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인 피터 슈워츠(Peter Schwartz)는 지난해 IBM이 앞으로 50년 후 IT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세계 10대 기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앞으로 30년 후인 2035년에 IBM이 HP를 인수하게 되는데, HP는 그 이전에 인텔을 사버린다는 시나리오다. IBM의 바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한국IBM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한국IBM은 국내 IT업계의 ‘맏형’으로 불린다. 1967년 국내 최초의 컴퓨터인 ‘IBM 1401’을 경제기획원 통계국에 설치하면서 진출한 한국IBM은 불혹(不惑)을 바라보는 나이다. 정보기술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했던 시절에 컴퓨터라는 씨앗을 뿌리고 IT산업을 이끌어온 것이다. 한국 IT산업과 희로애락을 같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IBM은 국내 IT 인력의 산실이기도 하다. 손영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 한의녕 SAP코리아 사장 등 다국적 IT기업 CEO들이 이곳을 거쳤다. 이들뿐만 아니라 벤처기업 CEO 중에도 IBM 출신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IT 관련 기술자들과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하는 외국 기업으로도 가장 먼저 손꼽히고 있다. 한국IBM은 현재 2500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며, 2000년대부터 1조 원대 이상의 매출을 기록해 2003년 1조4815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휘성 사장은 “단순히 비즈니스 규모가 큰 글로벌 기업을 뛰어넘어 ‘Great Company’로 성장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산 환경 변화로 지위 축소

 거대 IT기업 중 하나인 IBM은 전산 환경의 변화와 맞물려 성장해 왔다. 컴퓨터의 역사를 살펴보면 IBM의 발자취를 쉽게 알 수 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컴퓨터가 기업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때 사용하던 컴퓨터는 ‘메인프레임’이라 불렸다.

 이 메인프레임은 아주 커다란 컴퓨터(큰 냉장고 두 대쯤을 붙여 놓은 모습)로서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었다. 각자의 책상 위에 ‘더미터미널’이라는 장치를 설치하고, 메인프레임과 연결해 사용할 수 있었다. 모든 프로그램은 메인프레임에 저장되고 실행됐다.

  이는 요즘의 컴퓨터와는 다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는 다양한 형태의 메모리와 디스크 드라이버를 갖추고서 ‘한글’이나 ‘엑셀’과 같은 프로그램을 작동시킨다.

 그렇다면 1970년대 초창기 전산 시절에는 오늘날과 같이 책상마다 컴퓨터가 없었던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의 컴퓨터는 너무 크고 비쌌기 때문이다. 당시 <포춘>지가 선정한 전 세계 500대 기업 정도가 이 같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을 정도다. 메인프레임을 구매할 경우 모든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단일 업체로부터 함께 구매해야 했는데, 이 중에서 가장 큰 업체가 바로 IBM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이 같은 메인프레임 모델이 변하기 시작했다. 애플이 최초의 데스크톱 컴퓨터를 발명했고, 컴팩이 곧 뒤를 따랐다. 개인들은 각자의 컴퓨터를 갖게 됐고, 작업하던 내용을 플로피 디스크에 담아 다른 컴퓨터에서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바로 ‘PC 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기업들도 특정 분야의 전산 환경을 지원해 주는 전문적인 제품들과 만나게 됐다. 기업들은 인텔, 오라클, EMC 등으로부터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를 구매하는 선택권을 갖게 됐다. 이에 따라 그동안 거의 독점적으로 누렸던 IBM의 지위는 축소되기 시작했다.



 변화 미리 읽고 유연하게 대처

 1980년대 후반 들면서 컴퓨터의 영역은 더욱 확장됐다. 많은 사용자들이 중앙에 저장해 놓은 파일을 여러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강력한 컴퓨터를 ‘서버’라고 부른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의 도스(DOS)와 유닉스라는 두 가지 컴퓨터 운영체계(OS)가 등장해 자리를 확고히 잡았다. DOS는 후에 윈도우(Windows)로 바뀌게 되고, 유닉스는 IBM, HP, SUN 등이 자신들의 하드웨어의 운영체제로 상용화했다.

 유닉스는 사용하기는 복잡했지만 아주 강력하고 유연해서 대기업들로부터 각광받기 시작했고 급기야 값비싼 메인프레임을 대체하기까지 이르렀다. 메인프레임 시장에서 독주하던 IBM으로서는 커다란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IBM은 시장의 커다란 변화를 미리 읽어내고,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특히 ‘하드웨어 집중’에서 벗어나 최근 수년간 PwC컨설팅(PwCC) 인수를 비롯, 서비스와 컨설팅 부분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오고 있다. IBM이 이처럼 서비스와 컨설팅 사업의 비중을 확대한 것은 정보기술(IT)이 기업 내 업무 프로세스와 밀접히 결합되고 있는 최근 산업계의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부응한 것이다. 최근의 비즈니스 트렌드는 단순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제공 업체가 아닌, ‘경영과 기술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IT업체에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IBM은 현재 세계 최대의 컴퓨터 제조 및 판매 회사지만 이제 ‘세계 최대의 IT서비스 및 컨설팅 회사’라 불리고 있다. 그 이유는 IBM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가 하드웨어 판매뿐 아니라 서비스·컨설팅 및 소프트웨어, 솔루션으로 확대된 때문이다.

 국내 정보기술산업의 개척과 성장, 발전에 그 어떤 기업보다 많은 역할을 담당해온 한국IBM도 국내 IT업계의 선도 기업으로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는 타격이 예상됐던 메인프레임 시장이 아직 위축되지 않은 것도 요인이지만, 무엇보다도 시장의 커다란 변화를 미리 읽어내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한 노력에 기인한다.

  한국IBM이 최근 업계에 제시하고 있는 최대 화두인 ‘온 디맨드(On demand) 비즈니스’는 이 같은 시장 변화에 부응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온 디맨드 비즈니스란 샘 팔미사노(Sam Palmisano) IBM 회장이 주창한 기업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자 차세대 컴퓨팅 패러다임이다. 즉 ‘원하는 때에, 원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만큼’ 제공할 수 있는 ‘준비된 기업’이 미래를 주도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시장의 변화와 고객의 요구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안테나를 늘 켜(On) 둔 기업이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온 디맨드 기업’이 되려면 시장 변화와 고객 요구에 실시간으로 대응하고(Responsive), 핵심 역량에 집중하며(Focused), 비용 구조를 고정적인 구조에서 가변적인 구조(Variable constructure)로 전환해 시장 위협 요소에 탄력적(Resilient)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고객사들이 이 같은 온 디맨드 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IBM 스스로도 온 디맨드 기업이 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체 온 디맨드 노력 통해 70억달러 절감

 지난해 방한한 IBM 본사의 CIO인 밥 그린 버그는 이와 관련, “IBM은 자체 온 디맨드 비즈니스 노력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2003년 한 해 동안 70억 달러 규모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또 재고 수준도 3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유지했다고 한다. 특히 팀워크 및 협업을 위한 웹 기반의 업무 툴인 ‘온 디맨드 워크플레이스’는 81%의 직원이 매일 접속해 업무나 정보 교류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워크플레이스 시행 첫 주에만 1억4000만 회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71% 직원이 가장 선호하는 정보 소스로 평가하는 등 팀워크 및 협업 증진을 통한 생산성 향상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또 IBM은 지난 10여 년간 전 세계 IBM 조직 전체를 혁신하는 과정에서, 1992년 128명이었던 CIO를 2003년 기준으로 1명으로, 데이터센터를 155개에서 10개로, 웹호스팅 센터를 80개에서 7개로 줄였다. 또 31개에 달하던 네트워크는 1개로, 애플리케이션은 1만6000개에서 4800여 개로 통합해 시장과 고객 요구 변화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내부 프로세스를 정립해 왔다.

  이러한 변화에 함께 대응해 온 한국IBM은 스스로의 경쟁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국내 시장에서 오랫동안 축적된 비즈니스와 정보기술을 아우르는 지적 자산과 원천 기술의 보유, 글로벌 기업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축적된 경험과 규모의 경제 등 조직적 역량”이라고 답한다. 이를 기반으로 컨설팅과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통합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파트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IBM이 가진 ‘온 디맨드 비즈니스’의 진정한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고객의 비즈니스 성공에 기여하는 ‘신뢰받는 가치 파트너’(Trusted Value Partner)가 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한국IBM은 IT 서비스 및 컨설팅 분야에서 지난해 NHN을 비롯해 에스콰이아, 한국화이자 등과 IT 아웃소싱 계약을 맺는 등 비즈니스 이슈를 IT를 통해 해결하는 IBM의 서비스 리더십을 드높였다고 자평하고 있다.

 특히 LG전자와 합작으로 운영하던 LG IBM을 분할했으며, 주력 제품인 유닉스 서버도 국내에서 제품을 조립·생산하는 모델을 도입한다. 이 모델은 올해 상반기 중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연구역량 활용 경쟁력 강화

 한국IBM의 핵심 경쟁력을 얘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분야 중 하나가 전 세계 IBM의 연구 역량이다. 지난해 한국IBM이 출범시킨 유비쿼터스연구소뿐 아니라 전 세계 수십 군데에 연구 개발 조직을 보유하고 있다. 미 특허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IBM은 2004년 한 해 동안 총 3248개의 특허 취득으로 이 부문에서 12년 연속 1위의 위업을 달성했다. 2위 기업보다 무려 1314개나 더 많은 수치로, IBM은 4년 연속 3000개 이상의 미국 특허를 취득했다.

 최근 등록된 주요 기술 중에는 IBM이 주도하고 있는 자가 치유 컴퓨터 시스템, 자주 사용하는 인터넷 페이지를 모바일 단말기에 ‘모듬’으로 구현하는 기술, 신용카드 및 ID 불법 사용 방지 관련 디자인 등으로 각 산업 분야별로 최신 정보기술을 적용해 비즈니스를 혁신할 수 있는 IBM의 역량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게 개발된 기술과 노하우라도 공개돼 공유된다. 지난 1월 IBM은 미국 내 소프트웨어 특허 500개를 소프트웨어 개발자 및 단체에 공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IBM은 이번 기술 공개로 업계의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리더로서의 이미지를 보다 강화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업계 전반에서 ‘특허 공유’를 함으로써 IT 개발자 및 사용자가 협업을 통해 지속적인 기술 혁신을 이뤄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IBM이 본사 연구소 내 약 200~300여 명의 과학자로 구성된 컨설팅 조직인 ‘온 디맨드 이노베이션 서비스’(ODIS)를 출범시킨 것이다. 이는 과거에 없던 고객 혁신 서비스로서 어느 기업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연구원과 과학자들은 첨단 기술이나 경영 프로세스에 아직 상용화되지 않는 기술적인 지원이 필요할 경우 프로젝트 초기에 투입된다. 이들 과학자 컨설턴트들이 직접 프로젝트 추진팀과 함께 일하며 고객이 원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나 시스템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다. IBM이 근 100여 년 역사상 처음으로 연구소 내에 컨설턴트를 둔 이례적인 서비스다. 이는 고객이 필요로 할 경우 해결책을 신속히 찾아 제시한다는 온 디맨드 정신을 내부적으로 실천한 아주 의미 있는 IBM 내부 혁신 사례이기도 하다.



 연평균 15억 달러 수출

 과거 한국IBM은 가장 현지화에 성공한 글로벌 기업으로 인정받아 왔다. 외국계 기업이지만 웬만한 토종 기업보다 수출이 더 많은 회사다. 1983년부터 2003년까지 총 155억 달러어치를 IBM 해외 공장에 수출했다. 연평균 15억 달러에 이르는 규모다.

 그러나 최근 한국IBM은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화에 이바지하는 기업으로 새롭게 다가서고 있다. IBM은 전 세계적으로 30여 만 명의 조직을 운영하는 최대의 글로벌 기업 중 하나로, 수십 년간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및 IT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축적한 글로벌한 역량이 큰 무기다.

 세계 시장을 지향하는 국내 기업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2500여 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국내 자원은 물론 글로벌 역량을 결집해 실질적인 선진 기술과 비즈니스 기법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한국IBM은 튼튼한 팀워크와 기술력, 그리고 고객의 요구를 제때 만족시킬 기업으로 시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이 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IBM의 역량은 독특한 기업 문화와 가치관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IBM의 새로운 기업 정신인 ‘온 디맨드’는 봉사 활동에도 적용된다. 지역 사회를 도울 수 있도록 늘 사랑과 관심의 등불을 켜두자는 ‘온 디맨드 커뮤니티’는 작은 것이지만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을 나누자는 취지다. 유아 교육용 컴퓨터를 기증하는 ‘키드스마트(KidSmart)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으며, 지난 14년 동안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정신지체사생대회의 모든 행사 지원비를 지원하고 있다. 또 노트북, 서버 등 IT 자원을 활용한 기증 사업도 펼치고 있다. 한국IBM 전 직원의 10% 이상인 300여 명이 자원봉사자로 등록했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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