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휴대폰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국내 업체들이 수익성 확보에 휘청거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매출은 감소하고, 세계 2위 모토로라와 시장점유율 차이가 더욱 벌어졌다. LG전자도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한국의 휴대폰 신화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 휴대폰 산업이 위기에 빠진 것인가.

외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비교적 양호한 것처럼 보이는 삼성전자 등 국내 휴대폰 업체들의 성적표의 속내용을 들여다보면 판매량은 다소 증가했지만 수익성은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올 1/4분기 2938만 대의 분기 사상 최대 판매 실적을 올렸다. 작년 동기 대비 18%, 지난해 4/4분기 대비 6.6%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양호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마냥 좋아할 수 없을 듯하다.

애니콜 신화로 불리는 삼성전자의 가장 큰 문제는 급격한 평균판매가격(ASP)의 하락. 삼성전자의 휴대폰 사업을 떠받치는 기반은 ‘프리미엄’ 전략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인 삼성 휴대폰의 ASP가 점차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 휴대폰의 ASP는 노키아, 모토로라에 앞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지난 4/4분기 184달러에서 올 1/4분기 171달러로 7%정도 낮아졌다. 1위 자리도 소니에릭슨(181달러)에게 내줬다. ASP 하락은 곧 영업이익률 하락으로 이어져 지난해 17.3%로 수위를 달리던 영업이익률은 10.0%로 떨어졌다. 이는 고가폰에서 더 이상 삼성의 독주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LG전자의 수익성도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LG전자의 1/4분기 전체 판매량은 1560만 대 수준으로 작년 동기 1100만 대와 비교, 다소 증가했다. 하지만 유럽 3G 휴대폰의 재고 부담과 수익성이 낮은 인도 CDMA 수출 제품 출하량 증가, GSM 시장의 오픈마켓 진입을 위한 마케팅 비용 증가 등으로 수익성은 악화됐다. 영업 손실 309억원이라는 타격을 받았다.

이들 휴대폰 업체들의 영업 이익이 급감한 이유는 통신사업자들의 3G 기술 투자 부진으로 3G 휴대폰 시장이 성숙되지 않았으며, 판매단가 하락과 함께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한 R&D비용과 마케팅 비용 증가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팔리는 휴대폰 중 절반은 노키아와 모토로라 두 회사 제품이라고 말할 정도로 글로벌 휴대폰 업체들은 장사를 잘했다. 이는 글로벌 휴대폰 업체들의 1분기 실적 발표를 보면 증명된다.

노키아의 1분기 시장점유율(대수 기준)은 32.8%, 모토로라는 20.1%다. 각각 지난해 동기에 비해 1.6%포인트, 3.4%p포인트 증가한 추세다. 반면 삼성전자는 12.7%를 기록해 지난해에 비해 오히려 1.5%p포인트 가량 떨어졌고, 4위 LG전자는 판매량만 늘었을 뿐 적자로 돌아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모토로라를 금방 따라잡아 역전이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토로라의 1분기 휴대폰 판매대수는 분기 사상 최고치인 4610만대로, 지난해 동기 대비 61%나 증가했다. 이러한 모토로라의 재도약에는 초슬림폰 ‘레이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대가 넘게 판매된 레이저폰으로 돈을 번 모토로라는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앞세워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1위 노키아는 이미 시장 주도적 사업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1분기 판매대수만 7510만 대. 휴대폰이 있는 곳이라면 노키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라는 것이 업계 전문가의 평가다.

최근 들어서는 LG전자에 4위를 내준 5위 소니에릭슨이 국내 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소니에릭슨은 중국 등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고가폰 ‘워크맨’이 대박행진을 지속하면서 순이익이 지난해에 비해 두 배 이상 급성장했다. 판매량도 1분기 동안 1330만 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나 증가했다. LG전자의 4위 자리가 위태롭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마케팅 비용 대폭 늘어

국내 휴대폰 업체들이 실망스러운 성과를 낸 데는 우선 세계 휴대폰 시장의 포화를 들 수 있다. 국내 업체들이 주력하고 있는 유럽과 북미 시장은 이미 시장점유율이 70~80%로 성숙됐으며 교체 수요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러한 시장 상황에 따라 국내외 업체들이 무한 경쟁 상황으로 돌입하면서 자연스럽게 저가 위주의 노키아, 모토로라 제품이 두각을 나타냈다. 반면 중고가 제품을 내놓고 있는 한국 업체들이 고전하게 된 것.

가격 경쟁은 특히 국내 업체들이 선전했던 북미 시장에서 심하게 나타났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북미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늘인 결과 이익률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또 한국 업체들이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3세대 휴대폰 시장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이유다. 국내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온 CDMA의 시장 확산 속도가 GSM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GSM 시장이 중요한 이유는 GSM이 전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75%를 차지하는 가장 큰 시장이며, 특히 유럽은 GSM 기술 중심으로 퀄컴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CDMA보다 수익성이 높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또 유럽은 오픈마켓으로 통신사업자 시장인 북미 시장보다 제조 업체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서 수익 면에서 유리하다. 따라서 사업자 중심의 북미 CDMA 시장보다 오픈마켓 비중을 높이는 것이 업체들의 수익성 확보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므로, LG전자가 수익성 악화에도 불구하고 마케팅 비용을 높였다. 하지만 LG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은 유럽 시장에서 앞으로도 엄청난 마케팅 비용 투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더욱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김강오 대신증권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는 “유럽 GSM 시장의 비중을 확대한 것이 휴대폰 업체들의 수익성 확보에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노키아, 모토로라와 한국 업체들간의 기술 격차가 줄어든 것도 한국 업체들에게는 타격이었다. 과거 삼성전자, LG전자는 MP3폰, 고화소 카메라폰 등 앞선 기술을 강점으로 한 휴대폰을 통해 시장을 장악해 왔다. 하지만 이제 해외 업체들도 관련 기술에 대한 표준화를 선도하면서 오히려 국내 업체들을 압도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주춤한 틈을 타서 모토로라는 카메라와 MP3 기능들을 초슬림으로 구현한 혁신적인 디자인의 ‘레이저’를 내놓아 슬림폰 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국내 업체들이 기술적으로 차별성 있는 휴대폰을 고가에 판매하면서 시장을 키워나갔지만 점점 노키아, 모토로라와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기술 격차가 줄어들면서 국내 업체들의 ‘선출시’ 전략도 빛을 바래고 있다. 모토로라가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는 레이저폰은 휴대폰 슬림화를 이끈 대명사가 됐다.

고가 고집 재검토해야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인도, 중남미 등 저가 시장은 국내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특히 노키아와 모토로라는 인도와 동남아, 중남미 등에서 초창기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한 덕분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초저가폰이 주를 이루는 만큼 수익성에서 별 가치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던 국내 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키아, 모토로라와 국내 기업들의 시장점유율 격차가 벌어진 가장 큰 원인은 급부상한 저가 이머징마켓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됐다. 저가 시장은 성장을 거듭해 2008년에는 전 세계 판매대수의 80% 가까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모토로라와 노키아 등 전 세계 1, 2위 사업자들이 저가 시장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 글로벌 휴대폰 업체들이 1~2 종류의 휴대폰 모델들을 1000만 대 이상 판매하는 ‘박리다매식 ’ 전략이 국내 업체들의 프리미엄 전략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이는 저가폰이더라도 판매대수가 늘어나 어느 정도 규모를 형성하면 영업이익률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업체들은 저가 전략을 통해 한국 업체들과의 차이를 벌리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아직까지 뚜렷한 대책이 없다.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저가 시장 진출을 망설이지 않았던 반면 뒤늦게 저가 시장에 눈을 돌린 국내 업체는 점유율과 마진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의 “판매대수가 늘었는데 마진이 줄어든 것처럼 팔아도 남는 것이 없다”는 말에서 알 수 있다.

한국 휴대폰 산업이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인도, 중국 시장의 공략이 필수적이다. 저가 시장에 대한 적절한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기존 중고가 위주의 프리미엄 시장 전략을 계속 밀고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아시아, 중남미 등 저가 시장에 대해서는 상대적인 프리미엄 전략으로 해결책을 모색해 나간다. 애니콜 제품 중 중저가 제품을 출시하는 ‘변형된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다. 40~50달러 선의 저가폰이 주류를 이루고 있을 때 최소 100달러 선을 유지한다는 초저가 시장에서의 톱 브랜드 방식을 도입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저가폰에서 고가폰으로 교체 수요가 일어날 시기를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LG전자도 각 지역에 맞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프리미엄 전략 강화를 통해, 수익성을 개선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LG전자는 내심 ‘초콜릿폰’이 위기 탈출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저가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의 프리미엄 전략은 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저가 시장 공략을 위해서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저가 시장에 진입해야 하는 것은 당면과제지만 단순히 싸게 파는 것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익을 확보한 수준에서 싸게 파는 것이 경쟁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싸게 핸드폰을 개발할 수 있는 제품 설계 능력의 확보도 필요하다.

또 소비자의 요구에 맞는 제품 개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더 이상 고기능 제품의 개발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소비자가 구매하고 싶어 하는 제품의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 휴대폰은 현재 생활필수품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 해 수백 개에 이르는 현수준의 모델 개발은 지양돼야 한다. 단순히 많이 만든 것 중에서 하나가 히트하기를 바라지 말고 히트할 만한 모델의 개발이 우선돼야 한다.

적어도 저가폰 대응을 위해서는 현재 90%가 넘는 국내 고비용 생산비중을 일부분 해외로 이전하는 것도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원가와 물류비 절감도 더 강도를 높여야 한다. 휴대폰 업계 관계자도 “지금까지 성장을 일궈낸 전략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새로운 전략 도입이 시급하다”고 분석했다.

섣부른 전략 수정은 위험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 수출 산업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환율 문제’가 휴대폰 업계에도 예외일 수 없다. 최근의 ‘환율 하락’은 수익성 악화에 가장 중요한 이슈로 거론되고 있으며, 환율 하락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차별화된 시장에서 선점효과를 누리던 국내 휴대폰 업체들은 심화된 국제 경쟁 속에서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저가 시장 위주의 시장 환경으로 국내 휴대폰 업체들의 고전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글로벌 업체들은 저가 전략으로 국내 업체들과의 시장점유율 격차를 벌이고 있어 국내 업체들이 세계 시장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현재 시장이 저가 휴대폰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고 해서 섣불리 국내 업체들이 전략을 수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 휴대폰 업체들의 위기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아직까지 한국 휴대폰의 경쟁력은 건재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국내 업체들이 가진 기술력은 아직은 세계 최고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2/4분기 LG전자의 초콜릿폰이 유럽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 한 예다. 영국에 670개 유통매장을 갖고 있는 유럽 최대 휴대폰 전문 업체 카폰웨어하우스(Carphone warehouse)가 5월 히트예감상품으로 초콜릿폰을 선정하면서, 모토로라의 레이저폰과 비슷한 인기를 얻을 것으로 예상했다. LG전자는 1/4분기 승부수를 던진 유럽 시장에서 쾌거를 거두고 있는 셈.

권성률 현대증권리서치 연구원은 “저가 시장은 이미 노키아와 모토로라 중심으로 판이 짜여져 있는데 한국 업체들이 여기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더욱 수익률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선출시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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