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아 양조장의 ‘양조 3인방’. 왼쪽부터 소지섭 팀장, 이두재 팀장, 양유미 팀장.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구름아 양조장의 ‘양조 3인방’. 왼쪽부터 소지섭 팀장, 이두재 팀장, 양유미 팀장.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서울 마포구에 있는 소규모 양조장 ‘구름아 양조장’. 여기서 만드는 막걸리 ‘만남의 장소’는 만들기도 전에 불티나게 예약 주문이 쇄도한다. 구름아 양조장은 지역특산주 면허가 아닌 소규모 주류제조 면허가 있어 온라인 판매는 하지 못한다. 대신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예약을 받아 개인에게 직접 판매한다. 그런데 예약받기 시작하면 한 시간 만에 판매 물량이 동난다.

왜일까? 이 양조장에서 만드는 술은 어떤 매력이 있길래? 구름아 양조장의 ‘양조 3인방’ 이두재, 양유미, 소지섭 세 사람을 만났다. 현재 이들은 모두 팀장 직함을 갖고 있다. 구름아 양조장의 김종호 대표는 강원도 철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업가. 김 대표는 재무적 투자자 역할을 하고 있어 술 빚기는 전적으로 이 30대 청년 세 명이 맡고 있다.

이두재·양유미 팀장은 ‘곰세마리양조장’에서 서양의 꿀술인 미드(mead)를 같이 만든 경험이 있다. 구름아 양조장에 최근 새로 들어온 소지섭 팀장은 경기도 용인의 술샘 양조장 출신. 술샘의 증류주인 ‘미르’, 막걸리 ‘술 취한 원숭이’, 약주 ‘감사’ 개발에 참여했다. 양조 경력은 ‘전입 신참’인 소 팀장이 가장 많다.

구름아 양조장은 2019년 4월 설립됐다. 지난해 12월 첫 번째 술로 약주 ‘사랑의 편지’를 내놓은 데 이어 올해 초에는 두 번째 술인 ‘만남의 장소’ 막걸리를 출시했다. 이 두 가지 술은 이두재·양유미 팀장 두 사람의 작품이다. 현재 서울 프라자호텔 한식당 주옥(미슐랭 1스타)을 비롯해 10여 군데 식당에서 ‘구름아 양조장’ 술을 취급하고 있다.

생긴 지 겨우 일 년 된 신생 양조장 구름아 양조장이 전통술 마니아들에게 각인된 것은 최근에 나온 막걸리 ‘만남의 장소’ 덕분이다. 우선 술 이름부터 튄다. 이름을 지은 양유미 팀장은 “공항에 갔다가 ‘만남의 장소’ 팻말을 보고 우리가 추구하는 술 콘셉트와 똑같다고 생각했다”며 “우리가 만든 술이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음식을, 사람과 시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만남의 장소’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이 술은 이름만큼이나 술 재료나 맛도 남다르다. 쌀은 철원오대미를 쓴다. 삼양주 제조법으로 빚는다. ‘만남의 장소’가 특이하다는 것은 삼양주라서가 아니라, 세 번째 발효 도중에 넣는 부재료 때문이다. 통후추와 생강 그리고 레몬과 건포도를 조금 넣는다. 수제 맥주 업계에서 발효가 마무리될 즈음에 쌉싸름한 향을 돋우기 위해 홉을 넣는 ‘드라이 호핑’ 제조법과도 닮았다. 양유미 팀장은 “고기나 기름진 생선과도 잘 어울린다”며 “음식의 맛을 더 돋보이게 하고, 별다른 음식 없이 술만 마셔도 손색이 없다”고 설명했다.

후추·생강을 넣었다고 하지만 그 향이 도드라지는 건 아니다. 이두재 팀장은 “한 모금 마셔보면 후추 향을 느끼기보다는 로즈메리 같은 허브 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정도”라며 “이 술을 두어 잔 마시면 목이 따뜻해지는 느낌인데, 이는 생강을 넣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쌀 이외 부재료가 특이한 것은 첫 작품 ‘사랑의 편지’도 마찬가지다. 멥쌀과 찹쌀을 많이 넣었지만, 부재료로 천도복숭아를 넣었다. 덕분에 달콤하고 상큼한 향이 입안에서 오랫동안 머문다. ‘한 모금 마셨더니 제철 천도복숭아를 한입 베어먹은 것 같았다’는 후기도 여럿 있다. 가격이 4만원대로 비싼 편인데도 재고가 없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좌) 구름아 양조장의 간판 상품인 ‘만남의 장소’. (우) 구름아 양조장에서 처음 선보인 상품인 ‘사랑의 편지’. 사진 구름아 양조장
(좌) 구름아 양조장의 간판 상품인 ‘만남의 장소’. (우) 구름아 양조장에서 처음 선보인 상품인 ‘사랑의 편지’. 사진 구름아 양조장

맑은 술 ‘사랑의 편지’는 ‘시간이 돈’인 양조 업계에서 보기 드문 ‘슬로 푸드’다. 부재료인 천도복숭아를 넣고, 그 고형물들이 천천히 다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맑은 술만을 걸러낸다. 여과기를 사용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들여 맑은 부분만 떠낸다. 그만큼 정성을 기울여 빚는다는 의미다. 양유미 팀장은 “산미가 적당히 있어 식전주로 특히 잘 어울리지만, 가장 맛있게 마시는 요령은 음식과 함께 하는 식중주로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알코올 도수는 일반 약주와 비슷한 14도다.

다만 천도복숭아가 여름 과일인 까닭에 ‘사랑의 편지’를 연중 생산하는 건 힘들다. 천도복숭아가 많이 나오는 6~7월쯤에만 술을 빚을 수 있다. 소지섭 팀장은 “올해도 6월에 빚어 9월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름아 양조장이 만드는 사랑의 편지, 만남의 장소 같은 술은 기존 막걸리나 프리미엄 탁주와도 구분이 된다. 인공감미료 같은 화학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는다는 점이나 가격 면에서는 1000원대 막걸리와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대부분의 프리미엄 탁주가 쌀·누룩·물 이외에 어떤 부재료도 넣지 않는다는 점에서 후추·생강을 넣은 ‘만남의 장소’를 프리미엄 탁주라는 카테고리에 넣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래서 구름아 양조장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술을 막걸리, 탁주 아닌 ‘쌀술’로 불러주기를 원한다.

“막걸리 하면 장수막걸리처럼 탄산이 강하고, 인공감미료로 맛을 낸 술이란 뉘앙스가 있다. 또 탁주는 ‘프리미엄 막걸리’라는 뜻이 강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술은 이 양쪽의 카테고리와 다르다. 그래서 막 걸러 마시는 술, 막걸리의 부정적인 편견 없이 새로운 술로 음미해 달라는 의미에서 ‘쌀술’로 불러 주었으면 한다. 소비자가 이 술의 주원료인 쌀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풍미에 더 집중해 주었으면 하는 의미도 있다. 또 탁주가 무슨 술인지, 전통술을 즐겨 드시는 분들은 잘 알지만 무슨 재료로 만든 술인지 모르는 분도 꽤 있다. 탁주 하면 좀 고리타분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반면 쌀술 하면 쌀로 만든 술이란 걸 금방 알지 않을까? 쌀로 만든 술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편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양유미 팀장)

“막걸리·탁주의 메인 재료인 쌀에 좀 더 주목해서 술을 빚는다는 의미도 있다. 또 우리가 만드는 술만 쌀술로 불러 달라는 게 아니라 쌀로 만든 모든 술을 앞으로는 쌀술로 부르면 어떨까 하는 바람도 있다.” (소지섭 팀장)

구름아 양조장은 소규모 주류 제조 면허이기 때문에 인터넷 판매는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지만, 장점도 있다. 이두재 팀장은 “소규모 주류 제조 면허는 다양한 부재료를 맘껏 쓸 수 있다는 장점이 더 크다”고 말했다. 구름아 양조장의 창의적, 실험적인 제품 개발 스토리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