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가 심상치 않다. 최근 임원들에 이어 주요 관리직 부서장들 및 연구소 개발 인력의 퇴직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중국 내 공장건립 계획도 무산됐다. 과연 쌍용차의 다음 선택은 무엇일까.

지난 3월28일 최형탁 쌍용차 사장은 렉스턴2 신차 발표회 기자 간담회에서 중국 상하이 자동차(이하 SAIC)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일명 S프로젝트를 포기했음을 인정했다. 이날 최 사장은 “중국 정부가 합작공장건설을 위해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하거나 엔진 공장을 함께 지어야 한다는 요구를 해 수용할 수 없었다”고 말해 중국 내 공장건립이 사실상 물 건너갔음을 간접 시인했다. S프로젝트는 카이런의 부분 모델 변경을 통해 중국 내에서 SUV를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SAIC 입장에서는 쌍용차의 어퍼 바디(차의 몸체) 연구개발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독자적인 엔진, 트랜스미션 시스템을 갖춘 플랫폼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2004년 쌍용차와 동시에 MG로버사 플랫폼을 인수했으나 일부 모델의 지적재산권밖에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버의 디자인 권리를 5300만파운드(약900억원)에 인수한 SAIC의 중국 내 라이벌 난징사와 분쟁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SAIC는 로버의 소유주였던 BMW와는 Rover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어쨌든 로버사의 플랫폼에 쌍용차 연구 인력을 투입, 독자 모델을 확보하겠다는 당초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또 중국 내 사정도 달라졌다. 장쩌민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파가 후진타오를 중심한 베이징파에 의해 정치, 경제 전반에 걸친 실권을 상실했고, 이는 상하이파에 정치적 기반을 둔 SAIC의 국내외 사업추진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2004년 인수 당시 SAIC는 김재록씨가 회장으로 있는 자문 컨설팅사인 인베스투스글로벌이 ‘쌍용차는 현 시스템만으로도 향후 5년간 생존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낙관적 전망을 너무 믿은 것을 후회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SAIC는 이 과정에 쌍용차 전 고위층들이 인위적으로 조작된 데이터를 자문 컨설팅사에 제공했다고 의심했다고 한다.

최형탁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소진관 사장이 퇴임하면서 상무에서 사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최 사장은 쌍용차 내 3명의 대표이사 중 한 명이다. 짱쯔웨이 공동대표는 단독 결재를 하는데 비해, 최 사장은 반드시 장타이오 중국 측 수석 부사장의 선결재 후 서명을 한다. 현재 쌍용차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최 사장이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SAIC, 쌍용차 경영권 완전 장악

지난 2월말 SAIC는, 소 전 사장, 최형기 전 부사장 등 전직 고위급 임원들을 배임 및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한다. 이들 전직 경영진들은 한때 쌍용차의 해외 매각이 기술 유출 및 부메랑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국내 비판여론에 맞서 중국시장의 내수 시장화 논리로 옹호했던 인물들이다.

쌍용차 내부에서는 소 전 사장의 퇴임과 고발건에 대해, SAIC 측이 쌍용차 경영권 인수 초기부터 모종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소 전 사장 측이 SAIC 측에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에서는 지난해 11월 소 전 사장이 퇴임 이후 급격하게 영업실적이 떨어지자 소 전 사장 퇴임을 결정한 상하이 시청 공무원 출신들인 쌍용차 현 경영진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내린 조치로도 업계는 분석한다.

소 전 사장은 1999년 이후 2005년 퇴임 시까지 적자사업 부문의 구조조정, 영업망 확대를 통해 적자 업을 흑자로 반전시켰고, 2001년 12월에는 채권은행들의 부채 1조2000억원을 지분으로 전환해 안정적인 재무구조로 만드는 성과를 올렸다. 소 전 사장은 이러한 국내 부문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해외로의 시장 확대에 무관심했다는 내부 비판을 받고 있다.

쌍용차는 경유 가격의 인상, 자동차세 인상으로 인해 일반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승용차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쌍용차의 경쟁력 약화라기보다는 SUV시장 전체의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SUV 신차 시장의 30%를 점유했던 쌍용차는 올 4월 누적판매가 전년대비 11.6% 감소해 판매점유율이 10%p 떨어졌다. 특히 SUV는 초기 차량구입 가격이 가솔린 승용차에 비해 월등히 비싸다. 그동안 SUV차량은 경유 가격이 가솔린에 비해 많이 쌌기 때문에 승용차와 유지비 경쟁에서 앞설 수 있었다.

SAIC가 경영권을 인수하던 2004년 하반기에 비해 쌍용차의 가치는 미래 성장 측면에서는 하락했으나, 쌍용차가 보유중인 공장 및 대도시 인근의 A/S 공장부지 등 자산 가치는 오히려 증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충분히 활용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국내 자동차 메이커 출신들이 모여든 연구개발 인력, 기존의 영업망 등이 여전히 매력적인 요소이다.

메르세데스 벤츠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은 창원의 엔진 생산 공장은 쌍용차 최고의 자산이다. 다만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해 생산원가가 높다는 부담은 안고 있다.

쌍용차는 내수에서의 손실을 해외 사업을 통해 메우고 있다. 수출 확대를 위해 서유럽, 동유럽, 중동, 중남미, 아시아 태평양, 아프리카 등 권역별로 수출 거점을 확대하고 딜러망을 재정비했다. 2004년 3만7500대였던 수출은 지난해 6만7800대로 늘었다. 올해는 8만5100대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 이 회사의 계획이다. 현실적으로 내수에서 고전하는 한 수출시장을 확대, 생산가동률을 높이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의 방책이다.

쌍용차에는 서서히 내수판매 부진에 따른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직원들은 판촉기간 중 할당된 차를 팔지 못해 자신 및 자신의 친인척 명의로 차를 사는 소위 ‘자살골’을 먹고 있다. 차가 필요한 직원들이야 판촉기간 중에 자사 제품을 임직원 할부 조건으로 사면 자신의 실적도 올리고 좋지만, 차를 2~3대 산 경우는 상황이 심각해진다. 중고차로 팔지도 못한다. 산지 1년 내 처분하면 임직원 할인 혜택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쌍용차 내부는 임원들의 사퇴, SAIC 측의 비전 부재 등으로 인해 조직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관리직 차·부장 직급을 중심으로 흔들리고 있다.

쌍용차에 눈독 들이는 국내 기업들

SUV시장의 세계적인 흐름은 모노코크(보디와 프레임이 하나로 되어있는 차량 구조) 타입의 SUV가 각 메이커의 주력 제품으로 나오고 있다. 쌍용차는 후륜구동 프레임 타입의 SUV를 주력 제품군으로 삼고 있다. 전륜구동의 모노코크 타입의 제품은 보유하고 있지 않다.

2005년 야심차게 발표한 액티온 역시 코란도 새시를 활용한 프레임 타입의 SUV이다.

쌍용차 관계자는 “쌍용차는 잦은 경영권 변경으로 인해 조직 및 기술개발 부문 등에서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혹평한다. 혁신의 기회를 놓친 쌍용차는 SAIC에 자동차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짓는 신차개발에 대규모의 지속적인 투자를 해주기를 기대했다. 또한 SAIC가 극심한 국내 경쟁을 피할 수 있는 중국 신 시장을 획기적으로 넓혀줄 것을 기대했으나 지금으로선 두 가지가 다 무산된 셈이다.

쌍용차는 내수판매 실적이 부진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경영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전망이다.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120% 선에 머물고 있다. 부채 중에서 금융이자가 발생하는 차입금은 5,000억원 내외이다. 또한 현금 및 현금에 준하는 자산이 4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쌍용차 관계자들은 벌써부터 “자국 내에 프레임 타입의 SUV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해외 모험 자본이거나, 현금 유동성이 좋으며 장기투자가 가능한 국내 기업들이 쌍용차 경영권에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놓는다.

비공식적으로 쌍용차 경영권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국내 모 기업은 “만약 쌍용차가 실제 매물로 나온다 하더라도 M&A 특성상 우리가 먼저 SAIC 측에 인수 제안을 하지는 않겠다”며 “기업 가치를 높여줄 필요가 없고, 기업 가치가 충분히 하락한 후 협상력을 갖고 임하겠다”고 말해 인수협상에 나설 것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최근 해운, 건설 등으로 급성장한 국내 S기업도 쌍용차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중, 자동차 패권 다툼 조짐

2002년 중국 베이징 차와 50대 50 합작으로 ‘베이징 현대차’를 설립, 연간 30만대 생산규모의 공장을 가동 중인 현대차는 베이징에 제2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관련 부품업체들이 설비를 확장하거나 신규 진출하는 과정에서 현지 중국 파트너들이 생산설비 노하우를 이전해 달라고 해, 일부 업체들이 필요 인력만을 남겨놓고 현지에서 철수하는 일이 벌어졌다. 중국 정부는 제2공장 인가를 조건으로 엔진 기술이전 및 기술연구소 설립을 요구했었다.

쌍용차의 경영권을 장악한 SAIC가 S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카이런의 설계도면 및 생산설비 이전을 시도하자 쌍용차 노조는 이에 극심하게 반발했었다.

이후 중국정부는 쌍용차의 S프로젝트를 불허, 기술이전 없이 시장만을 내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결국 중국을 내수시장화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 생존하려는 쌍용차의 전략은 최종적으로 SAIC의 정책부재 및 중국정부의 중국 내 쌍용차의 생산 공장 설립 불허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한·중 자동차 업계 간 갈등과 관련,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 산업 저널리스트는 “중국 정부는 자동차뿐 아니라 외국 기업이 주요 기간산업에 투자할 때 연구소 설립을 기본으로 요구하고 있다”며 “상당수의 산업이 공급과잉으로 규정돼 그동안 투자유치를 중심으로 개방적이었던 정책들이 한층 엄격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바야흐로 자동차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는 기술우위에 있는 한국과 자본우위에 선 중국 간에 자동차 기술 및 시장을 둘러싼 패권 다툼 조짐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현상들로 보일 수도 있다.

이와 관련 국내 산업평론가인 황홍선씨는 “중국 자동차 메이커가 저가 자동차를 해외에 수출하고, 생산 및 판매 대수가 우리나라를 앞지르고 있기 때문에 언뜻 우리와 비슷한 듯 보이나, 자동차 산업은 기계 공업의 발전 수준과 궤를 같이 한다”며 “한국의 자동차 산업 기술의 발전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것이며, 중국은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을 이전 받고 있는 과정이지만 기술흡수 및 소화 능력, 전파 및 독자개발 능력을 고려하면 우리와는 일정한 수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패권 다툼 자체를 부정한다.

그는 이어 “산업의 경쟁력은 기술 등 하드웨어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경영진들의 의식, 언어 구사 능력, 직원들에 대한 후생 제도의 수준 등 소프트웨어 측면도 중요하다”고 현 쌍용차 경영진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이 같은 황씨의 발언에 대해 <파이낸셜 타임즈> 4월11일자 기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즉 “중국은 2005년도에 처음으로 수출 물량이 수입차를 앞섰으나, 수출차 대부분이 저가 경트럭 위주로 지역적으로 중동, 아프리카, 서남아시아에 편중됐고, 수출물량 17만2800대 중 승용은 3만1000대에 불과했다”고 보도됐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또 “SAIC가 자체 모델 생산을 위해 2010년까지 137억위안(17억달러)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SAIC는 5개 플랫폼을 통해 RV로부터 소형 승용차까지 30개 모델을 생산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SAIC의 의중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이남석 박사(경영학)는 “30개 모델에는 쌍용 모델을 베이스로 한 SUV모델이 최소 2~3개가 포함되지 않는다면 동 계획은 실현성이 떨어져 보인다”고 언급했다. 또한, 이 박사는 “그렇기 때문에 SAIC가 단기간 내에 쌍용차를 매각할 의지는 적다”고 전망했다.

SAIC는 1월 25일, 2010년까지 쌍용차에 2조원을 투자, 중대형 세단 2종, SUV 3종, 미니밴1종 등 6종의 신차를 개발한다는 ‘중장기 발전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최형탁 쌍용차 사장은 “투자 자금은 대주주인 상하이 자동차의 별도 지원 없이 자체 수익력을 바탕으로 조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SAIC가 쌍용차에 대해 5억달러의 인수 자금 이외에 획기적인 추가 투자가 없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M&A 업계 모 전문가는, “정상적인 M&A는 인수 자금 외에 기업 정상화를 위한 추가 투자 자금을 고려해야 된다”며 “쌍용차와 같은 대규모 제조업체는 인수 자금의 2배 이상을 정상화 자금으로 산정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M&A 전문 법무법인 ‘정세’의 관계자는 “쌍용차의 중장기 투자와 관련한 자금 조달 계획은 근거가 없고,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한편, 베이징 거주 산업 저널리스트인 장 모씨는, “쌍용차의 경우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자국 소유 회사인 만큼, 쌍용차가 중국으로의 기술 이전과 연구 개발 투자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중국 당국의 지원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고 전망했다. 또한 장씨는 SAIC 또한 쌍용차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예측했다. 장씨는, “대부분 공산당에 적을 둔 관료들인 SAIC 수뇌부가 관료들의 속성상 외국 기업 매수 및 매각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손해를 감수한 경영권 매각은 쉽지 않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쌍용차에 근무하는 중국측 고위 임원들 역시 국내 언론사들을 방문, “매각설은 사실이 아니다. 열심히 경영하고 싶으니 도와 달라”고 적극적으로 쌍용차에 대한 경영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와관련 쌍용차 내부에서는 제3의 대안으로 제3자에 의한 ‘위탁 경영론’도 등장하고 있다.

중국의 또 다른 국영 기업 난싱과 갈등을 겪어가면서 쌍용차의 경영권을 틀어쥔 SAIC가 경영이 좀 어렵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쌍용차 역시 노조를 중심으로 SAIC 측의 구미에 맞게 기술을 이전하지도 않을 것이다. 선진국으로부터 기술 전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SAIC가 쌍용차에서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사뭇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