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에서 대기업 연구원, 시스템통합(SI)업체 사장, 금융기관 CIO에서 글로벌기업 CEO까지. 표삼수(53) 한국오라클 사장의 화려한 이력이다. 표 사장은 김일호 전 사장이 지난 6월 갑자기 사임하면서 4개월간 공석이던 자리에 전격 발탁됐다. 한국오라클의 변화를 잘 이끌 수 있을지 벌써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순히 영업만을 책임지라고 했으면 오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영업도 챙겨야 하지만, 오라클 본사에서 요구한 것처럼 한국오라클의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는 데 역점을 둘 것입니다.”

 표삼수 한국오라클 사장은 우선 오라클을 토털솔루션업체로 성장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라클이 DBMS(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 분야에서 1위를 유지하면서 DB업체로 이미지가 굳어졌다면서, 이런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전사적자원관리(ERP) 등과 같은 애플리케이션 부문을 포괄하는 명실상부한 IT 리더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이기도 하다. 오라클은 최근 인수합병 등을 통해 인적관리, 공급망관리, 고객관리 등의 주요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 세계 1위 업체로 올라섰다. 하지만 아직도 오라클을 단순 DB업체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라클을 IT 업계의 명품으로 만들 겁니다. 고객이 스스로 찾아올 수 있도록 신뢰할 수 있는 제품과 기업을 만들 계획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미지도 바꿀 수 있을 겁니다.” 표 사장의 각오다.

 표 사장이 바꿔야 할 것은 브랜드 이미지뿐만 아니다. 최근 개편된 조직구조도 챙겨야 하고, 한국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작업도 풀어야 할 과제다.

 이 중에서 한국오라클의 메트릭스 구조를 다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게 해야 할 역할이다. 오라클은 지난해 조직개편을 통해 영업을 포함한 각 사업본부장이 아태지역본부와 본사에 직접 보고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지사장의 권한과 역할이 축소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조직 개편을 통해 오라클은 기존의 위계질서 위주의 조직에서 유기적이며 네트워크가 원활한 메트릭스 구조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이미 다른 글로벌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이런 조직구조로 바뀌었습니다. 오라클이 늦은 편이었죠.”

 그는 메트릭스 구조가 사장의 권한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한마디로 일축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CEO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것이다.

 “잘 되면 내 탓, 잘못되면 네 탓 하는 게 우리 기업의 일반적인 정서 아닙니까. 이런 정서는 메트릭스 조직구조를 통해 타파할 수 있습니다. 직원들의 목소리는 쉽게 들을 수 있고, 고객에 대해서는 확실한 책임을 지는 게 이 구조의 장점입니다.”

 그는 또 오라클을 단순한 테크놀로지 기업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는 브랜드 기업으로 변모시키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변모시키겠다는 포부다.

 표 사장의 취임 후 두 달을 넘기면서 한국오라클은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먼저 2010년의 오라클 미래를 설계하는 ‘비전 2010’을 구체화하는 중이다. 미래의 비전을 구체화하는 작업은 본사가 하는 게 아니라 직원들에 의해 이뤄진다. 이를 위해 한국오라클은 지난 10월 하순 150여명의 직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워크숍을 개최하고 구체적인 세부계획을 설정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IT 기술의 공급자가 아닌 국내 기업들의 비즈니스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겠다는 포부이기도 하다.

 또 6년 만에 신입사원 채용을 부활했다. 최근 피플소프트 및 시벨 인수 이후 본사의 지시로 각국 지사의 신규채용이 보류된 상태이지만, 한국의 경우는 표 사장의 강력한 의지에 대해 본사가 전폭적인 지원을 보내고 있는 반증이라는 평가다. 이번에 채용하는 신입사원에게는 2년간 1억원의 교육비를 투자할 것으로 알려져 업계의 부러움도 사고 있다.

 “사실 글로벌 IT 기업들이 전문인력을 독차지하면서 단물을 빼먹는다는 비난을 받은 게 사실입니다. 이번 신입사원 채용은 전문인력 양성은 물론 대학을 졸업하면 가장 가고 싶은 회사로 한국오라클를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표 사장은 신입직원들은 6개월 정규교육, 1년 동안은 각 부서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게 되며, 교육 후에는 한 분야가 아닌 오라클의 전체적인 비즈니스를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사회에 기여하는 방안 중 하나로 R&D센터 설립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정보통신부 등 부처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부지선정을 위한 검토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그는 “현재 6개 중점 부문과 국내 파트너, 구체적인 실행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정통부 등과 협의를 진행하는 중이라서 투자규모 등 구체적인 모습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 다음 가는 연구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설립 시기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가 될 겁니다”라고 귀띔했다.

 표 사장은 한국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나가기 위해 더욱 다양한 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수·연구원·SI 업체

 사장 거친 스타 CEO


 표 사장은 IT 업계에서는 스타 CEO로 불린다. 그는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도미해 카네기멜론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미국 시라큐스대, 켄터키대 등에서 7년간 교수생활을 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뭔가 다른 것을 찾아 대학보다 기업체 연구직으로 들어갔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삼성종기원에서 주전산기 관련 연구를 했으며, 삼성전자 연구개발 담당임원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이 더 좋아 경쟁사인 현대전자로 옮겼다. 현대전자에서 중형서버 개발 업무를 했다. 기술력은 충분했지만, 한국 소프트웨어 브랜드의 한계와 자금력 부족에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이후 정몽헌 회장의 권유로 현대정보기술 사장이 되면서 본격적인 경영자의 길을 걸었다. 우리은행 CIO와 우리금융정보시스템 사장을 거쳐 지난 10월 한국오라클 지사장직을 맡았다.

 그는 한국오라클 지사장직 제의를 받았을 때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한다.  대학교수와 연구원, CEO 등의 경력을 인정받아 명지대에 교수직을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라클의 거듭된 요청과 대학 측의 산학협력에 대한 필요에 따라 결국 지사장직을 수락했다. 현재 명지대 교수직은 휴직 상태다. 그는 오라클에서 자신의 임무를 마치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최근 한국오라클은 IBM, NCR, SAP 등 경쟁사들의 위협적인 공세로 인해 한국시장에서 상당한 수세에 몰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타 CEO’ 표삼수 사장을 맞은 한국오라클이 한국의 IT 리딩 기업을 향해 순항할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