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7일 세계 휴대폰 업계는 대형 M&A를 목격했다.
세계 시장 점유율 5.5%의 독일 지멘스 휴대폰 사업부가 넘어간 것.
인수 주체는 세계 시장 점유율 2.3%의 대만계 벤큐.
일약 세계 4위의 휴대폰 메이커로 부상한 벤큐는 어떤 회사일까.

 만의 관문인 CKS(장제스) 국제공항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의 네이후에 위치한 벤큐코퍼레이션(www.benq.com). 이곳은 대만의 5대 IT회사로 꼽히는 벤큐그룹의 헤드쿼터다.

 나머지 4개사가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에 치중하는 반면, 벤큐는 과거 OEM 주력에서 자사 브랜드 승부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는 유일한 업체다. 최근 IBM의 PC사업부를 인수한 중국의 레노버와 함께 지멘스 휴대폰을 인수한 대만의 벤큐가 중화권의 대표적인 IT기업으로 떠오르는 회사다.



 회사 별명은 ‘디지털 보이’

 벤큐가 한국 소비자들에게 낯선 까닭은 한국 진출이 늦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에서야 한국지사(벤큐코리아)가 설립됐다. 그러나 ‘에이서’란 브랜드는 낯익다. 지난 1984년 4월 창립돼 2001년 12월 에이서에서 독립한 회사가 바로 벤큐다.

 지멘스 휴대폰 인수에서 보듯 벤큐는 대만 최대의 휴대폰 업체다. 타이베이 시내 중심부인 미라마백화점에서 만난 리오웨첸씨(23)는 “휴대폰은 노키아도 좋지만 벤큐 제품을 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벤큐는 한국의 팬택처럼 휴대폰 전문업체일까. 그렇지 않다. 휴대폰은 벤큐 제품 중 한 개의 아이템에 불과하다. 한국 기업에 빗댄다면 오히려 삼성과 LG전자쪽에 더 가깝다. 벤큐그룹 CEO인 K.Y.리(53) 회장은 “벤큐의 별칭은 ‘디지털 보이(Digital Boy)’”라고 설명한다.

 실제 벤큐의 제품군을 보면 휴대폰, 노트북, LCD TV, 디지털 프로젝터, MP3플레이어, LCD모니터, 디지털카메라, 스캐너, 레이저 프린터 등 첨단 디지털 제품을 총망라하고 있다. 삼성전자 5대 사업군 중 디지털미디어 사업부와 통신사업부(휴대폰)를 묶어 놓은 셈이다.

 이 때문에 벤큐를 설명할 때 ‘대만의 삼성전자’란 말이 빠지지 않는다. 벤큐(BENQ)란 브랜드 이름도 ‘삶의 즐거움과 질을 향상시켜 주는 것(Bringing Enjoyment & Quality to Life)’에서 따온 말이다.



 유럽과 미주서 강한 브랜드

 현지에서 느낀 벤큐의 최대 강점은 탄탄한 IT부품 생산능력에서 찾을 수 있다. 벤큐는 벤큐그룹 10개 회사 중 모회사일 뿐이다. 지난해 전 세계서 올린 벤큐그룹의 매출액은 약 11조원 규모다. 이 가운데 벤큐코퍼레이션이 4조9000억원을 올렸다.

 특이한 점은 자회사인 LCD 패널업체 AU옵트로닉스(AUO)의 매출액이 5조원을 돌파, 벤큐사를 앞지른다는 사실이다. 특히 벤큐그룹은 AUO뿐 아니라 IT제품별로 탄탄한 부품 소재 업체를 자회사로 뒀다.

 스토리지미디어 및 편광필름업체인 댁슨, 광학 스토리지 제품을 만드는 PBDB(필립스와 조인트벤처), 광섬유 통신 & 모듈업체인 코팩스, 키보드와 RF컴포넌트를 만드는 달퐁사 등이 주요 업체다.

 벤큐의 또 다른 특징은 매출액 중 60% 이상을 유럽(31%)과 미주권(30%)에서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아시아·태평양 지역(24%)과 중국(15%) 비중이 더 낮다.

 이는 벤큐에겐 큰 기회로 다가온다. 특히 벤큐는 중국 시장 공략에 적극적이다. 최근 지멘스의 휴대폰 인수는 그 신호탄이다. 지난 5월엔 중국 현지 판매 허가도 받아둔 상태다. 3년 내 중국 휴대폰 시장 10%를 점유하겠다는 게 구체적 목표다.

 벤큐가 자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벤큐는 LCD 모니터, 스토리지, 스캐너 등에서 세계 선두권 업체로 이미 부상했다.

 이 가운데 벤큐를 세계적 IT업체로 키운 최대 효자 품목은 단연 LCD 모니터다. 자회사인 세계 3대 LCD 패널업체인 AUO를 보유한 덕분이다. 실제 LCD모니터는 2004년 말 현재 세계 점유율 11%로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에 이어 세계 3위다. 조승환 벤큐코리아 과장은 “20.1인치 모니터 분야에서 삼성도 따라잡고 1위 점유율을 기록 중”이라고 강조한다.

 스캐너 분야에선 24%의 점유율로 HP·엡손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디지털 프로젝터에선 14%의 점유율로 세계 2위, 스토리지에서도 9.3%의 점유율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벤큐가 세계 시장서 각광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로 연구·개발(R&D)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벤큐는 5년 연속 매출액 대비 4%를 연구·개발비에 쏟고 있다. 벤큐코퍼레이션만 놓고 봤을 때 지난해에만 약 2000억원을 쏟아 붓고 있는 셈이다. 특히 글로벌 특허만 2209개를 보유 중이고 현재 출원 중인 특허만 2300여 개에 달한다. 이는 벤큐가 인재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증거다. 실제 벤큐엔 2000여 명에 이르는 연구원들이 있다. 이 가운데 1300여 명이 석·박사급 인력으로 구성돼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세계적 지사망에서 찾을 수 있다. 벤큐는 현재 45개국에 걸쳐 전 세계적인 영업망을 갖춘 상태다. 애드리언 장(39) 벤큐 아시아·태평양 사장은 “벤큐 지사는 제품 공급과 마케팅을, 현재 로컬업체는 유통·판매를 맡는 이원화 전략을 쓴다”고 말했다. 



 몇 년 뒤 삼성·LG에도 위협적

 허미트 후앙 벤큐 부사장은 “독일 세빗이나 미국 CES 등 대형 컴퓨터박람회에 가면 벤큐는 삼성급 대접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미 한국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다. 벤큐의 디자인 책임자인 맨프레드 왕 이사는 “디자인 경쟁력에서 벤큐는 삼성과 LG 사이에 있다고 자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사업부와 통신(휴대폰) 사업부를 합쳐 놓은 벤큐를 삼성은 어떻게 볼까. 삼성측은 “아직까지는 (세계 시장서) 부딪치지는 않는다”고 표현했다. 현재까지는 삼성이 한 수 위라는 판단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2004년 매출액 면에서 57조원으로 벤큐그룹의 11조원보다 5배 이상 커 우선 덩치에서 앞선다. 무엇보다 기술력에서 벤큐가 삼성을 따라오려면 몇 년은 더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서종국 삼성전자 차장은 “반도체와 LCD에서 대만 업체들과 세계 시장서 경쟁 중인데 벤큐는 LCD 분야 강자”라며 “앞으론 특히 ‘형제 국가’인 중국 시장에서 벤큐가 강점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 분위기다. 

 올해 하반기 한국 시장에서도 노트북과 LCD TV를 내놓을 계획인 벤큐는 <비즈니스 위크>가 ‘톱 100 IT기업’에 올려 놓았듯 점차 동북아 IT 제조업계에 유력 업체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LCD 모니터와 DVD, 스캐너, 마우스, 키보드 등 정보가전 중심에서 최근 디지털카메라와 PDA, 노트북, 휴대폰, MP3플레이어 등 첨단 디지털 제품군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의 한 판 대결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Plus tip  세계 3대 IT쇼 컴퓨텍스2005



 1288개사 ‘칩들의 경연’… 한국 3400만달러 수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2005’는 한 마디로 ‘기술 경연장’이었다. 컴퓨텍스(Computex)란 독일 세빗(CeBIT) 및 미국 CES와 함께 세계 3대 컴퓨터 전문 전시회로 꼽힌다.

 지난 5월31일부터 6월4일까지 진행된 이번 대회엔 1288개사(2853부스)가 참여했다. 참가 업체 면면을 보면 인텔, AMD, 마이크로소프트, 모토롤라, 벤큐, 기가바이트 등 주요 대기업과 세계 각국 컴퓨터 관련 업체가 총출동했다.

 프랭크 후앙 타이베이컴퓨터연합회 의장은 “컴퓨텍스는 1981년 첫 대회가 열렸고 올해가 25회 대회”라며 “해외 바이어 3만명을 포함, 약 12만명의 참관객이 입장했다”고 밝혔다.

 게임과 DVD 영화 기기를 전시한 홈엔터테인먼트관과 자동차 관련 IT 기기를 전시한 카트로닉스관, 모바일인터넷관엔 관람객이 일시에 몰려 구경이 어려울 정도였다.

 대만 아수스텍은 게임 마니아들을 위한 컴퓨터 ‘벤토3600’을 선보였고 에이서 미오테크놀로지는 깜찍한 MP3플레이어를 선보였다. 미탁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장착한 개인정보단말기(PDA)를, 폴스타테크놀로지는 블루투스 기능이 내장된 GPS를 내놓았다. 세계적 반도체 업체인 인텔은 데스크톱용 듀얼코어칩을 선보였으며 AMD도 데스크톱용 듀얼코어 프로세서 ‘애슬론64×2’를 발표했다. 특히 대만의 비아테크놀로지는 인텔 제품보다  최대 40% 전력 절감이 가능한 ‘C7’(코드명 에스더) 칩을 발표, 관심을 끌었다.

 한편 한국 기업들은 컴퓨터부품 및 부분품, 멀티미디어기기 및 소프트웨어, 주변기기 등을 출품해 상담액 9300만달러에 계약액 3400만달러의 성과를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 업체들은 잘만테크, 새로텍, 사운드그래프, 컴아트시스템, 에이엘테크 등 11개사로 구성된 한국공동관을 꾸몄다.



 Plus interview K.Y.리 벤큐 회장



 “OEM 탈피, 벤큐 브랜드로 승부겁니다”



 “한국 소비자들은 쇼핑을 할 때 ‘삼성(LG)’카드를 내고, 가전을 사도 ‘삼성(LG)’ 냉장고와 ‘삼성(LG)’ TV를 산다. 첨단 디지털 제품인 휴대전화도, 사무실 노트북도 ‘삼성(LG)’ 제품을 쓴다. 재벌 회사 의존도가 높다. 이 점이  대만과 한국이 다른 점이고 벤큐가 삼성·LG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컴퓨텍스2005 현장서 만난 K.Y.리 벤큐 회장은 “벤큐는 한국 재벌과 달리 디지털미디어에 특화된 IT 회사”라며 “현재 세계 시장서 한국의 삼성·LG와 경쟁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을 1년에 2~3번쯤 방문한다는 그는 “향후 한국 시장 전망은 밝다”면서 “순차적으로 신제품을 한국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벤큐는 세계 45개국에 지사망을 뒀다. 한국엔 지난해 1월 진출했다. 늦어진 이유가 있는가.

 한국엔 삼성·LG가 있지 않은가. 사실 늦게 진출한 게 아니다.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뿐이다.

 한국 시장이 작다고 판단한 건가.

 그렇진 않다. 벤큐는 생활디지털 제품업체다. 아시아보다는 유럽과 미주의  비중이 높은 게 사실이다. 회사 전략상 그런 것이다. 실제 벤큐그룹 매출액 중 60% 이상이 유럽과 미국에 집중돼 있다. 아시아권과 중국은 향후 발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벤큐코리아 매출액은 60억원 수준이다. 한국 시장 활성화를 위해 추가적인 투자 계획은 있는가.

 전 세계 벤큐 지사는 마케팅에 주력한다. 현지 영업과 유통은 로컬 파트너를 쓴다. 어느 나라를 가도 마찬가지다. 현재 공장은 대만(타오위엔)과 중국(소주), 말레이시아, 멕시코 등에 있다(현재 한국서 벤큐 제품은 디지털 프로젝터는 제이씨현시스템과 원미디어코리아, DVD는 페타미디어 등이 채널 파트너십 계약을 맺고 있다).

 한국 소비자만의 특징이 있는가.

 일본과 비슷하다. 자국 브랜드 선호현상이 닮은꼴이다. 특히 한국은 재벌회사 의존도가 큰 것 같다. 앞으론 달라질 것이다. 외국 브랜드에 대한 차별 현상이 줄어들 것이고 새로운 브랜드를 접할 기회가 늘어날 것이다. 벤큐가 그 주인공이 되고 싶다.

 벤큐는 OEM 전략에서 탈피, 자사 브랜드로 승부를 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맞다. 과거엔 OEM 전략이 중심이었다. 사실 현재도 매출 비중으로만 본다면 OEM이 60%로 높다. 그러나 우리는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해 유로2004 때 스폰서십 계약을 맺은 것도 브랜드 파워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2008년쯤 되면 브랜드 매출 비중이 역전될 것이다. 대만 내 5대 전자회사 중 유일하게 브랜드로 승부를 거는 회사다.

 한국과 대만의 IT 기술력을 비교하면 어떤가.

(뜸을 들인 뒤) 인터넷과 IT 응용기술 면에선 한국이 한 수 위다. 반면 생산 면에선 대만이 앞선다고 본다. 특히 인터넷 게임에서 한국은 강자다.

 벤큐가 세계 시장서 통하는 강점이 있다면.

 우리는 기술력과 디자인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고 자부한다. 특히 우리는 제품 철학이 강하다. 소비자들에게 ‘인조이먼트’를 제공하는 게 우리 제품들이다.  삼성이 ‘가족’을 강조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격 면에선 저가 전략을 쓰지 않는다. 고급화 전략을 구사하는 셈이다(현재 벤큐는 올해 하반기 한국 시장에 노트북과 LCD TV 등을 선보일 계획이다. ‘LCD 강자’에서 ‘IT강자’로 탈바꿈할 생각이다).



 Plus tip 대만의 실리콘밸리 ‘신추과학공원’



 384개 IT 기업 입주… 대만 GDP 11% 차지



 대만 타이베이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신추과학공원(Hsinchu Science Park)은 대만 최대의 공업단지다. 지난 1980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대만 과학자들을 영입, 조성된 대만의 IT기업 본산인 셈이다.

 2004년 말 현재 384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이 가운데 49개사는 외국 회사들이다. 한국 대덕밸리와 비슷하지만 13%가 외국업체란 점에서 차별화된다. 한국기업은 없다.

 384개 업체 중 반도체 업체가 164개로 가장 많고 광전자공학(61개), PC업체(58개), 텔레커뮤니케이션(52개), 생명공학(28개), 정밀기계(21개) 업종으로 구성돼 있다. 총 종사자 수는 11만5477명에 달하고 남녀 비율이 51 대 49로 거의 같다는 것도 특징. 첨단 IT단지답게 20% 이상이 석·박사 인력들로 구성돼 있다.

 신추과학공원에 입주한 이들 384개사의 2004년 매출액 합계는 총 325억5200만달러(약 33조원)에 달한다. 이는 대만 전체 GDP 2888억달러(2003년 기준)의 11.3%에 달하는 규모다. 이 때문에 <비즈니스 위크>는 신추과학공원을 ‘타이완의 자존심(The Pride of Taiwan)’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박인상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