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경 홀리워터컴퍼니 대표 서울대 경영학, 국제 공인맥주 심사관 자격증 취득(2017년) 사진 박순욱 기자
김태경 홀리워터컴퍼니 대표 서울대 경영학, 국제 공인맥주 심사관 자격증 취득(2017년) 사진 박순욱 기자

전통 발효제인 누룩 대신 에일 맥주 효모를 사용한 신개념 막걸리가 등장했다. 그런데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마크 홀리(Mark Holy)’, 마크 홀리를 여러 번 소리내 읽다 보면 ‘막걸리’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된다. 

마크 홀리 탄생에는 특별한 페르소나(가상 인물)가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엔지니어를 꿈꾸던 외국인 마크 홀리가 한국에서 맛본 막걸리에 빠져,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막걸리 마크 홀리를 내놓았다는 스토리텔링도 남다르다. 마크 홀리 막걸리는 지난 5월부터 인터넷 판매를 시작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힙한 막걸리’로 벌써부터 유명세를 타고 있다. 마크 홀리 막걸리 맛 역시 간단치 않다.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를 쓰지 않는 대신, 김포 비무장지대 청정 지역에서 재배한 ‘참드림’ 쌀을 아낌없이 넣은 덕분에 쌀 향에서 비롯된 과일 향이 풍성하다. 멜론·요구르트·참외·바나나 향이 난다는 이들도 있다. 곡물에서 기인하는 천연의 단맛이 일품이다. 살짝 산미도 있어 ‘새콤달콤’하지만, 단맛이 신맛보다 훨씬 강하다. 단맛에 가려 신맛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질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단맛이다. 탄산감은 거의 없고, 보디감(한 모금 입에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묵직함)도 과하지 않다. 

마크 홀리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는 6도. ‘발효 후에 (알코올 도수를 낮추려고) 물을 엄청나게 넣었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마크 홀리를 냉장고에 며칠이나 세워 보관했는데도 뿌연 탁주 부분(쌀 고형물 때문에 탁해 보이는 부분)이 여전히 70~80%를 차지했다. 그만큼 쌀 함유량이 많다는 뜻이다. 일반 막걸리의 두세 배가량 많은 쌀을 사용해서 만든 술이 마크 홀리 막걸리다. 한 병에 7900원은 결코 ‘착한 가격’이라고 할 수 없지만, 국내 최고급 쌀을 아낌없이 사용한 점을 감안하면 비싼 술은 아니다. 

마크 홀리 양조장은 서울 성수동에 있다. 성수를 영어로 하면 홀리 워터(holy water)다. 마크 홀리 막걸리를 만드는 회사 이름이 홀리워터컴퍼니(이하 홀리워터)다. 홀리워터는 수제맥주 기업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이하 어메이징)의 자회사다. 김태경 대표가 6년 동안 100여 종의 수제맥주를 만든 경험을 쏟아부어 만든 신제품이 마크 홀리 막걸리다. 수제맥주 만들던 대표가 막걸리 양조장을 차린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경기도 이천에 맥주 공장을 둔 어메이징은 제2 공장을 최근 준공했다. 제1 공장 가동률이 100%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수제맥주 업계에서는 ‘메이저급’에 속한다. 편의점, 대형마트에도 이미 진출한 소위 ‘잘나가는’ 맥주 회사가 막걸리 양조장은 왜 차렸을까? 

어메이징의 대표이자, 자회사인 홀리워터의 최고경영자(CEO)인 김태경 대표를 서울 성수동 홀리워터 양조장에서 만났다. 어메이징의 1호 맥주펍 성수점 바로 인근에 있다. 

마크 홀리 막걸리에 사용되는 프렌치 세종 효모. 효모는 당분을 알코올로 바꾸는 기능을 한다.사진 박순욱 기자
마크 홀리 막걸리에 사용되는 프렌치 세종 효모. 효모는 당분을 알코올로 바꾸는 기능을 한다.사진 박순욱 기자
홀리워터컴퍼니 직원 김현수씨가 발효가 끝난 막걸리에 대한 품질 평가를 위해 술 일부를 따르고 있다. 사진 박순욱 기자
홀리워터컴퍼니 직원 김현수씨가 발효가 끝난 막걸리에 대한 품질 평가를 위해 술 일부를 따르고 있다. 사진 박순욱 기자

수제맥주 업계 메이저 기업인데, 막걸리 양조장을 차린 이유는.
“2016년에 맥주 사업을 시작했으니, 이제 만 6년 됐다. 하지만 맥주는 아직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지 않아, 사업 확장에 걸림돌이 있다. 반대로 막걸리는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 지역특산주 농업회사법인으로 설립했다. 곡물 발효주라는 측면에서 막걸리(쌀이 원료)와 맥주(보리가 원료)는 공통점이 있다. 어메이징(수제맥주)에서 쌓은 역량을 막걸리 양조에서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봤다.”

당화, 알코올 발효를 한 번에 하는 전통 발효제인 누룩을 쓰지 않은 이유는.
“누룩의 특징은 당화와 발효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지만, 같은 누룩을 쓰더라도 당화력, 발효력이 항상 일정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마크 홀리 막걸리처럼 물보다 쌀을 더 많이 쓰는 경우는 당화력이 중요한데, 당화력이 일정하지 않으면 매번 품질이 다른 술을 만들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술을 만들기 위해 당화제(정제 효소제), 발효제(맥주 효모)를 분리했다.”

맥주와 막걸리의 차이점은 뭐라고 보나.
“수제맥주는 스탠더드(기준)가 정해져 있다. 품질이 일정하다. 레시피가 영국, 미국 문헌에 딱 정리돼 있다. 막걸리는 다르다. 좋은 점이기도 하고 또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기도 한데, 조금 더 유동성(제조법이나 맛이 일정하지 않은 점)이 있는 것 같다. 가양주 형태로 발전해서 그런지 ‘막걸리는 꼭 이래야만 해’ 이런 정형화된 규칙이 없다. 우리는 제품 품질의 일관성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막걸리는 만들 때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는 게 단점이자 매력이다.”

마크 홀리에 사용한 효모는 어떻게 선택했나. 
“우리가 사용하는 맥주 효모는 프렌치 세종 효모다. 처음부터 이 효모를 쓰겠다고 정한 것은 아니고, 24종의 다양한 효모를 사용한 실험 결과를 토대로, 효모를 최종 선택했다. 당도, 산도, 알코올, 관능 평가(맛·향 등)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우린 맥주 생산 노하우가 있는 만큼, 효모에 더 집중하자고 해서 제빵용이 아닌 맥주 에일 효모인 프렌치 세종 효모를 선택했다.”

누룩이 아닌 맥주 효모를 쓴 의의는 어디에 있나.
“한마디로 다양성이다. 효모 종류가 많은 만큼, 다양한 효모를 막걸리 빚는 데 사용함으로써, 마크 홀리 막걸리의 다양성은 무궁무진해진다. 우리가 세종 효모로 시작했지만, 여기에 효모만 바꾸면 계속 변화가 가능하다. 마크 홀리는 음용성이 좋은 술이기 때문에 효모만 특색 있는 종류로 바꾸어줘도, 쌀과 효소제 비율을 바꾸지 않고도 충분히 다양성 구현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가상의 미국인, 마크 홀리가 만들었다는 스토리텔링을 만든 이유가 있나.
“이 스토리는 니콜라 부르바키(Nicolas Bourbaki)라는 수학자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1930년대 프랑스에서 활동한 수학자로, 훌륭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 수학자 집단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었다. 우리도 가상의 인물을 막걸리 브랜드로 내세우자고 했다. 이름을 정할 땐, 이곳 지명인 성수동을 고려했다. 성수를 영어로 하면 ‘홀리 워터’다. 그래서 막걸리 회사 이름을 홀리워터컴퍼니로 짓고, 거기서 가상의 인물을 따다가 막걸리와 유사하게, 음차(어떤 언어의 소리를 그 언어에서 사용하지 않는 다른 문자로 표기하는 일)해 와서 ‘마크 홀리’로 브랜드를 정했다. ‘마크 홀리가 만들고, 홀리워터가 생산하는 막걸리’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었다. 일종의 말장난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