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가 뭐길래….” 2005년 봄,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모든 시선은 ‘판교 신도시’에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부동산에 관심이 없던 사람조차 “도대체 판교 신도시가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시끄럽냐”고 물어오고 있다. ‘판교 당첨은 로또 대박?’, ‘청약통장이 8000만 원에 거래되었다’는 보도와 판교 지역 투기 사범에 대해 검찰까지 나서서 수사할 계획이라는 발표가 이어졌지만 오히려 없던 관심도 만들어낸 꼴이 되고 말았다.
 ‘판교 로또’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2월3일 현장을 직접 찾았다. 경부고속도로 판교 IC를 빠져나와 분당 신도시 방면으로 방향을 잡자 분당구 서현동 방면으로 가는 길 양쪽으로 아무런 작물도 없는 텅 빈 비닐하우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판교 동부(이하 ‘동 판교’) 지역에 해당하는 이곳에는 장차 상업용 건물과 아파트들이 집중적으로 들어설 예정. 서현동에 위치한 한국토지공사를 찾았다. 281만 평에 달하는 판교 신도시 개발에는 경기도와 성남시, 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가 주관 시행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 중 한국토지공사의 담당 지역이 전체 판교 신도시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입주 초기 교통·생활 불편 없을 것”

 “현재 토지공사가 담당하고 있는 지역은 토지 수용률(계획 지역 내 토지·임야의 매입 비율)이 95%에 달하고 있기 때문에 예정된 사업 계획에 별 차질이 없는 상황입니다. 계획대로라면 올 상반기 중에 토지 수용을 마무리하고 단지 조성 작업에 들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단지 조성이 끝나면 공공 택지나 상가 등을 일반에 매각하게 되죠.” (한국토지공사 홍보 관계자) “오는 6월경 분양할 것으로 알려져 있는 6000가구의 시범단지는 주택공사측이 담당한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개천너머 공터를 가리켰다. 

 판교 신도시 전체에 공급되는 아파트의 60% 이상이 분당 신도시와 탄천을 사이에 둔 이 지역에 집중 조성된다. 동행한 부동산 전문가 김지홍 부동산007 소장은 “분당 신도시와 붙어 있기 때문에 입주 초기에 교통·생활 편의 시설이 미처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라도 별다른 불편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도 판교 지역이 갖는 메리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아닌 게 아니라 탄천을 가로지르는 100m 남짓 다리만 건너면 바로 분당 신도시의 서현동, 이매동, 야탑동과 연결된다. “판교 신도시에 대한 관심이 워낙 높다 보니 사업을 시행하는 입장에서는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일단 1차 분양이 지나가고 나면 과도한 관심은 많이 줄어들지 않겠어요?” 탄천을 건너 사업 대상지로 향했다. 다리를 건너자 가로수며, 철거 예정 가옥 등에 붙어 있는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행사측과의 토지·건물 보상 및 이주 대책과 관련해 갈등을 빚고 있는 원주민들의 주장이 담긴 현수막 중에는 건물 한 채를 현수막으로 온통 뒤덮은 것도 있었다. 확인해 보니 원주민대책위원회 건물이었다.

 군데군데 철거 작업 중인 중장비들의 움직임이 보이는 가운데, 보상 협상 중인 원주민과 시행사측의 줄다리기가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 개발 지역과 바로 이웃한 성남시 수정구 관할 지역으로 넘어가자 급히 지은 조립식 건물들에 부동산 중개소가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

 S중개업소에 들어서자 중개업자가 대뜸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행색부터 살폈다. 취재 하루 전, <조선일보>에서 ‘수천만 원 웃돈이 붙은 청약통장이 거래되었다’는 보도가 나간 직후 관계 당국이 조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한 후유증이 역력했다.



 청약통장 수천만원 웃돈 거래는 실제 있었다 

 “호기심으로 들르거나 전화하는 사람은 많지만 거래는 한 건도 없어요. 토지 거래 신고 지역에 투기 과열 지구 지정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규제책이 현재 이 지역에 적용된 상황입니다. 주변 땅을 보러 오는 분들은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거래가 이뤄질 리 만무하죠.” “청약통장 웃돈 거래가 이뤄졌다던데 이에 대해 들은 적 있느냐”고 묻자 손사래를 치며 “어느 개발 지역이나 투기꾼이 있지만 금방 들통 날 짓을 누가 하겠느냐”며 더 이상 대답하기를 꺼렸다.

 쫓기듯 중개업소를 나왔다. 중개업소 입주를 노리고 급히 지은 티가 역력한 건물 사이사이에는 사무실이 입주하지 않은 빈 공간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영업 중인 중개업소에도 찾는 사람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김지홍 소장은 “판교 부동산 특수를 노리고 3년 전 판교로 간 부동산 중개업자들 80% 이상이 별 재미를 보지 못하고 판교를 떴다”고 했다. 그 이유로 개발 소문이 돌자 땅주인들이 추가 상승을 노리고 매물을 내놓지 않았고, 이미 사들인 이들은 구태여 많은 세금을 물고 거래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지홍 소장은 “현재 영업 중인 부동산들은 원주민들에게 보상금 외에 별개로 주어지는 ‘이주자 택지’나 ‘이주자 아파트’ 전매 거래를 하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분양권을 손에 쥐었다 해도 5년 내 전매 금지가 내려진 상황에서 이들 물건은 예외적으로 1회에 한해 전매가 허용되는, 합법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인 셈이다. 김 소장은 “분양권이 주어지지도 않은 상황인데도 이들 물건에도 이미 2억 원대의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중개업소에 들어가 보았다. “청약통장을 가진 성남시 거주 40대 이상 10년 이상 무주택자에게 전용면적 25.7평 이하의 일반 분양분을 우선 공급한다고 하는데, 따져보니 당첨 확률이 200 대 1에 가깝습니다. 당첨 확률이 0.5%에 불과한데 수십만 원도 아니고 수천만 원의 웃돈을 주고 거래한다는 건 사실이 많이 부풀려진 겁니다.” (가나부동산 안진영 대표) 신도시 예정 지역에서 영업을 하다 택지 조성 공사가 시작된 후 이곳으로 옮겨와 영업 중이라는 가나부동산 안 대표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같은 조건의 1순위 대상자라고 하더라도 그 중에서 우선권이 있을 순 있다”는 것이었다. 따져 묻자 그는 “같은 조건일 때는 분양 신청을 많이 한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는 규정이 있는 걸로 안다. 아마 100회 이상 분양 신청을 했다가 탈락한 사람이 극소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수천만 원 웃돈이 붙어 거래가 되었다면 그 물건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김 소장은 “어느 개발 지역이나 마찬가지지만 청약통장을 매입하는 소위 ‘떴다방’은 있기 마련이고, 판교는 관심이 높은 지역이니만큼 그런 조직이 암암리에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판교 아파트 호가는 ‘거품’ 강남보다 높을 수 없다

 
현지 중개인이 보는 판교 신도시의 투자 장단점과 예상 가격은 어느 수준일까? 안 대표는 “녹지 비율이 다른 신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 장점인 반면, 전용면적 25.7평 이하의 임대 아파트가 전체 공급되는 2만9700세대 중 9000세대에 달한다는 점은 단점으로 꼽힌다”고 지적했다. 강남권의 대체 수요라면 중대형 평형을 선호하는데 상대적으로 물량이 적고, 임대 아파트가 많은 지역은 시세면에서 불리하다는 것이다. “다른 신도시 개발 지역에 비해 판교는 토지 수용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여기에다 건설사의 건축비가 포함되면 분양 원가 자체가 높을 수밖에 없죠.

 판교가 주목받는 또 다른 장점은 강남권과 인접해 있다는 점인데,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예상 가치를 보면 평당 2000만 원이 넘습니다. 강남에도 평당 2000만 원이 안 되는 아파트가 수두룩한데, 아직 지어지지도 않는 아파트 분양권이 평당 2000만 원이 넘는다는 건 거품이 있다고 봐요.” 안 대표의 주장에 김 소장도 동의했다. ‘판교가 아무리 가치가 높다고 해도 결국은 강남의 아파트 가격보다는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 “문제는 2억 원 넘게 형성되어 있는 프리미엄인 셈인데, 공교롭게도 이 같은 예상 때문에 이웃 분당, 용인 성복 지구 아파트 값을 들썩이게 한다는 점이에요. 판교 예상 가격이 나오면서 분당 지역 기존 아파트 매물이 빠르게 철회되고 있어요. 문제는 판교가 상대적으로 중대형 평형이 적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자 인근 지역으로 수요가 몰릴 것이라는 기대심리 때문이죠. 그러나 실제 거래는 거의 없어요.” (안진영 대표) 전매 제한 5년에 각종 가격 억제 정책이 총 망라된 지역임에도 판교 신도시 아파트 분양에 대한 관심은 높다. 아직 분양도 하지 않은 아파트를 두고 프리미엄이 2억~3억 원을 오가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김 소장은 “판교 신도시의 가치가 분당 신도시와 강남 사이에 위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설사들이 다른 지역 분양을 미뤄두고 판교에 올인 하는 것은 소비자의 관심과 수요가 그만큼 판교에 많이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조금 장기적으로 볼 필요가 있어요. 청약 과열 붐이 일어났던 서울 도심의 주상 복합 아파트의 현재 프리미엄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2억~3억 원은 될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 그 절반도 안 되고, 당연히 전매 제한으로 거래도 없습니다. 판교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건설사가 택지를 분양받고 아파트 분양을 시작하면 그동안 눌려 있던 수요가 일제히 판교로 몰리겠죠. 당첨자는 상대적으로 극소수일 테고, 떨어진 수많은 사람들은 그때부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투자나 구매에 나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지홍 소장) 김 소장의 예상처럼 많은 부동산 전문가들은 하루라도 빨리 판교 분양이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대 수요가 잔뜩 몰려 있는 상황에서 막상 베일을 벗게 되면 판교 신도시에 대한 거품이 빠진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판교 신도시만 별개로 떼놓고 보면 신도시의 외형은 가로로 긴 도끼날 형상을 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신도시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지역을 크게 ‘동 판교’, ‘서 판교’로 나눈다. 도시 북쪽으로는 외곽순환도로가 도시를 에워싸며 지나간다. 2만9000세대의 입주가 모두 끝나게 되면 판교에는 약 10만 인구가 거주하는 새로운 도시가 생겨난다. 신도시 개발을 맡은 건교부는 교통 체증 해소를 위해 신분당선 판교 역사를 중심으로 각 주거지를 보행, 순환버스, 경전철로 연결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대중교통의 중심에 지구 중심, 근린시설 중심이 배치되게 하는 것도 교통 대책의 하나다. 인접한 분당 신도시의 기존 교통 체계도 불편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신도시의 초기 입주자들이 겪는 교통, 근린 편의시설 불편은 판교 신도시 진입을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투기목적투자는 큰 재미 못 볼 것” 

 판교 신도시에 대해 잠만 자는 ‘베드타운’ 양산이라는 부정적인 시선도 여전하다. 그러나 신도시 1세대로 꼽히는 일산과 분당이 도시 개발 10년이 지난 지금, 조금씩 자족 도시 모습을 갖춰 가는 것을 볼 때 “판교 신도시 개발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볼 이유는 없다”는 토지공사 관계자의 말처럼 “도심 주택난 해소를 위해 신도시가 베드타운이 되더라도 필요하지 않냐”는 반문에도 일리가 있다. 판교 일대를 취재하고 돌아오는 길은 서울공항 방면으로 택했다. 군사적·환경적 이유로 개발 제한 지역으로 묶인 지역을 바라보며 김지홍 소장은 “이곳이 개발되면 아마 판교 신도시 몇 배는 되는 관심이 몰리게 될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실수요와 투기 심리를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수요자도 미래 가치를 보기 때문이죠.

 또 부동산시장 특성상 어느 정도의 투기 수요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필요악이기도 합니다. 판교 신도시에 대한 관심과 각종 잡음을 투자자 관점에서 볼 때면 ‘판교 신도시’ 그 자체보다는 그 이후 상황을 그려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에 무수한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꾸고 금광으로 몰려들었지만 정작 돈을 번 사람들은 금을 수송하거나, 광부들에게 청바지를 만들어 판 사람이란 점을 명심해야 할 겁니다. 현재로선 판교 아파트 분양은 그 확률에 있어 ‘로또’에 가깝습니다. 더구나 당첨되면 수억 원의 돈을 투자해야 합니다. 몇몇 웃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들에게도 ‘대박’은 없다고 봅니다. 차분하고 느긋하게 판교 신도시를 바라본다면 실패하지 않는 투자가 가능할 겁니다.” 목요일 오후 5시, 서울에 들어서자 이른 퇴근길 교통 체증이 시작되었다. 판교 신도시가 세워진다면 아마도 이 체증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판교에서 서울까지 불과 15분, 그러나 강남을 빠져나오는 데는 40분 가까운 교통 체증 속에 갇혀 있어야 했다.

 판교에 목을 매는 많은 사람들은 투자 요소로 이런 부분도 예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