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촌양조장 이동중 대표가 자사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대표는 40여 년 동안 막걸리, 청주, 소주를 빚어온 ‘전통술 달인’이다. 사진 박순욱 기자
양촌양조장 이동중 대표가 자사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대표는 40여 년 동안 막걸리, 청주, 소주를 빚어온 ‘전통술 달인’이다. 사진 박순욱 기자

충남 논산의 양촌양조장은 ‘100년 역사’를 자랑한다. 1923년 2월 이종진 1대 대표의 가내 주조로 문을 열었고, 아들인 2대 이명제 대표를 거쳐 손자인 이동중 3대 대표가 양조장을 계승하고 있는 100년 전통의 술도가다. 전국에 100년 양조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 아들, 손자가 대를 이어 3대째 같은 장소에서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이곳 양촌양조장 말고는 찾기 어렵다. 2016년에는 정부로부터 ‘찾아가는 양조장’에도 선정됐다. 이동중 대표는 군 제대 직후인 1978년부터 술 빚기를 시작, 40년 이상 한 장소에서 술을 만들고 있는 ‘술 빚기의 진정한 달인’이다.

양촌양조장 양조장 안에 있는 우물. 100년 가까이 막걸리 원료로 쓰고 있다. 사진 박순욱 기자
양촌양조장 양조장 안에 있는 우물. 100년 가까이 막걸리 원료로 쓰고 있다. 사진 박순욱 기자

양촌양조장 한복판에는 양조장과 100년 역사를 함께한 우물이 우뚝 버티고 있다. 이동중 대표의 설명이다. “1920년대 할아버지께서 가내 주조로 막걸리 사업을 하실 때부터 사용해온 우물이다. 6개월마다 실시하는 46개 항목의 수질검사를 다 통과해, 막걸리의 재료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이 지역은 옛날부터 청정지역이어서 지금도 근처에 공장이 들어설 수 없게 돼 있다.” 

양촌양조장 서까래 상량문에 ‘쇼와 6년 6월 9일’이라고 쓰여 있다. 쇼와 6년은 1931년으로, 이 대표의 할아버지가 정식으로 양조장을 세운 해다. 사진 박순욱 기자
양촌양조장 서까래 상량문에 ‘쇼와 6년 6월 9일’이라고 쓰여 있다. 쇼와 6년은 1931년으로, 이 대표의 할아버지가 정식으로 양조장을 세운 해다. 사진 박순욱 기자

양촌양조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있다. 건물을 지탱하는 서까래에 적혀진 상량문이다. 상량문은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친 내력, 까닭과 공사한 날짜, 시각 등을 적은 글을 말하는 것으로, 이곳 양촌양조장 상량문에는 ‘쇼와(제124대 일본 천황의 연호) 6년(1931년)’이라는 양조장 건립 연도가 적혀 있다. 이 대표는 “할아버지께서 1923년에 가내 양조장 형태로 술 양조를 시작하셨다가, 그 이후인 1931년에 양조장을 지어, 지금까지 한 장소에서 술을 빚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시대에 지어진 양조장 대부분이 일본식 건물 양식이지만, 양촌양조장은 한옥 스타일로 지어진 점이 독특하다. 1931년 목조건물로 건립된 양촌양조장은 지을 때부터 최상의 막걸리 양조를 위해 설계됐다. 천장과 벽 사이에 왕겨를 넣어, 재래식 통풍 구조를 갖춰, 막걸리 발효 시 나오는 높은 열과 습도 등을 자연적으로 밖으로 빼내 내부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오랜 세월, 술을 빚어온 우리 선조들의 혜안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양촌양조장은 막걸리, 청주, 소주를 생산한다. 우선 막걸리는 종류가 많다. 양촌생막걸리, 양촌생동동주, 우렁이쌀손막걸리, 우렁이쌀손막걸리 드라이. 이 중 양촌생막걸리와 양촌생동동주는 ‘동네 술’이다. 양조장이 있는 논산 일대에 주로 유통된다. 반면에 친환경 무농약 우렁이쌀로 만든 2종의 막걸리는 ‘전국 술’이다. 전국의 유명 전통주점에서 취급한다. 가격도 동네 술인 양촌생막걸리보다 두 배 정도 비싸다. 

양촌생막걸리가 ‘동네 술’이라고 얕잡아 보면 안 된다. 양촌양조장의 가장 대중적인 제품인 ‘양촌생막걸리’는 국내산 쌀, 밀, 누룩으로 만든다. 달지 않고, 담백한 맛이다. 2019년 ‘찾아가는 양조장 투어’에 동행한 허영만 화백은 “이곳 막걸리 중 양촌생막걸리가 가장 내 입맛에 맞다”고 했다. 이 대표는 “자연의 단맛을 더 내기 위해 양촌생막걸리는 완전 발효를 하지 않고, 당분을 일부 남긴다”고 말했다. 물론 감미료도 일부 들어간다. 우렁이쌀손막걸리 드라이, 소주 여유는 감미료를 쓰지 않는다. 

양촌양조장이 2015년에 새로 내놓은 ‘우렁이쌀손막걸리’는 우렁이 농법으로 100% 무농약 재배한 논산 햅쌀로 빚은 막걸리다. 발효 기간(20일)이 기존 제품(8일)보다 세 배 이상 길다. 알코올도수도 7.5도로 다소 높다. ‘우렁이쌀손막걸리 드라이(블랙라벨)’는 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은 제품으로 역시 달지 않다. 첨가물을 넣지 않는 대신, 술 원료로 멥쌀이 아닌 찹쌀로 빚었다.

다음에 소개할 술은 우렁이쌀청주다. 발효 기간만 30일. 밑술은 멥쌀, 두 번의 덧술은 찹쌀을 사용한다. 전통 누룩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주세법상 약주가 아닌 청주로 분류된다. 가격은 1만6000원. 국내 최대 전통주점인 서울 백곰막걸리에서도 인기리에 팔린다. 이 대표는 “우렁이쌀청주에 전통 누룩을 쓰지 않는 이유는 안정적인 술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용하는 입국 누룩은 잡균이 없어, 술맛이 늘 일정하다는 설명이다. 

누룩 얘기가 나온 김에 누룩은 어디 걸 쓰느냐고 물었다. “흩임 누룩(곡물의 낱알이 떨어져 있는 누룩)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사용한다. 누룩 실이 따로 있다. 양촌양조장의 모든 술은 직접 만든 누룩으로 발효시킨다. 우렁이쌀청주에는 백국균이 주로 들어가지만, 일부 황국균 누룩을 쓴다. 그러면, 술이 부드럽고, 향이 더 독특하다. 청주 빚을 때는 1차 덧술에는 백국균 누룩, 2차 덧술에는 황국균 누룩이 들어간다. 효모 발효과정에서 나는 사과, 바닐라 향이 있다. 발효주는 독특한 향이 있어야 한다.”

양촌양조장이 최근에 내놓은 술은 소주 ‘여유’다 19도, 25도, 40도 세 종류가 있다. 18도 정도의 술덧을 증류한다. 1000L를 증류하면 370L의 45도 소주가 생산된다. 증류는 한 번만 한다. 여유 소주는 바닐라, 사과 향이 난다. 곡물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나는 기분 좋은 향이다. 한국식품연구원과 기술 제휴해서 만든 술로, 2022년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대상(소주 부문)을 받았다. 이 대표는 “소주 중에서는 25도 여유 소주가 가장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역사가 오랜 양촌양조장은 다른 양조장과 다른 게 또 하나 있다. 보물급 유산들이 많다. 이동중 대표는 선대 조상이 영조 임금으로부터 직접 받은 족자인 ‘군신제회도’ 등 집안에서 오랫동안 보관해온 2500여 점의 ‘집안 유물’을 충남역사박물관에 기탁했다. 이 족자는 1726년(영조 2년) 12월 영조가 희정당에서 친정(親政)하는 자리에서 신하들에게 술을 하사하고, 시를 짓게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양승조 전 충남도지사는 지난 3월, 이동중 대표에게 ‘한국유교문화진흥원 명예회원’ 패를 보냈다. 보물급 유물들을 지방정부에 기탁한 공로를 인정해, 도지사가 감사패를 보낸 것이다. ‘100년 양조장’과 직접 관련된 일은 아닐지라도, 한 곳에서 수백 년을 살아온 명망가 집안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