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영국 프리미어리그 1위 팀 ‘첼시’ 유니폼에 ‘삼성’ 로고를 다는데 쓴 비용이 5년간 5000만파운드(약 1000억원). 그런데 삼성보다 ‘통 큰’ 회사가 있다. 7월부터 스페인 명문 ‘레알마드리드’에 5년간 1억유로(약 1220억원)를 지원하는 대만의 벤큐다.

룹 매출액(2004년 기준)에서 삼성 5분의 1에 불과한 벤큐가 삼성보다 더 큰 ‘베팅’을 건 이유가 뭘까. 정답은 ‘브랜드 파워’를 키우기 위해서다. 과연 벤큐의 모험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대만의 관문인 CKS(장제스)국제공항에서 60Km 떨어진 타이베이 네이우. 이곳엔 벤큐(benq.com)를 비롯, 콤팔(노트북), 콴타(LCD), 프리미어(디지털카메라) 등 대만의 유명 IT 회사들이 몰려있어 ‘도심 속 IT 단지’로 불린다.

그러나 벤큐가 유독 튄다. 타사들이 대부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에 치중한 반면, 벤큐는 OBM(독자브랜드생산)으로 승부를 거는 유일한 업체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에 ‘벤큐’ 로고를 사용하는 대가로 1220억원이란 거금을 투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 최대 ‘OEM 국가’로 유명한 대만에서 벤큐가 ‘브랜드 사업’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OEM 업체로는 ‘노키아’, ‘삼성’, ‘엡손’ 같은 인터내셔널 브랜드로 성장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브랜드 파워가 곧 수익으로 직결되는 세상에서 ‘제값 받기’에 나서겠다는 포석이다.

M&A로 ‘브랜드 파워’ 급부상

벤큐가 브랜드 파워를 키우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M&A(인수합병)를 통한 ‘볼륨 키우기’다. 시장점유율(MS) 상승은 곧 브랜드 인지도 상승으로 직결되기 때문.

지난해 6월 유럽 휴대폰 시장 2위인 지멘스휴대폰 사업부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지멘스의 ‘만년 적자’ 사업부를 인수해 당시 타이완 주식 시장서 벤큐가 한때 ‘찬밥’이 되기도 했지만 브랜드 인지도를 키우는 데는 그야말로 ‘효과 만점’이었다.

네이후에서 만난 택시기사 왕시시안(48)는 “대만 회사인 벤큐가 유명한 지멘스휴대폰을 인수해 자랑스럽다”면서 “현재는 노키아를 쓰지만 바꿀 땐 벤큐를 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벤큐지멘스는 노키아, 모토로라, 삼성, LG, 소니에릭슨에 이어 일약 세계 6위 휴대폰 메이커로 떴다.

벤큐의 식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4월엔 LCD 패널 업체 콴타디스플레이(QDI)를 인수, LCD 패널 분야에서 세계 ‘빅3’로 성큼 올라섰다.

지난해 세계 LCD 패널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가 각각 19%로 선두를 유지했고, 벤큐 자회사인 AUO가 14%로 그 다음이었다. 콴타의 경우 4% 점유율을 보였다.

그러나 올 들어 양상이 달라졌다. 애드리언 창 벤큐 아시아태평양 사장은 “올해 1분기만 따질 때 벤큐와 콴타 물량을 합치면 삼성과 LG를 따돌리고 20% 이상 점유율로 세계 1위로 올라섰다”고 주장할 정도다. 벤큐가 콴타 인수에 쓴 돈만 22억달러(약 2조원)에 달한다. 브랜드 강화를 위해서라면 ‘실탄’을 아낌없이 쓰겠다는 게 벤큐의 전략이다.

유럽서 매출 50% 올리는

‘탈 아시아’ 기업

그렇다면 실익은 얼마나 될까. 정확한 평가를 위해선 벤큐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벤큐의 설립연도는 1984년. 그러나 브랜드 ‘벤큐’의 출발은 2001년 말이다. 처음엔 대만 에이서그룹 일원이었지만 2001년 말 독립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독자 브랜드로서 ‘벤큐’의 나이는 채 만 5살이 안된 셈이다.

그러나 5살짜리 꼬마 벤큐는 이미 국제적 브랜드로 대접받고 있다. <비즈니스위크>가 2004년 10월 ‘세계 IT 100대 기업’에 벤큐를 77위에 올려놓은 게 단적인 사례다. 당시 삼성전자(59위)와 엇비슷한 위치로 벤큐를 대접한 셈이다.

실제 벤큐그룹은 매출액 대부분을 대만 밖에서 올린다. 2005년 매출액 123억달러(약 12조원)의 지역별 매출액 포트폴리오를 보자.

애드리언 창 사장이 밝힌 벤큐그룹의 지역별 매출액은 지멘스휴대폰 인후 전에는 유럽 35%,  아·태지역 25%, 중국 20%, 아메리카 등 기타가 20%였다. 지멘스휴대폰 인수 후를 보면 유럽 매출 비중이 50%에 달하는 ‘탈 아시아 기업’으로 변신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벤큐는 지난해 그룹 출범 후 처음으로 브랜드 매출(55%)이 OEM 매출(45%)을 역전하는 기쁨을 맛봤다. 이도 그룹 매출액 중 53%에 달하는 자회사 AUO(LCD 패널 OEM 업체)가 있어 그렇지 사실상 벤큐코퍼레이션은 전문 브랜드 업체다. 벤큐에 따르면 올해엔 70대30 정도로 그룹 내 브랜드 매출이 OEM 매출을 훨씬 앞지를 것이란 전망이다.

이승혁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는 “벤큐는 PC 업체인 아수스와 함께 대만의 대표적 IT 브랜드로 성장했다”고 평가한다. 말하자면 벤큐가 5년 만에 ‘OEM 강자’에서 ‘브랜드 강자’로 탈바꿈한 셈이다.

그러나 벤큐가 고민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지난해 지멘스휴대폰 인수 여파로 그룹 출범 4년 만에 첫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 실적도 여전히 마이너스 상태.

아시아 최대 IT쇼 ‘컴퓨텍스 2006(6월6~10일)’당시 벤큐 기자회견 때 만난 K.Y.리 벤큐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벤큐그룹은 올해 3대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는 매출액 볼륨을 더욱 키우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난해 인수한 지멘스휴대폰 사업을 성장시키는 것이고요. 셋째는 적자로 돌아선 손익을 흑자로 반전시키는 겁니다.”

벤큐의 브랜드 강화의 속내를 들춰보면 사실 대만 업체 특유의 ‘중저가 이미지’에서 확실히 탈피하겠다는 벤큐의 중장기 포석이 깔려있다. 이는 K.Y.리 회장이 “(휴대폰 사업의 경우) 저가형 라인업에서 탈피해 프리미엄 라인업까지 다양한 제품군으로 무장하겠다”고 선언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올해 흑자 반전이 숙제

실제 컴퓨텍스 2006에서 선보인 벤큐의 신제품을 보면 금세 드러난다. 벤큐의 전매특허인 화질보정 기술 ‘센스아이’를 장착한 LCD 모니터 ‘FP241W’, 디지털프로젝터 신제품 ‘MP770’, 디지털카메라의 4가지 시리즈(클래식, 엘레강스, 럭셔리, 퍼포먼스) 등이 모두 ‘프리미엄급’이다. 이 대목에서 향후 벤큐가 한국의 삼성, LG와 세계 시장을 놓고 맞대결을 펼치는 ‘껄끄러운 상대’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추론도 가능하다. 

애드리언 창 사장은 “한국서만 유독 벤큐가 중저가 브랜드로 인식될 뿐 세계 시장선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허미트 후앙 벤큐 부사장도 “독일 세빗이나 미국 CES 등 대형 컴퓨터박람회에서 벤큐는 삼성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벤큐는 브랜드 사업을 통해 ‘덩치 확장’과 ‘고가 전략’이란 두 마리 토끼를 노리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벤큐의 전략에 대해 전문가들은 “벤큐 변신의 해답은 휴대폰 사업이 쥐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OEM 전문 업체에서 브랜드 강자로 변신중인 벤큐의 ‘모험’은 그룹 매출액의 42%를 차지하고 있는 휴대폰 사업부의 성패에 달려있는 셈이다. 대만 IT 업계에서 ‘경영 귀재’로 평가받는 K.Y.리 회장의 과감한 ‘베팅’이 성공작으로 끝날지 그 열쇠는 휴대폰 사업의 안정적 성장 여부로 결판날 전망이다.

 plus interview

애드리언 창 벤큐 아시아태평양 사장

“노트북, 중국선 삼성보다 많이 팔아”

벤큐의 매출 구성은 지역별로 어떻게 나오나.

지멘스휴대폰 인수 전을 기준으로 보면 유럽이 35%로 최대 시장이다. 아시아태평양 시장은 25%로 두 번째다. 이어 중국(20%)과 아메리카 및 기타(20%) 시장이다.

아·태지역 진출국 중 한국 시장 비중은 어떤가.

2005년 기준 한국은 벤큐의 아·태지역 매출액 중 2%를 차지한다. 타이완을 빼면 호주(18%)와 일본(8%) 시장이 크다. 그러나 한국은 이제 지사를 세운지 2년에 불과하다. 매년 성장폭도 빠르다. 일본의 경우 설립 4년 만에 8%까지 올랐다. 한국도 향후 2년 뒤면 8%로 오를 것이다.

한국 시장이 타 시장에 비해 어떤 매력이 있나.

한국은 삼성, LG 등 몇몇 브랜드 편중 현상이 심하다. 그러나 마켓 사이즈가 작지 않은 데다, IT 테스트 시장으로 매력적이다.

벤큐는 대만의 삼성전자라 불린다. 사업 모델상 삼성전자를 벤치마킹했나.

꼭 그렇진 않다. 삼성은 벤큐가 없는 반도체 사업도 하고 백색가전 라인도 있다. 반면 벤큐는 100% 디지털기반 사업만 한다. 

기술력, 디자인, 마케팅 측면에서 삼성전자와 비교해보면 벤큐의 실력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가격 면에선 삼성에 못 미친다. 그러나 디자인과 품질(기술) 면에서 많이 비슷해졌다고 본다. 제품 자체 성능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지역별로 보면 매출액 면에서 앞서는 지역도 있다. 가령 노트북의 경우 중국 시장에서 삼성보다 벤큐가 많이 팔린다.

현재 한국 시장에선 LCD와 프로젝터 외에 벤큐 핵심 제품군이 많이 나와 있지 않다. 향후 한국 시장 출시 계획은.

3분기 중 노트북 출시 계획이 있다. 그러나 급히 서둘 이유는 없다고 본다. 사전에 충분한 시장 조사를 통해 제품을 출시하는 게 벤큐 스타일이다.

plus tip

벤큐 인지도·선호도 조사

중저가 인식 여전… 인지도 점차 늘어

한국 소비자들에 비친 벤큐의 모습은 어떨까. <이코노미플러스>가 포털사이트 ‘엠파스’에 의뢰, 6월16일부터 3일간 조사한 벤큐의 인지도 및 선호도 조사 결과 한국 네티즌들은 벤큐 브랜드에 대해 상당수가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벤큐 인지도를 묻는 질문에 총 응답자 139명중 119명(86%)이 ‘모른다’고 답했다. 반면 벤큐를 아는 소비자는 14%에 그쳤다. 구매(사용) 경험이 있냐고 묻는 질문에도 118명 응답자중 108명(92%)이 없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매 제품의 경우 LCD 모니터와 노트북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노트북은 6월말 현재 국내 출시가 안 된 제품이라 해외 유학생들이 현지서 벤큐 노트북을 경험한 것으로 풀이된다.

벤큐의 경쟁력을 묻는 질문엔 총 94명 응답자중 76명이 저가(81%)라고 답했고 디자인(6%)과 품질(2%), 기타(11%) 순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국내 소비자들은 대만계 벤큐를 중저가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재)구매 의사를 묻는 항목에선 총 97명 응답자중 23명(24%)이 ‘있다’고 답변, 인지도보다 훨씬 높게 나타남에 따라 향후 마케팅 성패에 따라 벤큐의 한국 시장 진출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벤큐의 한국 법인은 지난 2004년 1월 출발했다. 출범 원년인 2004년 매출액은 80억원. 지난해엔 200억원으로 두 배 이상 성장했다. 2005년 200억원 매출액 중 LCD 모니터가 52%, 프로젝터가 38%로 매출액 90% 이상을 두 제품으로 채운 셈이다. 올해 3분기 중엔 노트북과 디지털카메라가 새롭게 국내에 출시될 예정이다. 최종성(36) 벤큐코리아 지사장은 “올해 상반기 중 벌써 지난해 매출액에 육박했다”면서 “올해 매출액 350억원은 무난히 달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비자 인지도와 별개로 벤큐코리아는 매년 2배가량 덩치를 키우는 순항을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