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3일 퇴근길, ‘진한’ 추위가 완전히 물러나기 직전 서울 무교동의 한 맥주집에 국내 대기업 과장 3인이 모였다.
2005년 현재 이들이 가지고 있는 꿈과 현실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들의 직장과 가정에서의 고민과 만족은 어디에 있는지, 솔직한 토로를 들어본다.
 자기소개

 홍○○: 나이는 서른아홉이고, 아침마다 체조 시키는 회사에서 물건 파는 일을 한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대충 알더라. 결혼해서 딸만 둘 있다. 과장이 된 지 5년째다.

 김○○: 서른일곱이다. 전략기획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4년 전 결혼해서 20개월 된 딸이 하나 있다. 95년에 입사했으니까 직장생활 만 10년째다.

 이○○: 직장생활 6년차로 올해 과장이 되었다. 나이는 33살이고 3년 전 결혼해서 3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다. 회사에서는 인사관리를 맡고 있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회사명과 이름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





 기자: 30대 과장들의 고민과 꿈을 솔직하게 듣는 것이 이번 자리의 목적이다. 눈치 볼 것 없이 솔직하게 들려 주길 바란다. 먼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는지 궁금하다.



 30대 과장들에게 직장이 갖는 의미

 : 하는 일에는 만족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일한 것보다는 적게 받는다고 생각한다. 4000만원대 연봉을 받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내와 맞벌이를 한다. 덕분에 사는 데 불편함은 없지만 내가 하는 일에 비해서는 적게 받는다고 느낀다. 일은 만족하는데 연봉은 적다고 느끼는 게 불만의 요지다.

 홍: 지금 회사가 새로 생긴 지 5년 정도 되었다. 사업 초창기에 창업 멤버로 합류했다. 인선에서부터 회사의 전략 수립까지 전 과정에 대해 일했고 지금은 영업파트 책임자로 있다. 솔직히 지?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회사 설립하고 정신없이 일만 해왔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정치적인 거래’가 회사 안에 진행된다는 걸 알았다. ‘누구에게 줄을 서야 하는 건가?’ 하는 고민이다. 체질상 ‘정치’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만두고 나가자니 당장 할 일이 없다. 이게 진짜 고민이다.

 : 대학원 졸업하고 다른 회사 3년 다니다 지금 회사로 옮겨왔다. 대학, 대학원에서 인사관리를 전공했고 군대도 장교로 다녀와서 오래 전부터 인사관리를 한 셈이다. 나에게 맞는 일이라 생각하고, 장차 이 분야 최고 전문가가 되고 싶다. 그래서 짬을 내서 공부도 하고 있다.

 : 나도 직장생활 5년차일 때는 이○○씨처럼 정말 열정적으로 일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업무 관련 자료란 자료는 안 본 게 없다. 심지어 각 경제연구소의 세미나, 심포지엄 자료까지도 다 챙겨 봤다. 솔직히 뭔 말인지 모르는 재무, 회계 관련 서류도 무작정 읽었다. (웃음) 내 일은 물론이고 회사에 대한 애정도 컸다. 그런데, 다들 비슷한 경험을 했겠지만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생각에 큰 변화가 생겼다. 사원 개개인이 회사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과 상관없이 조직의 생존 원리는 별개더라. 당시 내가 정리해고 명단을 작성하는 일을 했다. 정말 성실한 선배 한 분이 명단에 포함되었다. 3개월 유예기간이 주어졌는데 그분이 그만 돌아가셨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죽음이었다. 돌아가시기 전 복도에서 그분과 마주쳤는데 “네가 나를 (해고 명단에) 넣었지?” 하고 농담처럼 말을 건넸다. 당시 책임질 위치에 있지는 않았지만 해당 부서에 있었다. 미필적 고의였던 셈이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회사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돈보다 중요한 건 성취감과 보람

 홍: 대기업이 아닌 비교적 자유로운 부문에서 처음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자유주의자로 결혼도 않고 독신으로 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이 없이 둘만 행복하게 살자는 주의였는데 아내를 꼭 닮은 딸이 낳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를 낳았다. 그러다 보니 직장도 안정적인 곳을 추구하게 되었고, 대기업 계열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를 가장 암담하게 만든 건 그렇게 만난 첫 상사였다. 부장 직급이었는데 아내와 아이를 미국으로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였다. 집에 가도 반겨줄 사람이 없으니, 밤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곤 했다. 이 분이 꼭 퇴근 무렵에 무슨 일을 시켜 놓고는 어딘가 나가서 밤 10시쯤 들어와서는 “어떻게 돼 가?” 하고 점검을 했다. “좀 더 걸릴 것 같은데요” 하면 ‘아침에 작성해서 보고 하겠다’는 뜻인데 “그래? 그럼 기다리지” 그러고는 새벽 1시가 되어도 안 들어가기 일쑤였다. 일도 피곤했지만 나도 저 나이가 돼서 저렇게 처량한 신세가 되지 말라는 법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요즘 대기업 과장들이 일이 많다는 건 나도 공감한다. 입사해서 3년 동안은 아침 8시 반에 출근해서 새벽 1시에 퇴근했다. 그래도 요즘은 형편이 좋아져서 밤 11시쯤에 퇴근한다. (웃음) 주 5일 근무제가 아니었으면 아마 벌써 쓰러졌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 분야에서 경력과 경험을 쌓으면서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아직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은 해 본 적 없다. 다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은 안 한다. 주변 내 또래들도 그런 생각은 마찬가지다. 10년 후엔 인사관리 분야 전문가로 강연이나 저술 활동을 하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지금도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전문 서적도 읽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다.

 홍: 아직 구상 중이긴 하지만 지금 열심히 알아보고 있는 게 있다. 뜻 맞는 사람 몇이랑 정말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 준비 중이다. 하지만 사업이란 게 뜻대로만 되지 않는 것 아닌가? 40대에 사회에 나오면 식당 밖에 할 게 없다고들 해서 그것도 제2의 방책으로 알아보고 있다. 마침 잘 아는 후배가 그쪽 분야에 있어서 여차하면 도움을 받을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3년 정도 후엔 내 일을 찾아 나설 생각이다.

 : 마음 맞는 사람하고 즐겁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나도 많다. 지금은 큰 조직에서 크게 보는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조직이 크면 관료화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한다. 때론 내가 제출한 기획안이 별다른 검토 없이 바로 사업으로 연결되는 것을 본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건 별로 현실성 없는 기획인데 그게 사업으로 진행이 되는 걸 본다. 결국 적잖은 손해를 보는데, 이걸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다들 빠져나갈 방도를 마련해 놓고 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도 참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게 되더라.



 “경쟁력 있는 전문가 되고 싶다”

 기자: 현재 수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홍: 결혼 전 아내도 사회생활을 했고 결혼 후에도 계속 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내가 어려서 일하는 어머니를 둔 덕분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밥 차려 먹곤 했다. 그게 너무 싫었다. ‘나중에 커서 결혼하면 아이 혼자 크게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쭉 혼자 번다. (웃음) 아이가 하나가 아니고 둘이 생기니까 혼자 벌이로는 좀 벅차서 아내한테 “일하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물어 본 적 있다. 결혼 후 몇 년 동안은 일하고 싶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던 아내가 정반대로 변했다. 아이 엄마로서 사는 게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도 공감은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힘들어지는 게 사실이다.

 : 맞벌이를 하지만 워낙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나나 아내나 씀씀이가 크다. 월급 외에 따로 프로젝트를 맡아 아르바이트 삼아 1년에 2~3건 정도 하고 있다. 적지 않은 과외 수입이 된다. 회사에서 내 상사 되는 분도 안다. 일을 맡으면 며칠간은 한숨도 못 자고 일을 하니까 당연히 티가 난다. 그런데 내가 가끔 그런 아르바이트를 하는 걸 나의 상사가 부러워한다는 거다. 뭐라고 하기보다 ‘나도 그런 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식이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 전부가 아니다 보니, 연봉이 많지 않다는 생각도 하지만 많이 신경 쓰지는 않는다. ‘많이 받으려 해 봐야 얼마나 더 많이 받겠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 성과급제이고 연봉이 직위나 직책에 상관없이 책정되다 보니 나보다 경력이 적은 후배가 더 많이 받는 경우도 있다. 지금 연봉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그럴 때면 좀 열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이 대세가 아닌가. 회사의 평가는 나름대로 적정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내가 더 성과를 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김: 나의 과거를 보는 것 같다. (웃음) 아내는 요즘 툭 하면 ‘자금은 잘 준비하고 있지?’ 하고 묻는다. 자신의 사업 자금을 말하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돈 많이 벌어서 하루라도 빨리 편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10년 뒤에는 그런 부자가 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부지런한 편이다. 술 먹고 새벽에 들어가도 아이 젖병 삶아 놓고, 그날 술자리에서 유용한 정보가 있으면 컴퓨터에 입력해 놓고 잔다. 지금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자: 가정생활엔 만족하는가?

 : 영화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를 보면 추상미 남편으로 나오는 배우가 하는 대사 중에 ‘무슨 가족끼리 섹스를 하느냐’ 하지 않는가. 아내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다른 여자들도 많이 예뻐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술 안 먹으면 사랑한다는 말이 잘 안 나오는데 술 먹고 취할수록 잘 나온다. 덕분에 안 쫓겨나고 살고 있다.

 홍: 비슷하다.

 : 가정이 가장 소중하다. 그런데 함께 하는 시간이 적어서 항상 아쉽다. 아들 녀석이 아빠를 잘 못 알아본다. 그렇지만 가족을 위해 나를 희생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 모두 한 번 이상의 전직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세 사람 모두 ‘직장’보다는 ‘직무’에 더 큰 관심과 애착을 보였다. 해당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면 몸담을 곳은 자연히 따라온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것은 초보 아빠부터 초보 학부형 모두에게 ‘심각한’ 고민거리였다.

 방담 도중 아내로부터 걸려오는 핸드폰을 받는 풍경은 10년 전까지는 생소한 것이었으리라. 아마도 그때 이런 자리가 있었더라면 일명 ‘삐삐’(무선호출기)가 진동했으리라. 그 10년간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2시간은 짧기만 했다. 3시간을 훌쩍 넘긴 방담은 11시를 훌쩍 넘겨 끝났다. 세 사람은 호프집 입구에서 간단히 악수를 한 뒤 헤어졌다. 두 사람은 할증이 붙기 전 택시를 타기 위해, 한 사람은 심야 버스를 타기 위해 세 갈래로 흩어졌다. 이 땅 과장들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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