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주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8년부터 2003년까지 IT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18%에 달했으며, 이러한 고성장에 힘입어 GDP에서 IT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8년 9.3%에서 2003년 15.6%로 수직 상승했다. 이처럼 경이로운 성장은 급속한 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부문별, 제품별로 끊임없는 진화와 세대 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IT산업은 크게 서비스·기기·소프트웨어 3분야로 나눌 수 있다. 각 분야별 구성비를 보면 98년에 21.9%·73.9%·5.2%이었던 것이 2003년에는 21.2%·69.9%·8.9%로 바뀌었다. 기기 분야가 다소 줄고 소프트웨어 분야가 좀 늘었지만 전체적으로 큰 변화는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분야별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표 주자의 자리를 놓고 여러 제품들이 치열하게 경합하는 과정에서 역동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변화를 이끄는 것은 소비자의 욕구이다.



 소비자의 욕구 따라 성장

 분야별 IT 제품의 부침으로 본 소비자 욕구는 편의성 추구, 여가·오락 중시, 개인화·개성화 등으로 요약된다. 서비스 분야를 보면 이와 같은 경향이 잘 나타난다. 기간통신서비스의 경우 유선통신의 성장은 90년대 후반 이후 크게 둔화된 반면, 편의성과 여가·오락의 측면에서 강점을 가진 무선통신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2002년 이후 규모 면에서 유선통신 시장을 앞질렀다. 언제부터인가 거리에서 유선 공중전화를 찾아보기 어려워졌으며,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도 값싼 유선전화를 곁에 두고도 비싼 무선전화를 이용해 간편하게 통화를 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여가를 즐기는 사람을 얼마든지 보게 된다.

 소비자들의 욕구를 보다 높은 수준으로 만족시키려는 사업자들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끊임없는 노력은 유무선 결합 서비스, 전화·인터넷·방송을 묶어서 제공하는 TPS(Triple Play Service), 전화와 초고속 인터넷을 연결시킨 VoIP 등 여러 형태의 결합 서비스로 열매를 맺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과거 제각각 제공돼 설치, 요금 납부, 사용 등에서 불편을 겪던 2~3가지 서비스를 하나로 통합해 이용할 수 있는 데다 가격 또한 상대적으로 저렴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기술적인 신뢰성만 확보된다면 새롭게 뜨는 제품으로 각광 받을 것이 분명하다.



 유선 둔화, 무선 성장 거듭

 이 밖에 DMB, 휴대 인터넷, WCDMA 등 방송과 인터넷의 휴대성을 강화한 서비스 역시 소비자들의 여가·오락 및 개인화에 대한 욕구를 강하게 충족시키면서 빠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변화의 폭이 가장 큰 분야는 누가 뭐래도 기기 분야이다. 초기에 IT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며 각광을 받았던 정보기기는 차세대 PC가 기술적 진보와 소비자 욕구 사이의 거리를 극복하지 못한 채 뿌리를 내리지 못해 점차 활력을 잃고 있는 반면, 통신기기는 유선전화기에서 휴대전화기로의 시기적절한 배턴 터치에 힘입어 높은 성장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 99년부터 2003년까지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면 통신기기는 16%로 두 자리 수를 기록한 반면 정보기기는 9%로 한 자리 수에 머물렀다.

 정보기기 부문 안에서 변화가 가장 뚜렷했던 제품을 들라고 하면 저장장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대용량과 보다 좋은 화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잠재 욕구를 일깨우는 제품들이 속속 개발돼 시장을 넓혀 가고 있다. DVD가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데, 정보를 기록하고 재생할 때 그 질이 크게 개선되었음은 물론이고 용량도 700메가바이트 수준의 CD에 비해 훨씬 큰 4.7기가바이트에 달해 한 편의 영화를 온전히 기록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20기가바이트급의 Blue Ray 레코더가 개발되는 등 저장장치는 고기능·대용량화 경쟁을 펼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휴대형 저장장치도 인기

 저장장치의 발전과 맞물려 눈에 띄게 바뀌고 있는 제품은 미디어 플레이어이다. 테이프 레코더를 이용해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휴대용 녹음 재생기의 대명사 워크맨은 이제 모습을 찾아보기조차 쉽지 않다. 워크맨의 뒤를 이은 휴대용 CD 플레이어도 음질에서는 소비자를 만족시켰지만 저장 매체의 한계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워크맨과 휴대용 CD 플레이어의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이 바로 MP3 플레이어다. 플래시 메모리를 저장장치로 채택한 MP3 플레이어는 과거 미디어 플레이어의 한계를 모두 극복하는 제품이었다. 즉, 디지털 기술 덕택에 소형화가 가능했고 음질은 CD 수준으로 높았으며, 무엇보다 정보를 쓰고 지우는 것이 자유로워 기록 매체를 들고 다니는 불편을 해소함과 동시에 사용자가 원하는 음악만을 골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장점을 무기로 MP3 플레이어는 우리 생활에 빠르게 파고들었다.

 통신기기 부문에서는 유선통신기기가 퇴조하는 가운데 휴대전화기가 지속적인 세대 교체를 통해 성장을 이끌고 있다. 2002년 음성·단문 메시지 중심의 단순 기능 폰 시장이 포화될 무렵 카메라 폰이 등장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04년에 들어서는 카메라 폰의 화소 경쟁과 함께 MP3 기능을 추가하며 변신을 꾀했다. 휴대전화기가 단순히 이동성을 가진 통신기기로서만이 아니라 오락과 여가 활용을 위한 중요한 도구로, 또한 개인의 개성을 뽐낼 수 있는 액세서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휴대전화기는 앞으로도 TV 폰, 게임 폰 등 더 더욱 다기능화되면서 정보기기, 통신기기, 오락기기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행보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의 욕구를 좀 더 만족시키기 위해 IT 기기들이 끊임없이 바뀌는 가운데, 부품 부문에도 명암이 엇갈린다. 부품 부문의 변화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IT 기기의 고기능·다기능·이동성 등을 보다 충실하게 지원하는 쪽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기기가 이동에 보다 적합하도록 작아지고 가벼워지면서 안에 들어가는 부품도 점차 여러 개가 하나로 합쳐지는 추세를 보인다. 이에 따라 SOC(System On a Chip), 내장형 PCB, 내장형 소프트웨어 등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콘텐츠가 서비스 성장의 밑거름

 마지막으로 소프트웨어 및 컴퓨터 서비스 부문은 98년 이후 연평균 30% 이상씩 성장하고 있지만, 그 절대 규모에서는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다. 그나마 벨소리, 폰 꾸미기, 모바일 게임 등의 콘텐츠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이동전화 서비스 성장의 밑거름 역할을 했다. 향후 각종 신규 서비스와 새로운 기기가 시장에 착근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의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간략하나마 지는 제품과 뜨는 제품을 통해 9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IT산업의 변화 방향을 살펴보았다. 한마디로 핵심은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서 제대로 담아낸 제품으로 주도권이 넘어간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컨버전스는 IT산업의 키워드가 아니라, 소비자의 진정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IT산업 발전의 키워드는 소비자 만족임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이러한 관점에서 기술을 이용하는 기업만이 지속적으로 뜨는 제품을 만들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김영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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