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국내 최초 고유모델인 ‘포니’를 개발할 때만 해도 현대자동차는 디자인과 엔진 등 핵심부품은 외국에 의존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지금 세계 10위권 안의 자동차 생산업체로 성장했다. 세계 5위 자동차 메이커로의 도약의 중심에는 남양종합기술연구소가 있다.
 차 1대 개발에 수천억 원이 투자된다. 최근에는 자동차의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지면서 신차개발기간을 단축하지 않으면 사실상 투자금 회수가 늦어지고 판매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과거 24개월에서 40개월까지 걸리던 상품구상에서 승인, 양산까지의 신차개발기간은 요즘 18개월로 줄었다. 이 때문에 자동차업체들은 신차출시에 맞춰 ‘시간과의 전쟁’을 치른다.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면서도 빠른 시일 내에 시장에 출시하기 위한 전쟁이다. 경쟁업체와 비슷한 시기에 신차개발에 나서도 양산 시기가 늦어질수록 ‘신차효과’가 반감되면서 판매 등에서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GM, 포드 등 미국자동차업체들이 일본이나 한국의 자동차업체들에게 뒤지면서 위기에 맞닥뜨린 것도 이러한 신차개발기간을 단축하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신차개발은 자동차업체의 사활과 직결된다. 뒤늦게 비슷한 유형의 신차를 개발했다가는 낭패를 보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자동차개발에는 시장성과 대중성에다 수천 명 연구원의 기술이 가미된 ‘장인 정신’이 필요하다.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생각을 하나로 통일시키기도 쉽지 않아 팀워크도 중요하다.

 이중에서 자동차가 살아 움직이도록 설계에서 탄생까지 ‘혼’을 불어넣는 막중한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자동차업체의 기술연구소다. 업체별로 최고임을 자부하며 치열한 기술경쟁을 벌이는 각 연구소는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전쟁터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자동차연구소는 이들의 장인정신으로 밤마다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자동차는 2만∼3만 개의 부품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 부품이 맞물리는데 단 1%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신차구상부터 양산까지 18개월 동안 피 말리는 시간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쏟아지는 아이디어, 초기 디자인 스케치와 설계도면만 해도 수천 장. 쉴 새 없는 대화·토론·실험을 오가며 새 차 완성 때까지 밤샘작업은 예사다.

 하지만 대화와 토론이 오가면서 의견충돌이 잦고, 밤샘작업도 예사지만 절대로 ‘모방’은 없다고 단언한다. 2년 가까운 시간을 걸쳐 내놓은 신차가 ‘경쟁사 다른 차종의 디자인을 닮았네’, ‘어디 기술을 모방했네’ 하는 얘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가장 가슴 아프다는 것. 그들이 바친 열정만큼 신차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해외주요 자동차업체들은 연구개발 거점을 일원화하는 추세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연구소를 하나로 뭉쳐 시너지효과를 최대로 내기 위한 것이다. 크라이슬러는 이미 1992년 북미에 산재한 연구개발부문을 한곳에 집결했으며, 르노는 1998년 50곳에 분산된 연구인력을 한곳에 모으기 위해 총 12억 달러를 투자했다. GM은 40곳에 분산된 연구소를 승용차, 트럭부문별로 일원화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 중이다.



 울산·소하리 연구소 통합

 “이제는 세계 5대 자동차메이커가 되겠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도 남양종합기술연구소 출범당시 연구소의 통합출범으로 연구개발 역량과 효율극대화를 통해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로 도약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는 현대자동차의 미래를 설계하며 명차 개발의 첨병임을 자처하는 경기 남양의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연구원에게 내려진 특명이기도 하다.

 남양연구소는 초창기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부터 소나타, 그랜저, 에쿠스에 이르기까지 40여 년 동안 한국의 자동차산업을 이끈 현대차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현대에서 개발하는 모든 신차가 이곳에서 시작된다. 쏘나타3 개발에서부터 EF쏘나타, NF쏘나타, 그랜저XG, 그랜저TG, 에쿠스, 뉴싼타페 등이 여기서 탄생했다. 또 이 연구소는 환경친화형 준중형급 엔진, 승용디젤엔진, 메탄올연료전지차 등 미래형 자동차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국내 완성차업계의 맏형격인 현대·기아차의 남양연구소는 규모나 인력면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남양연구소는 2003년 5월 현대차 울산연구소와 기아차 소하리연구소를 하나로 통합해 새롭게 출범했다.

 이로써 현대·기아차는 국내 통합연구거점인 이 연구소를 중심으로 미국 디트로이트와 LA 기술연구소, 일본 기술연구소, 독일 테크니컬센터 등 범세계적인 연구소망을 갖추게 됐다. 또 연구소통합을 계기로 남양연구소를 한국자동차산업을 대표하는 세계적 규모의 연구개발 중심지로 출범시켜, 차종간 플랫폼과 부품공유를 통해 제품개발기간을 단축해 연구개발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남양연구소는 1986년 12월 남양만 간척지 105만 평에 부지에 주행시험장 및 부대시설 공사를 착공해 1993년 총연장 60km에 이르는 시험로와 70종의 노면을 갖춘 종합주행시험장을 완공했다.

 1995년 설계1동, 디자인동, 엔진T/M동, 1999년 450억 원 규모의 실차 풍동시험장, 2002년 파이롯트 시작동 등 기반 연구시설을 완공했으며, 2003년 5월 설계2동을 준공함으로써 세계적 수준의 통합연구거점으로 출범하게 됐다. 신차개발과 관련해서는 없는 게 없을 정도다.

 이때까지 현대차가 남양연구소에 쏟아 부은 자금만 무려 8200억 원. 현대차 남양연구소는 차량개발의 전 과정뿐 아니라 기초·선행 연구를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최첨단 시설과 장비를 갖춘 동양 최대 규모다. 석·박사 1500여 명을 포함해 7000여 명의 인력이 근무하는 이곳의 자랑은 신차기술의 핵심인 디자인센터.

 1998년 쏘나타 이후 독자적인 모델을 개발해 온 디자인센터는 철저한 자료조사와 트렌드 분석을 바탕으로 기획, 아이디어 스케치, 모델링 작업으로 이어지는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일본·독일의 디자인 스튜디오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구축해 세계적인 흐름과 정보를 신속히 파악해 신차개발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특히 디자인부문은 적어도 2년 후부터 5~10년간의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디자인트렌드를 꿰뚫어야 한다는 점에서 심미안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지력도 갖춰야 한다. NF쏘나타의 경우에도 미국과 유럽 등에 있는 연구소와 세계적인 디자인 용역회사를 통해 철저한 사전 자료조사를 했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정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다.



 최첨단 디지털시스템 갖춰

 디지털디자인시스템을 갖춘 디자인센터는 기존의 수작업 과정을 디지털화해 컴퓨터로 디자인을 수행하는 최첨단컴퓨터시스템을 갖췄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고품질의 1:1 실물모델을 제작할 수 있으며, 컴퓨터에 구현된 가상의 자동차를 가상공간에서 실제 자동차를 보는 것처럼 현실감 있게 재연할 수도 있다. 전체 과정을 디지털화해서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감하는 신기술을 도입한 것이다.

 설계부문에서도 컴퓨터 기술을 접목해 종이도면을 없애고 컴퓨터 내에서 3차원 모델로만 개발하는 3차원 설계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설계는 물론 제작 모의시험, 장착성시험까지 디지털 가상공간에서 해 볼 수 있어 실차의 성능과 품질을 미리 예측해 볼 수 있다.

 차량이 바람을 가르며 주행하는 조건을 실내에서 완벽하게 재현해 주행시 차량 주위의 공기흐름에 의한 바람저항은 물론 소음까지 측정하는 실험설비인 풍동시험부문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건설된 최첨단시설이다. 직경 8m가 넘는 팬이 바람을 일으킨다. 450억 원이 투입된 풍동설비는 남양연구소에서 가장 고가의 설비다.

 엔진과 변속기의 독자개발과 신기술선행개발을 위한 파워트레인연구소도 핵심부문중 하나다. 엔진은 가장 많은 부품(약 3000종)이 조립돼 하나의 부품을 형성하게 되는 자동차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1991년 1.5리터급 알파엔진과 변속기를 독자 개발해 자동차엔진의 독자개발 원년을 이룩한 이래 중형 및 대형승용차엔진의 풀 라인업 독자개발체제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먼지터널, 진흙탕길, 모랫길, 울퉁불퉁한 도로 등 70가지 실제도로 노면을 갖추고 있는 종합주행시험장은 100만 평 크기로 아시아 최대 규모. 길이 4.5km의 고속주행로는 최고 시속 250km까지 달릴 수 있다.

 특히 지난해 9월에는 자동차업체 최대 규모의 슈퍼컴퓨터 증설을 통해 글로벌시장의 수요 변화 및 시장 규정강화 등의 요인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현대·기아차는 2010년까지 세계 5대 자동차메이커수준에 맞는 R&D 능력확보가 목표다. 이를 위해 디자인능력 극대화, 차세대 파워트레인 개발, 동급 최고의 제품개발, 핵심기술 전략적 개발, 조직운영 효율화 및 인재육성을 위해 지난해 2조5000억 원을 투입했으며, 매년 총매출액의 5% 수준을 연구개발비로 지속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또 지난해 9월 경기도 용인에 설립된 환경기술통합연구소는 300여 명의 연구인력이 투입돼 미래형 친환경 자동차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환경관련 전부문의 독자적 연구수행을 위한 연구소설립은 현대·기아차가 처음이다.

 현대차는 1968년 2월 미국 포드사와 기술, 조립, 판매 관련 계약을 맺고 1968년 11월부터 ‘코티나’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6년 뒤 포니라는 국산모델을 만들긴 했지만 디자인과 엔진 등 주요부품은 외국에 의존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지금 세계 10위권 안의 자동차 생산업체로 성장했다. 포드, 도요타 등이 70~100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기술을 축적해 온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