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구 나노종합기술원에서 연구원들이 12인치(300㎜) 반도체 패턴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대전 유성구 나노종합기술원에서 연구원들이 12인치(300㎜) 반도체 패턴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현 반도체공학회 부회장, 전 삼성전자 상무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현 반도체공학회 부회장, 전 삼성전자 상무

삼성전자 주가가 최근 작년 12월 이후 최저 수준인 7만4000원대로 급락한 배경에 메모리 반도체 업황 둔화 우려가 지목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구조의 취약성이 또다시 부각되고 있다. 메모리에 편중된 ‘반도체 코리아’의 구조개편이 시급함을 다시 확인시켰다는 것이다. 올 2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에서 반도체는 55%를 차지했고, 대부분 메모리가 기여했다.

반도체 제품은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로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메모리 반도체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데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D램과 플래시(Flash) 메모리가 대표적이다. 시스템 반도체는 연산, 제어 같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시스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기업(파운드리)과 이를 설계만 하는 전문기업(팹리스) 두 축으로 구성된다.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중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삼성전자(42.1%)와 SK하이닉스(29.5%) 두 기업이 차지하는 전 세계 D램 점유율은 약 71.6%에 달한다. 

하지만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보면 상황이 다르다. 파운드리는 대만의 TSMC 한 개 기업이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의 55%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 2위 업체이긴 하지만 점유율은 17%로 1위 업체 TSMC와의 격차가 매우 크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매출의 98%가 메모리 반도체에서 나온다. 

시스템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글로벌 팹리스 기업 10위권에는 한국 기업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지난해 한국 기업들의 팹리스 글로벌 시장 점유율도 1.6%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팹리스 글로벌 상위 3개 기업(퀄컴, 브로드컴, 엔비디아)은 모두 미국 기업이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35%에 불과하지만,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65%를 차지할 정도로 훨씬 규모가 크다. 국내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선 메모리 반도체 편중에서 벗어나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이 개별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맞춤형 소비시대를 앞당기면서 시스템 반도체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공급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를 합성한 프로슈머(prosumer)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는 제품의 개발 주체가 제조 업체에서 소비자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소비자, 즉 고객의 의견을 반영한 기능을 제품에 넣으려면 반도체 부품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시스템 반도체다. 여러 기능이 있는 가진 시스템을 하나의 칩으로 구현한 ‘시스템온칩 (SOC·System On Chip)’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코로나 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가속화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SOC의 수요를 더욱 늘리고 있다. 


스마트폰도 시스템 반도체가 좌우

시스템 반도체들은 스마트폰에 많이 들어 있다. 스마트폰은 피처폰(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휴대전화)과 달리, 전화기 기능이 꺼지지 않는 손안의 개인 컴퓨터다. 컴퓨터가 가지고 있는 중앙처리장치(CPU) 보드, 그래픽 보드, 랜카드(LAN card), 사운드 카드(sound card) 등을 반도체 칩으로 만들어 스마트폰에 탑재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모든 칩이 시스템 반도체들인 셈인데, 스마트폰 안에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중에서 가장 핵심인 시스템 반도체는 응용프로세서(AP)다. AP는 전체적으로 다른 반도체 칩들을 제어하므로 사람의 두뇌에 비유하기도 한다.

AP 성능은 크게 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성능에 좌우된다. GPU의 역할은 그래픽과 영상 데이터를 화면에 표시해 주거나 게임의 3차원(3D) 그래픽을 처리해 준다. 최근에는 신경망처리장치(NPU)가 별도로 들어간다. 딥러닝 모델을 기존의 CPU와 GPU 등으로 구현하려면 전력이 너무 많이 소모되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별도 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스마트폰 선두 기업인 삼성, 애플은 AP를 자체 개발해서 자사 스마트폰에 적용하고 있다. 자사 스마트폰만의 차별화된 성능과 기능을 반도체에 만들어 넣을 목적 때문이다. 갤럭시 첫 모델인 갤럭시S1에 사용됐던 AP는 삼성이 자체 개발했는데, 최초로 H.264 동영상 코덱을 소프트웨어에서 하드웨어로 구현하면서, 카메라로 동영상 촬영 시 전력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삼성이 AP를 자체 개발해서 갤럭시 제품의 경쟁력을 높인 대표적인 사례다. 

스마트폰에는 이 밖에도 많은 시스템 반도체가 사용된다. 기지국과 스마트폰 간에 통신을 위한 모뎀 칩이 있다. 카메라의 핵심 부품인 이미지 센서 칩도 시스템 반도체다. 


자율주행차 핵심도 시스템 반도체

우리나라가 시스템 반도체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이 산업이 단순히 시장 규모가 커서가 아니다. 제품(세트) 경쟁력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서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현대자동차 전기차 아이오닉5 등을 생산하는 울산1공장은 지난 4월 일주일간 휴업에 들어갔다. 차량용 시스템 반도체인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을 구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었다. 

자율주행차를 예로 들면 시스템 반도체의 중요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핵심은 시스템 반도체와 구동하는 소프트웨어에 있다. 인간의 시각, 청각 등을 대체하는 기술로 지형지물과 거리를 인식하는 것은 카메라와 라이다(LiDAR)가, 거리 측정에는 레이더(Radar)와 초음파가 사용된다. 이러한 센서들과 이를 처리하는 시스템 칩, 소프트웨어가 하나의 모듈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이다. 센서들로부터 취합된 수많은 정보는 ADAS에 있는 시스템 반도체에서 처리된다. 이것이 자율주행 자동차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시스템 반도체 개발(설계) 능력이 미래 자율주행 자동차 산업을 주도할 핵심 열쇠인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제조업 강국이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제조업과 시스템 반도체는 매우 관련성이 높다. 제품의 경쟁력이 시스템 반도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대표되는 기술인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5세대(5G) 네트워크가 만들어 내는 미래 먹거리 사업은 자율주행 자동차, 스마트팩토리, 스마트시티, 헬스케어 등으로 모두 우리나라를 이끌 중추 산업이다. 자체적으로 시스템 반도체 개발할 능력을 갖추어야만 남보다 앞설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인력 육성이 매우 중요하다. 메모리 반도체는 설계도 중요하지만 대규모 장치 투자 사업이다. 그에 비해서 시스템 반도체 사업은 창의적 지식이 중요한 인력 육성 사업이다. 대학과 정부, 기업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