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보조금이 합법적으로 허용된 지 20일이 지난 4월15일 시장에서의 반응은 어떤지 보기 위해 용산 전자상가와 테크노마트를 찾았다. 우려했던 대로 유통 상가에서는 불법 보조금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었다. 카드 사용 마일리지로 단말기를 구입하는 제휴카드를 보조금인양 내밀기도 했고, 소비자에게 부가서비스를 떠넘기기도 했다.

난 4월15일 토요일 테크노마트 6층. 한 층 가득 휴대폰 판매점들로 가득 찬 이곳에는 온통 사람들로 붐볐다. 휴대폰을 팔려는 사람들과 휴대폰을 사려는 사람들. 구석구석 요지에는 이동통신사(이하 이통사)와 제조업체 등에서 온 듯 한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도우미들이 사람들 손을 붙잡았다.

삼성전자의 애니콜을 선보이던 도우미들은 제품설명에는 열심이었지만 가격을 물어보자 판매점에 문의해보라고 떠민다. 가격을 공개할 수 없단 얘긴가. 판매점마다 가격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보조금 지급 조건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기위해 보조금을 꼼꼼히 따지는 모습이었다. 판매점마다 적게는 2~3명에서 많게는 예닐곱 명의 손님들이 판매점 직원들에게 붙잡혀 있었지만 실속 없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보조금 합법화 이후 손님은 많아졌어요. 하지만 실제 구매하기 위해 오는 손님은 거의 없어요. 보조금을 얼마나 받는지 문의하는 손님이 대부분입니다. 다 상담만 하는 사람들이죠.” 한 휴대폰 판매점 직원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대부분의 손님들이 보조금을 확인하고는 실망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예전처럼 수십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겨우 7~8만원의 보조금을 받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그냥 발길을 돌린다는 것이다. 그만큼 소비자들은 불법 보조금의 단맛에 길들여져 있었다. 이통사들이 그동안 가입자를 뺏기 위한 불법 보조금이 부메랑이 돼 되돌아온 꼴이다.

실제로 이날 테크노마트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보조금이 생각보다 너무 적다며 오히려 보조금이 허용되기 전 휴대폰을 장만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학생 김모씨(25)는 DMB방송을 볼 수 있는 휴대폰들은 모두 60만원대라 보조금을 10만원가량 받는다 해도 50만원이 든다며 구입하기가 망설여진다며 뒤돌아 나갔다.

판매점 직원은 7~8만원 정도의 보조금을 받더라도 기존 가격에 비해 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며 지급되는 보조금을 아는 순간에 그냥 뒤돌아가 요즘 장사가 수월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주말장사’라는 휴대폰 판매점이 오늘 하루 8대밖에 팔지 못했다며 손님 붙잡기에 바빴다. 그는 이런 사정은 다른 판매점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보조금 ‘너무 적다’ 반응

지난 3월27일부터 지급된 휴대폰 보조금은 사실 소비자들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일단 보조금은 한 이통사의 서비스를 1년6개월 이상 사용한 가입자에게 지급된다. 이통사들은 지난 3월27일 정보통신부에 보조금에 관한 약관신고를 마치고 대상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가입기간과 월별 사용요금 등을 등급으로 나눠 보조금을 지급했다.

보조금 지급대상자는 지난 1월말 기준으로 SK텔레콤 1386만 명, KTF 696만 명, LG텔레콤 334만 명으로 총 2416만 명이다. 이는 전체 가입자 3851만 명의 62.7% 수준이다.

보조금 허용 첫날 발표한 이통3사의 휴대폰 보조금 지급규모는 SK텔레콤이 7~19만원, KTF 6~20만원, LG텔레콤 5~21만원으로 대략 5만원에서 21만원선. 이동통신사들은 대부분 가입기간이 오래되고 이용요금이 많은 가입자에 대해 보조금 혜택이 많이 돌아가도록, 가입기간이나 이용요금에 따라 최대 15등급까지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시작과 달리 이통사들의 보조금 지급 경쟁은 불붙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불을 붙인 곳은 KTF. KTF는 지난 4월13일 휴대전화 단말기 보조금을 전격 인상했다. 경쟁력 강화와 고객 혜택 확대를 위한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 보조금 지급이 허용된 뒤 첫 보조금 인상이었다.

KTF 고객의 3분의 2가 기존 지급 금액보다 1~4만원을 더 받게 됐다. LG텔레콤도 바로 다음날인 14일 휴대전화 사용량이 많은 고객에게 3~4만원의 보조금을 더 줄 수 있도록 보조금 지급기준을 조정하면서 보조금 전쟁에 기름을 부었다.

KTF와 LG텔레콤의 보조금 인상은 이통사마다 보조금이 비슷하기 때문에 신규 고객 유인에 별 효과가 없는 데다 가입자가 오히려 줄어드는 데 따른 극약처방이다. 신규 가입자가 SK텔레콤에만 쏠려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이에 따라 보조금지급제도가 국내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을 위한 것이라는 불만이 나 올 정도다. SK텔레콤은 지난 4월1일부터 4월10일까지 가입자 3만3046명을 늘려 이통3사 영업 순증(신규 가입자에서 해지자를 뺀 것) 가입자 4만1805명의 79%를 차지했다. 반면 2위 사업자인 KTF는 이 기간에 가입자가 오히려 1078명이나 줄어 지난해 11월, 12월에 이어 세 번째 가입자 감소를 기록했다. LG텔레콤은 같은 기간 가입자 9837명을 늘려 이통3사의 전체 순증 가입자 중 24%를 차지했다.

이 같은 쏠림 현상은 보조금지급제도가 번호이동시장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신규 가입자에게는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아 새로 ‘010’으로 가입하는 사람들이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보조금 허용 이후 기존 가입자에게 보조금을 주면서 새 휴대전화를 교체해주자 가입자 해지율이 떨어지고 번호이동 가입자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휴대폰 판매점에서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다. 휴대폰을 찾는 손님중의 80%는 SK텔레콤 가입자라고 한다. 휴대폰 단말기도 SKT용이 판매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했다.

“예전에는 번호이동이라도 하면 거의 공짜수준으로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정도로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으니까 번호이동을 하려고 하지 않아요.” 판매점 직원의 말은 KTF나 LG텔레콤으로서는 보조금으로 소비자를 유혹하지 않는 한 SK텔레콤 가입자를 빼내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휴대폰 보조금이 합법화하면서 시장에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보조금이 이통사를 바꾸는 ‘번호이동’ 중심에서 휴대폰만 바꾸는 ‘기기변경’로 옮겼다는 것이다. 휴대폰 보조금 허용 전 기기변경 고객들은 겨우 2~3만원 정도의 보조금만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가입기간이 길수록, 이용실적이 많을수록 최대 21만원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래도 휴대폰 보조금이 허용된 후 소비자들은 보조금에 대해 체감하지 못할 정도. 휴대폰 보조금 합법화 이후 1년6개월 이상의 장기 가입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면서 신규 고객들은 불과 며칠 새 수십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예전엔 휴대폰 대리점들이 이통사를 옮기는 ‘번호이동’ 고객들에게 거의 공짜폰이 생길 정도로 보조금을 지급했다. 이통사와 제조사가 판매 장려금으로 주는 리베이트가 대부분 번호이동 고객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장기 가입자들 역시 이통사만 바꾸면 최신 휴대폰을 싼 값에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규정에 정해진 만큼만 지급돼 체감 보조금이 크게 낮아졌다. 일선 대리점에서도 기기변경 고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SK텔레콤과 KTF는 기기변경이 평소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시장은 오히려 성장 둔화

이처럼 휴대전화 단말기 보조금 지급이 이동통신시장을 성장시킬 것이란 당초 예상과 크게 빗나가고 있다. 보조금 지급 이후 이동통신시장 성장률은 지급 이전보다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지난해 이통3사의 월평균 영업 순증 규모는 28만5032명이다. 하지만 4월1일부터 10일까지 3사의 영업 순증은 4만1805명에 머물렀다. 이런 추세라면 4월 한 달간 영업 순증 규모는 지난해의 44%인 12만5000명에 불과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은 휴대전화 밀집 상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 대리점 판매원은 휴대폰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줄어들었고, 판매점 입장에서는 보조금 지급으로 인해 마진도 줄었다고 불평을 터뜨렸다. 최근에는 KTF와 LG텔레콤 등 이통사들이 휴대폰 보조금 지급을 확대하자 ‘기다리면 또 보조금이 늘어날 것’이라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테크노마트나 용산 전자상가의 휴대폰 판매점들은 매출 부진으로 울상이다. 한 휴대폰 판매점 사장은 이러다간 문 닫는 판매점이 속출할 것이라며 살아남는 판매점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테크노마트의 휴대폰 판매점 관계자는 “조금 더 기다리면 이통사들이 보조

판매점 직원은 SK텔레콤에 집중된 장기 우량 가입자들이 보조금에서 차별성이 없는 타사로 이동하지 않는다고 말금을 또 올릴지도 모른다며 기다려 보자는 가입자들이 생겨나면서 먹고 살기 위해 가입자 유치를 해야만 하는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불법 보조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푸념했다.

이처럼 이통사들이 보조금 인상 경쟁에 나서면서 덩달아 휴대폰 판매점 간 판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시장이 더욱 혼탁해 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는 고객 약탈전이 본격화 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불법 보조금이 난무하던 때와 같은 시장 과열이 예상되고 있다.

테크노마트의 한 판매점 직원은 휴대폰 보조금에 실망하며 돌아서는 손님에게 대뜸 50만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돌려세웠다. 그가 내놓은 것은 신용카드 사용실적에 따라 휴대폰을 최고 50만원까지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

KTF가 기업은행과 제휴해 내놓은 폰 세이브(phone save) 카드는 지난 3월에 새롭게 출시한 제휴카드다. 이 카드는 발급 취지 자체가 휴대전화 구입을 위한 것으로 신용카드 사용을 통해 쌓은 포인트로 단말기 가격을 대신 결제하는 방식이다. 핸드폰을 구입할 때 50~20만원 먼저 할인 받고 난 후 나중에 포인트에서 차감하는 방식이다. 신용카드 포인트로 결제하는 것을 마치 보조금 인 양 속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50만원 할인에 ‘유혹’ 당하면 뒷감당은 만만찮다. 예를 들면 50만원 할인받았을 경우 36개월 매월 균등 상환해야 할 포인트는 1만3888포인트. 신용카드로만 사용할 경우 한 달에 277만원의 실적이 있어야 상환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카드사나 이동통신사업자는 좋겠지만 소비자들에게는 과소비를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판매점 간의 가입자 유치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판매점들도 마진이 예전보다 절반 이상 줄었다.

용산전자상가에서 휴대폰 판매점을 운영하는 이씨(31)는 “지금은 휴대폰 한 대당 5만원 밖에 남지 않는다”며 “몸은 2배 힘들어졌지만 이익은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판매점도 한 대라도 더 팔려고

리베이트 전용

판매점으로서는 한 대라도 더 팔려면 마진을 포기하고서라도 손님을 붙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판매점들은 공식적인 휴대폰 보조금 외에 5~7만원을 더 얹어주고 있다.

자신들의 리베이트를 보조금에 전용하는 방식으로 불법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이다. 용산 등지의 휴대폰 판매점에는 ‘공짜폰’, ‘초특가,’ ‘직원가 판매’ 등의 포스터와 안내문구가 내걸려 있었다. ‘전국에서 젤 싼 집’이라는 문구가 붙은 한 판매 대리점은 공식적인 보조금 7만원에 자신의 리베이트를 얹어 총 14만원을 깎아주겠다고 손을 끌었다. 보조금이 너무 적어 휴대폰 바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자 판매점 직원은 주위의 다른 가게를 살피며 보조금 외에 10만원가량을 더 주겠다며 말했다. 이 직원은 단속에 걸리면 안 된다며 “어디 가서 보조금 더 받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당부를 했지만 용산전자상가와 테크노마트 등 휴대폰 판매점은 거의 비슷한 수준의 금액을 제시했다.

각 이통사 대리점들은 7~8만원 정도의 ‘암묵적’ 할인을 해주고 있었다. 같은 이통사라도 대리점에 따라 기기변경과 번호이동에 대해 약간의 추가할인을 더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단속을 의식해서인지 예전처럼 대놓고 공짜폰에 가까운 ‘파격할인’을 내세우는 경우는 찾기 어려웠다.

일부 판매점에서는 아주 싼 가격에 휴대폰을 판다며 가입자 모르게 약정이나 요금제에 옵션을 걸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판매점 직원은 판매점마다 판매 방식이 다르지만 다른 곳보다 싸게 판다고 하면 일단 의심해야 한다며 다른 항목에서 추가비용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 판매점의 경우 기기변경으로 받는 보조금이 7만원 정도라고 하자 35만원짜리 휴대폰을 21만원에 주겠다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가입비 5만5000원에 데이터이용요금 4만원은 따로 내는 조건이었다.

휴대폰 보조금이 허용되면서 일부 대리점을 통한 불법보조금이 다시 고개를 들자 정통부도 보조금이 지급되기 시작한 지난 3월부터 대리점 리베이트를 불법보조금에 전용하는 움직임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내리기도 했다. 판매점들도 자체 정비에 나섰다. 서로간의 출혈경쟁으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매장 곳곳에는 가입비나 선납금 등 다른 항목으로 금액을 요구하는 행위나 약정할인을 기기값 할인으로 인심 쓰는 척 하는 행위 등에 대해 소비자들의 주의를 당부하는 포스터를 붙였지만 정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휴대폰 보조금이 기대보다 낮게 책정되면서 소비자에게 부가서비스를 떠안기고 값을 깎아주는 불법 사례에 대한 우려도 현실화되고 있어 씁쓸함이 남는다.

보조금이 휴대폰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는 예상은 아직 맞지 않고 있다. 적지 않은 금액에 무덤덤하게 반응하며 실망하는 소비자들은 지급되는 보조금 규모가 더 커지기를 바라며 지금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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