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5월 서울 신림동 골목에 들어선 5평짜리 보쌈집. 이 보쌈집 주인은 18년 뒤 국내 최대 한식 프랜차이저로 변신했다. 보쌈과 부대찌개를 비롯, 7개 브랜드 460개 가맹점을 둔 놀부의 김순진(53) 대표가 주인공이다. 밑바닥에서부터 출발, 한국을 대표하는 한식 브랜드 놀부를 키운 비결을 그는 뭐라고 얘기할까.

 난 6월13일 오후 2시 서울 양재동 놀부(nolboo.co.kr) 본사서 만난 김 대표의 첫 마디는 “안녕하세요, 김순진입니다”였다. 먼저 악수를 청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여장부였으며 하나의 질문에 10분씩 말을 잇는 다변가이기도 했다.

 “성공이요? (손사래를 치며) 아직 멀었죠. 2년 전인가 하루는 ‘놀부명가’ 센트럴시티점서 서울지검 김모 검사가 저를 부르더군요. 본인 생일에 맞춰 시골서 어머니가 올라오실 때마다 놀부보쌈을 샀다면서 건배 제안을 하는 겁니다. 서울 법대 고시생이었던 자신은 부장검사가 됐고 보쌈집 아줌마였던 저는 기업체 사장이 돼 이렇게 다시 만났다구요. 그때서야 ‘아, 내가 조금은 유명해졌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김 대표는 “남들 공부할 때 돈을 벌었다”고 말한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논산서 자란 그가 처음 장사에 손댔을 때가 12살 무렵. 인근 군부대 군인을 상대로 계란과 고구마를 팔면서부터다.

 초등학교 졸업 후 부추 한 단에 20원 하던 시절인 14살 때, 그는 논산 시장에선 ‘꼬마 장사꾼’으로 불렸다. 남들보다 두 배 가량 두툼히 묶어 팔아 반나절이면 봇짐에 싸간 물건을 죄다 팔아치우는 장사 수완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즈니스 기질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가정 형편이 어렵다고 누구나 다 장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수중에 돈이 생기자 그 길로 바로 서울로 올라왔죠. 부추 판 돈 200원을 모아 전당포서 중고 반코트를 구해 입고서 말입니다.”

 서울에 와선 식품 잡화점, 양품점, 신발가게, 건어물점 등 점원 노릇을 안 해본 게 없었다. 이때 모은 종자돈으로 1984년께 처음 점포도 열었다. 그러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밥장사만 백반집, 해장국집, 함바집(공사판 음식 제공업)까지 다 해 봤는데 결국 안 되더군요. 어떨 땐 자금이 달려서, 또 어떨 땐 입지가 안 좋았던 거죠. 음식만 맛있다고 모두 성공하는 게 아니란 걸 배운 셈이죠.”



  그는 이때의 자신을 ‘실패 공장’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결코 실패를 두려워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오뚝이’란 별명도 이때 붙여졌다. 점포를 낼 돈이 없으면 다시 점원 노릇을 해서 도전의 각오를 다지는 반복이 계속됐다.

 “속된 말로 ‘맨땅’에 계속 헤딩만 해온 셈이죠. 그렇게 들어간 곳이 1987년 신림동 놀부보쌈집이었습니다. 만일 그때 ‘스톱’했다면 오늘날의 김순진은 없는 셈이죠.”

 현재 놀부는 7개 브랜드에 460여 개 체인망을 구축한 상태다. 1989년 4월 놀부보쌈 체인 사업(현 231개)을 시작한 이후 평균 3년 간격으로 신규 브랜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2년 놀부부대찌개(현 160개) → 1995년 놀부솥뚜껑삼겹살(현 15개) → 1997년 놀부집 상차림(현 3개) → 1999년 놀부유황오리진흙구이(현 5개) → 놀부명가(1개) → 2004년 놀부집 항아리(현 50개)가 놀부의 18년 역사다. 

 연간 가맹점 매출액만 4000억원대에 달하고 본사 매출액은 지난해 450억원을 기록했다. 놀부는 현재 국내 프랜차이즈 브랜드 평균 수명인 2.7년의 6~7배 오래된 장수 브랜드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지금은 흔한 프랜차이즈가 돼 버린 보쌈, 부대찌개, 솥뚜껑삼겹살도 알고 보면 놀부 김순진 대표가 최초로 만든 프랜차이즈 아이템이다. 강병오 FC프랜차이즈 대표는 “놀부 김순진 사장의 뚝심과 배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개별 점포 사업할 때와 달리 프랜차이즈 본사 사업은 전략이 필수다. 김 대표는 2002년 3월 특허청이 부여한 신지식 특허인이다. 그러나 이것이 김 대표의 강점은 아니다. 오히려 잔꾀를 부리지 않는 우직함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사업 아이템만 봐도 보쌈과 부대찌개, 삼겹살 등 화려하지 않다. 다만 이를 점포망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회사의 소개 자료에 따르면 놀부는 자사의 강점을 ‘지식 경쟁력’, ‘시스템 경쟁력’, ‘커뮤니케이션 경쟁력’, ‘브랜드 경쟁력’, ‘리더십 경쟁력’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 설명보다는 ‘점포의 관리를 잘하는 회사’라는 단순한 분석이 더 설득력이 높다.

 특히 론칭 브랜드에 대해 최하 6개월간 테스트 마케팅 과정을 거쳐 수익모델을 검증하는 보수적 기법을 구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외형 성장을 더디게 하는 장벽이 되는 반면 내실을 키워 주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금은 김밥 전문점 유명 브랜드가 된 ‘김밥 천국’도 사실 1995년께 서울 신림동에 점포를 낸 놀부가 원조다. 김 대표는 ‘김밥이 워낙 재료가 많고 밥맛에 따라 맛이 달라져 프랜차이즈로 하기 힘들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한다.

 실제 18년간 460개 점포망은 빠른 편이 결코 아니다. 한 달에 평균 2개씩 점포를 늘려 왔다는 계산이다. 놀부는 ‘스피드 경영’보다는 ‘우보(牛步) 전술’을 택한 셈이다. 이는 김 대표가 늘 강조하듯 ‘가맹점 확장보다는 실패가 없는 가맹점 배출에 집중하라’는 사업 철학 때문이다.

 특히 ‘미스터리 쇼퍼’로 불리는 놀부의 암행 감찰반은 유명하다. 이는 1년에 1~2차례씩 460개 점포에 대해 모니터링을 통해 개선점을 찾는 제도로 가맹점 관리에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올해 놀부의 가맹점 목표는 550개다. 지난 연말 시작한 놀부항아리갈비가 히트를 치고 있다. 상반기에만 벌써 50여 개 점포가 개업했다. 내년엔 710개 → 2007년 850개 → 2008년 1000개가 목표다.

 물론 김 대표의 꿈은 더 크다.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한국 음식의 대명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개수는 중요치 않습니다.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한국의 ‘음식문화 전도사’가 꼭 되고 싶습니다. 놀부를 ‘100년 기업’으로 키운다면 못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하하)”

 그는 올해를 ‘세계 진출 원년의 해’로 꼽는다. 물론 과거에 해외 진출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91년 말레이시아에 3개 가맹점이 개점됐고 1992년엔 미국 LA에도 가맹점이 개설됐다. 그러나 이는 본사 진출이 아닌 가맹점일 뿐이다. 김 대표는  “10년 전부터 중국 시장을 유심히 관찰해 왔다”며 “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초엔 ‘북경놀부’, ‘일본놀부’(가칭)를 띄울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요즘 사업과 학업을 병행한다. 마흔 넘어 시작한 공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그는 검정고시만 6번 떨어진 끝에 1996년 고입,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대학 학번은 97학번. 현재는 경원대 관광경영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대충 받는 학위가 싫어서 ‘박사학위’는 한 학기 미뤄둔 상태다.

 감투도 많다. 명함엔 놀부 대표와 21세기 여성CEO연합 회장만 기록돼 있지만 사실 한국상록회 총재, 한국프랜차이즈협회 부회장, 한국여성발명협회 부회장 등 활동 무대가 넓다.

 학연과 지연, 혈연 하나 없이 홀로 사업을 개척한 그답게 어쩌면 인맥이 필요해서인지도 모른다. 요즘엔 바쁜 일과를 쪼개 한 달에 2~3차례씩 대학이나 기업체 강단에도 선다.

 “나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남들 앞에 자주 섭니다. 남들은 성공 비결이 뭐냐고 자꾸 묻는데 특별한 건 없어요. 한 가지 꼽자면 ‘신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방살이 할 때도 월세를 미룬 적이 없고 아무리 사업이 어려워도 직원 월급을 하루도 어긴 적이 없었으니까요.”

 14살에 중고 반코트 하나 사 입고 달랑 상경한 김순진 놀부 대표. 그는 현재 서초동 빌라에 살며 벤츠를 몬다. 그러나 그는 “사업 외에 다른 재테크에 신경을 쓴 적이 없다”고 말한다. 충북 음성 공장을 빼면 양재동 본사도 아직 셋집 살림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을 닮고 싶은 경영자로 꼽은 김 대표 역시 실패를 딛고 일어선 ‘불도저’ 같은 추진력이 최대 강점으로 느껴졌다.



 Plus CASE 놀부부대찌개 논현점주 임진구 사장



 10년째 놀부만 3개 운영 중… ‘본사 정직해 선택’ 



 놀부부대찌개 논현점주인 임진구(48) 사장은 기러기 아빠다. 2003년 9월 캐나다 밴쿠버로 아내와 1남1녀의 자녀를 보낸 지 벌써 22개월째다.

 그가 놀부와 인연을 맺은 건 10년 전인 1995년 7월이다. 당시 선박업체서 10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던 그가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자영업에 도전한 것. 그 첫 아이템이 놀부부대찌개였다.

 논현동의 구 씨네하우스 인근 25평 점포에서 시작한 사업에서 그는 소원을 풀었다. 당시 일평균 매출액 100만원 이상으로 월급쟁이 봉급 몇 배는 더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업이 순조롭자 사업 시작 2년 만인 1997년 6월 방배동에 2호점을 냈다.

 잘나가던 임 사장에게도 고비가 다가왔다. 외식업 경험도 있고 해서 또 다른 지역에 분식 체인점을 냈던 것. 그러나 이때 그는 실패를 맛봤다. 메뉴 수가 워낙 많고 제품 단가가 낮아 수지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프랜차이즈 본사가 놀부와는 달리 신뢰가 없었다는 게 임 사장의 지적이다. 그는 “체인점 본사의 신뢰나 브랜드 파워가 중요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고 말한다. 지난 3월말 그는 방배동 놀부부대찌개 인근에 올 초부터 놀부가 가맹 중인 ‘놀부집 항아리갈비’ 방배점을 또 다시 냈다.

 현재 3개 점포를 ‘놀부’ 브랜드로 운영 중인 임 사장은 이 가운데 항아리갈비 매출액이 일평균 150만원으로 가장 높다고 말했다. 매장 면적은 25평 규모로 3개 점포가 모두 같다.

 처음엔 논현점이 입지상 젊은층 유동인구가 많아 가장 좋았는데, 씨네하우스가 사라지는 등 상권 변화를 겪으면서 매출이 하락곡선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는 “외식업은 상권에 민감해 주변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빨라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근무 시간(오전 11시~밤 11시)이 긴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점심과 저녁시간 때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바빠 업무 강도가 강한 편”이라고 말한다. 실제 이때는 가족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10년의 요식업 경험이 있는 임 사장은 “외식업소는 맛과 서비스, 입지가 성공의 3박자”라며 “특히 브랜드를 보고 찾아오는 손님도 많다”고 조언했다. 이 점에서 놀부는 어떤 외식업소보다 경쟁력이 있다는 게 그의 경험담이다



Plus info



 놀부 18년 역사

  1987년 5월   놀부보쌈 창업

  1989년 4월   가맹1호 상도점 개점

  1992년 2월   놀부부대찌개 출발

  1993년 4월   놀부솥뚜껑삼겹살 개발

  1997년 12월  시골상차림 ‘놀부집’ 개점

  1999년 12월  놀부유황오리진흙구이 개발

  2002년 2월   극장식 한정식 ‘놀부명가’ 개점

  2002년 11월  한국프랜차이즈 대상 수상

  2004년 12월  놀부집 항아리갈비 개발

  2005년 5월   놀부보쌈 브랜드 대상 수상

  2005년 7월   현재 7개 브랜드 460여 점포

박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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