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그룹 3세 승계 작업의 막이 오른 가운데, 조동길(67) 한솔홀딩스 회장의 장남인 조성민(34) 한솔제지 상무가 최근 한솔홀딩스 지분 확보에 나섰다. 한솔그룹은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맏딸 이인희 고문 별세 이후 한솔제지와 한솔케미칼을 중심으로 2세 경영이 시작됐는데, 줄곧 낮은 오너 지배력이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한솔케미칼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조동혁(72) 회장은 2015년에 이어 또다시 1대 주주 자리를 내어준 상황이다. 이에 한솔가(家) 3세의 지분 매입을 시작으로 한솔그룹이 본격적인 지배력 강화에 나설지 관심이 쏠린다.


홀딩스·케미칼로 나눠 운영…3세 승계도 박차

1993년 9월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한솔그룹은 현재 국내 24개, 해외 26개 등 총 50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고 이인희 고문의 맏아들 조동혁 회장, 셋째 아들 조동길 회장이 경영 중이다. 이 고문 별세 후 조동길 회장은 한솔홀딩스를, 조동혁 회장은 한솔케미칼을 중심으로 계열사를 나눠 가져 운영하고 있다. 

조동길 회장의 한솔홀딩스는 주요 사업이던 종이 부문을 2015년 한솔제지로 떼어내면서 순수 지주회사가 됐다. 현재 한솔홀딩스는 한솔페이퍼텍과 한솔PNS, 한솔코에버, 한솔비에스를 연결 대상 종속회사로, 한솔제지·한솔테크닉스·한솔홈데코 등을 계열회사로 두고 있다. 계열사 지배를 통한 수익 창출 이외에는 별도의 사업을 영위하지 않고 있다.

조동혁 회장의 한솔케미칼은 라텍스, 과산화수소 등 정밀화학 제품과 전자·이차전지 등 소재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다. 주요 종속회사로 테이팩스를, 계열회사로 솔머티리얼즈, HS머티리얼즈, 삼영순화 등 소재 생산 회사를 두고 있다. 한솔홀딩스에 비해선 종속·계열사 규모가 작다.

한솔케미칼은 한솔홀딩스 지분 4.31%를, 조동길 회장은 한솔케미칼 지분 0.31%를 보유 중이지만 형제간 독자 경영 체제는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모습이다. 

3세 승계 작업도 막이 올랐다. 조동길 회장의 아들 조성민 한솔제지 상무는 친환경 소재·신제품 관련 사업을 주도하며 경영 수업에 한창이고, 조동혁 회장의 딸 조연주(44) 한솔케미칼 부회장은 직접 회사를 이끌고 있다. 조 부회장은 2014년 기획실장으로 회사에 합류한 뒤 실적 상승을 이끌어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주식 사 모으며 지배력 키우는 홀딩스

한솔그룹은 그간 낮은 지배력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한솔홀딩스는 이인희 고문이 별세한 2019년 초순까지만 해도 오너 일가를 포함한 특수관계인 지분이 20%를 겨우 넘었다. 2019년 3월 말 기준, 이 고문 지분 5.54%가 한솔문화재단으로 증여되면서 특수관계인 지분은 조동길 회장 8.93%, 조성민 상무 0.58%, 한솔케미칼 3.83%, 한솔문화재단 7.04%가 됐다. 이상훈 당시 한솔제지 대표의 지분 0.01%를 합하면 총 20.39%다. 이후 조동길 회장은 꾸준히 주식을 사모아 1년 만에 지분율이 15.34%까지 올랐고 올해 6월 말 기준 지분율은 17.23%다. 여기다 최근 조성민 상무도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여 지분을 크게 늘렸다. 

조 상무는 7월 11일부터 8월 3일까지 모든 거래일에 한솔홀딩스 주식을 적게는 1만여 주에서 많게는 8만여 주씩 총 94만여 주를 장내 매수했다. 이 기간 한솔홀딩스 주가가 3000~350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주식 매수에 30억원가량을 들였을 것으로 보인다. 

8월 초 기준 조 상무의 한솔홀딩스 지분은 0.59%에서 3.00%로 올랐고 조 회장 지분율과 합산하면 오너 부자의 지분율은 20%를 넘게 됐다. 이 밖에 한솔케미칼, 한솔문화재단 등 친인척 및 관계자들의 지분을 합친 특수관계인 지분은 총 32.52%다.


케미칼 1대 주주 자리서 밀려난 조동혁 회장

지배력 개선에 나선 한솔홀딩스와 달리 한솔케미칼 오너 일가는 최근 국민연금공단에 1대 주주 자리를 내줬다. 조동혁 회장이 자녀들에게 주식을 증여한 시기에 국민연금공단이 지속적으로 주식을 사들이면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보유한 한솔케미칼 지분은 13.40%다.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총 49차례에 걸쳐 한솔케미칼 주식 8만여 주를 장내 매수해 지분율이 12.69%에서 0.71%포인트 더 올랐다. 

이 기간 조동혁 회장은 세 자녀에게 주식을 증여했고 지분율이 14.42%에서 11.65%로 떨어졌다. 지분율 0.03%에 불과하던 조연주 부회장은 증여와 장내 매수를 통해 지분율을 1.42%로 끌어올렸다.

한솔케미칼 주식을 보유하지 않던 차녀 희주씨와 외아들 현준씨는 7만8500주씩 증여받아 0.69%의 지분을 갖게 됐다. 지난 9월 말 국민연금이 15만1528주(1.34%)를 팔면서 지분이 소폭 감소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조 회장보다 지분율이 높은 상태다. 한솔케미칼은 자사주를 추가로 확보하지 않는 한 경영권이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한솔케미칼 오너 일가를 비롯한 특수관계인 10명이 보유한 주식은 총 17만2610주로, 지분율로 따지면 15.02%에 불과하다. 최대 주주 국민연금공단과는 단 21만 주(1.62%) 차다. 오너 지배력이 낮을 경우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의 우려가 있다. 실제 2015년에는 KB자산운용이 한솔케미칼 지분 18.05%를 사들여 1대 주주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KB자산운용은 단순 투자 목적이어서 실제로 경영권에 영향은 없었고, 이후 지분을 처분했다.

한솔홀딩스와 한솔케미칼의 실적 전망은 밝다. 증권가에 따르면 한솔홀딩스 핵심 계열사인 한솔제지는 올 상반기 1조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냈고 영업이익도 800억원이 넘었다. 이에 힘입어 올해 연간 매출은 지난해보다 5000억원가량 증가한 2조3000억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고 영업이익도 지난해보다 250% 늘어난 1500억원대로 예상된다.

조연주 부회장 합류 이후 시가 총액이 일곱 배 넘게 성장한 한솔케미칼은 올 상반기 매출액 4500여억원, 영업이익 1100여억원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올해 연간 실적은 매출액 9000억원, 영업이익 2200억원으로 예상되고, 내년엔 사상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