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이후 정부의 부동산 가격 억제 대책은 ‘전면전’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가격 억제를 위해 정부가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는 다름 아닌 ‘세금’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정부의 목소리가 높은 만큼 반발도 거세다. ‘주택가격 공시’ 이후의 부동산시장을 둘러봤다.

 부동산 전문가 동행 체험기



 
주택가격 공시 논란을 통해 본 ‘부동산 세금 정책’



 난 5월11일 서울 강서구청. 2층에 위치한 세무1과에는 ‘주택가격 공시 이의신청 접수 창구’가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상근 예비역 근무자 2명이 앉아 구청을 내방하는 신청자의 등록과 이의신청서 접수를 도왔다. 마침 60대로 보이는 주민이 이의신청서를 작성하며 담당 공무원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팔려고 내놔도 안팔리고, 전세나 월세를 내놔도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 집 가격을 그렇게 올려놓으면 세금만 더 뜯겠다는 속셈이 아니냐”는 거였다. 그는 이의신청서를 작성하면서도 미처 분이 다 풀리지 않은 듯 연신 욕지거리를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이의신청을 위해 구청을 찾은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주민 오형철씨(68). 2001년 10월 다가구주택(지하 1층 지상 2층)을 구입 당시 건물과 대지를 포함, 1억7000만원에 매입했다. 이런 그의 집과 대지에 대해 정부는 시가 2억9400만원이라고 가격표를 붙여 공시했다. 아내와 단 둘이 월세로 생활하는 그는 “세입자가 나가고 석달이 지나도록 입주자가 없어 놀리고 있는 판이다. 막다른 골목에 있는 집인 데다 계단도 가팔라 팔려고 해도 안팔리는데 어떻게 집값만 오르느냐”며 하소연했다. 그는 각종 근거를 빼곡히 적은 메모를 펴보이며 “2003년에 10만원을 내던 세금이 2004년에는 40만원으로 올랐다. 이번에 공개적으로 주택 가격을 올려놨으니 올해는 더 올리겠다는 속셈 아니냐”고 언성을 높였다. 이의신청서를 작성한 뒤 담당 직원에게 건넨 뒤에도 그는 “내가 언성을 높이지 않았더라면 아마 신청서를 받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라며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600개 표준 주택으로 2만1700가구 집값 매겨

 이의신청 접수를 담당하고 있는 구청 세무과의 최남식씨는 “이의접수 신청 건수가 20건 정도 접수됐다”고 했다. 대부분의 주택 가격이 과도하게 책정됐으니 내려달라는 신청이었다. 최씨는 “10건 중 8건이 하향 조정 의견, 1~2건이 상향 조정 의견을 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달이면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조사는 단독·다가구는 구청이, 다세대와 연립주택은 건설교통부가 집값 조사를 담당했다. 조사는 6개월에 걸쳐 표준 주택 600곳을 선정해 조사를 하고, 이를 기준으로 주변 주택의 가격을 매긴 것이다. 건교부와 각 구청이 감정평가사에게 조사를 의뢰, 건물의 기준시가를 정한 것. 기준시가는 건물 신축가격 기준액과 구조지수, 용도지수, 위치지수, 경과연수별 잔가율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산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표본 주택 숫자. 서대문구만 하더라도 2만1700가구의 단독주택이 있는데, 달랑 600가구의 주택을 기준으로 나머지 주택의 가격을 매긴 것이다. 민원이 발생치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노릇이다.

 “모든 부동산이 그렇지만, 같은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도로와의 접근성이나 방향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큽니다. 그런데 600가구의 표준이 있다곤 하지만, 모든 주택 가격을 짧은 기간에 적정하게 계산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죠. 적정하게 산정했다 하더라도 집주인들은 또 불만이에요. 세금이 많이 늘어날 게 뻔하다고 생각하니까요.”(김지홍 부동산007 소장)

 서대문구는 서울시에서도 단독주택이 많은 지역에 속한다. 구청의 세무 관계자는 서울시 전체에서 3, 4번째로 많아, 다른 지역에 비해 이의신청이 많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인접한 종로구나 중구의 사정도 비슷한데, 3개 구의 공통적인 고민은 지방 세수 감소였다. 세금의 원천이 시가 기준으로 노출된 건 세수 증가 요인이지만, 지방세 납부 대상이었던 사무용 토지에 대한 재산세가 국세로 전환된 것이다. 반면에 아파트 등 주거용 건물이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은 오히려 지방세 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청의 세무 담당자는 “이의신청이 마감되는 5월말까지는 300~500건 정도가 접수될 것”으로 내다봤다.

 세금의 기준이 되는 집값인 만큼, 집주인이라면 낮게 평가받고자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집값을 더 높게 해달라는 이의신청서가 눈길을 끌었다. 서울시로부터 뉴타운으로 지정돼 재개발이 진행중인 가좌지구(남가좌동 일대)의 주택 소유주들이었다. 재개발로 보상이 이뤄질 때를 대비, 보상 기준이 되는 집값을 높게 책정받으려는 의도다. 이에 대해 재개발지역내 부동산업자는 “보상 금액을 좀더 받는다고 해도 나중에 개발될 때는 기본 비용이 더 올라가기 때문에 공사비가 증액되고 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했다.



 강도 높은 집값 규제에 재건축 투자 ‘열중 쉬어’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정책이 지속되도록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 중 하나인 강북 뉴타운 재개발 지역으로 향했다.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개발 5지구’에 속한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았다.

 “거래하면 신고해야 하고, 신고하면 중과세하는데 거래가 있겠습니까. 개별 주택까지 모두 실거래가, 시세가 반영된 기준시가가 적용되는 등 세금만 더 올라가는 상황이라 지금은 다들 어떻게 되는지 추이만 지켜보는 실정이에요.”

 부동산중개업소 ‘뉴타운부동산’의 이영춘 소장은 “1주일에 문의 전화가 10통도 안 걸려온다”고 했다. 2년 전 이곳에서 부동산업소를 개업한 그는 그렇지만 느긋하게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상대적으로 뉴타운 지정이 늦어진 까닭에, 속칭 ‘세대 쪼개기’ 등이 이뤄지지 않아 ‘물딱지’ 등이 없는 게 지역의 강점이라고 했다. 한강 조망이 가능하고 신촌 등 부도심 인접이라 개발이 진척되면 분명히 가치가 있는 지역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2007년 대선 바람이 불면 지금처럼 정부도 세게 나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주택 가격 공시는 지난 1월5일 ‘지방세법 개정 및 종합부동산세 신설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이뤄진 ‘첫번째 작품’이다. 참여 정부는 출범 직후 집값 급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보유세(재산세) 개편’에 중점을 두었고, 그 결과물이 ‘종부세’라 불리는 종합부동산세 신설이었다. 세제 개편의 근거는 ‘같은 집값에 대해 같은 세금을 부과하는 원칙’이다. 이는 과거 천편일률적으로 과세 표준을 적용해 시세 변동에 따른 재산의 증가, 감소를 제대로 반영치 못한 점을 바로잡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표(과세 표준) 현실화는 세금 부과 근거가 되는 집값을 실제 시장 가격을 중심으로 부과하겠다는 겁니다. 과거 세금은 주택보다는 대지를 비롯한 토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어요.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아파트 보유자들이 내야 할 세금은 적었죠. 그런데 세재 개편으로 과세 대상을 주택과 토지를 구분치 않고 ‘합산’해서 적용키로 한 겁니다. 비교적 재산 가치 상승폭이 높은 아파트에 대해선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세금이 부과되게 된 것이죠.”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갈등으로 대리전 양상

 주택 가격 공시를 통해 650만가구의 개별 가격이 모두 책정됐다. 지자체는 한달간의 이의신청 기간을 두어 5월말까지 이의신청 접수를 받고 있다. 접수된 이의신청은 재조사와 평가위원회를 거친 다음 6월말에 재공시된다.

그렇다면 재산세 부담이 지난해와 비교해 어떻게 얼마나 달라질까. 부동산007의 김지홍 소장은 “과표 현실화란 측면에서 아파트 소유자, 주택 소유자 모두에게 지난해 재산세가 크게 증가했다. 올해 아파트 소유자의 재산세 부담은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주택 소유자의 재산세 증가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세금 액수는 평가액과 세율로 정해진다. 지자체가 징수하는 재산세는 평가액을 기준으로 0.15~0.5%의 탄력 세율을 통해 부과된다. 국세인 종합부동산세는 주택 기준시가의 50%를 과표로 삼는다는 게 중앙정부의 방침이다.

 세재 개편 법안 발의 단계부터 주택 가격 공시 이후 주택 소유자들은 재산세 증가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부동산시장을 강한 규제, 세금으로만 누르려고 한다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부동산007의 김지홍 소장은 “우려와는 달리 ‘재산세 파동’은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고 예상했다. 그 이유로 이미 2년에 걸쳐 재산세가 급등한 경험을 겪었기 때문에 학습 효과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세 부담이 늘어난 데 대한 주택 소유자들의 강한 불만은 조세 당국이나 정치권도 언제까지고 수수방관치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의신청 접수와 정정을 마치면 전국 1250만여가구의 모든 주거 형태에 대한 주택 가격 산정이 6월까지 끝난다. 주택에 대한 세금 부과를 위한 데이터 집계가 모두 끝나는 것이다. 이제 관심사는 과세권자인 지자체가 세율을 얼마나 적용하느냐다. 개정된 지방세법에서도 지자체는 법정세율에 대해 50%의 탄력세율을 적용할 권한을 갖게 됐다. 경기도의 몇몇 기초자치단체의 지방의회는 50% 경감 세율조례안을 발의해 놓고 있다. 이에 중앙 부처는 종합부동산세 세수 배분 과정에서 불이익을 주고, 탄력세율 조정 범위인 50%를 축소하는 지방세법 개정법률안을 검토하겠다며 엄중 경고하고 있다. 결국 담세자인 집주인의 ‘재산세 저항’은 없었지만, 담세자 이익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갈등은 향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Plus  용·어·해·설



 공시지가 건설교통부 장관이 발표하는 표준지 공시지가와 시·군·구에서 이를 기준으로 발표하는 개별 공시지가가 있다. 표준지 공시지가는 일정 지역에서 일종의 표본이 되는 땅을 선정해 가격을 측정한 것이고, 개별 공시지가는 이 표준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해서 세부적으로 개별 필지별로 발표하는 가격이다. 공시지가는 주로 국세, 즉 양도소득세·상속세·증여세 등의 과세 기준이 될 뿐 아니라 각종 공사(예:도로 편입시 보상) 등에 있어 보상 기준이 되기도 한다.

 공시지가는 결국 땅에 대한 과세 기준, 또는 보상 기준이 되는 금액이다. 따라서 양도소득세나 상속세의 기준이 되므로, 부모가 사망해 상속되는 경우 상속세를 내야 한다. 상속세의 기준이 되는 것은 일반 매매 시가가 아니라 공시지가다.

 시가표준액 시가표준액은 한마디로 국세가 아닌 지방세 과세 기준이다. 지방세는 취득세, 등록세 등 부동산을 매매할 경우 발생하는 세금이다. 과세 기준으로는 시가표준액을 사용한다. 시가표준액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미리 정해 놓는다. 해마다 금액이 바뀔 수도 있다. 아파트의 경우 매매 대금은 1억원이지만, 시가표준액을 조회하면 4000만원 전후(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가 나온다. 우리가 세금을 낼 때는 시가표준액을 기준으로 한다. 아파트를 살 때 내는 취득세·등록세 등 각종 지방세를 내는데, 이 시가표준액이 기준이 된다.

 기준시가 공동주택이나 건물 등에 (토지가 아님) 국세청에서 미리 정해 놓은 가격을 말한다. 공시지가가 땅에 대한 거래시 정해져 있는 가격이라면, 기준시가는 건물에 대한 가격이다. 주로 양도소득세, 상속세, 증여세 등의 기준이 되는 가격이다. 부모가 사망한 경우 건물을 상속했다면, 그 건물의 가치는 기준시가로 따져 세금 산출의 기초가 된다.

 같은 아파트라도 구입할 때는 지방세법에 의해 취득세·등록세 등을 내야 한다. 기준으로는 시가표준액이 사용되고, 같은 아파트를 상속받는다면 이는 기준시가에 의해 정해 놓은 금액에 따라 세금을 내게 된다. 결국 하나의 건물에 시가표준액과 기준시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금액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