 금물. 물론 향수도 뿌려선 안 된다. 술의 고유한 향이나 맛을 느낄 때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패널테스트는 술의 향, 맛 등 기본적인 평가부터 시작된다. 입구가 좁고 길쭉한 샴페인 잔에 술을 약간 따라 코앞에서 잔을 가볍게 흔들며 먼저 향을 맡는다. 그리고 입안에서 가볍게 돌리며 맛을 음미한다. 연구원들은 술을 삼키지 않고 다시 뱉었다. 아무리 소량이지만 테스트하는 술을 다 마셨다간 술 취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연구원들은 물로 입안을 헹구고 다른 술을 테스트한다.

술의 향과 맛은 그 강도에 따라 수십여 단계로 분석된다. 일반인들은 느낄 수 없는 향과 맛의 미묘한 차이를 찾아내는 것이다. 발효주의 경우에는 맛과 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점에서 패널테스트는 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 중 하나다.

“백세주와 같은 발효주의 경우 일정한 맛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노하우죠. 균일하게 발효시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김 소장이 발효를 기술적으로 풀기 어렵기 때문에 술을 만드는 것은 과학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패널테스트에 한 번 참여해 보라며 기자의 등을 떠민다. 하지만 아무리 향을 맡고, 맛을 봐도 도저히 알 수 없다.

“술의 향이나 맛은 코나 입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느껴야 합니다. 물론 하나의 기준은 있어요. 이 기준에서 부족하면 얼마나 부족한지, 넘치면 얼마나 넘치는지 머리로 분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패널테스트에 참여하는 연구원들은 무슨 향이 강하게 나는지, 어떤 재료의 맛이 더 강한지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향과 맛은 10여 단계의 점수로 표시된다.

백세주를 제일 좋아한다는 올해 3년차인 김지현(28) 연구원. 처음에는 한 잔이면 취할 정도의 주량이었지만, 끊임없이(?) 마시다보니 이제는 1병 정도는 거뜬하다고. 그래도 연구원 중에서 가장 못 먹는 축에 속한다고 한다.

“처음 테스트를 할 때는 무슨 맛인지 몰라 한 번 맛보고, 또 보고 했죠. 삼키지 않고 그냥 뱉어도 술이 취했어요. 하루 종일 벌건 얼굴로 일을 해야 할 정도였죠.”

이제는 백세주의 경우 12가지 약재의 맛과 향을 구분할 수 있으며, 몇 일간 숙성이 됐는지 알아 낼 수 있을 정도로 술 전문가가 됐다. 물론 처음부터 잘 했던 건 아니었다.

“약재를 집에 싸가지고 가서 향을 맡아보고, 차를 끓여 맛을 보며 특성들을 익혔죠. 그리고 다른 패널리스트의 의견을 들으면서 같이 훈련을 한 덕분이기도 하죠.”

국순당은 1년에 1회 정도 패널리스트를 대상으로 미각과 후각테스트를 한다. 약재와 향을 알아내지 못하는 연구원은 따로 교육을 받는다.

“가장 힘든 거요? 컵 닦는 일이었어요. 술 종류마다 향과 맛을 봐야 하기 때문에 한 번 테스트를 하고 나며 엄청난 수의 술잔이 쏟아지죠. 근데 입사한지 4~5개월쯤 지나자 이런 고충을 알았던지 세척기를 사주더라고요.”(웃음)

친구들과 만나면 백세주를 권하지만 술을 많이 마시는 일은 거의 없다. 매일 아침 패널테스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폭음은 금물이다. 대신 여러 종류의 술을 마시면서 다양한 향과 맛을 느끼는 건 업무의 연장이다.

한나절 술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인지 연구소를 나설 때에 취기가 오르는 것을 느낀다. 문득 박목월의 <나그네>가 생각난다. ‘술 익는 마을마다…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술을 벗 삼아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연구원들이 부럽기 그지없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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