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이 저물어가는 12월 말. 한밤중이 다 된 시간에도 서울 구로동의 벤처빌딩에는 불이 켜진 사무실이 아직 많다.
한쪽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느라 분주하지만 벤처 업체들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기술 개발에 여념이 없다. 2005년은 IT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벤처기업의 도약이 예상된다.
 울 구로구 구로공단이 2005년 벤처의 재도약을 노리는 ‘제2의 테헤란밸리’로 화려하게 탈바꿈하고 있다. 지난 2000년 12월 이곳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뀌면서 지금은 벽돌로 지은 공장 터에 첨단 벤처 타워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의 중소 벤처 업체들이 이주해 ‘굴뚝산업의 메카’였던 이곳이 테헤란밸리 못지않은 ‘디지털 산업의 메카’로 변신 중이다.

 노트북을 어깨에 멘 신세대 벤처인들이 하루 내내 거리를 오가는 모습은 불과 3~4년 전만 해도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출퇴근 시간뿐만 아니라 점심시간, 한밤중에도 이런 모습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로공단, 디지털 산업의 메카로 변신

 옛날 연기를 내뿜던 공장의 굴뚝들은 사라진 지 오래고, 그 자리를 깔끔하고 세련된 12~15층의 벤처 타워들이 메웠다. 이미 구로디지털단지에 입주한 IT 업체만 2003년 792개사에서 2004년 11월 현재 1408개사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서울 강남 테헤란밸리처럼 벤처 빌딩들이 대거 자리를 잡았고 새로운 벤처 빌딩을 건설 중인 타워 크레인도 여기저기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구로구와 금천구 산업단지에는 최근 5년 동안 15층 높이의 아파트형 공장이 29개나 들어섰다. 아직 21개의 아파트형 공장의 신축 공사가 한창이며, 앞으로도 20개의 빌딩이 승인을 받고 건설될 예정이다. 벤처 빌딩의 입주 또한 활발하게 진행돼 대부분의 빌딩 1층에는 입주 회사의 이름들이 이미 빽빽하게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현재 3069개 업체가 디지털 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다. 이 중에서 IT를 포함한 첨단 업체들은 80%를 넘어섰다.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IT 기업들도 이주한 상태. 2004년 9월 삼성동 테헤란밸리에서 구로디지털단지로 이주한 넥서스커뮤니티도 대표적인 벤처기업. 처음 입주를 결정했을 때 직원들의 반응은 “어떻게 공단지역에서 사업을 할 건지” 황당해 했다고 한다. 다른 고객사로부터는 “혹시 회사가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쾌적한 사무 환경과 편리한 교통으로 인해 모두들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증권 HTS(홈 트레디이딩 시스템) 개발업체인 위닉스정보는 2004년 10월 여의도에서 구로디지털단지로 이주한 케이스. 위닉스측은 이주 이유를 “비용이 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의도 사무실은 임대여서 비싼 임대료를 내야 했는데, 구로디지털단지는 분양받았기 때문에 관리비만 내면 돼 비용을 이전보다 절반으로 줄였다. 더욱이 전 사무실보다 넓어졌음은 물론 프리젠테이션 룸과 회의실까지 갖추고 있어 외국 손님도 자신 있게 맞을 수 있게 됐다.

이 회사 최용준 차장은 “우선 직원들의 근무 환경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됐으며 첨단 작업 환경에서 성공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 회사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단지공단측은 “강남의 테헤란밸리의 임대료 수준이면 이곳에서 아파트형 공장을 직접 분양받을 수 있다”며 “특히 사업주가 부담하는 취득세와 등록세를 완전 면제해 주고 있어 중소업체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단지 내 인프라와 입지 조건이 사업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관련 업체들이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상승효과가 커 수출이나 생산 라인을 공유하거나 단지 내 운송 수단을 함께 사용해 비용을 줄이기도 한다. 대부분 IT 업체가 집중된 이곳의 직장인들은 ‘제2의 테헤란밸리’로 뜨고 있다고 자부한다. 한국산업단지공단측은 구로디지털산업단지가 향후 2~3년 내 5만개의 일자리를 더 창출해 낼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인터넷과 디지털을 중심으로 하는 IT 군락지로 자리매김했던 테헤란밸리는 급속한 변화를 거쳐 얼어붙고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제주도로 일부 이전하고, 전체 본사 이전을 준비하고 있으며, NHN도 분당으로 이전을 결정했다. 이제 테헤란밸리에 남은 IT 관련 기업은 외국계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직 인근 지역의 사무실 임대료는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전히 벤처 창업 열풍이 지속되고 있으며 서울 외곽에서 기반을 다진 중견 벤처기업들이 테헤란로 진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

 수익성에 대한 옥석이 가려지면서 기술력이 있거나 확실한 수익모델을 증명한 벤처들은 새로운 도약과 발전의 기회를 맞고 있다. NHN, 다음커뮤니케이션 등 인터넷 포털 기업들은 제2의 중흥기를 맞고 있으며, 엔씨소프트, 웹젠 등 게임 업체들은 오히려 화려한 르네상스를 예고하고 있다.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벤처기업들이 제2의 도약을 준비하면서 새롭게 우리 경제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거품을 걷어내고 온갖 시련 속에서도 기술력을 쌓고 실질적인 수익을 거둬들인 벤처가 해외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는 등 새롭게 국내 벤처 산업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내 벤처 산업은 이제 벤처 거품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의 제2의 도약과 새로운 벤처기업의 탄생에서 새로운 활력을 찾고 있다. 특히 국가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벤처 열풍을 일으켜야 할 때라는 공감대가 무르익고 있다.

 벤처기업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고용의 돌파구였다. 그러나 벤처기업의 수적 팽창으로 외형상의 성장에도 거품을 양산하기도 했다. 2001년 10월 정현준씨의 동방상호신용금고 불법 대출 사건을 시작으로 진승현·이용호·윤태식 게이트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높은 줄 몰랐던 벤처의 고공행진은 이제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닷컴 열풍을 타고 우리 경제의 주역이었던 벤처기업들은 혹독한 시련의 세월을 보냈다. 대다수의 많은 기업들이 수익성 악화로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유망 기업들도 국내외 극심한 경기 침체, 코스닥 시장의 구조적인 불안정 등으로 불황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벤처 업체의 극심한 불경기는 대기업에 치중된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했다.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사장은 “한국에서는 빌 게이츠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로 이를 대신한다.  대기업 SI 업체 위주의 소프트웨어 산업 구조와 미흡한 정부 제도 등 사회적인 인프라가 열악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천재라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2005년 IT시장 13조원 규모 

 하지만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다시 벤처가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한국형 뉴딜 정책을 추진하면서 IT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기로 했으며, 벤처 활성화 정책을 마련하는 등 강력한 벤처 활성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벤처의 새로운 도약은 IT시장의 성장이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2005년 국내 IT산업 전체 규모는 13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공공·금융 분야 시장이 2004년 대비 1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됐다.

 삼성SDS는 ‘국내 IT 서비스 시장 동향 및 전망’ 보고서에서 자체 시장 조사를 통해 2005년 IT시장은 2004년보다 7.4% 성장한 약 13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SDS는 보고서에서 2005년에는 공공·금융 분야가 1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으며, 제조·서비스 분야는 비교적 소폭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공공 분야는 IT839, 뉴딜 정책, 부처별 업무 고도화 등으로 수요 증대가 예상되며, 금융 업종은 신규 사업 창출을 위한 투자가 활발할 것으로 조사됐다. 또 IT 서비스 유형별로 SI와 IT 아웃소싱 시장은 확대되는 반면, 컨설팅 시장은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SDS 신재훈 그룹장은 “국내 IT시장이 장기적으로 2004년에서 2007년까지는 연평균 6.6%의 성장을 보일 것”이라며 2005년을 기점으로 완전 회복세에 돌아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시장조사기관인 지식조사그룹(KRG) 역시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의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2005 IT 투자 전망’ 조사 자료에서 시장이 조금씩 회복돼 내년 IT시장이 올해보다 최소 6% 성장한 12조98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KRG 김창훈 이사는 “둔화된 IT 투자가 결과적으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어 기업들이 IT 투자를 더 이상 늦출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트너그룹은 2004년 세계 IT산업이 2003년에 비해 다소 오른 7.5% 정도의 성장세를 보인 반면 2005년은 5.8% 내외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따라서 2005년에는 국내 IT시장이 지난 2년간의 침체에서 완전히 벗어나 세계 IT시장의 성장세를 능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벤처 경기 조금씩 살아나

 닷컴 거품 이후 연이은 벤처 비리 사건으로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하지만 그래도 건실한 벤처가 국가 경제에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제2의 벤처 붐은 가장 큰 사회문제인 청년 실업 해소와 신성장 동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으며, 차세대 성장 엔진이라는 평가다.

 벤처산업의 급성장은 분명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벤처 투자 열기도 조금씩 살아날 전망이다.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벤처기업들이 새롭게 우리 경제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벤처기업 수는 98년 2042개사에서 2001년 1만1392개사로 급증했다가 2002년 8778개, 2003년 7702개로 소폭 감소했다. 하지만 2004년 10월 현재 8776개사로 다시 늘어났다.

외형도 성장했지만 벤처기업의 2003년 평균 매출액은 73억4000만원으로 2002년 59억 2000만원에 비해 2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도 매출액 증가율인 19.2%를 상회, 내실 기반도 탄탄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벤처기업의 핵심 기술은 IT 기술의 분포도가 2003년 51%에서 2004년 전체의 88.1%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 IT 기술에 의존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컸다. 중소기업청은 창업투자회사의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회복되면서 2005년 벤처 투자 규모가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벤처 지원 시장에 맡겨야

 2005년 IT 경기의 성장 전망과 벤처의 도약을 계기로 벤처경영상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소수 벤처기업의 잘못된 행동을 확대 해석해 벤처업계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벤처업계에서는 아직도 대다수의 벤처들이 충혈된 눈(red eye), 차가운 피자(cold pizza), 잠 못 드는 열정(no sleep)으로 상징되는 건전한 자세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벤처 CEO들은 벤처 붐 시기에 등장한 거품을 거두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투자자들은 ‘가능성’이 아닌 ‘현금’(수익)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벤처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꿈과 열정을 갖고 남들이 비웃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애쓰는 벤처다움을 먼저 회복해야 한다. 또 국내 제일의 수준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세계 초우량 기업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핵심 역량을 시장의 니즈에 맞춰 끊임없이 키워나갈 수 있어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 배영일 수석 연구원은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이 시장에 역행하고 오히려 벤처기업인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다”며 “벤처산업의 육성과 벤처기업의 기술 혁신 기반 제공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벤처의 육성에 정부가 직접 나서서 육성해서는 안 된다는 것.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그동안 여러 문제의 원인이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대목이 됐다.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이 눈 먼 돈 먹기 식의 벤처 거품을 유발했으며, 결과적으로 투기꾼의 배만 불려 주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정부가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벤처기업의 자생력과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안철수 사장은 “지금 벤처가 ‘한국 경제의 유일한 대안’임에 틀림없다”며 “경쟁력 있는 벤처가 많이 나와서 산업 구조에 변화를 일으켜야 대기업 몇 개 쓰러지면 나라 경제가 거덜 나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의 향후 미래를 생각할 때 벤처기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진취적인 벤처정신을 살릴 수 있는 벤처 환경을 구축하는 길이 무엇보다 시급한 때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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