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동에 위치한 결제플랫폼 회사 머지플러스 본사에 환불을 요구하는 가입자들이 모여 있다. 사진 연합뉴스
8월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동에 위치한 결제플랫폼 회사 머지플러스 본사에 환불을 요구하는 가입자들이 모여 있다. 사진 연합뉴스

8월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머지플러스 본사 앞에는 난데없이 긴 행렬이 늘어섰다. 문화상품권이나 기프티콘과 같은 상품권의 일종인 머지포인트 운영사인 머지플러스가 8월 11일 저녁 공지를 통해 “서비스를 선불전자지급 수단으로 볼 수 있다는 금융 당국 가이드를 수용해 이날부터 적법한 서비스 형태인 음식점업을 제외한 편의점, 마트 등 타 업종에서의 포인트 사용은 법률 검토가 나올 때까지 사용할 수 없다”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급작스러운 발표에 머지포인트 환불을 요구하는 서비스 가입자 수백 명이 몰렸다. 

머지플러스는 권남희 대표가 동생 권보군 최고운영책임자(CSO)와 설립한 회사다. 지난해 말 기준 자본금은 30억3000만원이다. 가입자가 상품권 역할을 하는 머지포인트(선불충전금)를 선구매해서 대형마트, 음식점, 편의점 등에서 현금 대신 쓰는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머지플러스 정액권을 구입해서 6만여 개 가맹점에서 무제한 20% 할인을 누리는 구독형 서비스도 제공했다.

머지포인트는 사업자 입장에서 자금흐름에 긍정적이고, 단기 운용으로 이자 수익 등을 거둘 수 있다. 일종의 ‘뱅크런(은행의 예금 대량 인출)’ 사태처럼 환불이 지연되자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미등록 업체라 개입이 어렵다”던 금감원은 뒤늦게 대응에 나섰고, 재무제표 제출을 거절한 머지플러스 관계자들을 8월 18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서울경찰청은 이날 오후 수사에 착수했다. 

머지포인트 사태를 계기로 일상생활에서 폭넓게 쓰이는 선불충전금의 관리·감독 실태가 비판받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등록된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 및 관리업자(이하 선불업자)’는 총 65개사로 이들이 발행한 선불충전금 예치 잔액은 2조4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 규모는 등록된 선불업자만 추산한 것이다. 머지플러스 같은 미등록 선불업자의 경우 업체 수와 발행 액수 등 자세한 부분은 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머지플러스는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이하 전금법)에서 규정한 선불업자로 등록하지 않고 3년 동안 영업을 이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자본금 약 30억원의 회사가 약 2000억원의 금액을 굴린 것으로 알려졌다”라며 “사업 확장을 위해 벤처캐피털(VC)로부터 투자 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금융 당국에 갑자기 덜미를 잡힌 경우”라고 전했다.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 등 디지털 금융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금융 당국의 감시 체계나 이를 뒷받침할 제도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드러난 사례라는 지적이 많다. 머지포인트 사태 원인 중 하나로 우선 지목되는 것은 금융 당국의 시장 감시 능력 부족이다. 이는 머지포인트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고 알려졌기 때문에 금융 당국이 일일이 챙기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 금융사 고위 관계자는 “금감원은 그간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비자 피해에는 관심이 적었다”라며 “결국 시장 감시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쟁점은 만약 머지포인트가 선불업자로 등록했다면 문제가 없었을까 여부다. 고객이 맡긴 선불충전금은 일종의 예금 성격이 있어서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전금법에는 선불충전금을 외부 기관에 별도로 보관하도록 하는 등의 의무 규정이 없다. 이는 2006년에 제정된 전금법이 별다른 개정 없이 유지된 까닭에 최근 급속히 늘어난 다양한 핀테크 서비스에서 소비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는 증거다.

문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에 따른 비대면 결제 확대로 선불충전금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선불충전금 예치 잔액은 2015년 말 약 9000억원에서 올해 3월 말 2조4000억원으로 증가했다. 2017년 말(약 1조4000억원)에서 2019년 말(약 1조7000억원)까지 3000억 늘어난 데 그쳤으나 코로나19가 확대된 2020년을 포함해 15개월간 7000억원 증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전자금융 서비스를 하는 업체가 선불충전금을 은행 등 외부에 예치하거나 신탁·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법안 내용 가운데 핀테크 업체에 별도 계좌 개설 권한을 주는 방안이 은행의 반발을 사 국회 논의는 공전하고 있다. 

선불충전금 이용자 보호 규정은 관련 기관 사이 쟁점이 없는데도 다른 이슈 때문에 법안 심의가 지연되는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용우 민주당 의원(전 카카오뱅크 대표)은 ‘이코노미조선’과 통화에서 “선불금 자동충전 등 사실상 계좌 성격이 있는 서비스가 계속 나오고 있다”라며 “개정안 가운데 선불충전금 외부 예치 의무화 등 이용자 보호 규정을 중심으로 우선 개정하는 식의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한 다른 전문가들은 유사 수신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관리·감독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장을 왜곡시키고 소비자 보호 수단이 없어 피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이번 사태는 머지플러스 서비스가 새로운 것인 양 초점이 맞춰져 있는 데다 관리·감독 체계에 빈틈이 많아 일어난 것”이라며 “전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선불충전금 등을 포괄적인 유사 수신 행위로 보고, 금융 전문가들이 지속해서 사각지대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사 수신 행위는 사실 적발이 쉽지 않다. 소비자들도 과도한 혜택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태를 규제 사각지대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라며 “‘선불’이라는 개념을 폭넓게 ‘금융’으로 접근해 관리·감독 체계를 개정하고 강화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 의원은 “전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제2의 머지포인트 사태는 재발할 수 있다”라며 “문제가 발생하면 징벌적 배상 등의 강력한 제재로 일벌백계하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Plus Point

쿠팡도 미국 상장 직전 선불충전금 보호 조치 시행

대형 전자상거래 업체 쿠팡도 지난해 고객의 선불충전금(쿠팡페이) 보호 조처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가 올 3월 뉴욕증시에 상장하기 직전에 선불충전금 신탁·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뉴욕증시 상장을 앞두고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뒤늦게 제도 개선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왔다.

쿠팡은 3월 초 홈페이지에 “쿠팡페이는 이용자 자금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선불충전금의 50% 이상을 이용자를 수익자로 해 신탁하거나 이용자를 피보험자로 해 지급보증보험에 가입했다. 나머지 50%도 안전자산으로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라고 공지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외부에 예치하지 않고 있는 쿠팡페이 잔액은 693억원에 달했다.

앞서 금융 당국은 ‘전자금융업자의 이용자 자금 보호 가이드라인’을 통해 지난해 9월부터 사업자로 하여금 선불충전금을 보호하도록 권고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2년의 권고 기간을 거쳐, 2022년 9월 28일부터 정식으로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