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은 내 마음대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노하우, 즉 대인관계에서 필요한 유머에 대해 알아보자. 내가 상대의 얼굴을 보고 환히 웃으면 신뢰감이 높아지고, 나아가 상대를 한번이라도 웃길 수 있다면 경계의 벽은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웃음을 만국 공통의 여권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콘크리트 벽에다 대고 아무리 소릴 지르고 총칼로 공격을 해봐야 벽은 꿈쩍하지 않는다. 물건을 파는 거래 관계가 아니라면 마음의 벽이 있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협상과 설득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대인관계와 비즈니스 현장에 웃음소리가 나온다면 이미 그 협상과 설득은 반 이상 성공한 것이다. 어떠한 비즈니스도 결국은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고, 웃음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 있다. 협상에 성공하려는 자, 유머를 익혀라. 동서고금의 이름난 유머리스트들을 잠시 소개한다.

 하루는 석가모니가 제자들과 길을 가는데 동네 불량배가 “개 같은 놈, 소 같은 놈” 하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내뱉으면서 시비를 걸었다. 그러나 석가는 그런 상황에서도 미소를 지었다. 제자들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스승님, 그런 욕을 듣고도 웃음이 나오십니까?”

 “제자여, 이 금덩어리를 자네가 내게 주면 내 것이 되지만, 만일 필요 없다고 내가 받지 않으면 도로 자네 것이 되네. 난 아까 그 욕을 받지 않았다네.”

이 여유와 지혜 있는 태도에 감동받은 불량배는 그 날로 석가모니의 문하로 들어와 열 손가락 안에 꼽는 수제자가 되었다.

 유머는 이렇듯 위기를 극복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서도 성공할 수 있게끔 해준다.

 우리 선조들 중에도 뛰어난 유머로 긴장과 갈등을 해결했던 사람들이 많은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세조이다. 어느 날 세조는 구치관이란 사람을 새로운 정승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구치관은 전임자였던 신숙주와 매우 불편한 관계였다. 그걸 눈치챈 세조는 전임자와 후임자를 어전에 불러놓고 임금의 물음에 틀리게 대답하면 벌주를 내리겠노라고 말한 다음, 두 사람을 번갈아 부른다.

 세조 : 신 정승!

 신숙주 : 예, 전하.

 세조 : 내가 언제 신(申) 정승을 불렀소? 신(新) 정승을 불렀지. 자, 벌주를  드시오. (신숙주가 벌주를 마신 후) 구 정승!

 구치관 : 예.

 세조 : 허허, 난 구(具) 정승이 아니라 구(舊) 정승을 부른 게요. 벌주! (구치관이 벌주를 마신 후) 신 정승!

 구치관 : 예.

 세조 : 또 틀렸군. 이번에는 신(新) 정승이 아니라 신(申) 정승을 불렀는데….

 세조는 이렇게 그날 두 사람을 잔뜩 취하게 만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그때까지 서로 으르렁거리던 신숙주와 구치관은 임금 앞에서 자연스레 화해를 했다고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유머경영이다. 이 정도면 우리 민족의 유머감각도 세계 수준 아닌가? 반면 지금의 신문을 도배하고 있는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조상 뵙기가 송구스럽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보통사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은 기업인,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사람은 정치인이 그것이다.

 학교에서 국회에 대해 배운 어린이가 집에 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국회에서 몇 명이나 일해요?”

 그러자 아빠가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했다.

 “글쎄, 반이나 일할까?”

 우리들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평가된다면 농담이라도 오싹할 지경이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절반의 사람들도 차라리 일하지 말고 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이젠 우리 정치도 좀 세련된 모습으로 환골탈태하기 바란다. 성공하는 정치인이 되려면 우선 멱살 잡고 욕하는 싸움꾼 정치인에서 유머형 정치인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우리가 시정잡배같이 “너 말 다 했어? 죽인다!” 하고 싸울 때, 선진국에선 독을 품고 말하는 상대방에게 “성경 시편 58편 4절 구절이 떠오르는군요”라고 말한다. 그럼 일단 상대가 헷갈린다. “뭔 말이여 저게?” 나중에 집에 가서 성경을 찾아보니 ‘독사 같은 자’라고 쓰여 있다.

 같은 욕을 해도 직접 하는 것과 유머러스하게 돌려서 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실패할 사람은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원수로 만든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친구로 만든다. 1년, 2년 지나면 두 사람은 대인관계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된다. 비난하는 말과 감사하는 말, 주로 상대방의 단점이 보이느냐 아니면 장점이 보이느냐는 차이이기도 하다. 세상에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부가 잡은 고등어로 안동 사람들이 만든 자반고등어를 오늘 아침에 집사람이 마트에서 사왔고, 어머니가 구워 줘 먹었다. 농부가 경작한 쌀로 밥을 해먹고 기술자가 만든 자동차를 타고 시내에 나갔다. 건강 지도자들의 도움으로 요가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와 언론인들이 만든 신문을 보았다. 오후에 지자체 공무원들이 기안하고, 도로공사 직원들이 만든 고속도로를 이용해 기업체 연수원에 가서 강의를 했다. 강의 중간에 생수회사에서 만든 생수를 마셨다. 세무서에서 만든 원천징수영수증을 받아서 집에 돌아오니, 학교 선생님에게 지도받은 대로 우리 딸이 아빠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다.

 내가 혼자 열심히 노력해서 잘 먹고 잘산다는 건 뜬구름처럼 허망한 주장이다. 세상이 이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아가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인간은 서로에게 감사하며 살아야 마땅하지만, 실상은 서로 반목하고, 질투, 시기, 저주, 비난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많다. 특히 한국 사회는 부끄럽게도 유머보다는 증오, 웃음보다는 핏대가 많기로 유명하다. 노사갈등!, 부부갈등!, 지역갈등!, 종교갈등!, 세대갈등! 우리끼리 큰소리치며 진을 다 빼놓으니 그 틈새를 이용해서 중국이 고구려땅을 노리고 일본이 독도를 탐내는 게 아닌가?

 유난히 큰소리가 많은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유머 한마디면 요란한 소음을 줄일 수 있다. 유머형 인간이 되는 건 방법적 문제라기보다 의지의 문제다. 오늘부터 대인관계 윤활유인 유머를 도입해 보자. 안 되면 먼저 남의 유머에 웃어 주기라도 해보자. 대인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세 가지 요령으로 글을 끝낸다.

 “당신 말이 맞아요.”

 “일리가 있네요.”

 “하긴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