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과는 요즘 합병 관련 문의 전화가 쇄도한다. 대부분은 하이트맥주의 진로 인수를 둘러싼 독과점 논란 여부. 그러나 공정위엔 ‘앓는 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삼익악기 문제다.
지난해 9월 삼익의 영창악기 인수를 불허한 게 사태의 시발점. 그 결정 후 12일만에 터진 영창악기 부도는 불길에 기름을 뿌린 격이다. 동정 여론을 등에 업은 삼익측이 “공정위가 피아노업계를 다 죽인다”며 법적 소송에 나선 것.
공정위의 합병 불가 판정 8개월째인 현재 삼익 사태는 봉합은 커녕 확전 양상이다. 재계의 맏형격인 전경련까지 나서“공정위 과잉 규제가 문제를 키웠다”며 과녁을 공정위에 정조준하고 있는 상황. 이 시점에서 이형국 삼익악기 대표는 “최종 3심까지 가더라도 기필코 영창을 인수하겠다”며 배수진을 치고 나섰다.

 익악기 사태는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다. 겉에서 볼 땐 공정위 대 삼익의 대결로 보인다. 그러나 속내를 들춰보면 삼익 뒤엔 재계가 숨어 있다.

 평소 공정위 결정에 쌓인 게 많았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번 사태에 대해 ‘공정위 과잉 규제’라며 공공연히 삼익의 편을 들어온 게 사실. 공정위에 ‘잽’만 날려온 전경련이 지난 2월 직격탄을 날렸다. 산하 연구 기관인 자유기업원의 논문을 앞세워 “삼익의 영창 인수 불허 결정은 공정위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쏘아붙인 것. 재계 대 공정위 대결로 확전된 셈이다.

 싸움판은 더 커지는 양상이다. 인수 공방전 틈새를 비집고 영창악기를 노리는 제3 세력이 등장한 것도 2월께다. 삼익악기 창업주인 고 이효익 회장 조카인 이재석씨가 대표로 있는 세정악기가 주인공. 공정위 결정에 따라 영창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한 삼익이 강력한 복병을 만난 셈이다.

 여기에 피인수 당사자인 영창악기는 내심 인수합병(M&A)이 아닌 ‘홀로 서기’를 준비중이다. 영창 노조는 드러내놓고 인수 반대를 선언한 상태다. 지난해 부도(9월)에 따른 법정관리 개시 결정(10월)으로 시간을 벌어 놓았기 때문이다.

 모든 대결 국면에 둘러싸인 삼익악기는 현재로선 승소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믿고 있다. 지난 4월12일 토요일 오전 서울 벡스타인센터서 만난 이형국(50) 삼익악기 대표는 “삼익뿐 아닌 피아노업계 생사가 걸린 사안”이라며  “이 문제는 3심까지 가더라도 끝까지 해볼 것”이라며 이를 악물었다. 이에  따라 삼익악기 사태는 장기전으로 돌입할 태세다.



 대결1. 삼익악기 vs 공정위(시장/매출)

 공정위가 삼익의 영창 인수를 불허한 때는 지난해 9월9일.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국내 피아노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국내 피아노시장은 90년대 초반만 해도 연 18만대 규모에 달했다. 그러나 매년 규모가 줄어들어 현재는 매월 1500대에 불과하다. 15년 사이에 시장의 90%가 날아간 셈이다. 여기에 중국산 저가 공세와 야마하를 앞세운 일본의 공략이 가속화하면서 토종 브랜드 입지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상태. 삼익만 놓고 본다면 2002년 1300명이던 국내 직원 수가 현재 300명 수준으로 줄어들었을 정도다. 매출액은 2001년 1569억원에서 지난해엔 1167억원으로 축소됐다. 수출 비중이 70%로 높다는 게 위안거리다. 

 삼익측 판단은 출혈 경쟁에 나설 바에야 차라리 경쟁 관계인 영창 인수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 이에 지난해 2월 영창 지분 48.58%를 인수,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인수 과정에 투자했던 110억원 전액과 지원 자금 일부가 영업외 비용으로 계상돼 삼익악기는 지난해 113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영창 인수에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공정위가 영창 인수를 불허하면서 M&A가 불발에 그친 것이다.

 공정위가 내세운 이유는 독과점 폐해가 우려된다는 것. 김성하 독점국 기업결합과장은 “삼익이 영창을 인수하면 전체 피아노시장의 71%를 차지하는 가정용 피아노(업라이트) 점유율이 92%에 달하고 그랜드 디지털피아노도 65%나 된다”며 “시장 지배력을 남용할 우려가 높다”고 말한다. 결국 소비자 선택 폭이 줄고 가격이 오르는 폐해가 커진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삼익측은 펄펄 뛰었다. 김성일 삼익악기 마케팅팀 차장은 “중고품 시장까지 포함하면 점유율이 30%밖에 안돼 지배력은 행사할 수 없다”고 항변한다. 이런 와중에 영창악기는 지난해 9월22일 최종 부도 처리됐고 법원으로부터 법정관리 개시가 받아들여진 상태.

 현재 삼익과 공정위 대결은 말로 끝나지 않자 법적 공방전으로 넘어갔다. 지난해 11월 삼익이 공정위에 이의 신청을 내자 공정위는 기각 처리하며 신경전을 이어갔다.  공정위 결정은 매각 불허와 함께 지분 전량을 1년 이내에 제3자에게 매각하라는 것. 이에 삼익측은 올 초 2월 서울고법에 공정위의 시정 명령 취소 소송과 함께 영창에 대한 의결권 제한 처분 정지 가처분을 신청, 현재 후자는 법원에서 OK 사인을 받은 상태다. 따라서 현재도 영창악기에 대한 대주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삼익측 주장이다. 삼익측은 “공정위가 고등법원에 맞제소할 것으로 보인다”며 공정위 대응에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결2. 전경련 VS 공정위

 사태 추이를 지켜보던 전경련이 공정위에 반격을 가한 때는 지난 2월. 형식은 산하 기관인 자유기업원을 앞세웠다.

 자유기업원이 실시한 논문 공모 때 공정위를 신랄하게 비판한 논문을 대상으로 뽑은 것.  해당 논문은 서울대 행정대학원생인 박정아씨가 쓴 ‘공정 거래 정책에 대한 자유주의적 고찰-삼익, 영창 기업결합 규제 사례를 중심으로’다. 전경련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학생이 대신해 준 셈이다.

 논문의 골자는 이렇다. “삼익-영창 기업결합 불허 조치는 시장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쟁을 통한 독점적 지위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점유율과 경쟁사 수만 놓고 독점을 규정한 채 글로벌 시대의 세계 기업간 경쟁을 고려하지 않은 건 문제가 있다.”

전경련은 아예 공정위 기능에 관한 보고서(2월 16일)를 내놓고 공정위에 전면전을 선포한 양상이다. 미국, 일본처럼 경쟁 촉진이란 본연의 기능에 집중하라는 게 요지다. 전경련은 보고서에서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을 폐지하고 순수한 경쟁 정책 기구로 거듭나라”며 대놓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정위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공정위는 3월 4일 ‘공정거래위원회 입장’이란 자료를 내놓으며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요지는 이렇다. “삼익-영창건을 비롯한 각종 공정 거래 정책은 규제 일변도가 아니다. 시장 규칙을 세우기 위한 최소한 장치일 뿐이다. 중국, 일본 업체의 국내 진출과 시장 확대 가능성을 검토한 결과 이들은 낮은 브랜드 인지도와 높은 유통망 구축 비용 등으로 잠재적 경쟁 가능성이 낮다. 따라서 삼익-영창 인수 반대는 정당한 결론이다.”

 결국 전경련과 공정위는 또 한 차례의 논리 대결로 서로 힘만 뺐을 뿐 실익은 전무한 게임을 벌인 셈이다. 이에 앞서 지난 연말엔 공정위 자체 평가에서 최우수 심결 사례로 ‘삼익-영창 조치’를 선정, 재계를 자극하기도 했다.



 대결3. 세정 VS 삼익

 진짜 싸움은 이제 불붙는 양상이다. 삼익 아니면 없을 것 같았던 영창악기 인수전에 제3자가 가세했기 때문이다. ‘인디안’으로 잘 알려진 패션회사 세정그룹 계열사 세정악기가 주인공이다. 삼익으로선 공정위의 인수 불허에 따른 불리한 조건에서 복병을 만난 셈이다.

 세정악기는 인디안과 니(NII) 등 패션 의류 사업이 중심인 세정그룹이 지난 2001년 설립한 악기회사다. 중국 현지 법인 칭다오세정악기에서 피아노와 기타, 디지털 악기 등을 생산하는 업체. 특히 대표인 이재석씨는 삼익악기 창업주인 고 이효익 회장의 조카란 점에서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다. 특히 영창악기 인수는 그냥 찔러 보는 수준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운전  자금으로 영창악기에 70억원의 거금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세정이 영창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명확하다. 지난해 국내 판매를 시작한 세정으로선 전국 최대 유통망(150여개)을 갖고 있는 영창이 탐나는 매물임에 틀림없다. 일거에 120여개 대리점을 보유한 삼익과 어깨를 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정피아노는 품질에 비해 가격이 180만~270만원대여서 중고가 전략을 쓰는 영창과 합하면 시너지효과를 내기에 적합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삼익으로선 공정위 결정에 따라 손발이 묶인 상황에서 세정을 견제해야 하는 이중고에 처한 셈이다.



 대결4. 삼익 VS 영창

 영창악기 인수전에는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세력이 많다. 일단 삼익과 영창의 관계를 보자. 삼익악기측은 “지난해 2월 자금난에 몰린 영창이 먼저 M&A를 제의했다”고 말한다. 이에 김종섭 회장이 영창측을 만나 지분 인수에 나섰다는 설명. 따라서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과 영창악기 경영진과는 최소한 협력 관계에 있었던 셈.

 이런 밀월이 깨진 건 지난해 9월 공정위 판정이 난 직후다. 영창악기 창업주인 고 김재섭 회장 부인 김동복씨와 김재룡씨(전 영창악기 사장)가 인천지법에 삼익이 파견한 이영호 당시 대표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게 결별의 신호탄이다.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은 “잘 지내던 와중에 갑작스런 소송이 제기돼 당황했다”고 말했다. 삼익측은 “영창 2대주주인 외국계펀드인 트랜스미디어가 소송의 실제적인 주체로 짐작된다”고 말한다. 영창 노조측은 삼익 인수를 공공연히 반대해 온 게 사실이다. 삼익 입장에선 아군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향후 영창악기 인수전은 어떻게 전개될까.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기존 인수 불가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삼익의 영창 인수는 쉽지 않은 게임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영창이 세정악기 등 경쟁 업체에 덜컥 인수라도 되는 날에는 삼익은 속된 말로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영창악기가 법정관리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삼익이 서울고법에 낸 공정위 시정 명령 취소 소송이 방향타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이 역시 빨라야 7, 8월에 가야 결과가 나온다. 공정위가 삼익에 제시한 영창 지분 매각 명령 시한인 9월까지는 공정위로선 ‘앓던 이’를 빼기는 힘들 것 같다.

Plus tip  삼익-영창, 묘한 인연



46년째 경쟁 관계…IMF때 부도 후 재기 공통점




 삼익악기와 영창악기는 50년 가까이 애증 관계가 지속돼 왔다. 영창과 삼익은 1956년과 1958년 2년차를 두고 설립된 국내 피아노업계의 양대 산맥.

IMF(국제통화기금) 쇼크를 전후로 부도를 낸 것도 공통점이다. 2년 설립이 늦었던 삼익이 영창보다 2년 빠른 96년 부도를 냈다. 98년 삼익이 법정관리로 재활의 길을 걷자 이번엔 영창이 부도를 냈다. 다른 게 있었다면 영창은 법정관리가 아닌 워크아웃 기업으로 활로를 찾았다는 점이다. 이후 2002년 6월 김종섭 스페코 회장이 삼익을 인수하면서 삼익악기는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이때 영창악기는 4년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기쁨을 맛봤다.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은 아예 지난해 2월 영창악기 지분 48.58%를 매집, 영창악기를 계열사로 편입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삼익과 영창의 ‘한솥밥 생활’은 9월 공정위 결정때까지 ‘7개월 동거’로 끝나고 말았다

Plus INTERVIEW   이형국 삼익악기 대표



“업계 다 죽는데 독점 타령인가”



 
지난 3월 신임 대표가 된 이형국 삼익악기 대표. 그는 외환은행 출신으로 95년 입사, 10년만에 삼익악기를 이끌고 있다. 이대표는 “삼익은 영창 인수에 필요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계획”이라며 “이는 오너인 김종섭 회장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영창악기를 인수하겠다는 당초 의도는 뭔가.  국내 피아노시장은 15년 사이에 10% 규모로 줄었다. 90년만 해도 연간 18만대가 팔렸지만 지금은 한 달 1만5000대 규모로 축소됐다. 양사의 출혈 경쟁은 국력 낭비다. 하나로 합쳐야 경쟁력도 살아난다. 어차피 국내 시장은 쉽게 회복이 힘들다. 세계 시장을 내다본 결정이다.

 공정위 결정에 대한 입장은.  산업계 현실을 고려치 않은 판단이다. 단순히 숫자만 놓고 독점 여부를 따지는 건 옳지 않다. 이러다간 다 죽고 만다. 그때 가서 ‘약’을 줘도 살아남긴 어렵다. 정확히 업계 현실을 읽어줬으면 한다.

 영창악기는 공정위 결정 후 12일만에 부도가 났는데 고의로 냈다는 소문도 있다.  (손을 가로저으며) 그건 말도 안된다. 사실 우리(삼익) 쪽도 알게 모르게 영창에 돈을 많이 대줬다. 사실 공정위 결정 이전까지 계열사가 아니었는가. 인공호흡기를 떼니까 연명치 못한 것이다.

 세정악기 이재석 사장이 영창악기 인수에 관심이 있는 걸로 보는가.  그렇다. 이재석 사장이 아니라 세정악기 모회사인 세정그룹 박순호 회장이 움직이는 것으로 본다. 이재석씨는 삼익악기 원 창업주의 아들이다. 특히 삼익에도 오래 근무, 개인적으로도 잘 안다. 영창에 대줬다는 70억원은 연리 6%로 알고 있다.

 공정위는 최근까지 입장 변화가 없다. 향후 대응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고등법원에 공정위의 시정 조치 명령 취소 청구 소송을 낸 상태다. 결론이 날 때까지 끝까지 갈 생각이다. (김종섭 회장도) 3심까지 갈 각오를 갖고 있다.

박인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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