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가인 로버트 드니로. 그는 칠리소스를 듬뿍 친 핫도그를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행복을 느끼는 남자다. 프리랜서로 광고회사 그래픽 일을 하는 메릴 스트립. 그녀 역시 그 남자처럼 거리에서 핫도그 사먹는 걸 좋아한다.

영화 <폴링 인 러브>는 두 사람이 아직 서로를 알기 전, 각자 핫도그 맛에 푹 빠지는 장면을 경쾌하게 묘사한다. 그 후, 두 사람이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사랑도 염색체가 맞아야 한다!”

사랑만 그런 건 아니다. 사실은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그렇다. 나와 얼마나 염색체, 다른 말로 하면 코드가 맞느냐 안 맞느냐로 서로의 관계가 결정될 때가 많은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상대방도 좋아하고, 내가 감명 받은 책에 상대방도 감명 받고, 내가 박수를 보낸 영화에 상대방도 별 다섯 개를 주고, 알려지지 않아서 나 혼자만 점찍어 놓은 여행지를 상대방도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 놀라움은 대개 상대방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호감이 신뢰로 발전하면서 서로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풍성해지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우린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을 선호하게 되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심리적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성격이나 태도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뭔가 불편하고 어색함을 느끼게 되어 있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와 같은 불안을 피하고자 우린 일차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비슷한 유형에 더 이끌리는 것이다.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성격이 비슷한 커플이 그렇지 못한 커플보다 결혼생활에서 만족도가 더 높다고 한다. 실제로 결혼할 때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도 ‘유사성’이 가장 높다는 보고가 있다.

그와 같은 유사성은 결혼생활뿐만 아니라 조직 내에서도 내 사람을 챙길 때 중요한 기준이 될 때가 많다. 적지 않은 리더들이 자기도 모르게 코드가 맞는 사람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느 최고 경영자의 사례다. 그는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평소 돌다리도 반드시 두드려 보고 건너는 타입으로 유명했다. 그러다 보니, 사원들도 꼼꼼하고 치밀함을 발휘하는 쪽에 늘 후한 점수를 주었다. 혹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경영을 주장하는 임원이 있으면 아예 상대도 하려고 들지 않았다. 두려움과 불안감이 증폭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사업방식이 꼭 필요할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에도 그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또한 그는 사원들이 가족 같은 친밀함으로 결속하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자신이 아버지처럼 버티고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실제로 아들처럼 자신에게 순종적인 사원들에게 훨씬 더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정신과적으로 말하면 일종의 역할 전이 상태에 놓인 셈이었다. 리더와 조직원이 아닌, 아버지와 아들의 역할에 더 충실했던 것이다.

그러나 거기엔 함정이 있었다. 첫 번째 함정은, 회사 경영에 꼭 필요한 건설적인 비판이나 창조적인 대립이 애초에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리더의 코드에 맞추려는 순응주의와 아부가 더 승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로 인해 전반적인 경영실태 역시 부실해지기 딱 알맞았다.

두 번째 함정은, 가족과 기업은 처음부터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는 점이었다. 사장이 아버지 같고 전사원이 가족처럼 지낸다고 해도 생산성을 높이고 이익을 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회사가 점점 침체되어가는 동안에도 아버지 역할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때 사태 악화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몇몇 임원이 반기를 들었다. 중요한 것은 경영상태의 개선이지 사장을 중심으로 한 충성심 경쟁이 아니라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사장은 그 임원들에게 오히려 불같이 화를 냈다. 아버지 역할을 자임하고 있던 그로서는 자신에게 순종적이지 못한 자식은 필요 없었던 것이다.

그의 경우,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일단 전이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정신과에선 모든 전이를 일종의 역할 혼동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 역할들을 바로잡기로 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아버지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사원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조직에게 필요한 두가지 타입

두 번째는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만을 주변에 두려고 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물고기를 먼 곳으로 운반할 때 반드시 그 물고기들에게 위협이 되는 다른 물고기 몇 마리를 넣는다는 건 잘 알려진 얘기다. 마찬가지로 기업이나 조직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극이 되고 건설적인 비판이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리더는 그런 비판을 잘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가장 우려되는 일, 즉 리더는 물론이고 조직 전체가 방향감각을 상실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의 24시간을 비교적 세세하게 묘사해서 인기가 높았던 드라마 <웨스트 윙>에 보면 그와 같은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가 잘 드러나 있다. 대통령 마틴 쉰을 중심으로 백악관의 참모들은 서로 진정한 결속을 이뤄나간다. 그리고 그 중심에 대통령과 그의 오랜 지기인 특별 보좌관의 헌신과 우정이 자리하고 있다. 두 사람이 그와 같은 파트너십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둘이 바라보는 비전이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비전을 이뤄나가는 데 있어서 코드가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조직이든 코드가 맞는 사람과 똑 같은 비중으로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도 필요하다. 조직이란 온갖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체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나와 코드가 맞으리라곤 애초에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나와 호흡이 맞는 사람만 챙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분열과 소외가 생겨나게 되어 있다. 분열과 소외가 만들어내는 것은 분노와 적개심뿐이다. 그런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보면 조직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언뜻 성품이란 타고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 확신을 통한 의연함과 온전함은 전적으로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리더라면 한 가지 더 보태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을 갖는 일이다.

리더가 온전한 성품을 지니고 있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그가 이끄는 조직이 잠재력과 창조성을 발휘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그리고 그 조직은 당연히 매우 좋은 방향으로 크게 발전해 나갈 수밖에 없다.

양창순 신경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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