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 흔히 ‘사랑에 빠지면 눈이 먼다’고 한다. ‘눈에 콩깍지가 씌웠다’고도 한다. 상징적인 표현들이다. 그런데 최근 영국의 과학자들이 뇌 촬영을 통해 그것이 사실임을 입증해 냈다. 사랑에 빠지면 뇌에서 비판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의 활동이 멈춘다는 것이다. 그 대신 긍정적인 관계 유지를 돕는 호르몬인 옥시토신(Oxytocin)이나 바소프레신(Vasopressin)에 직접 반응하는 뇌기능은 더욱 활성이 된다고 한다. 이는 감정이 우리한테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대부분 생각이 아니라 감정에 따라 행동한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심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고 하자. 우리는 머리로는, 즉 생각으로는 불안감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 닥쳐서는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고 일을 그르칠 때가 더 많다. 우리의 행동을 유발하는 데에는 생각보다는 감정이 더 큰 힘을 갖고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생각이 엔진이라면 감정은 가솔린”이라고 말했다.

 분노의 감정으로 괴로울 때는 어떠한가? 우린 어떻게든 그 감정을 풀어버리려는 행동을 하게 된다. 분노를 일으킨 대상을 향해 폭언이나 폭력을 서슴지 않거나 혼자서 홧김에 술을 마시거나 친구를 불러내 한바탕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그도 아니면 혼자서 머리를 쥐어뜯기라도 한다.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화를 풀려는 일련의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지 그 정체를 드러낸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게 신체적 반응이다. 예를 들어, 분노감은 발열감이나 몸의 경직 혹은 떨림으로 나타날 때가 많다. 불안감은 빈맥(頻脈),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우울할 때는 소화장애, 불면증 같은 신체반응이 나타난다. 따라서 감정을 잘 조절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인 셈이다.

 그런데도 우린 그처럼 중요한 감정의 행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물론 의학적으로 우리의 뇌, 그 중에서도 변연계가 감정을 조절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감정의 최종 목적지이자 결과물인 행동에 대해서만 지각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행동하는 동안에는 잘 모른다. 대개는 행동을 한 후에야 깨닫는다.

 그러고 보면 때때로 우리의 인생이 온통 후회뿐이라고 느끼는 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인생에서 갈등과 후회를 줄이려면 감정에 대해 제대로 알고 그걸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방법을 알아보자.

 첫 번째 방법은 감정이 주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려면 마음속에 느껴지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세심하게 살펴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는 그걸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느껴지는 감정대로 표현할 것인지, 그걸 승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표현하지 않고 자기 안에서 소화시킬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겉으로 표현한다면 직접적으로 할 것인지, 간접적으로 할 것인지, 그 수위는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등 이런저런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감각훈련은 곧잘 하면서도 감정훈련은 두려워한다. 감정 그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자기 힘으로는 조절할 수 없는 무슨 괴물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 역시 감각처럼 선택하고 조절할 수 있다. 대개 우리는 자기의 감정에 놀라 더욱 감정적이기 쉽다. 불안하다는 사실 때문에 더 불안하고, 우울하다는 사실 때문에 더 우울하고, 분노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 분노한다. 따라서 감정을 느낀 그 순간에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 살펴보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할지 선택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신의 감정과 친숙해져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건 감정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또 그만큼 친숙해질 때 대처법도 보다 확실히 보이는 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일기를 써 보는 것도 좋다. 대인관계에서 주로 경험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어떤 감정을 어떤 식으로 경험했는지 육하원칙에 따라 간략하게 적어 보는 것이다.  그런 다음 빈도수를 조사해 보면 평소 자신이 가장 많이 경험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이 자신을 지배하는 핵심감정이다.

 핵심감정이란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보다 주목하고 더욱 조절해야 하는 감정이다. 그리고 이 감정은 사람마다 각각 다르다. 융은 “사람마다 자기만의 비밀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아는 게 그 사람을 이해하는 핵심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 보면, 각자 지닌 비밀과 그 사람의 핵심감정이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한 사례로,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는 사람과 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핵심감정이 ‘억울함’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 점을 일러 주자 갑자기 그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때까지 신체적 증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지냈던 사람이 지난 시절 자기가 겪은 억울한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동안 자기의 억울함을 어느 누구도 몰라줬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억울함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더 억울했노라고 말했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어느 기업의 한 임원은 불안감이 핵심감정이다. 그는 평소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화를 잘 내는 것 때문에 곤란을 겪곤 했다. 어느 날인가 역시 심한 분노발작을 경험한 끝에 상담을 받기에 이른다. 상담 결과, 그는 자신의 핵심감정이 불안이란 걸 알게 되었다. 늘 불안하니까 제대로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니 계속해서 짜증과 화를 되풀이하고, 그 결과 공격적이고 적개심이 가득 찬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그는 가족이나 회사 동료, 부하직원들한테 화를 참지 못하는 것에 내심 크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스스로를 문제가 많고 나쁜 사람이라고 여길 때도 많았다. 그런데 사실은 자신이 분노하는 원인이 불안감 때문이란 걸 알자,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자 당연히 화 낼 일도 점차 줄어들었다.

 세 번째, 핵심감정을 알았다면 이번에는 그걸 마음에서 풀어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말로 핵심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동안 응어리지고 쌓였던 감정을 방출하는 데 말로 표현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그건 젊어지는 비결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발표된 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나이보다 8년 이상 젊어지려면 매일 친구에게 전화해서 수다를 떠는 게 비결이라고 한다. 수다를 통해 감정 찌꺼기를 남기지 않음으로써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건강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정신적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게 원인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자기 안에 있는 문제를 다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있을 때와 그 모든 문제를 혼자서 삭혀야 할 때 우리의 정신 상태는 180도 다르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숨김없이 털어놓는 상대가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것이다.

 만약 그런 상대가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라. 그리고 말로 표현하는 훈련을 하라. 특히 남성의 경우,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에 말로 표현하는 걸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쌓아놓으면 문제가 커지기 십상이다. 말로 하는 게 힘들면 먼저 글로 써 보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다.

 물론 처음부터 단번에 달라지기를 바랄 순 없다. 천천히 조금씩 훈련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좀더 발전하면 자신의 감정에 미루어 보면서 훨씬 쉽게 다른 이의 감정까지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또 대인관계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