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가 다국적 제약회사의 R&D 허브로 떠오르고 있다. 높아진 한국의 의료 수준과 임상시험 덕분이다. 한국화이자제약의 R&D를 담당하고 있는 의학부를 찾아 이를 확인했다.

근 한국화이자제약은 R&D 투자를 급속히 늘렸다. 올해 연구 개발비로 190억원을 투자할 계획인데 이는 지난해 80억원보다 2.4배 증가한 것이고, 2002년 20억원보다는 9.5배나 급증한 것이다. 다국가 임상시험 유치수도 2002년 3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22건, 올해는 41건을 유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화이자제약은 미국 화이자그룹의 한국법인으로 1969년 설립, 지난해 33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회사는 리피토(고지혈증 치료제), 노바스크(고혈압 및 협심증 치료제) 등과 함께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로도 유명하다.

지난 5월16일 한국화이자제약의 본사를 찾았다. 서울 광진구 광장동, 한쪽으로는 고층아파트와 또 다른 한쪽으로 주택가를 두고 녹색 철망으로 만든 담장이 둘러진 건물이 눈에 띈다.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곳이라는 짐작이 든다.

부지 중앙에 둥그런 지붕은 제약 공장. 일부 약품에 대해서는 원료를 가지고 와 직접 제조하지만, 대부분 제조된 약을 본사로부터 가지고 와 포장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정문 옆 나지막한 4층짜리 건물에 연구부서인 의학부가 있었다.

의학부는 크게 임상시험을 담당하는 임상팀, 신제품의 허가를 담당하는 허가팀, 임상시험의 진행 전반에 의학적인 조언을 하는 의사(Product Physi- cians) 외에도 MIS(Medical In- formation/Safety 의학정보 수집), QSPIM(Quality Standards & Pro- cess Implementation Manager 임상시험 관리 감독), OR(Outcome Re- search 의약품 경제성 평가)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의학부를 총괄하고 있는 조성자(43) 전무가 기자의 질문에 앞서 물었다.

“제약회사가 화학 업종일까요, 아니면 제조 업종일까요.”

조 전무의 답은 화학도 제조 업종도 아니라는 것이다.

“제약업은 지식정보 산업입니다. 제약 업체가 주는 것은 약이 아니고 정보죠. 소비자가 약국에서 사는 것도 약이 아니라 정보입니다. 우리는 약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지식과 정보, 데이터를 만드는 겁니다.”

조 전무는 조그만 알약 케이스에서 제품설명서를 꺼냈다. 우리가 흔히 약을 사면 거의 쳐다보지 않는 깨알 같은 글씨가 적혀 있는 설명서였다. 알약의 제조에 관한 설명은 전체의 5%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머지는 임상과 약리 등 그의 말대로 정보였다. 이 제품설명서를 만드는데 15년이 걸렸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국내 임상, 허가만을 진행해오다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화이자 글로벌 임상시험에 참가하기 시작했어요. 2005년이 돼서야 양적, 질적인 면에서 그 수준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조 전무는 최근 4상 정도에 머물던 임상시험을 2, 3상 임상시험까지 유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초기 임상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은 한국의 연구자들이 신약개발에 있어서 보다 초기단계부터 의사 결정에 참여하게 된다는 의미다.

또 국내 연구자들이 신약개발의 초기단계 노하우를 접할 기회가 생긴다는 점에서 국내 제약 업체의 R&D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의료 수준이 크게 높아지고 일본보다 한국에서 임상시험 허가를 받기가 쉽다는 점이 다국적 제약사들이 한국에 관심을 갖게 하는 장점이죠. 한국에서 임상시험을 하면 한국 시장 진출이 용이하다는 점도 매력적이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의 우수한 임상시험 성과가 인정을 받았다는 거죠.”

하지만 이러한 수준을 인정받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한다. 2001년만 하더라도 본사를 방문하면 한국에 지사가 있는지도 모르는 직원이 태반이었다는 것.

“사실 임상시험을 유치하기 보다는 그때는 한국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가 과제였어요. 의학부 자체에서 한국화이자를 홍보하는 책자를 만들어 본사나 외국 출장을 나갈 때마다 의무적으로 들고나가 알리게 했어요. ‘넌 나가면 몇 부는 돌리고 와라’ 이런 식이었죠.”

한국 임상시험 홍보 ‘톡톡히’

한국의 우수한 임상시험을 홍보하면서 조 전무가 겪은 에피소드 한 토막. 2003년 일본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한 조 전무는 일본 후생성 관리가 한국의 다국적 임상시험 수준이 일본보다 10년이나 뒤졌다는 발표에 발끈했다.

“식약청의 아는 분과 바로 그 관리를 찾아가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했냐며 따졌어요.”

이후 조 전무는 일본화이자의 주선으로 일본 후생성을 방문해 한국의 임상시험에 대한 강의를 했다고 한다. 한국 임상시험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그는 한국이 이제는 신약 후보 물질 탐색부터 초기·후기 임상 연구까지 망라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신약개발 파트너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3년 이내에 한국을 아·태 지역 국가 중 최고의 신약개발 다국적 임상 국가로 육성하고 실질적인 연구 개발센터까지 유치하는 게 그의 개인적인 목표다.

지난해에는 본사의 R&D임원을 한국에 초청해 한국의 우수한 의료진과 뛰어난 임상연구시설, 정부의 적극적 지원, 한국에서 진행한 다국가 임상시험의 우수한 결과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의 R&D에 깊은 감명을 받은 본사 임원은 이후 본사 R&D 관련 직원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으며, 한국의 R&D 투자에 적극적인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

조 전무는 R&D 투자 확대와 함께 화이자가 한국 시장에서 추진하는 것은 글로벌 연구 개발 그룹과의 연계 강화라고 설명했다. 화이자는 한국에서도 본사와 함께 조기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초기 단계에서부터 한국의 의료진과 화이자 글로벌 연구 개발 그룹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의학부의 임상팀장 중 한 명이 일본 연구소에 파견근무를 나가 R&D 과정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또 조만간 일본 연구원이 한국화이자에 파견근무를 하기로 해 한국의 우수한 임상시험 과정을 일본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화이자 본사가 실시하는 모든 주요 신제품의 임상 핵심 연구에 필수적으로 참여할 방침을 정했다. 화이자 본사의 모든 주요 신제품 임상의 핵심 연구에 1개 이상 필수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임상시험 중 핵심 연구(피보탈 스터디)에는 질적 수준을 고려해 참여하는 나라를 극히 제한하고 있어요. 이런 연구에 한국이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 의료 인프라와 임상연구의 수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하죠.”

글로벌 임상시험의 책임연구자에 국내 연구진이 최초로 선정되기도 했다. 화이자는 신약 개발의 글로벌 연구책임자로 방영주 서울대 종양내과 교수를 선정했으며, 정현철 연세대 교수와 노영무 고려대 교수를 글로벌 연구 자문단으로 두고 있다. 화이자의 글로벌 임상에서 한국 연구진 주도의 신약 임상시험을 최초로 진행하게 된 것이다.

그는 한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 등을 제치고 세계적인 제약회사의 R&D 허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과 같은 치열한 경쟁구조에서는 선점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신물질 탐색보다 임상시험이 중요

조 전무와 함께 신약개발 과정에서 핵심단계라고 할 수 있는 임상시험과 시판 후의 안정성 평가를 담당하는 임상연구총괄팀장(Head of clinical operations)인 이소라(34) 과장을 찾았다. 한국화이자의 의학부에는 모두 30여 명의 CRA가 있다. 이 과장도 CRA 중 한 명으로 이들을 거느리고 있다.

CRA(Clinical Research Associ- ate)는 임상시험 과정에서 피험자의 권리와 이익을 고려해 피험자를 보호하고, 임상시험이 규정이나 가이드라인에 따라 잘 수행되도록 시험기관 및 연구자를 돕는다. 한마디로 말해서 임상시험의 전 과정을 이끌어나가면서,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프로젝트별로 업무를 진행합니다. 한 프로젝트 당 2~5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죠. 6년 전에는 5명 정도에 불과했어요. 올해 안에 20여 명 정도를 더 충원하면 50명의 CRA를 두게 됩니다.”

CRA는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최신의 의학정보를 가진 의료진과 협의해 프로토콜을 만들고 조정한다. 이를 식약청에 제출하고, 임상시험에 참여할 연구진을 선정한 뒤 식약청의 심사에 통과하면 본격적인 임상시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일주일에 1~2회 임상시험을 하는 병원 등을 방문합니다. 환자가 임상시험에 적합한지, 환자의 동의서는 받았는지, 약물을 정확하게 투여하는지 등을 점검하죠.”

하지만 환자 개인에 관한 일체의 정보를 회사로 가지고 오지 못한다.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위해 그의 이름이나 개인정보는 식별번호로 바뀐다. 이외에도 관련 법규뿐만 아니라 화이자 내부 규정 등 지켜야 할 것 투성이 라는 것이 이 과장의 말이다. 임상시험 연구진 등 만나는 사람이 많고 여러 부서와 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는 ‘다이내믹’하다고 한다.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에다 조언자 내지 상담자의 역할도 필요하다.

보통 임상시험의 경우 순조롭게 진행되지만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최근 한 중요한 임상연구에서 연구를 맡은 거의 모든 연구자들이 한꺼번에 병원을 옮겼을 때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라 힘이 들었지만 병원장과 다른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아 다행히 원만하게 해결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약개발에 일조한다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일이다. “임상시험이 순조롭게 진행돼 허가를 받아 신제품으로 나올 때가 가장 보람 있어요. 환자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하는 데 일조했다는 느낌 때문이죠.”

한국화이자의 이러한 연구 활동들은 한국 시장에 혁신적인 신약을 공급해 국내 환자들과 한국인들이 보다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것이 한국화이자가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다.

plus tip

임상시험이란?

의약의 발달에 따라 끊임없이 신약이 개발되고 있다. 개발과정에서 임상시험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단계다. 물론 신약 개발은 길고도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연구실에서 개발된 약물을 동물에 실험하고, 신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는 임상시험이 진행되는데,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 만큼 복잡하고 엄격한 규정에 따라 수행된다.

동물까지의 전임상시험 후 임상시험은 4단계로 진행된다. 1상은 건강한 지원자를 대상으로 안전성을 평가하며, 2상은 환자를 대상으로 안정성 및 유효성을 면밀히 검토한다. 3상에서 대규모로 유효성을 평가하며, 3상 시험에 들어온 70~90%의 약물이 성공적으로 수행돼 시판허가를 받게 된다. 그리고 시판 후 4상에서는 안전성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평가한다.

보통 200만여 개의 신물질이 신약의 후보로 등장하지만, 전임상 단계와 임상시험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신약으로 출시되는 것은 단 1~2개에 불과하다. 보통 신약 후보 물질의 발굴에 3~5년이 걸리고, 임상시험이 10년 정도가 걸린다. 그만큼 제약회사에 있어 임상시험이 중요하며, R&D과정을 임상시험 과정이라고 불러도 과장이 아니라는 얘기다.

plus interview

조지 푸엔테(Jorge Puente) 부사장

“200만 개 신물질 중 1~2개 성공”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기간과 비용, 그리고 인력이 드나.

화이자의 총 R&D비용은 매출의 17%에 해당하는 약 50억 달러 이상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하나의 신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약 11~15년, 5~15억 달러의 투자비용이 소요된다. 현재 1만2500여명의 연구진들이 18개 치료분야에서 다양한 연구 개발 작업이 진행 중이며, 148여개의 프로젝트가 개발단계에 있다.

실무담당자로써 신약 개발의 어려움을 표현한다면.

바닷가의 무수한 모래알 속에 묻혀 있는 다이아몬드를 찾는 것과 같다. 200만개의 신물질이 신약후보로 등장하지만 임상단계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신약을 출시되는 것은 1~2개에 불과하다. 또 시장에 출시된 신약의 10개중 평균 3개만이 개발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한다. 1998년 42개 이르던 연구 개발 제약사는 2005년에 남아 있는 제약사는 16개에 불과하다.

한국 생명공학 산업의 미래에 대해 전망한다면.

한국은 제약, 바이오 등의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전반적으로 평가할 수 없지만 한국의 제약시장은 세계 11위 규모로 향후 5년간 8~9%의 성장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다국가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의 연구자들을 만났는데 연구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다. 한국의 임상과 관련된 R&D의 세계화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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