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질스튜어트스포츠 ‘알파에어 트레이닝’ 컬렉션, K2 ‘포디엄 트레이닝 세트’, 디스커버리 ‘플렉스 레깅스’. 사진 LF·케이투코리아·에프앤에프
왼쪽부터 질스튜어트스포츠 ‘알파에어 트레이닝’ 컬렉션, K2 ‘포디엄 트레이닝 세트’, 디스커버리 ‘플렉스 레깅스’. 사진 LF·케이투코리아·에프앤에프

“상의는 셔츠를 입고 하의는 트레이닝 팬츠를 입고 일해요. 옷차림만 봐선 백수인지 직장인인지 알 수가 없죠(웃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5주째 재택근무 중인 직장인 박형준씨의 근무복은 셔츠와 트레이닝 팬츠다. 화상회의에 참석하더라도 웹캠에선 상체만 보이기 때문에, 하의는 편하게 입고 상의만 신경을 쓴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트레이닝 팬츠, 일명 ‘추리닝’이 집콕족(집에서만 지내는 이들)을 위한 패션으로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장기화하고 재택근무와 분산 근무제 등이 확산하면서 업무와 일상을 겸할 수 있는 홈웨어로 선호되는 추세다.

온라인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3월 한 달간 남성 트레이닝복 세트 판매가 전년보다 100% 증가했고, 외출 시 가볍게 입을 수 있는 후드 티셔츠 판매는 402% 늘었다. 여성용 레깅스와 트레이닝 팬츠, 루즈핏 티셔츠도 각각 116%, 103%, 82% 판매증가율을 보였다.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 스파오가 출시한 ‘액티브 라인’도 3월 매출이 지난해보다 2배 증가했다. 여성용 레깅스와 남성용 트레이닝 팬츠, 집업 재킷 등의 판매가 두드러졌다. 레깅스와 요가복 등을 판매하는 젝시믹스와 안다르도 올해 1분기 매출이 지난해 1분기보다 각각 125%, 35% 늘었다.

운동복의 일종인 트레이닝 팬츠와 레깅스가 인기를 끈 건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패션계에서는 몇 년 전부터 애슬레저(athleisure)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애슬레저란 운동(athletic)과 레저(leisure)의 합성어로, 운동복과 일상복을 겸할 수 있는 편한 옷차림을 말한다. 요가, 피트니스, 홈 트레이닝 등의 유행으로 성장세를 보였던 애슬레저는 코로나19로 집 안 생활이 보편화하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애슬레저가 집콕족을 위한 ‘집옷’으로 낙점된 이유는 기능성과 활동성, 범용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은 물론 운동할 때, 동네 슈퍼에 갈 때도 적당한 전천후 의상. 즉 원마일웨어(1mile wear)로 애슬레저를 선호하는 추세다.

이런 경향은 해외에서도 관찰된다.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셧다운(가동 중단)’이 본격화한 3월 셋째 주 온라인 패션 쇼핑몰 네타포르테의 트레이닝 팬츠 판매는 40% 증가했다. 미국 전역에 800여 개 매장이 있는 애슬레저 브랜드 부오리(Vuori)는 일부 매장을 폐쇄한 가운데도, 온라인 판매가 증가해 전체 매출이 50% 늘었다. 특히 조거팬츠의 판매가 2배 이상 증가했다.


1 배우 한예슬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 브랜드 폰디먼트. 사진 폰디먼트2 쥬시꾸띄르 애슬레저 라인.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3 좋은사람들의 애슬레저 브랜드 루시스. 사진 좋은사람들4 젝시믹스가 제안하는 애슬레저 룩. 사진 젝시믹스
1 배우 한예슬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 브랜드 폰디먼트. 사진 폰디먼트
2 쥬시꾸띄르 애슬레저 라인.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3 좋은사람들의 애슬레저 브랜드 루시스. 사진 좋은사람들
4 젝시믹스가 제안하는 애슬레저 룩. 사진 젝시믹스

트레이닝 팬츠와 레깅스에 밀린 바지

흥미로운 사실은 애슬레저 상품 판매가 호조를 보인 사이, 일반 바지 판매가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미국 월마트 경영진은 한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상의만 팔리고 하의가 팔리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재택근무자들이 허리 위(상의)만 걱정하고 바지는 편하게 입어서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정장에서 비즈니스 캐주얼, 실리콘밸리식 캐주얼로 진화한 근무복의 범주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애슬레저까지 확대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생활방식이 바뀌면 가장 먼저 옷차림이 바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예측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애슬레저는 자연스러움과 편안함, 길거리 감성을 추구하는 젊은 멋쟁이들의 옷으로도 선호된다. 최근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행하는 ‘스테이 앳 홈’ 챌린지 속 유명인들을 보면 하나같이 애슬레저 룩으로 패션 감각을 뽐냈다. 패셔니스타로 꼽히는 배우 한예슬은 트레이닝복과 레깅스 등을 판매하는 브랜드 폰디먼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이 국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3명이 애슬레저를 구매했고, 8명이 애슬레저에 호감을 보였다. 또 13%만이 ‘애슬레저를 운동할 때만 입는다’고 답했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 5000억원 규모였던 국내 애슬레저 시장은 올해 3조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패션 업계는 관련 상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수입·판매하는 캐주얼 브랜드 에드하디는 올봄 트레이닝복 신상품을 2배가량 늘렸다. 트레이닝복을 일상복으로 입는 MZ세대(1980~2004년에 출생한 밀레니얼+Z세대)를 겨냥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 대표 상품은 호랑이 도안이 들어간 옷으로, 지난해 가수 지코가 입어 인기를 끈 바 있다. 트레이닝복으로 유명한 여성복 쥬시꾸띄르도 상품의 25%를 애슬레저로 구성했다.

신규 상품군 출시도 줄을 잇는다. 스포츠 브랜드 휠라는 3월에 여성 특화 애슬레저 라인인 ‘휠라 스튜디오’를 선보였고, LF의 질스튜어트스포츠도 이번 시즌부터 ‘프리미엄 애슬레저’ 여성 라인을 본격적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속옷 업체인 좋은사람들과 그리티도 각각 루시스와 위뜨로 애슬레저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