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맞춰 벤처 농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농산물시장 개방 폭이 커지면서 값싼 외국산 농산물들이 우리 식탁을 점령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틈새시장’에 머물던 벤처 농업에서 새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벤처농업인1  ‘즐거운 樂딸기’로 신난 이용철씨

벤처농업인2  ‘씻어나온 쌀’개발한 이상효씨

벤처농업인3  ‘5℃ 이온 쌀’의 주인공 나준순씨

벤처농업인4  저온 숙성 홍삼 생산한 이규성씨

벤처농업인5  제주백합연구소 운영하는 김상우씨



 ‘벤처 농업’은 최근 생긴 신조어는 아니다. 2000년 등장한 벤처 농업은 주로 기능성 쌀과 건강 보조식품의 대명사였다. 한때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이러한 업체들은 그동안 하나둘씩 사라졌다. 체계적인 지원이 부족했던 탓도 있지만, 이들 벤처농산물이 아이디어 상품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 농산물에 문화 및 예술적 요소를 담아 가공한 신개념 농산물이 농업시장 개방에 맞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돌파구로 관심을 끌고 있다. 문화와 예술, 웰빙을 동시에 담을 경우 농산물의 부가가치가 그만큼 높아져 고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농산물 마케팅 전략의 중요성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아무리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더라도 팔리지 않으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신개념을 담은 농산물은 벤처 농업인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 중에는 도시생활을 접고 귀농해 성공한 벤처 농업인들이 조금씩이나마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지식과 아이디어, 기술 혁신을 토대로 차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벤처 농업인으로 그야말로 ‘스타’ 반열로 떠오르고 있다.

 경남 산청에서 친환경 농법을 통해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이용철 씨, 쌀 씻는 시스템을 개발한 라이스텍의 이상효 사장, 부산 쌀 가공회사의 나준순 사장, 충남 금산에서 홍삼 가공식품을 만들고 있는 큰바위식품의 이규성 사장, 제주 백합연구소를 운영하는 김상우 씨 5명이 그들이다.





‘즐거운 樂딸기’로 신난 이용철씨



PC 농법으로 작년 30억 수입 올려



해로 딸기 농사 10년째인 이용철(41) 씨는 친환경 농법을 통해 고품질의 안전한 딸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씨의 딸기는 롯데마트를 비롯해 대규모 유통센터 등에서 일반 딸기보다 2배 이상의 가격에 팔리고 있다. 이씨가 주도해 만든 경남 산청군 친환경생산자협의회가 지난해 올린 매출은 30억원. 올해는 50억원이 목표다.

이씨의 딸기가 최고의 품질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은 6년 전 도입한 ‘PC 농법’ 때문이다. PC(Plant Clinic) 농법이란 작물의 토양과 필요한 영양소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처방하는 것으로, 비료는 천연 자재를 이용한 것을 사용하고, 해충은 무당벌레 등 천적용법을 활용하고 있다.



 보험왕에서 농사꾼으로

 이씨는 이전에는 농사를 한 번도 지은 적이 없는 농업 분야의 문외한이었다. 진주에서 전문대를 졸업하고 처음에는 서울에서 보험 영업을 했다. 보험 영업 1년 만에 보험왕을 3번이나 차지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던 그는 최연소 영업팀장까지 올랐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아니, 조직을 관리하다 보니 그때까지 벌었던 돈을 몽땅 날렸다. 이러던 중 우연히 산청에서 딸기 농사를 짓던 친구를 만났다. 3개월가량 친구의 딸기 하우스 일을 도와주던 그는 직접 농사를 짓기로 결심했다.

 이씨는 “그냥 재미있어서 시작했다. 농사를 모르던 나에게 딸기 재배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반대는 예상한 대로 컸다. 부모님은 아직도 아들이 농사짓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 있다고 한다.

 딸기 재배에 친환경 농법의 접목을 시도한 것은 2000년부터다. 자신이 화학비료를 시비하고 농약을 친 딸기를 어린 자식들이 먹는 것을 보고는 유기농법을 도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제 아이들에게만 먹지 말라고 할 수 없었다. 그때도 그렇게 많은 농약을 치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약을 치지 않은 딸기를 키워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주위의 딸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설득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내쫓으려고 하기까지 했다. 친환경 재배가 힘만 들 뿐 돈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작목반 사람들이 몰려와 그에게 “딸기 농사를 망치려고 사람들을 선동한다”며 “농사를 짓지 말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웃 농가들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어려운 시기였다고 이씨는 회상했다.

 강추위가 몰아쳤던 2001년에는 하우스에 난방을 공급하던 전기가 끊어져 3600평에 이르는 딸기 농사를 완전히 망친 적도 있었다. 이때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다. 금전적인 손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도 컸다.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부인도 농사를 관두자고 옆에서 포기를 종용했다. 하지만 이씨는 중도에서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친환경 농법에 더욱 매진했다.

 이씨를 비롯한 친환경생산자협의회가 생산하는 딸기는 전국의 유명 백화점, 유기농 매장, 홈플러스 등을 비롯한 할인점에 납품되고 있다. 이씨는 고품질의 딸기 생산에도 신경을 쓰지만 무엇보다도 마케팅과 홍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그는 예전에 보험왕을 거머쥐었던 ‘발로 뛰는 영업’를 십분 활용해 거의 모든 거래처를 직접 개발했다. 거래처 구매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 주기 위해 포장재도 12가지나 개발했다. 딸기 가격도 협의회에서 책정해 거래처에 통보하는 식이다. 처음에는 본체만체하던 구매자들도 소비자들로부터 제품에 대한 인정을 받게 되자 이제는 값이 비싸더라도 이씨의 딸기만 찾는다고 한다.

 이씨는 1년에 10여 차례에 걸쳐 서울에서 열리는 농업 관련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 ‘즐거운 樂 딸기’라는 브랜드도 출시했다. 그냥 친환경 딸기라면 다른 지방에서 생산하고 있는 딸기와 차별화가 안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브랜드로 차별화에 나선 것이다. 그의 이러한 전략은 적중했다. 친환경으로 재배하는 딸기는 일반적으로 재배되는 딸기보다 40% 이상의 소득을 올려주었다.

 주변 농가들의 친환경 생산에 대한 마인드도 많이 좋아졌다. 지난해 15명에 불과했던 친환경생산자협의회의 회원도 올해 1월 80여명으로 불어났다. 이씨의 농법이 알려지면서 주위의 농가들이 속속 가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친환경 재배 대상을 딸기에서 사과, 단감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10만평 규모의 단지화도 추진할 예정이며, 딸기 재배에 있어서는 전국적인 친환경생산자협의회도 구성할 계획이다.



 홍보와 마케팅에 주력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마케팅도 준비하고 있으며, 해외 수출길도 열 생각이다. 이를 위해 중국, 러시아, 싱가포르의 농산물 박람회 참가를 준비 중이다. 이씨는 국내에서 최고의 딸기로 인정을 받은 후 수출에도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야 제대로 된 평가를 통해 최고의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친환경 생산 방식이 농가의 소득 증대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삶의 질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친환경 생산 방식을 통해 일반 딸기보다 2배 정도의 높은 가격을 받고 있으며, 가공 처리 등을 통해 부가적인 소득도 올리고 있다. 여름에 내놓고 있는 얼린 딸기인 ‘아이스딸기’는 지난해 20톤가량 팔렸다. 또 협의회에서는 생산과 포장, 유통 등을 완전 분업해 여가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루 종일 매달려야 했던 농사일이 이제는 반 이상으로 줄어든 것이다. 농사짓는 방법부터 파는 방법에 이르는 컨설팅도 제공한다. 올해에는 이러한 컨설팅도 시스템화할 계획이다.

 이씨는 성공 비결에 대해 “어떤 딸기를 생산하느냐도 중요하지만 홍보와 마케팅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어떻게 포장하고, 알리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며 “좋은 딸기를 원하는 구매자와 소비자를 위해 다양한 포장 기술과 차별화된 브랜드를 개발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포장재에 따라 가격차가 2배 이상 나기도 한다는 것. 상품 생산과 더불어 마케팅에 쏟은 그의 관심이 빛을 발한 것이다.

 여기에다 올해에는 틈새 시장까지 파고들 수 있게 됐다. 지난해 홍보를 위해 개발한 딸기 화분이 예기치 않은 부가 소득원이 된 것이다. 지난해 5000여개 팔린 화분은 올해에는 10만개 이상 팔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것을 ‘작은 아이디어’라고 말한다. 그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딸기를 개발한 것이 아니다. 다른 지방에서도 생산하는 딸기이지만 친환경 딸기로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 적중했다. 그는 작은 것에서 먼저 신중히 접근해 큰 아이템으로 이어간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밝혔다.



‘씻어 나온 쌀’개발한 이상효씨

친환경·편리함으로 매출 ‘쑥쑥’



이스텍의 ‘씻어 나온 쌀’은 알칼리 이온수로 씻은 것이어서 물만 부으면 바로 밥을 지을 수 있다. ‘씻어 나온 쌀’은 해남 쌀, 진천 쌀 등 고품질 쌀을 엄선해 맑은 물과 알카리성 이온수로 씻은 뒤 급속 건조시켜 상품화한 쌀이다. 특히 씻을 필요가 없어 간편함을 선호하는 젊은 주부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이 회사의 웹 사이트에는 쌀을 씻는 번거로움을 없애 줌으로써 맞벌이부부와 같은 바쁜 직장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으며, 밥맛도 일반미보다 뛰어나다는 사용평들이 올라와 있다.

 이 제품은 도정 후 48시간 내에 쌀에 묻어 있는 쌀겨(잔류 호분층)를 벗겨내는 것이 특징이다. 도정 후 시간이 지날수록 ‘쌀겨’는 쌀에 엉겨 굳어져 아무리 씻어도 벗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 물에 오래 담그면 쌀이 부서지기 때문에 2초 만에 씻고 10초 만에 고속 건조하는 것도 기술이다.

 이 회사가 국내에서 처음 개발한 ‘환경 친화형 씻어 나온 쌀 제조 및 부산물 처리 시스템’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은 물론 날로 심각해지는 물 부족 문제, 쌀뜨물에 의한 수질 오염 및 쌀시장 개방을 앞두고 있는 우리 쌀시장의 경쟁력 확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시스템은 쌀 표면의 이물질과 잔류 호분층만을 균일하게 제거하므로 가정에서 씻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위생적이라고 한다. 또 이 제품에 각종 기능성 소재를 보강해 일상적인 식사를 통해 이를 섭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쌀 씻는 시스템 첫 개발

 라이스텍은 이 시스템을 1997년~2001년 4년 동안 10억원을 들여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이 회사는 농림부의 쌀 관련 43개 과제를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식품개발연구원 쌀연구팀이 주축이 돼 설립됐다. 쌀 씻는 시스템을 개발한 주인공은 이 회사의 이상효 사장(44).

이 사장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쌀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여년간 쌀 분야만 연구해 왔다. 특히 ‘쌀뜨물’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회사 관계자는 쌀뜨물 이야기만 몇날 며칠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사장이 쌀 씻는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 것은 우리보다 10여년 빠른 일본의 쌀 씻는 시스템을 보고서다. 그는 일본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자존심이 쌀 연구에 매달리게 했으며,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쌀농사를 지어 본 적은 없었지만 연구원으로서 참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씻어 나온 쌀’을 개발하면서 자연스럽게 쌀뜨물에도 관심을 가지게 돼 이 분야의 연구에도 매진했다. 쌀을 씻으면서 나오는 물에 의한 수질 오염도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쌀 1t을 씻을 때 발생하는 평균 20t의 쌀뜨물을 정화하는 데 필요한 물은 1만t 정도가 소요되지만 씻어 나온 쌀 제조법은 쌀뜨물의 발생을 최소화시켜 환경오염을 막아준다”고 말했다. 쌀 씻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쌀뜨물은 전량 유기액비와 각종 기능성 소재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는 일본이 쌀을 씻고 난 이후에 얻어지는 쌀뜨물을 전부 버리는 반면 라이스텍은 여기에서도 부가적인 가치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것이 쌀뜨물을 배지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주는 미생물 제제인 ‘라이젠’. 라이젠이란 이 회사의 특허기술을 이용해 건전한 토양을 만들도록 고도로 증식, 배양된 유용성 복합 미생물 제재이다. 친환경 농업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재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미생물을 양질의 영양배지인 쌀뜨물을 이용해 땅 힘을 북돋워 주고 농작물의 생육환경을 조성하도록 제조된 친환경 미생물 제재이다. 이 사장은 처음에는 농사를 망치지 않을까 염려하던 농사꾼들도 이제는 친환경 농법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현재 약 100만평의 논에 이 제재를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이스텍은 기능성 쌀 개발에도 나서 키토산 쌀을 개발해 풀무원 등을 통해 시판하고 있다. 게 껍질에 들어 있는 키토산 성분은 건강에도 좋지만 물리적으로 보습 효과를 내기 때문에 밥맛도 향상된다는 게 라이스텍의 설명이다. 고압 분사 방식으로 씻어낸 쌀 표면의 미세한 돌출 부분에 키토산을 코팅 기술로 밀착해 밥을 짓는 과정에서 영양분이 파손되지 않도록 했다. 하루에 두 끼의 키토산 쌀을 먹을 경우 피를 맑게 하고 체지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최근에는 해외시장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식품소재로서 쌀가루를 수출하고 있으며, 특히 일본시장을 적극 공략할 예정이다. 또 씻어 나온 쌀 제조 기술의 중국 진출도 시작했다.



 기술 중심 경영이 성공 요소

 라이스텍이 성공한 비결은 무엇보다 농림부와 한국식품연구원 등 정부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이 기반이 됐다. 특히 농림부의 기술 개발과 상품화에 대한 독려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라이스텍은 농림부 등에 의해 환경 친화적이며 소비자 지향적인 쌀 가공기술의 개발이 선진화된 일본 기술의 국내 수입을 막고 쌀 관련 기술의 수출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또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상효 박사 등 전문 인력에 의한 기술 중심적 경영도 한 몫을 했다. 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를 선택한 타이밍도 탁월했으며, 풀무원 농협 등 대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통한 전국적 유통 기반을 구축한 것도 성공의 비결이다.

하지만 라이스텍의 성공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기술을 통한 새로운 시장 확보를 위해 장기간에 걸친 투자와 노력이 안정화가 되는 시점에 대기업이 막대한 자금과 조직을 바탕으로 시장에 뛰어들어 그동안의 노력이 무색해지기도 했다.

 그는 “대기업들이 일본의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경쟁 제품을 출시했을 때는 벤처로서의 기술과 노력이 무색해지는 냉엄한 현실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국내 신기술 및 벤처기업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학교급식, 군납 등 판매 분야에 적극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브랜드 쌀 중에서 무세미(無洗米)가 차지하는 비중이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아직 걸림돌이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일본 한국 중국 등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며, 이들 국가 중 쌀에 관한 연구가 가장 앞선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 1992년부터 무세미란 이름의 쌀이 출시되면서 현재 전체 쌀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2007년이면 유통 쌀의 대부분을 차지할 전망이다.

 이 사장의 올해 목표는 좋은 맛과 안전성, 적정한 가격을 통해 수입 쌀에 대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씻어 나온 쌀가루’의 영업 활성화로 쌀 가공 제품의 다양화에 의한 쌀 소비 확산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는 “시장 중심적, 소비자 지향적인 사고의 전환과 제품만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며 “시장에서 소비자에 의해 선택될 수 있는 제품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라이스텍은 소비자와 생산자, 가공 유통업자 모두에 이익이 되는 기반을 확충해 올해 매출 100억원을 달성할 계획이다.



‘5℃ 이온쌀’의 주인공 나준순씨

중국인도 군침 ‘없어서 못 판다’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 (주)PN라이스 나준순 사장(51)은 지난해 ‘5℃ 이온쌀’로 3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특히 지난해 6월 중국과 400만달러어치의 수출 계약을 체결한 성과도 눈에 띈다. 나 사장은 저농약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된 쌀과 특수미는 가격을 높게 받아도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기존 제품과 유통 구조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 아래 다른 쌀과 차별화해 내놓은 5℃ 이온쌀이 소비자의 욕구에 맞아떨어진 것이다.

 PN라이스와 인제대 생명공학대학이 산학 협동을 통해 개발한 이 쌀은 1등급 벼를 섭씨 5℃의 냉동창고에 보관했다가 산성수로 1차 살균 처리를 한 후 다시 2차에는 알칼리 이온수로 표면 가공 처리한 것이다. 이러한 가공 처리를 통해 제품의 신선도가 오래 유지되며, 쌀의 저장성이 길어질 뿐 아니라 밥맛이 좋은 쌀로 다시 태어난다는 게 나 사장의 설명이다.

 이 쌀은 100% 완전미로 PN라이스가 개발한 10여개의 브랜드 쌀과 함께 롯데마트, LG유통 등 전국 200여개 생필품 매장에서 팔리고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서도 판매되고 있다.

 1999년 농업 부문 신지식인, 2001년 벤처 기업인으로 선정된 나 사장은 지난 1976년 수산대를 졸업하고 10년 동안 대기업 외항선 기관장으로 재직한 선박 엔지니어 출신이다. 외국 선진 농업 현장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특히 양곡 쌀 가공 분야 기술의 도입 필요성을 느끼고 선친이 해오던 정미소를 이어받아 PN라이스의 전신인 풍년농산을 설립했다. 그는 과거 양곡 가공 방법을 과감히 탈피한 전 과정 자동화를 이룬 미곡 종합 처리장을 만들어 친환경적인 농법 농가와 계약 재배한 1등급 벼를 수매 가공한 쌀을 재생산하고 있다.



 인터넷 통해 어디서나 원격관리

 나 사장의 미곡 종합 처리장에는 국내 처음으로 어디서든 인터넷을 통해 공장 현황을 한눈에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첨단 무인 관리 시스템이 설치됐다. 이러한 동화상 원격 관리 시스템을 통해 제품이 가공, 포장돼 출고되는 장면까지 한곳에서 집중 관리할 수 있다. 또 보관 중인 벼의 품질 관리를 위해 차세대 무인 곡온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벼의 보관 온도를 5℃ 저온 저장으로 보존하고 있다.

 나 사장은 ‘쌀문화연구소’를 설립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세계 쌀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그는 중소기업 및 전국 미곡 처리장 중 드물게 공장 내에 연구소장 외 연구원 4명으로 구성된 쌀문화연구소를 설치했다. 식미 분석기, 단백질 분석기 등 9종의 연구 기자재를 확보하고 5개 지방대학 및 삼성경제연구소 등과 네트워크를 조성해 산학 협력으로 품질 관리 및 신제품 개발, 브랜드 창출 등으로 브레인탱크의 산실을 만들어가고 있다.

 쌀문화연구소에서 개발한 제품이 ‘금쌀’과 ‘은쌀’이다. 금쌀과 은쌀은 국민들의 관심을 유도해 우리 쌀의 위상을 높이고 긍지를 가지게 하고, 신세대들에게 우리 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개발했다.

 나 사장은 친환경 실천 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안전한 쌀을 공급하기 위해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 일대 300ha에 환경 농법 벼를 농가와 계약해 전량 수매해 주고 있다. 또 경남 남해 다랭이쌀, 하동의 무농약쌀, 김해 자운영쌀 등 경남 친환경쌀 유통 사업단을 결성해 농가 소득과 쌀 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쌀 명인’이 되는 게 꿈이라는 나 사장은 둘째딸에게 가업을 물려주기 위해 중국에 유학을 보냈다.



저온 숙성 홍삼 생산한 이규성씨

귀농 성공으로 노인복지센터 설립 꿈



규성 큰바위식품 사장(37)은 지난 2002년 고향인 충남 금산으로 돌아오면서 두 가지를 결심했다. 하나는 금산 인삼을 통해 차별화된 가공 식품을 만들어 5년 안에 흑자로 전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0년 후쯤에는 공장 인근에 사회복지센터를 설립하는 것이다.

큰바위식품은 지난해 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올해 2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 그야말로 벤처다. 첫 번째 목표는 5년 안에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으며, 두 번째 목표를 위해 공장 근처에 500여평의 땅을 매입해 1단계로 펜션과 약초농장을 지을 계획이다. 나중에는 5000평까지 터를 확보해 복지관을 건립할 생각이다.

 이 사장의 이러한 꿈은 신학과 사회복지를 전공한 그의 이력 때문이다.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그는 대전에서 7년간 목회자 생활을 했다. 1997년 대학을 편입해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서울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의 지원만으로 사회복지관을 운영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즈음 농촌에 세워진 사회복지시설을 알게 됐다.

 그는 그의 꿈을 고향인 금산에서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인삼 농사를 짓던 그의 부친은 흔쾌히 승낙했다. 가업인 인삼 농사를 장남인 이 사장에게 물려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10년 넘게 인삼 도소매를 한 어머니도 제품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제공했다. 하지만 서울 생활에 익숙해 있던 그의 부인은 그의 뜻에 흔쾌히 응하지는 않았다.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가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는 “지금도 아내는 반만 협력자”라고 귀띔한다.

 그는 먼저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농협과 군청의 창업 지원 자금으로 공장을 설립했다.  2002년 당시 금산 인삼을 아이템으로 해서 나온 건강식품은 한약재를 첨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금산 지역만 해도 인삼 관련 공장이 150개가 넘었다. 그는 다른 한약재는 섞지 않고 홍삼 하나만으로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일단 금산 지역의 인삼은 표면적으로는 미국이나 캐나다 산과 사포닌 성분이 비슷하지만 실제로 진정·혈압 강하·혈당 강하·간 손상 보호 작용 등에서 어떤 인삼보다도 월등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다른 한약재를 넣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인삼 경작에서 제품 생산까지

 이 사장은 “후발 주자로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다가는 언제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솥단지에 홍삼을 넣고 직접 우려내기를 4개월간 계속했다. 고온에서, 저온에서, 하루에서 나흘까지. 거듭된 실험을 통해 저온에서 4일간 숙성한 홍삼 제품이 가장 향긋하고 맛이 좋은 것을 알아냈다.

 금산에서 생산된 홍삼을 사서 본격적으로 제품을 생산했다. 하지만 초기에 생산한 제품들에 대해 소비자들의 불만이 조금씩 터져 나왔다. 맛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원료가 되는 홍삼의 제조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장은 홍삼도 직접 생산하기로 했다. 그리고 3000여평의 인삼도 직접 짓기로 했다. 인삼을 제대로 알아야 제품도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 막 입소문으로 퍼진 그의 제품은 아직 제대로 된 유통망이 없는데도 지난해 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가 됐다. 그의 올해 목표는 탄탄한 유통망을 구성하는 것이다. 또 이 지역을 관광 테마 마을로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의 꿈인 노인들을 위한 복지센터를 건립할 생각이다.



제주 백합연구소 운영하는 김상우씨

백합으로 귤 농사의 10배 소득



 제주도 서귀포시 김상우(52) 씨가 운영하는 백합연구소에는 봄철 부활절에 맞춰 시장에 출하하기 위해 이제 막 식재를 마무리한 5cm 정도의 어린 백합이 자라고 있다. 또 한쪽에서는 수출 작업이 끝난 백합을 포장하느라 분주하다. 농장 안에서는 출하 시기에 맞게 백합 종구(알뿌리)가 조금 자란 것에서부터 수확 중인 백합, 수확이 끝난 백합 등 단계적인 재배 현장을 볼 수 있다.

 김씨는 시행착오와 실패를 경험하며 더 이상 이런 일들은 경험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에서 농장 이름을 백합연구소라 붙였다고 한다. 또 모자란 부분은 보완하고 새로운 기술을 연구해 실행에 옮기는 데 그 목적을 두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각오를 다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농장에서는 연간 50만개의 백합 종구를 3000평의 비닐하우스에 심어 재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잘 자란 백합꽃 3만본을 일본에 수출했다. 또 서울과 부산 도매 시장에 출하하고, 구근을 증식(종자 번식)해 좋은 품질의 백합을 생산하기 위해 농장에서 사용하고 남는 것은 이웃 농가에도 공급하고 있다.



미·일 수출 통해 상품성 인정

 그가 생산하는 제품은 꽃이 피기 전의 백합을 10본씩 묶어 도매 시장과 일본 시장에 출하하는 절화 상품과 구근(알뿌리)을 생산해 백합 재배 농가에 공급하는 구근 양성 판매를 들 수 있다.

 김씨가 1972년 농사를 처음 접했을 때에는 감귤 붐이 한창이었다. 귤밭 300평만 경영해도 평생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농가 소득으로는 최고였다. 귤나무 한 그루만 심어도 자식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다고 해 ‘대학나무’라 칭하던 시기였다.

 농업고등학교를 막 졸업하던 시기라 소득이 많은 귤 농장을 조성해 운영하면 장래 생활은 걱정이 없다고 생각해 귤 농사를 평생 직업으로 삼기로 마음먹고 시작했다. 하지만 과연 귤 농사가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이웃 농가에서 백합 농사를 하며 높은 소득을 올리는 현장을 보고 귤나무를 뽑고 그 자리에 백합 하우스를 지었다. 또 서울을 오르내리며 도매 시장도 견학하는 등 나름대로의 시장 조사를 통해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문화 수준도 나아져서 꽃의 소비도 많아질 것이라 판단했다. 귤밭의 10분의 1 정도인 백합꽃 생산 면적에서 귤 전체 생산액과 비슷한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김씨가 백합 농사를 지으며 가장 어려웠던 때는 지난해 3월. 일본에 수출하려고 잘 가꿔 오던 500평 하우스의 백합이 보온 장치인 열풍기의 오작동으로 하룻밤 사이에 다 죽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이 실망과 포기보다는 오히려 면밀하게 일 처리를 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는 1998년 수출업자를 4회 초청해 수출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마을에 백합 생산 농가와 협력해 전국 최초로 백합을 공동으로 선별 포장하는 백합 공동 작업장과 공동 정산제도를 시행하며 오늘의 수출 체계를 다져 왔다. 이 같은 시스템에 따라 미국 등에 시험 수출해 본 결과 모든 비용을 공제하고도 국내 시세와 비슷하게 받을 수 있었으며, 상품성도 인정을 받게 됐다고 한다.

 김씨는 지금도 1년에 여러 번 서울 시장을 둘러보며 새로운 화훼시장 동향을 관찰하고 수출업자를 자주 만나 국제 동향에 대해 얘기하며 미래의 화훼 산업을 이끌어갈 준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INTERVIEW

벤처농업대학 운영하는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상상력을 넓혀야 농업이 살아난다”



 처 농업의 산실로 ‘한국벤처농업대학’이 떠오르고 있다. 이 대학을 설립·운영하고 있는 이는 삼성경제연구소 민승규 수석연구원. 민 연구원은 2000년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충남 금산의 한 폐교에 한국벤처농업대학을 세우고 전국의 농민 학생들을 모아 마케팅, 경영 전략 등을 교육하고 있다.



 벤처 농업이 요즘 새롭게 조명 받는 이유는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농업을 창출해 틈새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모험적인 경영 형태의 농업을 벤처 농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지금까지 생산에 급급했던 농업 분야에 소비자 만족과 혁신, 경영과 마케팅을 불어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아이디어와 창의력으로 승부하는 벤처 농업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벤처 농업은 물적 생산성에 의존하는 관행 농업과는 달리 아이디어 등으로 승부하기 때문에 일종의 지식 기반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시기이다.



 기존의 틀을 부수는 것은 특히 농민들에게 있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이제 농민들도 단순히 농사만 지어서는 안 된다. 먼저 농민들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 농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성장 동력이 되는 엘리트 농가가 있어야 한다. 왜 농민들이 농사를 안 지으려고 하는가. 농사를 지어서는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업으로 돈 버는 ‘스타 농민’이 많이 나온다면 농업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기존 산업 구조가 바뀔 것이고, 그래야 한국 농업의 생태계도 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발전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벤처 농업이 대안이 돼야 한다.



 벤처농업대학을 설립하게 된 계기는

 1994년 일본 도쿄대학에서 농업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농촌진흥청을 거쳐 삼성경제연구소에 농업 분야 전문가로 왔을 때 농촌 정보화를 통한 농업 교육에 나섰다. 그러다가 96년 우연한 기회에 경기도 화성의 농민들을 찾아가 컴퓨터 교육을 시키게 됐다. 당시 삼성경제연구소의 모든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쓸모없어진 컴퓨터가 많이 쏟아져 이를 갖고 갔던 것이다. 99년부터는 전국을 돌며 ‘스타 농민’들을 찾아다녔다. 성공한 농민들을 찾아 사례를 발표하고 전파했던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2000년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충남 금산의 한 폐교에 한국벤처농업대학을 세웠다. 매월 1회 1박2일씩 1년간 수업하는 과정이다. 해마다 90여명이 입학하지만 졸업생은 채 반도 안 될 정도로 어려운 과정이다. 지금까지 벤처농업대학을 졸업한 농업인들은 입학 인원의 절반 정도인 190여명에 이른다.



 벤처농업대학에서는 주로 어떤 교육을 하는가.

 여기에서는 기존의 기술 교육이 아니라 농민들에게 꿈을 주는 교육을 실시한다. 나는 농업인들에게 ‘최고가 되는 꿈을 가지라’고 말한다. 이러한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자신의 재능과 열정, 네트워크, 프로정신, 스타일을 가지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농민들에게 있어 열악한 분야인 마케팅, 디자인, 경영 전략 등은 교육 과정에 따라 전문가들을 강사로 초빙한다. 강사료는 따로 없다. 농민들이 수확한 농산물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 등 한 번 다녀간 강사들은 다시 한 번 교육할 수 없냐고 물어보곤 한다.



 최근 한·중·일의 농업인을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 예정이라고 들었다. 어떤 것인가.

 한국, 중국, 일본 3국 농민들의 민간 네트워크인 ‘베세토농업포럼’을 만들 예정이다.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농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모색해 보자는 뜻에서다. 학자나 정부가 나서기보다 실제 농사를 짓는 한·중·일의 농민과 농업 연구자들을 만나 농업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 계획이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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