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아시아리서치 본부장 서울대 경제학, ‘아시아 투자의 미래’ 저자
이필상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아시아리서치 본부장 서울대 경제학, ‘아시아 투자의 미래’ 저자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 분야에서 중국계 스타트업(벤처기업)이나 전문 기업들이 넘쳐난다. 이들이 내놓는 모델이나 아이디어들은 경쟁력이 있거나 상당한 잠재력이 있어 보인다. 중국에서 자동차 스타트업의 범람이 의미하는 것이 뭘까? 흔히 사람들은 소수의 야심에 찬 젊은 창업가와 풍부한 벤처 자금의 결합으로 해석하곤 한다. 하지만 필자가 볼 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보다는 중국에 자동차 관련 생태계가 풍부하게 형성돼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춘 벤처기업들이 관련 전문 인력과 부품을 구하기 쉬워졌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중국 자동차 산업계에는 아주 오래된 논쟁이 있다. 지난 30년간 중국 자동차 산업 정책의 핵심이었던 글로벌 기업과 중국 토종 기업 간 합작법인 강제 정책의 성패(成敗) 여부다. 자동차 산업은 글로벌 단일 산업으로는 매출 규모가 가장 크며, 연관 산업 효과도 가장 큰 산업이다. 당연하게도 많은 신흥국은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고 싶어했다. 단, 이를 달성하는 정책 수단은 달랐다. 여러 국가는 자국 기업이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과 라이선스를 맺고 부품(CKD)을 수입해 조립하는 정도에 그쳤으나, 한국처럼 민간 기업으로 하여금 자체 브랜드를 키워 해외에 수출할 수 있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지원한 경우도 있었다.

중국 정부는 그 중간쯤에 있었다. 중국 경제 개방 초기, 자립하기에는 토종 기술력이 형편없었고, 해외 기업들에 자동차 시장을 내주고 싶지는 않았다.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이 국유 기업과 해외 자동차 기업 간의 지분율을 50 대 50으로 나눠 합작사 설립을 강제하는 정책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나오는 이익을 양분할 수 있을뿐더러 중국인 엔지니어와 경영진들이 선진 기업으로부터 자동차 기술과 노하우를 체득해 언젠가는 자동차 산업이 자립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합작구조가 도입된 지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원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2020년에도 중국 자동차 판매량의 50%는 외국계가 중심이 되는 합작 브랜드에서 나왔다. 중국 관점에서는 한국 토종 브랜드가 8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 자동차 시장이 놀라움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왜 실패했을까? 쉽게 얘기하면 조인트벤처 파트너인 중국 기업들이 돈을 쉽게 벌다 보니 기술 자립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측면이 크다. 파트너 기업 대부분이 지방정부 산하의 국유 기업들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이를테면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BMW의 조인트벤처 파트너사인 화천그룹은 랴오닝성 정부 산하 국유 기업으로,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만들어 판매해왔다. 그런데 자체 모델들이 점점 경쟁력을 잃더니 결국 2020년에 부도를 맞았다. BMW와 협력을 하면 자연스레 경쟁력을 쌓아서 중국의 BMW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 이룰 수 없는 허상이었다.


중국 저장성 지리자동차 공장에서 작업자가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중국 저장성 지리자동차 공장에서 작업자가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글로벌 車 회사 진출 덕 최고 인프라 갖춰

그런데 필자가 볼 때 이러한 정책이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록 대부분의 파트너 기업들이 기술적으로 자립하는 데에는 실패했으나, 중국 전역에 자동차 제조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에는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인력 측면에서다. 중국은 지금 어느 나라보다 자동차 관련 엔지니어가 많은 나라가 됐다. 그 배경에는 엔지니어 인적 자원의 양적 팽창이 있다. 중국은 지난 20년간 대학 교육이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매년 이공계 대학 졸업자를 400만 명 이상 배출하는 나라가 됐다. 참고로 중국 금융정보업체 윈드에 따르면 중국 자동차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종사하는 인력은 40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보다 직접적인 배경은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주요 부품과 완성차 공장을 중국에 지었다는 점이다. 우리로서는 불가사의한 일이기도 한데 중국이 무척 가난했던 2000년대부터 중국에는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모델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들어섰다. 여기서 일하는 엔지니어들 대부분은 당연히 중국인이었다. 독일 자동차 그룹 폴크스바겐과 프리미엄 3사인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는 연간 수천 명의 중국인 엔지니어들을 독일로 불러들여 기술 연수를 시켜줬다. 이 덕분에 많은 중국 엔지니어가 20대에 이미 세계 정상급 품질의 모델을 다뤄본 경험자가 됐다.

둘째, 중국 내 부품 기업들의 성장이다. 한 국가에 글로벌 주요 브랜드, 특히 프리미엄 모델을 제조하는 공장들이 돌아가고 있다고 하자. 비싸거나 핵심적인 부품들은 본국에서 공수할 수 있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결국 거의 모든 부품을 현지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다. 만약 품질을 맞출 수 있는 로컬 부품사가 없다면, 기술 이전을 해서라도 중국 기업을 육성해야 했다. 이때 운 좋게도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의 선택을 받았고 그들의 요구 사항에 맞춰 설비 투자를 적극적으로 한 일부 중국 기업들은 글로벌 수준의 부품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테슬라가 자국 이외의 첫 생산지로 중국을 선택한 배경 중 하나도 그곳에 테슬라에 부품을 공급해줄 능력 있는 중국 현지 부품사들이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테슬라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모델들에 들어가는 부품의 현지 조달 비율은 2020년 1월 25%에서 2020년 12월 90% 이상으로 높아졌다.


글로벌 車 유리 시장 강자된 푸야오 글라스

우리에게는 주로 중국의 완성차 브랜드들만 알려졌지만, 사실 부품 영역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국계 기업이 상당히 눈에 띈다. 새롭게 열리고 있는 자동차용 배터리 부문에선 배터리 셀 제조사인 CATL이 대표적인 기업이고, 배터리 장비 기업은 우시 리드 인텔리전트(Wuxi Lead Intelligent)와 선전 잉허 테크놀로지(Shenzhen Yinghe Technology)가 있다. 자동차용 파워트레인을 제조하는 선전 이노밴스 등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자동차 유리 부문의 경우 푸야오 글라스(Fuyao Glass), 알루미늄 합금 제품군에선 닝보 쉬성(Ningbo Xusheng)과 민스(Minth·敏實), 스티어링 부문에선 넥스티어(Nexteer), 에어백 부문에선 조이슨(Joyson), 공조 부품에선 산후아(Sanhua)와 후아위(Huayu), 램프 부품에선 싱이(Xingyi), 타이어에선 링롱(Linglong) 등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 중에서 필자는 중국 자동차 부품 산업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푸야오 글라스를 꼽고 싶다. 유리 제조 업체라니, 전혀 특별한 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1위 기업이라면 다시 봐야 하지 않을까. 이 회사는 이미 자동차용 유리 부문에서 물량 기준으로 전 세계 1위다. 전 세계 점유율이 25%에 이른다. 2020년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이 어려웠음에도, 이 회사는 30억달러(약 3조3000억원)의 매출액에, 5억달러(약 55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무엇보다도 성숙한 부품 시장, 그래서 높은 이윤을 내기 어려운 영역인데도 오랫동안 영업이익률 15% 이상을 유지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자동차 유리 주요 경쟁사인 일본의 아사히유리, 닛폰 판유리, 프랑스의 생 고뱅(Saint Gobain) 등은 자동차용 유리 부문에서 겨우 적자를 면하는 수준이니 말이다.

이 회사는 어떻게 글로벌 1위 기업이 됐을까? 앞서 말한 배경 때문이다.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브랜드 입장에서는 유리와 같이 중량에 비해 저부가가치인 상품을 본국에서 공수해올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일본의 유리 기업들이 근거리에 있으니 일본산 유리를 수입할 법도 했다. 하지만 일본 생산 원가구조가 워낙 높다 보니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또 일본 유리 기업들은 액정디스플레이(LCD) 유리기판 등 한때 고부가가치 유리 제품 영역에 더 집중하다 보니 자동차용 유리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결국 글로벌 브랜드들은 중국 토종 유리 기업들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이때 자신들의 스펙 요구를 거스르지 않고 꾸역꾸역 따라온 중국 기업 중 하나가 푸야오 글라스였다.

자동차용 유리 산업 자체도 상당히 흥미로운 측면이 있다.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자동차 패러다임 변화와는 상관없이 유리에 대한 수요는 꾸준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신규 전기차 모델을 중심으로 파노라마 선루프 채택 비율이 급증하고 있는데, 당연히 자동차당 유리 비중이 크고, 단가도 훨씬 높기 때문에 자동차당 유리 매출이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스마트카 기능이 중요해지면서 전면 유리 일부를 디스플레이로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헤드업디스플레이(HUD) 채택이 많아지고 있다. 이 역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유리 기업 매출 증가에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푸야오 글라스가 만든 고부가가치 자동차 유리. 사진 푸야오 글라스
중국 푸야오 글라스가 만든 고부가가치 자동차 유리. 사진 푸야오 글라스

자동차 수출국 부상…부품 산업 수혜 기대

크게 보면, 중국 부품 산업 전반의 전망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중국 자동차 산업의 수출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 자동차 산업은 수출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인트벤처 구조 때문에 이익을 양분해야 하는 해외 자동차 회사 입장에서는 중국을 수출 기지화할 이유가 없었다. 이들 회사 입장에서는 태국이나 멕시코같이 자기지분 100%인 법인이 수출 기지 역할을 하면 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바로 전기차 때문이다. 중국 토종 기업들이 전기차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중국이 전기차 생산 허브가 됐다.

이미 전 세계 배터리와 관련한 각종 생산설비의 70%가 중국에 집중된 상황이다. 앞으로 오랫동안 ‘전기차를 더 잘, 저렴하게 만들려면 중국으로 가야 한다’라는 공식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각국에서 전기차 수입 관세가 갑자기 높게 책정되지 않는 한, 중국은 글로벌 전기차 수출 기지로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이 자동차 수출국으로 자리를 잡는다면 푸야오 글라스를 비롯한 중국의 부품사들이 간접적으로 글로벌 점유율을 높이게 될 것이다. 글로벌 관점에서 자동차 부품 산업은 성숙한 지 오래된 산업이다. 하지만 중국은 수출 기지로서의 잠재력이 더해져서 한동안은 성장 산업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 정책의 핵심은 생태계를 얼마나 풍부하게 만들어 주느냐에 있는 것 같다. 풍부한 인력과 기업들이 있는 생태계가 형성되면 언젠가는 경쟁력 있는 기업이 나오게 마련이다. 중국이 실수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자동차 생태계를 완성하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