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 ‘전지적 독자시점’은 9개 언어로 서비스되며 글로벌 누적 조회 수 3억6000건을 달성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카카오의 웹툰 ‘이태원 클라쓰’는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사진 네이버 웹툰·카카오 웹툰
네이버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 ‘전지적 독자시점’은 9개 언어로 서비스되며 글로벌 누적 조회 수 3억6000건을 달성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카카오의 웹툰 ‘이태원 클라쓰’는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사진 네이버 웹툰·카카오 웹툰

네이버와 카카오의 글로벌 웹툰 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웹툰 종주국’인 한국의 대표주자답게 세계 최대 만화 시장 일본과 미국을 넘어 유럽, 동남아에서도 겨룰 태세다. 몸집을 불리기 위해 투자를 받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네이버 웹툰은 올해 5월 기존 주주들을 대상으로 2000억원을 증자했고, 카카오재팬은 제삼자 배정 증자 방식으로 6000억원 투자를 유치했다.

웹툰은 인터넷을 뜻하는 ‘웹(web)’과 만화를 뜻하는 ‘카툰(cartoon)’을 합친 말로, 각종 멀티미디어 효과를 동원해 제작된 인터넷 만화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국내 아마추어 작가들이 개인 홈페이지, 인터넷 커뮤니티 공간에서 자신의 만화 작품을 선보이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웹툰은 스마트폰에 최적화돼 종이 만화에 비해 가독성이 뛰어나다. 언제 어디서든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광고, 콘텐츠 유료결제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게임 등 다른 콘텐츠로 재창작도 가능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도 좋다. 네이버, 카카오가 글로벌 웹툰 시장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상황으로, 또 다른 ‘한류(韓流)’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네이버·카카오, 만화 왕국 日서 격돌

네이버와 카카오의 웹툰 대결이 가장 치열하게 펼쳐지는 시장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전 세계 만화 시장(15조원)의 3분의 1(5조6000억원) 정도를 차지하는 만화 종주국이지만, 웹툰 시장에서는 네이버(라인망가)와 카카오재팬(픽코마)에 왕좌를 내줬다.

일본이 웹툰 시장을 놓친 데에는 느린 디지털 전환이 있다. 일본 만화업계는 서점과 중개상, 출판사로 이어진 종이 만화 유통 고리를 끊지 못했다. 스캔한 종이 만화를 모바일에서 확대해가며 읽는 형태로, 가독성이 낮은 편이다. 라인망가와 픽코마는 틈새시장을 발견하고, 모바일 환경에 맞는 웹툰을 선보이며 시장을 주도했다.

일본 웹툰 시장을 먼저 점령한 건 네이버의 라인망가였다. 네이버 라인은 2013년 4월 라인망가를 출시하며 한국형 웹툰 플랫폼을 일본 시장에 선보였다. 일본에서 철저한 현지화와 작가 발굴, 육성에 힘썼다. 만화책을 넘기듯 페이지를 넘겨보는 방식 대신, 위에서 아래로 화면을 이동해서 읽을 수 있게 해 편리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카카오재팬의 픽코마는 2016년 후발주자로 일본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한국 웹툰 특징을 내세우며 치고 나갔다. 단행본 1권 단위로 팔리던 만화를 1화 단위로 쪼개 연재 시스템을 구축했다. ‘기다리면 무료(마테바¥0)’ ‘미리보기 유료화’ 서비스를 통해 충성 고객을 모았다. 고객들은 다음 편을 무료로 보기 위해 재방문했고 미공개 웹툰을 빨리 보기 위해 유료 결제를 했다. ‘좋아하면 울리는’ ‘황제의 외동딸’ 등 국내에서 흥행이 검증된 웹툰을 출시한 것도 인기 비결이다.

픽코마는 지난해 7월 일본 시장에서 라인망가를 누르고 만화 애플리케이션(앱) 매출 1위로 올라섰다. 경쟁 업체들과의 격차도 점차 벌리고 있다. 올 5월엔 글로벌 투자사 앵커에퀴티파트너스와 해외 국부펀드들로부터 6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이번 투자로 평가받은 기업 가치는 8조8000억원에 달한다.


글로벌 패권 다퉈…M&A 경쟁도

네이버와 카카오는 일본 웹툰 시장에서만 맞붙은 게 아니다. 두 기업은 각각 수천억원을 들여 웹소설-웹툰-영상 등 대규모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고 있다. 전 세계 독자들의 문화 코드를 맞추기 위해 현지 작가들의 작품도 대량 수급한다. 각국 독자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확보하고, 국내 콘텐츠와 섞어 신선함을 더하기 위해서다.

네이버는 지난 1월 세계 최대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6억달러(약 6840억원)에 인수했다. 왓패드는 월 이용자 9000만 명, 창작자 500만 명, 작품 10억 편을 가진 캐나다 웹소설 플랫폼이다. 네이버는 왓패드의 IP를 발굴해 영상 자회사 스튜디오N과 시너지를 낸다는 전략이다. 네이버는 한국 웹툰을 번역해 190개국 300만 명 이상에게 서비스하는 미국 2위 웹툰 플랫폼 ‘태피툰’의 운영사 콘텐츠퍼스트에 투자하기도 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북미 웹툰 플랫폼 ‘타파스’와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를 인수하기로 했다. 타파스의 몸값은 6000억원, 래디 쉬는 500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용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카카오의 타파스, 래디쉬 인수는 네이버의 왓패드 인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해외 시장 개척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며 “미국 웹툰·웹소설 시장이 개화하기 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의지”라고 분석했다.

양사는 중화권, 아세안, 유럽 등에서도 맞붙는다. 네이버 웹툰은 이미 10개 언어로 번역돼 100여 개 국가에 서비스되고 있다. 전 세계 월간 활성 이용자(MAU)는 7200만 명에 달한다. 카카오는 글로벌화를 먼저 시작한 네이버를 따라잡기 위해 대규모 투자에 나선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기존 다음 웹툰을 카카오 웹툰 플랫폼으로 확대 개편하기로 했다. 6월 초부터 대만과 태국 시장에서도 웹툰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인구가 많은 인도, 중국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힌디어, 텔루구어 등 서비스 언어도 늘린다. 동남아 웹툰 시장에 먼저 진출한 네이버도 비즈니스를 재정비하고 있다.


Plus Point

닮아가는 네이버·카카오 작가 발굴·투자 통한 IP 확보

네이버와 카카오는 웹툰 사업 초반 각기 다른 전략을 고수했으나, 최근 들어 닮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네이버는 사업 초기 유튜브처럼 개인 창작자에게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웹툰 생태계를 구축했다. 2006년부터 국내 아마추어 창작 플랫폼 ‘도전만화’를 운영했고, 2014년부터는 글로벌 아마추어 플랫폼 ‘캔버스(Canvas)’를 선보였다. 이창영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네이버는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기존 만화 시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넓은 기회를 줬다”며 “댓글, 평점을 통해 소재를 획득하고 두꺼운 소비자층을 형성하는 데에도 도움을 줬다”고 분석했다.

반면 카카오는 2017년부터 공격적인 투자로 다양한 웹툰·웹소설 IP를 확보해왔다. 2017년에는 웹툰 제작사 ‘디앤씨미디어’를 인수했고, 2018년에는 인도네시아 웹툰 업체 ‘네오바자르’를 품었다. 2020년에는 웹툰 제작사 ‘투유드림’ 지분을 사들였고, 최근엔 웹툰 플랫폼 타파스,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 경영권 인수에도 나섰다.

하지만 두 기업은 최근 서로의 전략을 벤치마킹하는 모양새다. 네이버는 카카오처럼 공격적인 투자와 인수에 나섰다. 네이버는 왓패드, 태피툰 투자에 이어 국내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를 인수하기 위해 카카오와 경쟁을 펼치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신인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카카오페이지 스테이지’를 오픈했다. 올해 초부터는 ‘웹소설 작가 아카데미’를 열어 작가 교육과정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