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를 보다 여배우가 입고 있는 옷을 클릭하면 홈쇼핑으로 연결돼 곧바로 구입할 수 있고, 축구 경기를 보면서 출전 선수 기록을 검색해볼 수 있다.’디지털 TV 시대가 열리면 변화될 TV의 모습이다. 이 같은 디지털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중간 매체가 바로 셋톱박스다. 말 그대로 ‘TV 위에 올려놓는 박스’란 뜻.

 셋톱박스 시장의 최대 공급자는 어느 나라일까. 정답은 한국이다. 2004년 전 세계 시장의 약 40%인 2000만대를 국내 업체들이 공급하고 있다. 국내 셋톱박스 제조업체만 100여개사에 달한다. 유럽과 중동 시장 셋톱박스 시장은 한국 업체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셋톱박스 강국을 이끈 국내 업체 중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이 홈캐스트다. 2000년 4월 삼성전기 연구개발(R&D) 인력이 중심이 돼 설립된 홈캐스트는 올해 1분기 국내 셋톱박스 업체 중 14.63%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셋톱박스 1위 업체 휴맥스의 8.07%에 비해 성적이 좋다. 기업 외형상 홈캐스트와 함께 2위권으로 분류되는 경쟁업체 현대디지탈테크(1.37%)와 후발주자 토필드(8.31%)를 훨씬 능가한다. 매출액은 지난해 1229억원으로 1000억원을 돌파한 이후 올해엔 2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회사측 주장이다.

 한때 ‘달러박스’로 통하다 최근 2~3년 새 중국과 대만 업체의 추격으로 ‘셋톱박스 시장도 한물 간 게 아니냐’는 시장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나온 실적이라 관심을 끈다. 홈캐스트의 약진은 고부가 상품 위주로 방향을 튼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일단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려보자. 리서치 전문기관인 IMS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셋톱박스 공급 시장은 약 5800만대로 예측된다. 이는 지난해 5300만대 규모에서 약 10.3% 증가한 규모다. 이 가운데 약 40%를 한국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현재 모토롤라와 톰슨, 사이언티픽 애틀랜타 등이 세계 시장 최상위 랭커들이고 한국은 휴맥스, 홈캐스트, 현대디지탈테크, 가온미디어, 토필드, 한단정보통신, 디지털멀티텍 등이 선두권 업체로 꼽힌다.



 1분기 영업이익률 14%, 국내 1위

 세계 최대 시장은 북미 시장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카르텔로 묶여 있어 시장 침투가 사실상 봉쇄된 상태다. 국내 업체들의 주요 수출 무대가 세계 시장 35%를 갖고 있는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로 쏠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행히 지난해 연말 미국통신연방위원회(FCC)가 독과점 규정을 적용,  2006년 7월에 시장이 개방된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문제는 중국과 대만의 후발주자들이 가격을 무기로 대거 셋톱박스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 특히 이들 업체들은 셋톱박스 저가 모델인 FTA(무료채널수신기), CI(유료채널수신기) 제품군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셋톱박스 시장의 ‘레드오션’에선 승부가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홈캐스트의 실적 향상은 바로 이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신욱순 사장은 “지난해 말부터 셋톱박스 3대 아이템 중 고부가 상품인 CAS(수신제한시스템)로 방향을 틀었다”고 말한다.

 실제 홈캐스트의 2004년 연간 매출액 1229억원을 제품군별로 분석해보면 FTA(51%)와 CI(25%)가 주력이고 CAS(15%)와 기타(9%)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올해 1분기 매출 비중은 CAS가 40%로 최대 효자 상품으로 탈바꿈한 상태다.

 특히 초기 시장 진입이 용이한 중동과 북아프리카 시장에서 유럽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도 회사 이익 증대에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 27%에 불과했던 유럽 수출 비중이 올해 1분기엔 49.9%로 절반에 육박한다. 회사명을 지난해 10월 중동계 경쟁업체와 이름이 비슷한 ‘이엠테크닉스’에서 ‘홈캐스트’로 바꾼 것도 자사 브랜드 강화와 함께 유럽 공략을 본격화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회사측은 “빠른 시간 내에 고부가 지역, 고부가 상품군으로 갈아탈 수 있었던 비결은 탄탄한 기술력에 있다”고 주장한다. 정규직 116명 중 43.9%인 51명이 연구개발 인력이다. 오계열 경영지원담당 이사는 “전 세계 8개 CAS 라이선스 중 이미 6개를 확보했을 만큼 기술 경쟁력에서 자신 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 홈캐스트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만 59억원으로 전분기보다 30% 성장했고 1분기 매출액은 408억원으로 전년 1분기보다 35% 이상 성장했다. 2분기 들어서도 CAS 등 고부가 제품군 매출 증대와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유럽에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홈캐스트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실적 개선과 함께 사업 다각화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신 사장은 “향후 성장동력을 DAB(디지털오디오방송)와 DMB(디지털미디어방송) 분야로 확대시켜 디지털 멀티미디어 전문업체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한다. 홈캐스트는 지난 3월말 비지상파 DMB 사업자로 선정된 KMMB컨소시엄의 2대주주이기도 하다.

 홈캐스트가 기대를 걸고 있는 건 올 연말 시장에 선보일 DMB 단말기 분야다. DMB 전단계 제품인 DAB 단말기는 이미 지난 3월 개발을 끝냈고 9월 독일 베를린쇼에 출품할 예정이다.

 DMB 단말기란 쉽게 말해 PMP(휴대형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기능에 이동하며 TV를 볼 수 있는 ‘손 안의 TV’라고 보면 된다. 특히 DMB 시장은 유럽보다 한국이 먼저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먼저 DMB 단말기 시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은 DMB 전단계인 DAB 제품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내년 독일 월드컵을 시점으로 DMB 제품이 본격화하지 않겠냐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홈캐스트는 일단 시장 초기엔 내수 공략에 공을 들인 후 유럽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표를 짜고 있다.

 회사측은 “2008~2009년 정도면 셋톱박스 시장보다 DMB 분야가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실제 LG경제연구원도 “DMB 단말기 시장이 2008년 최소 584만대에서 최대 1089만대 규모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디지털 셋톱박스로 히트를 친 홈캐스트가 DMB 단말기 분야에서도 세계 수출 강자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 시점은 2006년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