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롯데백화점 동탄점 ‘샵16’ 매장에서 고객이 QR코드를 통해 주문하고 있다. 2 2019년 말 가수 지드래곤이 나이키와 협업해 출시한 ‘에어포스원 로우 파라노이즈’. 발매가는 21만9000원이었지만, 가격이 1300만원까지 치솟았다. 3 작년 8월 롯데월드가 서울숲 프로젝트 렌트에 연 ‘로티의 아파트’ 팝업스토어. 사진 하고엘앤에프·나이키·김은영 기자
1 롯데백화점 동탄점 ‘샵16’ 매장에서 고객이 QR코드를 통해 주문하고 있다.
2 2019년 말 가수 지드래곤이 나이키와 협업해 출시한 ‘에어포스원 로우 파라노이즈’. 발매가는 21만9000원이었지만, 가격이 1300만원까지 치솟았다.
3 작년 8월 롯데월드가 서울숲 프로젝트 렌트에 연 ‘로티의 아파트’ 팝업스토어. 사진 하고엘앤에프·나이키·김은영 기자

“옷만 입어보고 주문은 온라인으로 할게요.” 경기도 화성시 롯데백화점 동탄점 3층 ‘샵(#)16’엔 유난히 젊은 고객이 몰린다. 평범한 의류 매장 같지만, 이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은 모두 ‘빈손’으로 매장을 나선다. 매장 안에 재고가 없기 때문이다.

샵16은 330㎡(100평) 규모에 마뗑킴, 로아주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제품을 구성한 쇼룸형 매장으로, 각 브랜드의 제품이 사이즈별로 1개씩 진열됐다. 매장을 찾은 고객들은 옷을 입어보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주문·결제한 뒤 집으로 돌아가 1~2일 뒤에 제품을 받을 수 있다.

온라인에서 주문한 옷을 바로 받아보는 빠른 배송의 시대에 ‘느린 쇼핑’이 통할까 싶지만, 개장 한 달간 약 5억원의 매출을 거두며 동탄점 여성복 중 매출 1위를 기록했다. 매장을 운영하는 홍정우 하고엘앤에프 대표는 “온라인에서만 파는 옷을 직접 입어보게 한 것이 적중했다”고 설명했다.


체험 공간으로 부활한 오프라인 매장

온라인 쇼핑의 성장과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소비의 부상으로 침체했던 오프라인 매장이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 쇼핑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 소비자들이 경험과 체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쇼핑 공간을 찾으면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백화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6.2% 증가하며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점포가 2020년 5개에서 11개로 늘었다.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여행에 지출하던 소비가 명품으로 이동한 것이 큰 이유로 지목되지만, 업계에선 백화점이 문화와 미식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2월 현대백화점이 서울 여의도동에 개장한 더현대서울은 점포의 절반 이상을 조경과 미술관, 카페 등 휴식 공간으로 꾸며 고객을 끌어모았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더현대서울 관련 게시물은 27만 건,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 점포는 10개월간 약 700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잠깐 떴다 사라지는 팝업스토어(임시 매장)도 성행한다.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인근에서 6.5평짜리 팝업 공간을 운영하는 프로젝트 렌트는 매월 새로운 브랜드의 상품을 전시하는 팝업스토어를 선보이는데, 코로나 시국에도 한 달 평균 1만 명의 방문객이 찾았다.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간접 노출된 수를 합하면 약 20만 명이 팝업스토어를 경험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이 이렇자 온라인 강자들도 오프라인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구글은 작년 6월 뉴욕 사옥 1층에 첫 오프라인 매장을 냈고, 아마존은 올해 첨단 기술로 무장한 백화점을 열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사업을 강화한다며 사명을 ‘메타’로 바꾼 페이스북이 가장 먼저 내민 전략도 오프라인 점포를 확장해 소비자들에게 ‘메타버스를 체험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국내에서도 패션 쇼핑몰 무신사,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 명품 플랫폼 머스트비 등이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이들은 체험 공간을 통해 온라인 매출을 늘리는 ‘후광 효과’를 노리고 있다. 국제쇼핑센터위원회(ICSC)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몰이 새 매장을 열 때마다 웹 트래픽이 평균 37% 증가했다.

‘오프라인의 모험’의 저자 이동진 트래블코드 대표는 “지금은 공간을 콘텐츠화해서 사람의 발길을 끌어모을 수 없다면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며 “오프라인 매장의 용도가 매체(미디어)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식처럼 명품 즐기는 ‘리셀테크’

MZ 세대가 체험 소비와 함께 관심을 갖는 소비는 리셀테크(리셀+재테크)다. 리셀테크는 희소성이 높은 제품을 구해 웃돈을 받고 되파는 것으로, 주식 열풍을 계기로 재테크에 관심을 가진 20~30대들이 운동화와 명품, 시계, 굿즈(기념품) 등의 재판매를 통해 재테크를 하면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백화점 명품 구매자 중 절반은 20~30대였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명품 매출에서 MZ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29.3%에서 지난해 50.7%로 커졌다. 

젊은이들이 명품 구매를 늘린 이유는 최신 트렌드와 경험을 중시하고, 자신을 표현하고 과시(플렉스)하려는 성향에 더해, 명품을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투자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원인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노션 데이터커맨드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명품 검색과 함께 재테크, 투자, 리셀 등의 검색이 함께 증가했다.

MZ 세대는 명품을 살 때 나중에 되팔 때의 환금성(換金性)을 고려한다. 부모를 졸라 고가의 패딩 재킷을 사던 철없는 ‘등골 브레이커’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 30대 직장인은 “1000만원짜리 샤넬 백을 사 몇 번 들고 SNS에 자랑한 후 몇 개월 후 900만원에 되판다면, 결국 100만원에 샤넬 백을 누린 셈”이라며 “알뜰하게 명품을 즐겼으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리셀테크를 주도한 건 운동화다. 명품 재테크는 수백만원의 밑천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지만, 운동화는 10만~20만원 정도의 여윳돈과 약간의 부지런함, 적당한 운만 있으면 획득할 수 있어 MZ 세대에게 선호된다. 국내에선 2019년 말 가수 지드래곤이 나이키와 협업해 출시한 한정판 신발 ‘에어포스원 로우 파라노이즈(발매가 21만9000원)’가 출시된 후 리셀과 래플(Raffle·온라인 추첨 방식 판매)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당시 818켤레만 발매된 이 신발은 발매 즉시 리셀 가격이 1300만원까지 치솟았다. 2년이 지난 지금도 25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미국 운동화 리셀 거래소 스톡엑스(StockX)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정판 운동화 구매자의 37%가 구매 동기로 ‘투자 기회’를 언급했다. 스톡엑스 사용자의 70%는 35세 미만인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에도 네이버의 ‘크림’, 무신사의 ‘솔드아웃’ 등 전문 거래소가 운영 중이다. 미국 투자은행 코웬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세계 신발 리셀 시장은 2019년 20억달러(약 2조3880억원) 규모에서 2025년 60억달러(약 7조1640억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재테크 열풍에 올라타기 위해 ‘득템력’을 공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득템력이란 지불 능력만으로 얻을 수 없는 상품을 얻어내는 소비자의 능력이다. 김 교수는 “갖고 싶다는 갈증과 부정적 정서 사이에서의 적당한 줄타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리셀 시장의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줄서기 아르바이트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래플에 당첨돼 물건을 산 후 비싼 값에 되파는 재판매상(Reseller)으로 인해 개인들의 피해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협업도 피로감을 높이고 있다. 스톡엑스는 “스니커즈 협업이 과포화 상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