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숨어 투자 순수성만 강조



SK그룹을 향한 소버린자산운영(이하 소버린)의 공습이 재개됐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내년 초 주총을 겨냥, 적대적 M&A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는 게 SK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소버린은 투명 경영의 실현이라는

순수한 의도를 왜곡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SK(주)를 겨냥한 소버린의 공격은 한때 이사회에 의해 무력화되는 듯했지만 지난 11월9일 소버린이 서울중앙지법에 SK(주) 임시주총 소집허가 신청서를 제출함으로써 멈추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물론 소버린의 임시주총 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진다고 소버린의 승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또 내년 초 정기주총에서의 승리도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정기주총 주도권 확보 포석

 그러나 임시주총 ‘소집 허가’ 자체가 SK(주)와 소버린의 경영권 분쟁에서 소버린의 주도권 확보를 의미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적대적 M&A가 이슈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도권은 다른 여타 주주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즉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주주들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으로 쏠리게 된다는 게 M&A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결국 임시주총에서 소버린의 정관 개정안이 부결된다 해도 본 게임이 될 정기주총의 향배는 소버린의 포석대로 진행될 공산이 높아진다는 해석이다.

 소버린은 이 같은 임시주총 소집 요구가 적대적 M&A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성장 잠재력이나 경쟁력에 비해 기업가치가 저평가된 이유가 SK(주)의 지배 구조와 경영진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소버린은 우수한 기업 지배 구조는 국가 번영과 동의어라고 말하고 있다. 소버린에 따르면 오늘날 세계 경제체제 내에서 국가의 경제 개발 및 번영에 필요한 해외 투자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국가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 투자 자본은 합리적인 수익이 발생하는 국가, 공정하고 일관성 있는 법 적용이 보장되는 국가, 그리고 모든 주주의 권리가 보호되는 국가로 유입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속에서 우수한 기업 지배 구조를 가진 기업은 자유롭게 기업 활동을 영위하는 동시에 필요한 견제 장치(독립적 이사제도)를 마련해 회사가 공정하고 윤리적으로 운영되고, 모든 주주의 가치가 제고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SK(주)는 이러한 구조가 아닌 1인 지배 구조에 의해 경영권이 행사돼 왔으며 취약한 기업 지배 구조로 인해 부정부패가 수용됐고, 비윤리적·차별적 기업 행위 등이 나타났다는 게 소버린의 판단이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문제를 넘어 자유시장의 ‘보이지 않은 손’을 막음으로써 물품과 서비스가 높은 생산성을 갖도록 하는 효율적인 흐름을 저해했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기업 지배 구조를 개선시키는 것은 장기적인 경제 번영을 이룩하는 중요한 단계로 SK(주) 역시 예외가 아니고, 이로 인해 기업가치도 저평가돼 있었다는 것이다.

 소버린은 “SK(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단일 정유회사임에도 평가에서는 업계 동종 기업 중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며 “기업 지배 구조와 경영진과 관련된 해묵은 이슈를 해결하지 않고 있는 것이 회사가 더 높은 가치로 평가받고 투자자의 지지를 확대하는 데 중대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고 주장하고 있다.



적대적 M&A 위한 ‘양의 탈’

 물론 소버린의 이 같은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는 이들은 국내에 거의 없다. 오히려 SK(주)의 경영권 탈취를 목적으로 적대적 M&A를 시도하기 위한 ‘양의 탈’을 쓰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실제 그동안 SK(주)의 연이은 신고가 행진은 소버린의 적극적인 공세와 연동돼 왔다. 또한 한국의 법원도 소버린의 지분 확보 이후 행보에 대해 명백한 적대적 M&A 시도라고 판단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SK(주)의 자사주 처분에 대해 소버린이 제기한 의결권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서울지방법원 제50민사부는 “소버린의 명백한 경영권 장악 및 기업 매수에 직면하여 이를 방어하기 위한 경영 판단에 따른 것이므로 자사주 매입 의결은 적법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를 비롯한 외국인 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관료들 사이에서는 소버린이 적대적 M&A를 통해 SK(주)의 경영권을 장악하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묻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SK 측은 소버린의 SK(주) 경영권 장악 이후의 시나리오에 대해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본 이득의 극대화 수순을 밟아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SK(주)의 경영권 장악은 곧 SK그룹 전체의 경영권 장악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우려는 한층 심각한 수준이라고 강조한다. 소버린을 헤지펀드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소버린은 자본 이득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헤지펀드의 성격상 철저하게 산술적인 투자 회수 방안을 선택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SK(주)가 보유하고 있는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 지분 매각으로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SK(주)의 한 관계자는 “SK텔레콤 주식은 시가총액이 3조4000억원(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실제 가치는 더 커짐)으로 현금 배당을 위해 우선 처분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이는 유사한 헤지펀드인 소로스펀드가 서울증권 인수 후 대규모 현금 배당으로 투자 자금을 조기에 회수했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룹의 지원을 전제로 회생 계획이 진행 중인 SK네트웍스는 소버린이 SK(주)의 지원을 반대하고 있는데다 SK텔레콤 등 계열사 주식을 매각하면 지원할 방법도 없어져 회생이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결국 SK그룹의 해체로 이어질 것이 불가피하며, 그 경우 SK텔레콤을 제외한 대다수 계열사들은 신용 경색에 빠지거나 도산할 우려가 크다. 즉 SK네트웍스와 영업 및 지분 관계에 있는 SK해운 등과 시장의 신뢰도가 중요한 SK증권 등 금융 계열사들, 아직 재무 구조가 취약한 SK건설, SK케미칼, SKC 등은 파산에 이르는 등의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카드사 문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SK네트웍스의 청산 및 재계 3위의 SK그룹 해체는 SK그룹사의 신용 리스크 증가 → 유동성 악화(금융시장 경색) → 기업의 연쇄 부도 → 실업률 증가 → 내수 및 설비 투자 위축 → 경제 성장률 하락(경기 침체)의 악순환이 예상된다.



제2의 경제위기 가능성 내포

 국내 산업 전체의 장기적 성장과 경쟁력 역시 궤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우선 우리나라 정유산업 전체가 외국계 자본에 넘어가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자주 개발 원유 공급률이 일본의 11.3%에 비해 현격하게 낮은 3%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유전 개발을 비롯한 해외 에너지자원 확보는 정유사들이 맡아야 할 몫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5개 정유사 가운데 해외 석유 개발에 나서고 있는 기업은 SK(주)가 유일하다. SK(주)가 24개국 53개 광구에 투자해 전 세계 16개 광구에서 3억배럴의 원유를 확보하고 있는 반면, 여타 4개사 가운데 LG칼텍스가 유일하게 1개 광구에 투자하고 있을 뿐이다. 곧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사명감보다 수익에 따라 투자하는 해외 자본인 소버린이 고위험의 유전 개발 사업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또한 외국계 자본의 주주 이익 극대화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미래 성장의 핵심 원천이 될 R&D 투자보다는 주주 배당이나 단기 성과를 선호해 잠재 성장력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SK(주)의 R&D 투자 규모는 시장 점유율 60.3%를 차지하는 외국계 4사의 R&D 투자 총액보다 많았다.

 특히 이미 외국인 한도가 꽉 차 있는 상황에서 마땅한 매수자를 찾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지만 SK텔레콤을 매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위성 DMB 사업을 비롯해 미래 IT산업의 성장 동력을 만들어가고 있는 SK텔레콤의 전략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또한 정보화시대 가장 중요한 국가 기간산업이자 안보산업인 이동통신사업을 외국 자본이 지배하는 결과도 낳게 된다.



재계 “남의 일 아니다”

 한국 경제는 아직 재벌이라 불리는 기업집단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기업집단은 최근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LG 등 일부를 제외하곤 대다수가 적대적 M&A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SK와 마찬가지로 대기업 및 기업집단에 대한 기존 주주의 지분율은 상호 출자 규제와 출자 한도 제한, 금융기관에 대한 의결권 제한 등의 규제로 묶여 있고, 출자 구조도 주력 기업을 정점으로 연쇄 출자로 연결돼 있다. 때문에 기존 주주에 비해 규제를 덜 받는 외국인의 국내 주력 대기업들에 대한 지분율은 이미 사상 최대 수준에 달하고 있다.

  같은 상황에서 정체를 정확하게 드러내지 않은, 국제 투기 펀드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소버린의 국내 3위의 재벌에 대한 적대적 M&A가 성공할 경우 향후 투기성 국제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미국, 일본, 유럽, 화교 자본의 국내 우량 대기업에 대한 적대적 M&A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위기의식이다. 다수의 국내 대기업의 경영권이 순식간에 뒤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투기 금융자본은 태생적으로 장기 투자보다는 단기적인 수익 실현에 치중하는 형태를 보이게 마련이다. 때문에 경영권을 획득하면 설비 투자보다 자산 매각 등을 통한 투자자본의 조기 회수에 치중하게 되며 그에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특히 산업자본과 달리 소버린과 같은 금융자본은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썰물처럼 국외로 빠져나가 경제 위기를 초래하는 요인이 돼 왔음은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지난 97년 아시아 금융 위기의 주범이 이 같은 국제 투기자본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같은 이유로 우리 경제도 지난 98년 외환 위기를 겪어야 했으며 지금도 외환 보유고는 많지만 국제 투기자본이 국내 자본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외환 위기 이전보다 더 크다는 점에서 여전히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 국제 투기성 금융자본의 폐해는 유럽에서도 이슈가 되어 2001년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국제 투기자본의 규제를 위한 도빈세(Tobin Tax) 도입이 논의되기도 했다.  

 SK 관계자는 “단순한 자본 차익 투자가 아닌 경영권을 노린 투자의 경우 이 같은 행태에 따른 폐해는 더욱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적대적 M&A 방지 위한 제도 필요

 한편 IMF 외환 위기 이후 외국인의 한국 기업에 대한 지분율이 높아져 있는 상황에서 소버린의 SK(주)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를 계기로 상당수의 여타 국내 기업들도 경영권 위협에 대한 대비에 부심하고 있다.

 국내 10대 그룹에 대한 외국인 보유 시가총액 비중은 44%에 이르며(2003년 10월9일 기준) 국내 대표기업에 대한 지분율은 50%를 넘어섰다. 국내 상장사 중 외국인 1인이 5% 이상 대주주로 등록된 상장기업은 지난 2월 말 현재 130개사로 전체 상장기업 684개사(우선주 제외) 가운데 19%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외국 자본의 시장 진입이 가장 자유롭고, 주요 대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이 가장 높은 수준임에도 OECD 국가에서는 널리 실용화된 자국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제도)이 전무한 실정이다. 곧 상대적으로 적대적 M&A에 쉽게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유럽 국가의 경우 차등 의결권주, 피라미드 출자 등을 통해 적대적 M&A, 특히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회사가 외부의 적대적 인수 대상이 될 경우 매우 낮은 가격으로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Poison Pills’를 통해 적대적 M&A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출자 총액 제한제도 등으로 의결권 제한을 받고 있다. 

 경영권 위기 또는 적대적 M&A에 노출된 기업들은 성장 동력 확보나 투자 및 고용 확대 등 장기 전략보다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자사주를 사들이거나 우호주주(백기사) 확보, 대 주주관계 개선(IR), 주가 관리 등 경영권 방어를 위한 소모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또한 적대적 M&A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그 원인을 없애려는 목적으로 인원 감축, 투자자산 매각, 현금자산의 축소 등 자산 효율화를 위한 단기적·재무적 활동에 주력하게 된다.

 반면, 생산라인의 증설이나 모험적인 신규 사업 진출 등 중요한 투자 의사 결정은 유보하는 등 계속 성장을 전제로 한 투자 활동에는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만일 소버린이 SK(주)에 대한 적대적 M&A가 성공하면 이 같은 기업가의 우려와 이를 대비한 기업의 행태는 현실화·가속화할 것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현재 외국계와 내국인 주주 구성 비율이 7 대 3에 육박하고 있는 SK(주)의 지분 분포를 볼 때 이 같은 전망은 단순한 예상 시나리오로만 생각될 수 없다. 때문에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고 있는 SK(주)의 정기주총을 앞두고 임시주총 개최 여부는 승패의 분수령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버린이 제기한 안건은 임시주총을 소집할 만큼 긴박한 사안으로 볼 수 없고,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법리에도 위배되며, 동일 정관 3년 내 반복 제안 금지라는 현행법상 법원이 기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다만 증권거래법, 전기통신사업법, 외국인투자촉진법 등 국내 법 체계 속에 절묘한 묘수를 찾아 활용해 온 소버린의 능력에 비춰볼 때 이번 임시주총 소집 허가 신청은 그리 간단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예상이다.



“소버린 실체 밝힐 이유 없다”

 이처럼 SK그룹의 경영권은 물론 국가 기간산업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폭발력을 보유한 소버린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소버린의 국내 홍보를 대행하고 있는 엑서스커뮤니케이션의 엄주혁 대표는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사항”이라고 못을 박았다. SK(주)에 대해서는 투명성을 요구하면서 소버린의 실체에 대해 밝히지 않는 것은 자기모순 아니냐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서도 “SK(주)는 공시 의무가 있는 주식회사지만 소버린은 개인 자산”이라며 “차원도 다르고, 잣대도 다르다”고 일축했다. 다만 SK(주)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처럼 투기 자본만은 아니라고 강변했다. 단기간 이익을 내고 빠지는 헤지펀드가 아니라 이미 수차례 밝혔듯이 평균 4년 이상 장기 투자를 하겠다는 투자 자본이라는 것이다. 또 SK(주) 경영권에는 관심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면서 적대적 M&A 시도로 몰고 가려는 SK(주)의 방어논리를 공박했다.

 엄 대표는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남미 등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버린은 10년이 넘도록 투자자로만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경영권에 간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SK(주)의 주주 가운데 형사처벌을 받았고, 또 혐의를 받고 있는 이가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주식회사는 개인의 이익을 떠나 주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형사범 및 그 혐의자는 결코 선의의 관리자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최태원 회장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소버린은 홈페이지에서도 “기업 지배 구조와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경영 투명성을 도입함으로써 주주 가치의 창출을 촉진하기 위해 SK(주)의 단일 최대 주주가 됐다”며 “인내심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가치 투자자로서, 단 한 번도 적대적 경영권 인수에 나선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 “소버린의 목적은 SK(주)를 직접 경영하거나 SK(주) 이사회에 참여하는 데 있지 않다”면서 “SK(주)의 이사회가 모든 주주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SK(주)의 주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20년 이상 동안 경영진이 우수한 기업 지배 구조 원칙의 개발 및 적용에 힘써 왔다면서 1993년 이래 러시아의 최대 해외 포트폴리오 투자자의 일원으로 기업 지배 구조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소버린이 투자하고 있는 러시아 상장기업으로는 세계 최대의 탄화수소 생산업체 가즈프롬, 국영 전기회사 UES, 대규모 철강업체 NLMK 등이 있다. 소버린은 이들 회사의 경영에 간여하지 않았고 단지 기업 지배 구조의 투명성 도입에 노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전히 벗겨지지 않는 베일

 그러나 여전히 소버린의 정체는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아니 소버린 스스로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밝히기를 꺼리고 있다.

지난해 5월 초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모나코에 본사를 둔 소버린의 소유주 챈들러 형제에 대한 기사를 보도했다. 현재까지 소버린의 정체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정보다.

이에 따르면 소버린의 소유주는 뉴질랜드 태생의 리처드 챈들러와 크리스토퍼 챈들러 형제다. 나이는 60대로 지난 86년 조세 회피 지역인 유럽 모나코의 수도 몬테카를로에 소버린의 본사를 설립했으며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며 시내에 사옥을 두고 신흥 주식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뉴질랜드 북쪽 도시인 해밀턴에서 태어나 40대에 부모로부터 소매 체인점을 상속받아 80년대 홍콩 부동산시장에서 처음으로 목돈을 벌어들인 뒤 외채 위기를 겪고 있던 남미지역으로 이동, 고금리 채권에 투자해 브라질의 통신업체 텔레브라스를 인수했다. 이어 90년대 초반 옛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체제 붕괴 시기에 체코와 러시아시장에 진출해 본격적인 투자자로 명성을 날렸다. 알려진 이들 형제의 재산은 30억~100억달러.

 이들 형제는 5~6명의 펀드매니저를 두고 있으며 SK(주) 투자는 제임스 피터 대표가 담당하고 있다. 투자기법은 신흥 시장에서 저평가된 주식을 사들인 뒤 기업 지배 구조를 개선시켜 주가를 올리는 방식이다. 특히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자금을 넣고 이를 통한 공격적인 투자는 이들 형제의 전형적인 수법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94년 러시아 첫 진출 사례로 꼽히고 있는 노보리스크철강회사 투자도 해외에 ‘케임브리지 캐피털 매니지먼트’라는 회사를 만들 후 이를 통해 25%+1주를 매입했다. SK(주) 역시 지난 95년 조세 회피 지역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한 ‘크레스트’를 통해 지난해 3월과 4월 12.39%를 매집했다. 당시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지분 변동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이 SK(주) 지분 인수에 투자한 금액은 대략 1722억원으로 크레스트 자본금 1903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때문에 크레스트 역시 SK(주) 인수를 위한 페이퍼 컴퍼니라는 추측을 가능케 하고 있다.



헤지펀드 아닌 선의의 투자자 증명해야

 SK그룹을 향한 공격의 칼날을 갈고 있는 소버린은 베일 속에 그 정체를 감춘 채 기업 지배 구조라는 순수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SK(주)의 주주가 선의의 관리자가 아니라는 점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주주들은 소버린이 헤지펀드가 아닌 선의의 투자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소버린 스스로 순수성을 입증할 만큼 투명하게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올 초 SK(주) 정기주총을 앞두고 소버린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던 한 소액 주주는 “소버린이 적어도 SK(주)에서만큼은 헤지펀드가 아니라는 확증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권에 욕심도, 능력도 없다는 자신들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챈들러 형제를 비롯한 소버린 스스로 어떤 성격의 투자 자본인지 주주들에게 정체를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버린에 대한 의구심이 한층 더해지고 있는 가운데 임시주총 소집 요구안은 법원에 계류 중이며, 또 정기주총도 코앞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한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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