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슈코프는 말한 바 있다. “운명과 유머는 같이 세계를 지배한다.” 좀 더 심오하게 풀면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유머가 있는 사람은 좌절하지 않는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웃음이 있다. 해서 하비콕스는 이렇게도 말했다.

“웃음은 희망의 최후의 무기다.”

너무나도 삶이 팍팍한 한 아랍인이 자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빵을 한 뭉치 옆구리에 끼고 시골길을 걸었다. 마침내 철로가 나타나자 이 사람은 그 위에 누웠다. 얼마 후 한 농부가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여보슈, 거기 철로 위에 누워 뭘 하는 거요?”

“자살하려고요.”

“그런데 그 빵은 또 뭐요?”

“이거요? 이 지방에서 기차 오는 걸 기다리려면 굶어죽는다 해서요.”

자살하려는 사람이나 그렇게 만드는 국가나 딱하기는 매일반이다. 사막에 꽃은 피어나지 못하지만 희망이 없는 곳에도 유머는 생겨나서 사람들에게 위안과 힘을 준다. 웃을 수 만 있다면 어떤 삶이라도 그리 비극은 아니다. 어려운 삶보다 더 큰 문제는 웃지 못하는 일이다. 하여 진정한 리더란 모름지기 사람들로 하여금 비록 가난할지라도, 괴로울지라도, 웃음과 희망을 가지게끔 하는 사람이다. 그런 능력만 있다면 여성이 리더가 될 수도 있고 젊은이가 리더가 될 수도 있다.

사실 리더십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어떤 방향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연구의 결론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특성적 접근, 행동적 접근, 규범적 접근, 혹은 상황론적 접근 등등. 하지만 그런 딱딱하고 복잡한 용어들을 최대한 생략하고 간략히 말하자면 리더십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리더십이란 조직의 방향을 설정하고 구성원의 목표 지향적 행동을 촉진시키며, 조직의 유지와 문화의 창출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다.”

이것을 요즘의 슬림화 추세에 맞게 더 간략히 줄이면 ‘타인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이 된다. 이처럼 집단 내에서의 영향력을 따진다는 점에서 리더십은 지식이나 화술 같은 개인적 능력과 구분된다. 또 개인의 출세가 아닌 집단적 효과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처세술과도 구분된다. 리더십이란 조직과 떨어져서는 존재하지 않는 오로지 조직 활동 속에서만 발휘되고 평가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리더십은 과연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경험이나 노력을 통해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일까? 간단한 산수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분야에는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듯이 여기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다양한 주장이 있었다. 선천론, 후천론, 그리고 이원론에 이르기까지…. 그중에서 대표적인 주장들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지도자의 소질이란 타고난 천성에 따른다. 그것은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저자)

“정신분열자만 아니라면 누구든지 데려오라. 그러면 그를 지도자로 만들어주겠다.”(데이브 파머, 전 미군육군사관학교 교장)

“지도자란 천부적인 재능을 갖춘 사람이 풍부한 훈련과 경험을 쌓았을 때 태어나는 것이다.”(사이먼, 조직론 전문가)

독재자들일수록 권의주의적인 사람일수록 선천론을 좋아한다. 나 같은 사람은 선택받은 자이니 맞먹지 말라는 뜻일 게다.

전투에 나간 최불암 장군이 3000명의 희생을 업고 고지를 점령했다.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여기가 아닌가 벼.”

다시 5000명의 희생으로 그 옆 고지를 점령했다. 지형을 살펴보더니, “아까 거기가 맞는가 벼.”

그러자 부하들이, “저 눔은 장군도 아닌가 벼.”

고래가 세 지도자를 삼켰다. 블레어가 즉시 고래에게 인상을 쓰며 협박했다.

“항공모함을 동원하겠다.”

고래는 겁을 먹고 블레어 총리를 놓아주었다. 상황을 살펴본 부시가 웃으며 말했다.

“제네 항공모함 우리가 빌려준 거다.”

부시 역시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후세인이 말했다.

“나 후세인이다.”

그러자 고래는 퉤퉤하며 뱉어버렸다.

앞 글의 최불암 장군은 머리가 없는 리더고, 뒷글의 후세인은 가슴이 없는 리더다. 현대인들이 원하는 리더형은 머리와 가슴을 같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머리는 좌뇌, 논리, 합리, 지혜, 지식, 정보, 실력을 말한다.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를 예리하게 꿰뚫는 안목이 필요하다. 가슴이란 우뇌, 감성, 인간성, 유머, 미소, 친절, 사랑, 의리 등을 말함이다. 현대에는 이러한 감성적이고 우뇌적인 요소가 좌뇌적인 요소보다 더 각광받고 있다.

무력과 공갈, 협박과 고문에 의존하는 리더는 물론 머리가 없는 리더도 진정한 의미에서 리더가 아니다. 하긴 남 욕할 것 없다. 어쩌면 우리 지도자들도 한결같이 권좌에서 물러나자마자 유사한 대접을 받았으니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 하리오.

어쨌거나 필자는 마키아벨리의 손을 들어줄 생각은 꿈에도 없다. 사람의 천성 중에 리더십이 포함되는지 여부는 게놈 프로젝트가 끝나고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벽하게 밝혀지기 전에는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일 리더십이 선천적인 것이라면 세상의 수많은 연구기관이나 교육센터는 당장 문을 닫아야 하고 이 글도 이쯤에서 그만 써야 한다.

사이먼 역시 천부적 재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마키아벨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신분이 세습되던 중세라면 모를까, 현대사회에서 천부적 리더십을 대대로 유전시키는 리더 가문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위대한 리더들에게 그런 재능의 징표, 이를테면 뇌의 특정 부위가 별 모양으로 생겼다거나 하는 보고서도 아직 나온 바 없고.

리더십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설사 사람마다 조금씩 재능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후천적인 노력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될 수는 없다.

타고난 재능이 성공을 좌우하는 예술이나 스포츠 분야와는 달리 리더십은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 얼마든지 개발과 발전이 가능하다. 아이큐나 음감, 미적 감각, 골격 따위는 리더십에선 전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내가 자꾸 리더십이란 단어를 말하니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난 아직 젊은데… 난 사장도 아닌데… 가장도 아니고.”

그런 외형적 요인이 아니라 비록 내가 아직 신분이 낮고 나이가 어리더라도 남을 이해할 수 있고 설득할 수 있다면 호감을 얻어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리더십을 갖춘 것이다.

그럼 진정한 리더십이란 어디서 나올까? 바로 후천적 유머센스에서 나온다고 난 생각한다. 유머 속에 있는 재치, 따뜻함, 담대함, 이 세 가지가 리더십의 요체며 성공의 핵심 요소다. 그런데 어쩌지요. 난 선천적으로 내성적이라서 유머리스트는 안되겠지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걱정하지 말라. 유머센스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노력하면 되고 후천적으로 노력한 유머센스야말로 성공하는 리더가 되는 필수코스다. 많은 사람들이 필자에게 한탄조로 말한다.

“김 교수님, 참 부럽네요. 어쩌면 그렇게 여러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고,, 타고나셨네요.”

절대 타고난 것이 아니다. 나는 아기 때부터 시작해서 오랫동안 내성적이었다. 오죽하면 별명이 기지배(필자의 이름에서 받침을 빼보라)였을라고.

자, 웃으면 복이온다고 했다. 오늘 눈이 마주치는 후배 직원들에게 먼저 인사 한번 해보자.

“좋은 아침! 잘해 보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