뢰가 중요하다는 말은 너무나 뻔하고 윤리교과서처럼 들린다. 신뢰경영이니 윤리경영이니 하는 말도 역시 ‘그래야 좋다’거나 ‘그래야 한다’는 당위론정도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예를 보자. 사업을 하다가 경기악화 등의 영향으로 매출이 떨어져도 추후 열심히 또 전략적으로 일하면 다시 복귀시킬 수 있다. 그러나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매출이 감소한 것이라면, 그 회복은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지난 2004년 불량만두사태가 터졌을 때, 사람들은 만두와 그 회사를 믿지 못해 구매하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쇳가루 분유사태가 발생하자, 엄마들은 그 회사와 제품을 역시 믿지 못해 구매를 중단했다. 이처럼 신뢰라는 요소는 구매행위와 사업의 성공에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그 회사를/브랜드를) 믿는가?’라는 질문은 의사결정에 있어 직·간접적으로 큰 몫을 차지한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커뮤니케이션 교수이자 PR이론의 대가로 불리는 제임스 그루닉(James Grunig) 교수는 ‘관계’를 구성하고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4가지 요소 중 하나로 ‘신뢰’를 꼽는다. 관계가 좋다는 것은 서로 신뢰한다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고, 관계가 나빠진다는 것은 바로 신뢰가 깨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위기상황을 맞는다는 것은 바로 사업 관계자들(business stakeholders)과의 신뢰가 깨져서 관계가 악화되는 것이다. 소위 ‘이름에 먹칠 한다’는 것은 신뢰를 깨뜨리는 행동을 한 개인 혹은 조직이 맞이하는 결과이며, 이는 돈을 잃은 것을 복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위기관리를 위한 신뢰관리

 당신이 과자를 만드는 회사의 CEO라 치자. 소비자 단체와 정부, 언론으로부터 갑작스럽게 당신 회사가 만드는 과자에 어린 아이에게 유해한 성분이 들어간 것으로 의심된다는 통보를 받는다. 즉, 당신 회사 제품의 신뢰도에 대해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런 경우, 위기관리를 하면서 신뢰를 어떻게 회복해나가야 할 것인가?

 첫째, 사실의 확인이 매우 중요하다. 자사에 부정적 이슈가 생겼을 때, 자체적으로 사실을 빨리 확인하여 보고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 있어야 하며, 이러한 사실에 근거한 상황 판단을 바탕으로 회사의 입장을 빨리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누구(어느 조직)와의 신뢰에 금이 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라. 예를 들어, 과자를 만드는 회사가 인체유해라는 이슈 속에 있다면 즉각적으로 소비자, 언론, 정부, 유통망 등과의 신뢰관계를 고려해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이 경우 자사의 임직원들을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우리 직원이니까, 알아서 잘 생각해주겠지…”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셋째, 우리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 조직에 대한 신뢰에 의심을 가질 만한 이슈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their perception)’가 ‘우리의 현실(our reality)’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론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넷째, 외부 관계자의 입장에서 따질 수 있는 이슈들을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 조직의 입장을 간결한 메시지로 정리하라. 사실을 밝힐 때는 회사의 입장만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사실을 함께 밝혀야 하며, 그러한 의혹을 풀기 위해 회사가 취하고 있는 조치 등을 포함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섯째, 약점이 있다면 먼저 알려라. 소비자 단체나 언론으로부터의 압력이 세어질 때만 잘못한 점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 뉴스라 할지라도 본인의 입으로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신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설득의 심리학>의 저자 치알디니 박사는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약점을 숨기기보다 먼저 밝히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조언한다. 이는 우리가 약점을 밝히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묻혀 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경쟁사나 정부, 언론의 조사에 의해 밝혀지게 되어있고 그럴 경우 신뢰와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천천히, 하나씩 얻어지는 것이 신뢰

 신뢰에 관한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있다. 한국 내 오피니언 리더 층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발견됐다. 첫째, 10명 중 7명(72%)은 본인이 신뢰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 지인에게 이야기한다. 둘째, 10명 중 6명(61%)은 본인이 신뢰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부정적 의견을 공유한다. 셋째, 10명 중 7명 가까이(67%)는 신뢰하지 않는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는다.

 이중에서도 특히 ‘인터넷을 통해 신뢰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공유한다’는 비율은 다른 조사 대상국에 비해 2배가 넘는 수치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인터넷을 통한 정보 공유 - 그것이 긍정적인 뉴스이든 아니면 부정적인 뉴스이든 - 에 적극적인지를 보여준다. 만두사태나 최근의 분유사태에서 보듯이, 부정적 뉴스는 거의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들끼리 활발하게 공유되는 양상을 띤다. 과거에는 직접 만나거나 전화가 아니면 서로 소통할 수 없었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결과는 사람들이 신뢰하는 대상이 전문가로부터 ‘나와 같은 사람(A person like myself)’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학자나 의사 등은 여전히 신뢰를 받는 상위 그룹으로 분류되지만, 이번 조사에서 나와 같은 일반인의 의견이 신뢰도에 있어 전 세계적으로 1위를, 우리나라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이는 위기상황 혹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특정 기업에 대한 의견을 형성할 때, 인터넷 등을 통해 나 같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나(‘너 or 또 다른 나’로 바꾸면 좋을 듯)의 의견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위기관리를 위한 신뢰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신뢰는 광고나 프로모션을 통해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뢰란 얻어지는(earned) 것이다. 신뢰의 특징은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평소에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야 하는 것이며, 신뢰의 핵심은 메시지와 실제 행위가 일치하는 데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위기관리는 마치 지뢰밭을 지나가면서 지뢰를 처치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위기관리 과정에서 거짓말이나 뻥튀기 등 신뢰를 고려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면, 이는 곧 지뢰밭을 밟게 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다. 즉, 위기관리 과정에서의 비윤리적인 행위는, 윤리적 논란 이전에 그 조직의 존폐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