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서 대량으로 찍어낸다는 뜻의 ‘쿠키 커터’형 의류 브랜드였던 갭은 사라 제시카 파커를 모델로 앞세워 럭셔리 이미지까지 제품군을 다양화했다.

 “우리 미국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유행하는 스타일과 룩을 한마디로 꼬집어 정의할 수 없는 시대에 도달했습니다. 기존 시스템은 서서히 붕괴하고 있습니다.”

 유통·소매업 분야 컨설턴트인 데이비드 울프는 지난해 9월 <월스트리트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뉴욕에서는 ‘트렌드 예측이 트렌드’란 말과 함께 꼬집어 얘기할 만한 파워풀한 유행이나 트렌드를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인, 특히 뉴욕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개인화된 성향을 보이면서 매스 마케팅의 한계를 비웃는가 하면 종횡무진하고 자유분방한 소비 패턴으로 기존 ‘타게팅’을 무색케 하고 있기 때문.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이 점차 이들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는 한편, 이를 겨냥한 믹스 & 매치(용어 참조)나 퓨전 마케팅이 각광받고 있다.

 이들은 남들이 시도치 않았던 자기만의 방식으로 옷을 코디하고,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예상치 않은 장소에 불쑥 나타나 쇼핑을 즐긴다. 회사명이나 개별 브랜드에 의지하기보다는 자기 판단과 취향에 더욱 충실하다. 



 퓨전 마케팅 강세

 미국 면화협회의 트렌드 예측가 클레어 듀피스는 이런 현상을 “현대 소비자들의 자신감”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스스로 확신이 뚜렷한 만큼 소비에 있어서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 교육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자기 주관이 뚜렷한 ‘똑똑한’ 소비자가 늘어난 탓도 있다.

 퓨전 마케팅은 뉴요커들에게 번지는 이러한 ‘믹스 & 매치’ 소비 패턴을 겨냥한 것이다. 브랜드들은 기존 컨셉트만 고수하는 게 아니라 전혀 새로운 상품을 기획해 기존 상품과 ‘믹스 & 매치’ 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하고, 가격 전략에서도 보다 유연하다. 로엔드와 하이엔드 제품(용어 참조)이 나란히 진열되는가 하면, 창고처럼 허름한 건물에서 최고급 와인과 샴페인을 팔기도 한다.   

 퓨전 마케팅은 발상의 틀을 깬 새로운 아이디어다. 획일적인 매스 마케팅의 한계를 극복키 위한 시도다. 마케터들은 고수해 온 컨셉트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뒤죽박죽 섞어 다양화된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고 있다. 퓨전 마케팅에 있어 기존 ‘상식적인 타게팅’은 의미를 잃는다.

 벤츠와 BMW를 끌고 할인점 코스트코와 월마트를 찾는 미국 중산층, 주급 300달러를 값비싼 오거닉 푸드와 내추럴 푸드에 몽땅 투자하는 가난한(?) 뉴욕의 웰빙족, 3000달러짜리 값비싼 에르메스 버킨백을 들고 초저가 패션 브랜드 H&M에서 쇼핑하는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해선 단순한 인구 통계(소득, 나이, 지역 등)에 구분한 타게팅이 아니라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Case 1    ||     GAP

 4만원짜리 카디건에 수백만원 액세서리 판매

 “How do you wear it? Personalize it, customize it, glamorize it. Make it your own.” 사라 제시카 파커와 함께 한 갭의 광고 카피다. 90년대 갭 광고의 대표적인 카피가 “Everybody in Leather” “Everybody in Vests”였음을 기억한다면 180도 바뀐 변화다. 

 가장 미국적이고 실용적인 패션 브랜드로 평가받는 갭은 2004년 가을 처음 사라 제시카 파커와 광고 계약을 체결하고 매장 디스플레이는 물론, 온갖 패션 잡지와 TV 광고를 그녀의 사진으로 도배하기 시작했다. HBO의 인기 시리즈인 ‘섹스 & 더 시티’의 주인공 사라 제시카 파커가 갭 청바지와 카디건에 반짝거리는 브로치를 매치한 모습은 필자가 다소 지루하게 느끼던 갭 매장을 다시 들르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35년의 역사를 가진 갭이 이렇듯 셀레브리티(유명 인사를 통한 마케팅 전략)와 대대적인 광고 캠페인을 펼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더욱 화제가 됐다. 이에 힘입어 ‘클래식 아메리칸 스타일’을 브랜드 컨셉트로 고수하던 갭은 한동안 판매에 있어 하향 곡선을 그리다가 최근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다.



 대중 브랜드도 ‘럭셔리’아이템 취급

 사라 제시카 파커는 갭 광고에서 40달러짜리 갭 카디건에 수천달러짜리 프레드 레밍턴 보석 브로치를 달아 믹스 & 매치 노하우를 과시했다. 결국 뉴요커들 사이에 빅 히트를 쳤다. 값싼 카디건과 럭셔리 보석 브로치의 ‘예기치 않은 만남’이 바로 지금 이곳 라이프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제시카 파커와 갭의 만남 자체는 미국 믹스 & 매치, 퓨전 트렌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녀는 드라마 속에서 프라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구치, 마놀로 블라닉, 에르메스 등 하이 엔드 패션 디자이너 옷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소화하며 ‘퍼스널 스타일’의 대명사로 떠오른 인물. 반면 갭은 2002년 미국 여성복시장에서 7600억원의 매출로 2위를 기록한 매스 마켓의 리더로, 대표적인 쿠키 커터(Cookie Cutte:공장에서 쿠키를 찍어내듯 획일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방식) 브랜드다.

 자신만의 개성 있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라 제시카 파커를 파격적으로 모델로 캐스팅한 것은 갭이 보다 개인화된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갭은 광고에 있어서만 변화를 가져온 게 아니라 엇비슷한 면바지와 체크 셔츠 대신 트위드 재킷, 탱크톱, 7부 팬츠 같은 트렌디한 아이템을 강조하는 등 상품 구성에서도 변화를 줬다.



 Case 2    ||     코스트코



 억대 연봉자도, 저소득층도 고객

 페이퍼 타월, 화장실 휴지, 시리얼, 생수 등 미국인들이 가정에서 쓰는 필수품을 박스 단위로 묶어서 파는 코스트코는 전세계에 걸쳐 452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창고형 할인 매장이다. 산뜻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초저가 생필품 이외에 구석구석에 ‘횡재’다 싶을 정도로 싼 가격의 유명 브랜드 제품을 만날 수 있다. 백화점에서 60달러가 넘는 엘리자베스의 아덴 영양 크림을 17달러에 파는가 하면 400달러 이상 가는 코치 백을 반값에 내놓기도 한다.

 “코스트코는 제품 유통과 판매에 있어 거품을 뺐기 때문에 다른 소매점들과 비교할 수 없는 가격경쟁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 CEO인 짐 세네갈의 얘기다. 그러나 코스트코의 진정한 경쟁력은 가격에만 있는 게 아니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믹스 & 매치 전략과 상품 구성에 그 비밀이 있다. 

 초저가 할인 스토어 코스트코는 최고급 와인 판매점인 동시에 미국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 거래상이기도 하다. 고급 와인 코너에선 돔 페리뇽 같은 럭셔리 샴페인과 다양한 수입 와인을 취급중이다.

 99센트짜리 귀걸이 옆에 나란히 마련된 파인 주얼리 코너는 더욱 놀랍다. 초라한 창고 건물에 다름아닌 코스트코에서 만나리라고는 기대치 않았던 5만달러짜리 다이아몬드반지에 1000달러 이상 가는 귀금속이 진열장에 가득하기 때문. 2달러짜리 닭 가슴살 한 팩과 한 병에 30센트도 하지 않는 최저가 생수 1박스를 쇼핑 카트에 끌고 가던 쇼핑객이 2000달러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계산하는 것을 보면 코스트코를 찾는 고객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다시 한 번 생각케 한다.

 실제로 가구당 연간 소득 3만달러 미만의 저소득층과 10만달러 이상의 상류층이 어깨를 부딪치며 쇼핑하는 곳이 바로 코스트코다. 코스트코는 2004년에만 6만7000캐럿 이상의 다이아몬드를 팔았다.



 Plus  용·어·해·설



 
믹스 & 매치 어울리지 않을 듯한 아이템들을 매치시킨다는 뜻의 마케팅 용어.

 하이엔드 회사가 한 제품을 시장에 내보낼 때 여러 사양을 내보내는데 그 중 최상위, 최고급 제품을 지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