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방에는 으레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브로마이드가 벽에 한가득 붙어 있기 마련이다. 브로마이드를 붙이는 것이야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이 때때로 변한다는 사실. 전에 붙였던 브로마이드를 떼어 내고 다른 것을 붙일 때 전에 사용한 투명 테이프의 자국이 벽에 계속 남아 있어 보기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테이프와 함께 벽지까지 찢어져 엄마한테 야단을 맞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테이프를 붙였다 떼도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는 접착제가 곧 개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체 정화기능 갖춘 도마뱀 접착제

 흔적이 남지 않는 테이프 접착제의 아이디어는 도마뱀에서 나왔다. 미국 루이스 클락대의 켈러 오텀 박사는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도 떨어지지 않는 도마뱀의 비밀은 발바닥에 나 있는 미세한 털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오텀 박사는 최근 이 훌륭한 자연의 접착제는 더러운 물질이 달라붙어 있는 벽면에 작용할 때 오물과는 달라붙지 않고 벽면에만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테이프에 응용하면 기존의 접착제처럼 벽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붙고 떨어지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오텀 박사는 지난 2000년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의 로버트 풀과 로널드 피어링, 카네기멜론대의 메틴 시티 박사와 함께 도마뱀이 발바닥의 미세섬유를 이용해 천장에 매달린다는 사실을 밝혀내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6월8일자에 발표했다. 벽 타기의 명수인 도마뱀(Gekko gecko)의 발바닥에는 ‘시티’(setae)라는 뻣뻣한 털들(剛毛)이 나 있다. 접착력의 비밀은 반데르발스 힘. 분자 사이에서는 전자의 음전하가 양전하를 유도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생기는데, 이 인력이 바로 반데르발스 힘이다. 도마뱀의 발바닥에 나 있는 미세한 털이 벽에 접촉할 때도 이 인력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도마뱀의 발바닥에 나 있는 시티는 밑바닥 지름이 머리카락의 10분의 1 정도인 수십㎛(마이크로미터, 1㎛=1백만분의 1m)이며, 길이는 30~130㎛다. 발가락마다 이런 털이 50만 개씩 나 있다. 200만 개의 시티가 있는 셈이다. 시티 한 가닥은 개미 한 마리를 지탱할 정도의 접착력을 갖고 있지만 100만 개만 되면 어린이가 매달릴 수도 있다. 그런데 시티는 위로 가면서 다시 더욱 더 가늘고 잘 휘어지는 작은 털 ‘스패철리’(spatulae)들로 갈라진다. 스패철리는 끝부분이 지름 0.2~0.5㎛ 크기의 주걱처럼 넓은 것이 특징이다. 시티 한 가닥에는 스패철리가 많게는 1000여 개나 된다. 결국 도마뱀의 발에는 수십억 개의 주걱 모양 스패철리가 나 있는 셈이다.

 오텀 박사는 도마뱀이 오물이나 모래가 많은 곳에 살면서도 발바닥이 항상 깨끗하고 접착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데 주목했다. 연구 결과 그 비밀은 역시 발바닥의 미세 털에 있었다. 도마뱀이 벽면에 달라붙을 때 스패철리는 벽면과 함께 여기에 달라붙어 있는 모래나 오물에도 달라붙는다. 그러나 오물에 달라붙는 스패철리의 수가 적어 접착력이 발생할 정도의 반데르발스 힘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2005년 1월3일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수학모델을 통해 계산한 결과 26~59개의 스패철리가 한꺼번에 작용해야 접착력이 발생하지만 오물에 달라붙는 스패철리의 수는 그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다.

 오텀 박사는 “우리가 사용한 수학모델이 정확하다면 도마뱀의 발바닥에 나 있는 미세한 털들이 항상 깨끗한 이유는 화학반응 때문이 아니라 털의 구조와 모양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 현상을 이용하면 다양한 접착제에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접착할 때 넓은 벽면 외에 다른 오물이나 작은 물질과는 달라붙지 않기 때문에 여러 번 떼어 내도 접착력이 유지되는 ‘포스트 잇’이나 떼어 낼 때 전혀 아프지 않은 반창고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도마뱀 응용 벽타는 로봇 개발

 도마뱀 발바닥을 실생활에 응용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5월 도마뱀의 접착력 비밀을 밝혀낸 바 있는 미국 카네기멜론대의 메틴 시티 박사팀은 인공 도마뱀 발바닥을 만들어냈다.

 제작 과정은, 우선 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단위의 섬유를 왁스에 꽂았다가 뺀다. 여기에 액체 상태의 고분자 물질을 부어넣으면 도마뱀 발바닥의 주걱 모양 스패철리와 같은 크기의 섬유가 합성되는 것이다. 나노미터 단위의 미세섬유는 마이크로미터 단위 섬유 위에 있게 된다.

 당시 개발된 접착제는 수 킬로그램의 물체를 천장에 붙일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연구팀은 앞으로 어른 몸무게도 지탱할 수준에 이를 것으로 기대했다. 연구팀의 목표는 이를 이용해 우주선 바깥 표면을 걸어 다니며 위험요소를 검사하는 데 쓰일 로봇을 개발하는 것이다. 실제 연구팀은 아이로봇(iRobot)이라는 로봇제작사, 미 국방성 등과 함께 벽을 타고 다니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같은 해 6월 영국 맨체스터대의 안드레 게임 교수는 재료공학 전문 저널인 <네이처 머티리얼>에 마찬가지로 도마뱀의 시티를 응용해 사람도 천장에 붙어 있을 정도의 강력한 접착제 테이프를 소개했다.

 게임 교수는 우선 2000분의 1㎜ 길이의 플라스틱 기둥들을 만들어 길이와 비슷한 간격으로 신축성 있는 바닥재에 촘촘히 배열했다. 이 바닥재가 움직이면 미세한 인공 털들은 아무리 매끄러운 표면에도 존재하게 마련인 작은 기복들과 접촉하게 된다. 게임 교수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접착  테이프는 2㎠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 접착력은 진짜 도마뱀의 발과 같다”고 설명했다. 게임 교수는 이렇게 만든 인공 도마뱀 발바닥을 인근 가게에서 산 작은 스파이더맨 인형의 손에 부착해 인형이 수평으로 설치된 유리판 밑에 계속 매달려 있는 것을 확인했다.

 도마뱀 발바닥을 모방한 접착제는 도로나 트랙에 착 달라붙는 타이어나 신발로도 응용할 수 있으며, 할리우드에 도입되면 벽을 타는 장면을 찍을 때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지 않고 배우가 직접 연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연은 언제나 인간의 스승’이라는 말이 새삼 와 닿는다.

이영완 조선일보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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