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5일자 조선일보 경제면에 일본 단카이(團塊)세대 기능인들의 정년이 다가오지만, 이들을 대체할 젊은 기능인이 턱없이 모자라 걱정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단카이세대란, 1947년~1949년 전후 베이비붐 세대로 197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제조업 현장에 뛰어들어 일본의 산업을 일으켰던 주역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인구 수만 67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조선 업종은 기능 인력의 절반가량이 단카이세대라고 합니다. 기업들로서는 이들이 익힌 제조업의 노하우를 어떻게든 후배들이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커다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기사가 나간 일주일 뒤 조선일보 경제면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하나 실렸습니다. 현대중공업 기능공들의 손기술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현대중공업의 간부가 “중국이 마지막까지 한국을 못 따라잡는다면, 그건 기능공들의 우수한 손기술 때문일 것입니다”라는 자랑도 나와 있더군요. 배에 페인트를 칠하는 도장기술 얘기가 사례로 나왔습니다. 0.6~0.7mm 두께로 다섯 차례에 나눠 서로 다른 색상으로 페인트를 하는 것은 기계로는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기능을 가진 사람을 ‘신의 손’이라고 부른다는 설명도 곁들여져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기사를 읽고 나서 우리에게도 일본 기업들과 같은 종류의 고민거리가 생길 날이 머지않았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연령구조도 일본과 비슷한 형태가 될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차만 있겠지요. 다행스러운 건 우리에게는 이렇게 문서화 되지도 않고, 기계화하기도 힘든 부분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대책을 마련할 기회가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흔히들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감이라는 게 생긴다고 합니다. 기능 분야는 더욱 그렇지요. 그런데 이런 감으로 구성된 지식을 지식경영에서는 ‘암묵지’(暗默知)라고 합니다. 잘 보이지 않고, 매뉴얼화도 어려운 지식이지요. 이런 암묵지를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식, 즉 형식지로 바꾸는 작업은 그래서 아주 중요합니다.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이니, 식스시그마(six sigma)니 웬만한 경영기법 대부분이 도입된 상황에서 암묵지는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이 중국 기업들이 절대 못 따라올 것이라고 장담했던 것도, 바로 이런 종류의 지식이 사람이라는 형태로 축적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지식을 실제 다음 세대, 후배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이를 시스템으로 뒷받침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일본 기업인 이시카와지마하리마(石川島播磨)중공업의 도쿄 다나시(田無)공장은 사내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카와사키중공업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숙련공의 지식을 매뉴얼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시니어 고용’이라고 해서 나이든 기능공을 회사에서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 같은 작업도 필요합니다. 서구 기업에서 도입된 멘토(Mentor)제도도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험이 풍부한 선배들이 후배를 지도해 주는 것이 핵심인 이 제도는 나름대로 의의가 있지만, 실제로는 잘 활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시스템은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암묵지를 형식지로 바꾸거나 암묵지를 전달하는 작업은 보다 세밀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암묵지는 전라도 사투리로 표현하자면 ‘거시기’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입니다. ‘거시기 하니까, 거시기 허네, 거시기 해 버려’ 등등. 실제 일본야구의 대부인 나가시마 시게오 전 요미우리 감독이 타자를 말로 지도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투수의 공이 이렇게 들어오면 이렇게 보고 이렇게 치면 이렇게 나간다.” 저는 도대체 이해를 못 하겠는데, 야구선수들은 모두 이해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지식을 찾아내 명확하게 하거나, 제대로 전달하려면 일상적인 근무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지식을 체득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나아가 기존의 경험을 뛰어넘는 새로운 아이디어까지 창출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제가 10여년 전 근무했던 조선일보 편집국에는 ‘담배방’이라는 5~6평 규모의 작은 방이 두 개 있었습니다. 방 이름에서 암시하듯, 담배 피는 사람이 이곳에 모여 담배를 피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언제나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쌓여 있고, 냄새도 나고 지저분했습니다. 그런데 비흡연자인 저는 이 담배방을 심심치 않게 애용했습니다. 그곳에서 선배, 후배들로부터 신문 제작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종 기자들의 특종 노하우를 비롯해, 다른 부서에서 고민하는 취재 아이디어도 자주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자연스런 교육장이었던 셈입니다. 심지어는 취재 분야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혀 다른 시각에서 취재하는 힌트도 얻었습니다. 이 방은 그 후 지저분하다는 이유와 빌딩이 금연빌딩이 되면서 안타깝게 사라졌습니다.

 지식경영의 대가인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는 시스템화하지 않은 암묵지가 잘 전달되기 위해서는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바(한국어의 장場)’가 주요하다는 얘기를 거듭 강조하면서 지식경영형 사무실 모습을 도면으로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인상이 남는 것은 사무빌딩의 각 층마다, 층 한가운데 담배도 피고 차도 마시는 휴게실을 두었던 것입니다. 일하다 막히면 사무실 한가운데의 휴게공간으로 나와 담배도 피고, 고민도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입니다. 10여년 전 조선일보 편집국의 담배방과 물리적인 모습만 달랐지 실제 기능은 같았던 것입니다.

 제가 잘 아는 한 컨설팅회사는 다른 컨설팅회사와는 물리적인 업무공간이 많이 달랐습니다. 큰 사무실 한가운데를 휑하니 넓은 공간으로 비어 두었더군요. 그곳에는 칠판도 있고, 전동 스크린도 있었습니다. 이 회사 사장은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에는 ‘불앤베어’(Bull and Bear)라는 레스토랑이 있다고 합니다. 월스트리트의 각 회사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서 의견도 나누고, 아이디어도 교환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미국 시카고대학은 국내 대학과는 달리 교수들의 연구실이 과별로 나눠져 있지 않고, 서로 다른 과 교수들이 뒤섞여 있다고 합니다. 경제학과 교수들이 철학과 교수를 만나서 영감을 얻고, 그러면서 새로운 관점을 얻는 일도 많다고 합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라면 페인트칠을 끝낸 퇴근길에 잠깐 목을 축이는 선술집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업에도 경험의 형태로 축적된 수많은 지식이 존재할 것입니다.  이를 끄집어내는 작업은 사람들의 동선(動線)까지 고려한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명료하고 체계적인 지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직장에도 이 같은 지식 공유의 장을 만들기 바랍니다.

고종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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