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플레이어(이하MP3P)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해온 레인콤을 비롯해 국내 전문MP3P업체들이 MP3P사업에 대탈주를 하고 있는 까닭이다.
 때 국내 MP3P시장의 90%를 장악했던 레인콤. 하지만 미국 애플의 공세가 시작된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애플에 대항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고 마케팅에 총력전을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레인콤은 이제 ‘탈 MP3P’를 외치고 있다.

 레인콤을 비롯한 MP3P만 전문적으로 만들어온 업체들이 핵심 역량을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등 MP3P 이외의 제품군으로 집중시키면서 잇따라 멀티미디어 기기업체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MP3P도 이제는 어학용 학습기로 겨우 실낱같은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워크맨’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동안 MP3P 시장을 개척해 온 국내 중견 중소벤처기업들은 올해 경영핵심을 ‘기존 사업축소’와 ‘사업 다각화’에 맞췄다. 지난해 애플과 삼성전자의 공세로 MP3P 사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신사업으로 수익 창출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이들 업체들의 MP3P사업 축소는 사업포기로 보일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업계 맏형 격인 레인콤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와이브로 단말기 사업에 주력하면서 변신을 시작했다. 핵심 연구 인력도 와이브로 단말기 연구개발 분야로 집중 배치하면서 신사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MP3P업체인 코원시스템과 엠피오 역시 레인콤과 같은 대열에 합류했다.

 양덕준 레인콤 사장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글로벌 업체들로 인해 시장은 이제 ‘레드오션’이 됐다”며 사실상 탈 MP3P 업체를 선언한 것이다. 그는 “이제 MP3P 시장에서 점유율 싸움은 의미가 없다”며 향후 와이브로 등 유비쿼터스 통신 환경에 맞는 다양한 차세대 멀티미디어 기기로 관심을 돌렸다.

 ‘아이오디오’의 코원 역시 MP3P업체에서 휴대용 멀티미디어기기 업체로 탈바꿈하고 있다. 코원은 PMP와 지상파DMB에 승부를 걸었다. 코원은 올해부터 PMP에 주력할 계획이며, 3월에는 PMP에 DMB 안테나를 탑재한 패키지 상품을 출시하면서 DMB 시장에도 뛰어들 태세다. 코원 관계자는 “올해 출시할 MP3P들은 액정이 더욱 커지면서 대부분 동영상 재생을 기본으로 탑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까지 매출을 MP3P 판매에 의존했던 엠피오는 올해부터 종합 멀티미디어기기 업체로 변신하고 있다. 올해 주요 사업 아이템으로 기존 MP3P와 함께 홈멀티미디어센터(HMC)를 중심으로 한 ‘가정용 멀티미디어기기’, DMB 기능을 기본으로 탑재한 복합 단말기인 ‘차량용 멀티미디어기기’를 선정했다. 최근 지상파DMB 협의회에 가입하며 DMB 시장 진출도 준비중이다. 엠피오 관계자는 “올 연말까지 MP3P 이외 제품군의 매출 비중을 15%까지 확대하고 내년에는 더욱 늘려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많이 팔수록 손해본다?

 이처럼 MP3P 업계에 변신의 태풍을 몰고 온 것은 애플의 MP3P제품인 ‘아이팟 나노’의 돌풍이다. 국내 MP3P업계가 애플의 브랜드 파워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취약한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애플의 ‘아이팟’ 바람으로 중저가로 굳어진 MP3P 가격 흐름에 발맞추기 힘들다고 토로하고 있다. 더 이상 MP3P 판매만으로는 채산성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지산 한화증권 연구원은 “올해에도 애플의 시장지배력 강화로 국내 업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실제 요즘 국내 시장에서 1GB 제품들이 평균 10만~15만원 수준에 팔리고 있는데 이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40~50% 가량 하락한 것이다. 업체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한 북미 시장에서는 100달러(약 10만 원)도 채 안 된다.

 이 때문에 국내 MP3P 업체들은 많이 팔았지만 수익은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해 370여만 대를 판 레인콤의 경우 2005년 3/4분기까지 누적매출액은 3521억 원으로 전년 동기 3256억 원보다 많았지만, 누적순이익은 32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343억 원보다 10배 이상이나 감소했다. 수출에 주력해온 엠피오는 지난해 적자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엔 국내 MP3P 시장의 과열경쟁 양상도 한 몫 했다. 세계 어느 곳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뛰어난 기술경쟁력을 갖고도 세계시장 공략을 위한 공동전선 구축에 힘을 쏟기보다는 협소한 국내시장에서 과열경쟁을 하는 바람에 많이 팔고도 수익성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MP3P 업계가 세계시장을 주도해 나가려면 협소한 국내시장에서의 과열경쟁을 지양하고, 해외시장 개척에 함께 힘을 모아야 했지만 제 살 깎기 식으로 싸운 게 문제”라고 말했다.

 요즘 화두인 ‘컨버전스’전략과 상반되는 애플의 ‘단순화’ 전략도 큰 변수였다. 지난해 출시한 애플의 아이팟 나노는 획기적인 가격에다 ‘심플함’을 무기로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 시키면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무려 연간 2억 달러에 달하는 ‘아이팟 이코노미(iPod economy)’라는 신조어를 탄생 시켰다. 애플의 경쟁력이 ‘가격’이라는 국내업체들의 얘기와는 달리, 애플의 아이팟은 음악 듣는 기능 자체에 초점을 둬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이고 조작이 단순하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분석이다. 사용자가 원하는 부가기능은 현재 약 700개가 넘는 관련 업체들에 의해 생산되는 약 1000개가 넘는 아이팟 관련 액세서리들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수많은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것만 주로 활용하는 것에 착안해 요즘 화두인 컨버전스의 반대개념인 심플함을 내세운 게 적중했다는 평가다.

 반면 국내업체들이 지난해 아이팟에 대항해 MP3P에 동영상기능과 게임기능 등을 집어넣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국 애플을 잡겠다며 다양한 기능을 넣은 국내업체들의 전략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됐다.

 국산 MP3P를 본뜬 중국산 ‘짝퉁’제품도 국내업체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심지어는 중국산 모방제품이 먼저 시판되고 원 제조사보다 앞서 해외 수출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중국 업체들은 기본 바탕이 되는 제품을 개발한 뒤 한국 업체들의 우수한 디자인이 공개되면 케이스만 바꾸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표절도 매우 빠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MP3P 경우 이제는 기술 장벽이 낮아져 누구나 단말기 제조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내 MP3P 산업은 대기업 위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가격 하락으로 레드오션이 된 MP3P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들은 마케팅과 자본이 뒷받침되는 대기업 외엔 없을 것”이라며 “업계의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370만 대를 판매한 삼성전자는 올해 국내외시장 개척을 통해 국내 전문업체들의 판매량보다 많은 규모인 800만 대 판매를 목표로 잡았다. 그동안 국내외시장을 주도했던 레인콤 등이 주춤하는 사이 확실한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이미 레인콤의 판매대수를 따라잡았으며 4GB의 낸드 플래시 타입 MP3P도 국내 업체 중 가장 먼저 개발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2007년까지 MP3P 분야의 최고봉에 위치한 애플의 위치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LG전자도 MP3P 시장에 재도전한다. LG전자는 하드디스크 타입 1종과 플래시 메모리 타입 2종을 출시하고 애플 ‘아이튠스’와 유사한 콘텐츠 서비스도 시작할 예정이다. LG전자의 콘텐츠 서비스는 음악 외에 <개그콘서트> 등 KBS의 일부 영상 콘텐츠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하드웨어 개발에 서비스를 묶는 시너지 전략으로 MP3플레이어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전문 업체들의 탈 MP3P 현상과 대기업으로의 재편은 예상보다 시기가 빠르긴 하지만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를 맞아 MP3P만 갖고는 생존이 힘들기 때문에 당연한 추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PMP 사업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생존이 어려운 ‘MP3P’ 대신 새로운 옷인 ‘PMP’로 갈아입은 레인콤 등 MP3P업체들이 다시 한번 대박신화를 창조할 수 있을까. 이는 PMP가 MP3P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있다. 일단 DMB서비스의 상용화 등이 촉매제로 꼽히면서 PMP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기존 MP3P가 음악이라는 ‘특정의 기능’에 국한됐다면 PMP는 음악뿐만 아니라 네비게이션, 게임 및 교육콘텐츠 등 컨버전스 서비스와 결합돼 MP3P를 대체할 수 있는 디바이스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MP3P도 이러한 여러 기능이 결합된 모델이 나오고 있지만 ‘기능과 콘텐츠의 확장성’면에서 PMP에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또 PMP를 MP3P와 경쟁시키는 것이 아니라 PMP는 MP3P와는 또 다른 종류의 디지털기기로 인식하고 있는 구매층을 잡을 것이란 예상이다.

 하지만 이들이 다시 한 번 성공가도를 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찮다. MP3P시장이 그랬듯이 PMP시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레인콤이 CJ인터넷과의 제휴를 성사시킨 것이나 코원이 교육콘텐츠업체와 손을 잡은 것도 콘텐츠 확보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PMP시장에도 대기업 및 선발주자들과 또 다시 과열경쟁을 하게 된다면 시장에 쉽게 안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기존 MP3P업체들인 레인콤, 코원시스템 등이 PMP시장에서도 강세를 이어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plus interview



 양덕준 레인콤 사장



 “이제는 와이브로 시장서 뭔가 보여줄 것”



 MP3P로 대박신화를 창조했던 양덕준(55) 레인콤 사장. 지난해 애플의 공세에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올 초에는 구조조정까지 하면서 쓴 맛을 톡톡히 본 그는 이제 또 다른 블루오션을 찾고 있다. 다시 한번 대박신화를 꿈꾸며 그는 벤처 초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MP3P사업이 변하고 있다. 시장전망은 어떤가.

 MP3P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 물론 성장요인과 감소요인이 상존하지만 전체적으로 성장시장이다. 이동 중에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는 음악만한 것이 없다. 다만 업체들의 가격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수익구조가 악화되고 있다. 업체들에게 있어서 사업메리트가 떨어졌다.



 -국내업체들의 MP3P사업은 이제 경쟁력을 잃었는가. 그렇다면 레인콤을 비롯해 국내 MP3P업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MP3P시장은 애플사를 비롯해 해외의 글로벌 업체들의 가격경쟁으로 돌입했다. 기술 장벽도 낮아 누구나 MP3P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수익성악화로 인해 중소업체들은 팔아도 밑지는 사업구조로 변했다. 레인콤의 경우 레드오션이 된 MP3P시장에서 탈피해 블루오션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향후 MP3P관련 사업을 어떻게 전개할 생각인가. 새로운 대박신화창조는 어디서 터질 것이라고 예상하는가.

 MP3P사업은 유지되지만 상당수 비중을 새로운 사업 분야로 옮길 생각이다. 애당초 창업 때부터 휴대용 멀티미디어기기업체를 표방했기 때문에 MP3P업체로만 안주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레인콤이 다음 대박신화 창조로 추구하는 블루오션은 크게 단말기 시장과 서비스시장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말기의 경우 이동 중에 초고속인터넷에 접속해 빠르고 편하게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와이브로 서비스를 활용한 단말기 사업이 주가 될 것이다.  새롭게 시작한 와이브로 단말기는 벌써 1년 전부터 준비한 것이다.

 둘째, 서비스의 경우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춘 음원업체들 및 서비스업체들과의 공조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와이브로 단말기 시장은 MP3P처럼 기술장벽이 낮아 글로벌기업 등의 공세에 판도가 쉽게 변하기 때문에 콘텐츠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첨단서비스를 활용해 다양한 콘텐츠를 어떻게 하면 쉽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느냐가 향후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MP3P관련 특허를 미국 시그마텔사에 매각했다. 국내업체들이 특허소송을 당할 수 있다. 매각배경은 무엇인가.

 특허소송은 많은 시간적, 물질적 비용을 수반한다. 레인콤의 입장에서 그만큼 희생할 여력이 부족하다. 이를 대신해 소송을 맡아주고 대신 승소할 경우 수익을 나눌 업체가 필요했다. 특허인수측인 시그마텔이 특허침해소송을 한 뒤 수익이 나면 레인콤 자회사인 엠피맨닷컴과 나누도록 계약했다.  소송결과에 따라 특허료 수입이 예상된다. 하지만 국내 MP3P업체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KPAC(한국포터블오디오협회)회원사에게는 특허소송을 못하게 했다.



 -MP3P의 대명사로 통하는 ‘아이리버’ 브랜드는 어떻게 되는가.

 사실 내부에서도 아이리버 브랜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처음에는 레인콤이라는 사명대신 브랜드를 따로 정한 것은 아이리버브랜드만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아이리버브랜드는 젊고 글로벌한 브랜드로 성장했다. MP3P제품 외에도 아이리버는 계속 사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