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전 정치부 출신 기자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화제는 ‘여기자들의 정치부 취재가 실제 신문지면 제작에 도움이 되는 지’였습니다. 그때 나온 의견은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치부 출신 고참기자들의 얘기로는 “정치인들은 남자 기자한테는 얘기를 잘 해 주지 않다가도 여기자들에게는 얘기를 술술 잘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기자의 해석은 “아무래도 정치인이면 보통 사람들 보다 강한 현시욕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여기자들에게 더 잘 드러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현시욕은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신이 건강하고 힘이 있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내보내는 것은 수많은 동물들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생충을 갖고 있는 공작의 깃털은 윤기를 잃는다고 합니다. 미생물로 인해 건강이 나빠진 물고기의 비늘은 윤기가 없으며, 덩치가 작은 두꺼비는 큰 울음소리를 낼 수 없답니다. 사슴의 뿔도 마찬가지여서 과시용 외에는 쓸모가 없다고 합니다. 다만, 영양분을 낭비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큰 뿔을 갖는다고 합니다.

 일찍이 미국의 경제학자 토스타인 베블렌은 사람들의 현시욕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보통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줄어 수요곡선이 우하향 하는데 비해 현시적인 소비에 사용되는 사치재는 오히려 수요가 늘어난다는 분석을 했습니다. 일본 도쿄 긴자의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일본 전통 밥상에 20만엔의 가격을 붙여놨더니 잘 안 팔리더니 200만엔으로 가격을 올렸더니 불티나게 팔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같은 일화는 어느 나라에도 다 있는 듯합니다.

 과시적 소비에 대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보입니다. 특히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이 같은 과시적 소비를 비난하는 시, 소설, 영화 등 수많은 문화적 코드를 접하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거부감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갖는 본능을 이해하다보면 과시적 소비의 불가피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블링크-첫 2초의 힘>이라는 책에서도 나오듯 결국은 사람에 대한 판단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농경적 정착사회야 사람들이 서로의 품성과 능력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잘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요즘에는 첫인상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영국 방송 BBC가 만든 다큐멘터리인 <인간의 본능(Human Instinct)>은 사람들이 얼마나 과시적 소비에 영향을 받는가를 보여주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진행자가 허름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고 여자들에게 능력, 남성적 매력 등을 평가해서 평점을 매기라고 하면 형편없는 점수를 줍니다. 반대로 사회자가 비싼 자동차에 고급 브랜드의 양복을 입고 나타나자 같은 사람인데도 엄청나게 높은 점수를 줍니다.

 이준구 서울대 교수가 쓴 <미시 경제학>에는 몇 가지 과시적 소비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사례가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은행에 어떤 사업가가 대출을 받으러 갑니다. 은행 직원의 질문에 당연히 사업가는 회사가 잘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허름한 옷차림에 남루한 모습을 한 사업가가 사업이 잘된다고 하면 은행 직원은 절대 믿지를 않을 것입니다.

 이를 알기 때문에 사업가는 일부러 비싼 옷으로 몸을 감싸고 운전사가 딸린 고급 승용차를 타고 은행에 나타날 것입니다. 사업가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과시적 소비를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변호사, 부동산 중개업자 등 과시적 소비를 해야 하는 직종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는데 청소도 제대로 안된 방에 싸구려 집기만 있고 입고 있는 옷은 십년도 더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면 아마 사건을 의뢰하고 싶은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경영 컨설턴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경영 컨설턴트들은 클라이언트 앞에서 발표하기 전에 고급 브랜드의 양복과 시계, 넥타이를 하고 앞에 나섭니다. 이는 클라이언트들에게 ‘잘나가는 컨설턴트 구나’라는 신뢰감을 얻기 위한 방편입니다.



 월가를 움직이는 15법칙

 비즈니스의 정글이라는 월스트리트에서도 이 같은 현시욕은 적극적으로 활용됩니다. 다음은 월스트리트에서 활약한 로이 홍이 월가 1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 <월가를 움직이는 15 법칙>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고객과의 첫 만남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톰’이라는 사람은 고객에게 최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한 뒤, 그 고객이 좋아하는 메뉴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다음 미리 레스토랑을 방문해 팁으로 100달러 정도를 줍니다. 그리고 신용카드도 미리 건네주고 지배인이 식사 대금을 적절하게 처리하도록 합니다. 또한 지배인에게는 톰 자신이 이 레스토랑의 단골인 것처럼 농담도 걸라고 부탁을 합니다.

 식사 중에는 요리사가 나와 오늘의 요리는 어떤 특징이 있으며,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를 설명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되면 고객은 톰이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식사가 끝나고 레스토랑을 나올 때는 지배인에게 카드도 쓰지 않고 ‘내 이름으로 달아 놓으라’고만 합니다. 이렇게 되면 고객은 톰이 월스트리트에서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음식값은 이미 지배인에게 전달한 카드로 계산된 상태지요.

 일류대학 졸업장도 어쩌면 이 같은 과시 차원의 시그널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일단 일류대학을 나왔다면 머리가 좋고 능력이 있다고 믿어주는 경향이 강합니다. 실력이야 어찌됐든 말입니다. 단 간판이 아니라 실력으로 평가를 내리기 시작하는 기간이 선진국일수록 짧은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 일류대학 졸업장 약발이 6개월 이내에 소멸이 되는 반면 다른 나라는 그 기간이 더 길다는 조사를 본적도 있습니다.

 과시적 소비, 현시욕은 사실 양날의 검과 같은 것입니다. 지나치면 사기며, 거짓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자기 자신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특히 사람에 대한 판단이 짧은 시간 안에 내려지는 비즈니스 정글에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적절하게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호를 보낼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