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트레이시에 있는 카테라 공장에선 목재 프레임 벽과 바닥, 지붕 트러스(부재가 휘지 않게 접합점을 핀으로 연결한 골조 구조) 등을 생산한다. 사진 카테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트레이시에 있는 카테라 공장에선 목재 프레임 벽과 바닥, 지붕 트러스(부재가 휘지 않게 접합점을 핀으로 연결한 골조 구조) 등을 생산한다. 사진 카테라

한국 건설업계에 2013년은 악몽과도 같은 시기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에서의 저가 수주 경쟁이 회사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중동 현장에서 닥치는 대로 일감을 따낸 건설사들은 경험 부족에 따른 공기 지연과 비용 증가로 엄청난 손실을 봐야 했다. 2013년 삼성엔지니어링, GS건설, SK건설의 영업적자 규모가 각각 1조280억원, 9354억원, 4905억원에 달했다. 이 여파는 국내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맞은 2017년까지 이어졌다. 만약 당시 중동 프로젝트의 위험을 사전에 알려주고, 인력과 공기, 구매·조달, 의사소통 등을 철저하게 관리해주는 서비스가 있었다면 ‘중동의 저주’를 피할 수 있었을까. 적자는 피할 수 없었을 테지만, 분명히 건설사들도 사전에 경각심을 갖고 수주전에 임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보통신(IT)이나 자동차 산업과 비교해 인력이 많이 투입되고 상대적으로 디지털화가 많이 진행되지 않아 생산성도 뒤처진 업종으로 취급받는 건설 산업을 ‘콘테크(Contech)’ 기업이 바꾸고 있다. 콘테크는 건설을 뜻하는 콘스트럭션(construction)과 기술을 의미하는 테크놀로지(technology)가 합쳐진 말로, 건설업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의 첨단 기술을 도입해 비효율을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선 콘테크 기업들이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 또는 상장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대형 건설사가 콘테크 기업에 눈독을 들이며 활발한 투자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 미국 건설시장 규모는 약 1조5156억달러(약 172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거대한 산업임에도 비효율은 곳곳에 누적돼 있다. 프로젝트를 현실화하기 위해선 설계와 사업성 검토, 프로젝트 파이낸싱(대출) 등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데, 정보와 소통 부족으로 도중에 사업이 고꾸라지는 일이 잦다. 이 단계를 넘어섰다고 하더라도 숙련공 부족과 장비·자재 비용 상승, 규제 강화 등으로 예상치 못하게 공기와 예산이 불어나기도 한다. 미국 컨설팅 업체 FMI의 조사에 따르면 2018년 미국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재작업은 48%에 달했는데, 잘못된 의사소통과 프로젝트 정보가 주요한 이유였다. 이 때문에 연간 소요되는 비용만 310억달러(약 3조5340억원)에 달했다.

콘테크 창업자들은 이런 비효율에 주목했다. 3D 프린팅과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모듈러 등의 기술을 통해 건설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카핀테리아에서 2003년 설립된 프로코어가 대표적이다. 프로코어는 건설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입찰 관리에서부터 생산성 향상 솔루션, 프로젝트 관리, 품질·안전 유지, 재무 관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100만 개 이상의 건설 프로젝트, 125개 이상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프로코어의 설명에 따르면 태국 방콕의 콘도·주택 개발회사인 아난다 디벨롭먼트는 프로코어를 활용해 2005년 5%였던 시장 점유율을 2019년 26%까지 끌어올렸다. 종이와 이메일, 엑셀 등에 의존하던 프로젝트 관리를 단일 플랫폼으로 통합했고, 발견(discover)과 개발(develop), 전개(deploy), 변화(disrupt) 등을 통한 ‘4D’ 혁신을 받아들인 덕분이다. 프로코어는 5월 20일(이하 현지시각) 두 번째 도전 만에 뉴욕 증시 데뷔에 성공했고, 공모가(67달러)보다 31.34% 상승한 88달러로 마감하며 화려한 출발을 알렸다. 프로코어는 지난해에도 IPO에 나섰지만,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일정을 연기한 바 있다.


비효율 제거, 생산성 향상이 핵심

모듈러 주택을 만드는 미국 기업 카테라의 성장도 주목할 만하다. 모듈러 주택은 집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지붕이나 바닥, 외벽 등을 미리 공장에서 만든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것을 말하는데, 기존 방식과 비교해 절반 정도로 공기를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였던 마이클 마크스와 부동산 개발사 울프의 CEO 프리츠 울프가 2015년 설립했다. 미국의 기업 분석 플랫폼 크래프트에 따르면 현재 카테라의 기업가치는 40억달러(약 4조5600억원)에 이른다. 최근 무리한 사업 확대와 코로나19 여파로 파산 위기에 처했지만, 소프트뱅크의 2억달러(약 2280억원) 추가 수혈로 위기를 넘겼다. 지금까지 소프트뱅크가 카테라에 투입한 자금만 20억달러(약 2조2800억원)가 넘는다. 건설업의 특성상 일시적인 경기 침체로 자금난을 겪을 수 있지만, 꾸준한 지원만 있다면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카테라는 올해 15억~20억달러(약 1조7100억~2조2800억원)의 매출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오스트리아 빈에 기반을 둔 사스(SaaS·구독형 소프트웨어) 솔루션 회사 플랜레이더 역시 건설 현장의 비효율을 없애는 데 집중하며 성장한 회사다. 플랜레이더는 현장 엔지니어 출신인 도마고이 돌린섹이 2014년 창업한 회사로, 현장 직원을 포함한 모든 프로젝트 당사자들이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이다. 모바일과 클라우드 기반이라 사용이 간편하며, 사진과 텍스트, 음성 메모 등으로 소통할 수 있다. 현재 45개국, 2만5000여 개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 3월 시드머니(초기 투자금)를 투자받는 단계인 시리즈 A에서 3000만유로(약 42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스타트업 매체 시프티드(Sifted)가 2020년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으로 꼽기도 했다.

콘테크 산업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 회사인 RET 벤처스의 존 헬름 파트너는 올해 초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단기적으로는 특정 건설 기술이 현장 공정을 간소화할 수 있고, 인력 수를 줄일 수 있어 사회적 거리 두기 조절을 쉽게 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될 것이며, 중기적으로는 부동산 소유주들이 개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건설 기술 시장은 점점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대형 건설사가 최근 콘테크 기업에 잇따라 투자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올해 초 AI 기반 3D 설계 솔루션 기업인 텐일레븐 지분 6%를 취득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3월 드론 개발 회사인 아스트로엑스의 지분 30%를 사들였다.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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