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존 F.케네디 대통령은 세련된 유머와 여유 있는 웃음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탁월했다. 그가 43세의 젊은 나이로 대통령에 입후보했을 때 상대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닉슨이었다. 당연히 선거의 쟁점은 ‘경륜이냐, 패기냐’로 모아졌고, 닉슨은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선거 기간 내내 케네디를 ‘경험 없는 애송이’로 몰아붙였다. 케네디는 한 연설에서 이렇게 되받아 친다.

 “이번 주의 빅뉴스는 국제 문제나 정치 문제가 아니라 야구왕 테드 윌리엄스(지금으로 치면 배리본즈만큼 유명한 메이저리거)가 나이 때문에 은퇴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이는 무슨 일이든 경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입증하는 것입니다.”

 물론 케네디의 당선이 이 한마디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이 유머와 웃음을 통해 닉슨의 ‘애송이론’에 대한 통쾌한 반격을 가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차피 유권자들이 경륜과 패기의 장·단점에 대해 나름의 판단 기준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장황한 반론은 그다지 큰 효과를 얻기 힘들다. 그보다는 야구왕의 은퇴 소식을 이용해 ‘노장의 한계’를 유머러스하게 부각시키는 면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케네디 가문은 대통령제인 미국에서 정신적인 왕실로 여겨질 정도로 대단한 가문이다. 이 가문 사람들은 대부분 빼어난 인물들인데, 그 중 한 사람이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다. 그러나 로버트에게는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부와 권세를 지닌 대부호란 점이다. 자칫하면 유권자들에게 능력보다 ‘배경’이 더 부각될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쟁자들은 종종 그를 ‘아버지의 후광에 의존하는 철부지’로 매도하였다.

 어느 날 한 신문에 그에 대한 가십(gossip)성 폭로기사가 실렸다. 케네디 가의 지나친 사치행각을 비난하는 그 기사의 내용은 이랬다.

 ‘케네디 상원의원의 여동생이 결혼할 때 그의 아버지는 결혼 비용으로 100만 달러라는 거금을 썼다. 케네디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의 한 직원이 이런 사실을 웃으면서 기자에게 말해 주었다.’



 유머리더에게만 있는 세가지 ‘낙관, 희망, 긍정’

 기사가 나온 직후 많은 신문 기자들이 케네디에게 달려가서 사실 여부를 캐물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터무니없는 사치 행각으로 국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한 몹쓸 가문’의 후예가 될 판이었다. 그러나 케네디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조작이나 모함이라고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다. 그가 빙그레 웃으면서 한 말은 오직 이 한마디였다.

 “그 기사는 완전히 엉터리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회사 직원들 중엔 웃는 사람이 없거든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신문기사의 사실 여부가 아니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자기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는 폭로기사 앞에서 케네디가 웃는 얼굴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만약 당시 지도자들이 기업광고 싣지 말라, 정부 광고도 저 언론사에 주지 말라고 했다면, 거기다 X도 모르는 XX라고 욕을 해댔다면 얼마나 유치했을까? 유머 센스야말로 교양이며, 신사도이고, 국민에 대한 청량제란 걸 알 수 있다.

 요즘 미국의 대통령들은 자신이 까먹은 점수를 부인의 유머 내조로 반회하고 있다. 클린턴(clean+턴, 털다)은 이름에서 보듯이 뒤끝을 깨끗하게 마무리해야 할 운명이었으나, 여비서와의 부적절한 관계에 이어 증거를 남겨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그러나 부인 힐러리의 흔들리지 않는 태도로 점수를 되찾았고, 이제는 부인의 대권을 외조하고 있다. 조지 부시도 이름 그대로 조지고 부시는 게 좀 과해 인기를 잃었을 뿐 아니라 허리케인 직격탄까지 맞아 비틀거리는 신세지만, 부인 로라 여사의 깜짝 유머로 그나마 턱걸이를 하고 있다.

 어디 정치인뿐이랴. 웃음은 기업가, 교수, 강사, 교사 등 남을 이끄는 리더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는 부드러움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21세기에 성공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웃음에 눈을 떠야 할 것이다. 유머 리더에겐 낙관적, 희망적, 긍정적인 태도가 있다. 세계적인 유머리스트로 칭송받고 있는 지도자 중에 처칠과 루즈벨트가 있다.

 “좀 웃으시오. 그리고 부하들에게도 웃음을 가르치시오. 웃을 줄 모른다면 최소한 빙글거리기라도 하시오. 만일 빙글거리지도 못한다면 그럴 수 있을 때까지 구석으로 물러나 있으시오.”

 루즈벨트 역시 그런 점에서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재임 시절에 단 한 번도 초조하거나 낙담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거기엔 두 가지 중요한 비결이 있었다. 하나는 남다른 낙관주의, 그리고 또 하나는 그것을 세련된 유머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다음은 루즈벨트가 어느 신문기자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유머와 웃음에 능숙한 사람은 일류 리더

 “걱정스럽다거나 마음이 초조할 때는 어떻게 마음을 가라앉히십니까?”

 “휘파람을 붑니다.”

 “그렇지만 대통령께서 휘파람을 부는 걸 들었다는 사람이 없던데요.”

 “당연하죠. 아직 휘파람을 불어 본 적이 없으니까요.”

 이 유머에는 루즈벨트의 여유와 배짱, 그리고 낙관주의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그가 군인 시절에 모든 미국인들로부터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고, 대통령이 된 후에 정치와 외교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노벨평화상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굳건한 심성과 뛰어난 유머와 웃음 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유머를 읽으면서 사람들은 아마 풍채가 좋고 씩씩한 걸음걸이의 중년 남자를 연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그는 남이 도와주지 않으면 몇 발자국도 걸을 수 없는 휠체어에 의지한 장애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정상인을 훨씬 능가하는 큰 배포를 가진 사나이였던 것이다.

 미국의 제 38대 대통령이었던 제랄드 R. 포드가 선거에 출마했을 무렵, 일부 언론에서 그를 100여년 전의 링컨과 비교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포드는 두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연예인이건, 정치인이건 누군가의 비교 대상이 된다는 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 때 포드 후보에게 독자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준 것은 얼굴 가득한 웃음과 한마디의 유머였다.

 “I’m not Lincoln. I’m only Ford.”(나는 링컨이 아니라 포드일 뿐입니다.)

이 말을 들은 기자들이 포복절도한 것은 물론이다. 고급승용차 링컨에 대중승용차 포드를 빗대어 정치가로서 자기의 대중성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는 이 절묘한 유머와 웃음으로 링컨의 그늘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우리 정치인들도 매일같이 욕을 얻어먹긴 하지만, 그들 가운데 유머리스트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70년대 우리 의원들이 일본에 갔다. 동경 제국호텔 화장실에서 소변을 본 후 일본 의원들은 손을 씻는데, 한국 의원들은 그냥 나온다. 당시 우린 먹을 물도 귀했던 시절이 아닌가? 일본 의원이 비웃는다.

 “아니, 한국 의원들은 일 보고 손도 씻지 않습니까?”

 그러자 우리 측 의원이 한마디했다. “여보쇼, 우리 한국인들은 거시기를 항상 깨끗이 하기 때문에 만져도 더러울 게 없어요. 일본 의원들은 거시기를 더럽게 유지하나 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리더들에게는 늘 이런저런 음해와 루머들이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응하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길길이 뛰며 흥분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장황하게 해명을 늘어놓고, 또 어떤 사람은 촌철살인의 유머와 웃음으로 멋들어지게 상황을 반전시킨다. 그런 차이가 곧바로 대응 효과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건 두말 할 나위도 없다. 그것은 또한 리더로서 능력 차이가 되기도 한다. 흥분파는 삼류 리더요, 해명파는 이류 리더이며, 유머와 웃음에 능숙한 사람은 일류 리더다.  그것은 마음의 여유와 핵심을 짚는 능력과 표현력 등을 두루 갖춰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유난히 흥분을 잘 하고 인상파 리더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능력 있는 리더가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성공하는 리더가 되려면 유머 감각과 웃음부터 익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