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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조7000억원대 환매 중단 사태로 이어진 국내 1위 사모펀드 운영사 라임자산운용(이하 라임) 펀드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라임 사건은 2015년 사모펀드 규제 완화 이후 금융 당국의 부실한 관리·감독, 자산운용사의 도덕적 해이, 판매사의 수수료 욕심 등 구조적 문제가 불러온 결과다.

투자자들은 퇴직금, 노후 자금, 주택 자금 등 자산을 볼모로 잡힌 채, 수년간 기약 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는 2021년 7월 라임 펀드를 판매한 대신증권이 피해자들에게 최대 80%에 달하는 투자금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조정위 결정이 나오자 소송을 준비하던 피해자들은 혼란스러웠다. 긴 시간이 걸리는 재판보다 눈앞에 보이는 과실이 더욱 달게 보여서였다.

법무법인 우리 김정철(사법연수원 35기) 대표변호사는 피해자들에게 신뢰를 주기로 했다. 김 변호사는 의뢰인들에게 “첫 소송인 만큼 승소를 통해 다른 피해자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하자”고 설득했다. 선행 소송인 재판에서 승리하면 이후에 진행될 다른 소송에서도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라임자산운용 홈페이지
사진 라임자산운용 홈페이지

“피해자 투자금 전액 반환하라”…사기에 의한 계약 취소 첫 판결

라임은 모자(母子)펀드 구조를 이용했다. 모자펀드는 일반 투자자의 돈을 모은 자(子)펀드가 모(母)펀드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자펀드는 주식, 채권 등에 직접 투자하는 대신 모펀드에 돈을 투입하고, 모펀드가 투자금을 운용해 내는 수익을 나눠 갖는다.

라임은 가입과 환매가 언제든 가능한 개방형과 가입 이후 만기까지 환매가 불가능한 폐쇄형 펀드를 모두 운용했다. 환매란 펀드에 묶인 돈을 가입자가 계약을 해지하고 자산운용사로부터 돌려받는 것이다. 자산운용사가 투자자에게 환매할 돈이 없는 상황을 환매 중단이라고 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개인 4035명과 법인 581개 사가 총 1조6679억원의 피해를 봤다. 반포WM센터를 주축으로 라임 자펀드 상품을 판매한 대신증권의 미상환액은 1800억원이 넘었다. 대신증권을 통해 라임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 네 명은 판매사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냈다. 대신증권 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우리는 대신증권 측이 펀드 수익성과 위험성에 대해 허위 사실을 고지하거나 중요 사항을 고지하지 않는 등 착오를 일으켜 펀드 투자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법 제109조(착오로 인한 의사표시)나 제110조(사기·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에 따라 매매 계약을 취소하니 펀드 가입 대금을 돌려달라고 했다.

법원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부장판사 문성관)는 4월 28일 투자자들이 대신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투자금 전액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신증권이 펀드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손실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고, 고객들의 투자 성향을 ‘공격 투자형’으로 변경한 점 등을 이유로 ‘사기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신증권도 “자본시장법상 금융 투자 상품은 본질적으로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고, 투자자들은 자기 책임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잘 익은 사과로 포장된 썩은 사과…환불은 누가 하나

개인이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에서 이기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민사소송은 원고가 입증 책임을 부담하기 때문에 증거가 필요한데, 중요 서류는 모두 금융기관에서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확보한 증거 자료는 입금 내역과 펀드 설명 자료가 전부였다. 이 때문에 우리는 2020년 2월 검찰에 대신증권과 장모 전 센터장을 고소했다. 강제 수사권이 있는 검찰이 확보한 증거와 형사기록을 민사소송에 사용할 계획이어서였다.

우리는 자본시장법 제178조 적용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이 조항은 부정한 수단 등을 사용해 금융 투자 상품 부정 거래 행위를 할 경우 처벌하는 규정이다. 이전까지는 이를 적용해 금융사를 기소한 사례가 없었다. 우리는 검찰청을 여러 차례 방문해 법리적 의견을 설명했고, 결국 검찰은 2021년 1월 사기적 부정 거래 혐의를 적용해 대신증권을 기소했다.

민사소송에서 대신증권의 대리를 맡은 김앤장은 크게 세 가지 쟁점을 들고나왔다. 김앤장은 먼저 대신증권을 부동산 중개사로 비유하며 ‘매매 계약은 매도인과 매수인 둘이 맺는 것이지, 중개사가 모든 책임을 지는 건 아니다’ ‘계약을 취소해도 중개인이 계약금을 돌려줄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라임과 투자자 사이의 문제일 뿐이지 판매사 책임은 없다는 취지였다.

우리는 마트에서 판매하는 물건에서 하자가 발생하면 환불은 어디에서 하느냐는 논리로 반격했다. 예를 들어 과수원(라임)과 대형마트(대신증권)가 위탁 계약을 맺고 사과를 공급한다. 마트는 최상품 사과라고 광고했고, 소비자(투자자)는 마트의 설명을 믿고 사과를 구매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서 사과 상자를 뜯어보니 썩은 사과가 나온다면, 마트에서 환불(계약 취소)받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에 김앤장은 라임 펀드가 ‘블라인드 펀드’라는 점을 들며 단순히 펀드를 판매만 하는 대신증권은 부실 징후를 알지 못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자신들은 대략적으로 신용등급이 높고, 전환사채(CB)에 투자되는 것만 알 뿐 구체적인 투자처까지는 모른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미리 확보한 검찰의 수사 기록을 바탕으로 대신증권이 라임 펀드의 투자 대상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입증했다. 김 변호사는 “대신증권 반포WM센터 직원들이 공시가 뜨기 전 라임의 투자 대상 기업에 먼저 투자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김앤장은 부당 이득액을 줄이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사기 취소로 계약이 취소된다고 해도 대신증권이 얻은 이득액은 수수료뿐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은 투자자들에게 돈을 받아 수수료만 떼고 라임으로 보낸 것이기 때문에 수수료만 돌려주면 된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투자자와 계약을 맺은 것은 대신증권이고, 라임과 대신증권의 계약은 내부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돈은 원칙적으로 대신증권 계좌로 전부 들어가고, 수탁은행을 거쳐 라임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대신증권이 부당 이득 반환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법원은 대신증권의 펀드 판매를 사기로 인한 계약이라고 판단했다. 이전에 착오를 이유로 수익 증권의 매매 계약이 취소된 사례는 있었지만, 사기를 이유로 계약 취소가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행법상 사기가 인정되려면 범행의 고의와 위법적 기망 행위가 있어야 하고, 그로 인해 상대방의 착오가 발생해야 한다.

김 변호사는 “금융·증권 사건은 투자자가 불법성을 모두 증명해야 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는 것과 같다. 심지어 대형 로펌을 내세운 골리앗을 상대해야 하는 힘든 싸움”이라며 “증권사나 은행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에서 투자자가 승소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설사 승소하더라도 손해배상 비율이 낮아져 투자자들이 만족할 만한 판결이 선고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