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IT업계 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관계가 일반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대기업들이 중소 소프트웨어업체들에 전횡을 일삼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중소기업들은 엄청난 투자비를 들여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가 대기업의 횡포로 실패하는 사례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8월중 IT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 실태조사에 따른 후속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삼성SDS, LG CNS, SK C&C 등 이름만 대도 금방 알 수 있는 8개 대기업들이 들어 있다. 이들 대기업 중 일부는 중소기업체에 전화를 걸어 “(공정위에서) 조사가 나오면 그런 (불공정거래) 사실이 없다고 말해달라”는 청탁(?)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중 눈길을 끄는 것은 중소업체 얼라이언스시스템에 대해 삼성SDS가 불공정 거래행위를 벌였다는 대목에 대한 조사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 삼성SDS의 불공정행위가 드러났다”며 “(삼성SDS에 대한) 구체적인 제재 수위는 현재 상정된 위원회에서 8월중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얼라이언스시스템은 지난해 8월 ‘삼성SDS가 우리은행에 소프트웨어 제품을 300명 동시사용자분에 한해 판매할 것이라고 사업을 수주한 이후 이를 어기고 우리은행에 무제한 사용을 보장해주는 수법으로 재산상 이익을 편취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조성구 얼라이언스시스템 사장은 “삼성SDS가 시스템 구축사업을 ‘덤핑’으로 수주한 뒤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제안 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낮게 공급해줄 것을 요청했다”며 “제안을 받아들이면 삼성그룹에 우리 제품을 독점 공급하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해 삼성SDS의 요구대로 협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점공급은 고사하고 오히려 외산 제품을 가져다 삼성그룹사에 팔았다는 것이 조 사장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삼성SDS는 “(얼라이언스의 주장대로) 라이선스를 속인 적이 없다”며 “얼라이언스가 사업이 악화되자 오히려 억지를 부리며 나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얼라이언스측은 지난 2월 검찰이 삼성SDS에 대해 무혐의 판정을 내리자 즉각 항고했다. 따라서 삼성SDS에 대한 공정위의 불공정거래 발표가 있을 경우 검찰의 재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얼라이언스는 이 소송으로 현재 존폐의 위기에 몰린 정도는 아니지만 사업이 여의치 않자 직원들이 하나둘씩 회사를 떠나고 있는 상태. 얼라이언스는 차세대 EDMS(전자문서 관리시스템) 및 EIM(전사적 정보관리) 솔루션으로 한때 시장점유율이 90%에 이르렀던 벤처 기업이다.



 주문도 일방적으로 취소

 대기업은 납품업체 쪽에 제품을 주문한 뒤 ‘마음대로’ 인수를 취소해버리기도 한다. KTH는 지난해 인텔넷에 전화와 인터넷이 가능한 다기능 정보전화기 10만대를 구입하기로 협약을 체결했다.

 이 단말기는 KT가 제공하는 리빙넷에 접속해 메시지 송수신, 이메일 송수신, FAX송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뉴스·날씨, 쇼핑, 뱅킹, 오락·여가 등 각종 콘텐츠를 제공받을 수도 있는 단말기다. 하지만 KTH는 아직 한 대도 구입하지 않았다. 인텔넷 관계자는 “지난해 KTH가 단말기 수요확보 계획안을 주면서 구입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인텔넷은 공정위에 KTH를 불공정행위로 신고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 7월 말부터 KTH의 불공정행위 여부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LG텔레콤도 2002년 중견 벤처기업인 싸이버뱅크가 개발한 4인치 화면의 PDA폰 2만6700대(약 200억원어치)를 2002년 11월까지 인수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LG텔레콤은 1만400대만 사들이고, 나머지 1만6000여대는 인수하지 않았다.

 싸이버뱅크 관계자는 “당시 퀄컴 칩 품귀현상이 세계적으로 일어나 우선 11월까지 1만여대를 납품하고, 12월에 나머지를 납품하겠다고 설명했다”며 “하지만 LG텔레콤은 단말기 판매가 예상보다 부진하자 납기 지연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계약을 취소했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LG텔레콤은 “싸이버뱅크 쪽이 납기를 어겨 인수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230억원 규모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을 위한 ‘소프트웨어(SW) 상생펀드 조성’도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보통신부 등이 중소기업이 30억원, 대기업과 정부가 각각 100억원을 출자해 총 230억원 규모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펀드를 조성키로 한 상생펀드 조성이 불투명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들이 갹출을 통한 펀드조성이 문제 될 소지를 안고 있다고 주장해 결국 무산될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의 상생경영에 나서고 있지만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행위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들이 외치는 상생경영의 혜택을 보는 중소기업은 가장 친한 몇 몇 기업에 국한돼 있다는 것이다. IT업계 관계자는 “어음 대신 현금으로 결제를 받는 협력업체는 소수”라며 “대부분의 업체들은 대기업의 상생경영을 보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가 계산을 하는 데 있어 대기업이 횡포를 부려 제 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대기업이 자기 기술처럼 가로채는 일까지 빈발한다.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IT 기업들의 횡포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인지도와 높은 시장지배력을 앞세운 글로벌 기업들의 일방통행식 행위에 국내기업들은 거의 속수무책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지난 5월 발표한 ‘2005년도 중소기업의 대기업 납품애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5개의 중소기업 중 31.2%가 최근 1년 동안 대기업으로부터 불공정 하도급 거래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불공정 하도급 거래행위에 대해서는 ‘대기업의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요구’가 46.1%로 가장 많았다. 대기업의 발주 취소 및 변경(22.6%), 하도급 대금 60일 초과지급(13.0%), 지연이자 미지급(11.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러한 불공정 행위에 대해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거래 단절 등의 보복조치가 우려돼 그냥 참는다’(75.7%)고 답했다. 조사기업 중 64.4%는 ‘공정거래위원회, 중소기업청의 직권조사를 강화,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도·규제보다 인식전환 먼저 돼야

 일단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대등한 동반자 관계자로 올려놓겠다는 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정부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방안’은 중소기업을 단순한 생산하청공장에서 동반자의 위치로 올려 세운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기업이 기술개발, 공정개선 등 중소기업의 혁신을 지도하고 원가절감의 성과를 양쪽이 공유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기술 및 인력 교류 촉진, 대기업의 중소기업 지분투자 활성화, 납품처 다변화를 통한 개방형 중소기업으로의 전환, 중소기업의 전문화와 대형화, 부품소재 중핵기업 육성 등 지원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무엇보다 먼저 대기업의 인식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책만으로 불공정한 대·중소기업의 관계가 공정하게 전환될지 의문이라는 얘기다. 정부가 ‘제도·규제보다 인식 전환’을 강조하는 것도 상생협력 방안의 실천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업계 관계자는 “제도나 규제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기술개발 등에서 협력하지 않으면 동반추락할 것이란 인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대기업의 자발적 참여 외에는 이를 강제할 장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그동안 정부나 재계가 여러 차례 불공정거래 관행 개선을 외쳐왔지만 실제로 달라진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협동중앙회 관계자는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관행을 일삼고 있는 대기업에 대해 무거운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강력한 제재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대기업의 내부 분위기로는 중소기업과의 불공정거래 관행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임원이나 간부들이 끊임없이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것도 ‘위로부터 내려오는 원가절감’ 지시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형태가 업계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실제적으로 대기업과 주종관계를 이루는 중소기업들은 그 동안 대기업의 불공정한 처사에 후환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래서 결국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도산하는 중소기업도 비일비재했다.

 중소기업인들은 경제를 진정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중소 벤처기업이 더 이상 대기업의 일방적 희생물이 돼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중소 벤처기업이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같이 발전할 수 있는 상생의 관계가 정립될 수 있도록 제도적·정책적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대형 SI업체와 중소 소프트웨어 사업자는 피할 수 없는 협력관계다. 중소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는 대형 SI업체를 통해 제품을 공급한다. SI업체는 소프트웨어 업체로부터 제품을 받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바로 상생의 관계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두 축인 대형 SI업체와 중소 SW사업자 사이에 과연 상생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