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 중형 SUV 랭글러가 물웅덩이를 지나는 모습. 사진 FCA
지프 중형 SUV 랭글러가 물웅덩이를 지나는 모습. 사진 FCA

지프를 판매하는 피아트크라이슬러(FCA)가 5월 12일 강원도 양양에서 개최한 ‘2021 지프캠프’에 참가해 간판 모델인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랭글러’를 시승해 봤다. 시승한 모델은 ‘랭글러 루비콘 파워톱 4도어’. 송전 해변 일대에 조성된 오프로드 구간을 지나 양양 상월천리와 서피비치를 거쳐 공도를 달리는 약 50㎞ 구간에서 시승이 이뤄졌다.

랭글러는 오프로드의 상징과 같은 차다. 바윗길과 물웅덩이, 모래사면 같은 험로를 거침없이 달릴 수 있는 주행 성능에 더해 과거 군용 차량으로 쓰이던 전통을 계승한 디자인 덕분에 상당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랭글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탄생한 4륜구동차 ‘윌리스MB’를 시초로 한다. 독일을 상대로 싸우던 미국 정부는 기동력 좋은 군용차를 전장에 투입하기 위해 민간 업체들에 가벼운 군용차 제작을 주문했고, 윌리스가 ‘윌리스MB’를 만들었다.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윌리스는 MB를 ‘시민지프(CJ·Civilian Jeep)’라는 명칭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총성과 포탄이 가득한 전장을 누빌 만큼 탁월한 오프로드 주행 성능을 가진 CJ는 SUV라는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 윌리스는 1987년 크라이슬러그룹에 합병됐는데, 크라이슬러는 CJ를 랭글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선보였고, 랭글러는 지난 80년 동안 SUV의 상징으로 성장했다.

전장을 누비던 차량의 후손 격인 모델답게 험지를 돌파하는 주행 성능은 탁월했다. 지프가 조성한 오프로드 코스를 지나기 위해 운전석에 앉아 변속기 바로 왼쪽에 있는 오프로드용 기어를 최대치인 ‘4H’로 설정했다. 거대한 통나무와 굵은 바위가 가득한 범피를 지난 뒤에는 40도 정도 기울어진 사면로와 소나무 숲길, 앞바퀴가 푹 빠질 정도로 떨어지는 V 자 도로, 시소, 층계 등 거친 코스가 이어졌다. 몸이 심하게 흔들릴 정도로 험로를 지나는 충격이 시트에 그대로 전달됐지만 차체는 굵직한 바위와 물웅덩이 같은 장애물들을 묵직하게 통과했다.

일반 차량이라면 바퀴가 빠졌을 모래사장에서도 밀림이 없었다. 랭글러에는 좌우 바퀴에 동일한 힘을 주도록 제어하는 ‘디퍼런셜 록’ 시스템이 탑재돼 험로에서 한쪽 바퀴가 공중에 뜬 상태에서도 막힘 없이 전진했다. 경사가 높아 차체가 진입하면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오르막·내리막에서도 차체는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내리막 주행 제어장치(HDC)를 활성화하면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아도 저속으로 내리막 구간을 통과했다. 코스가 워낙 험난해 진입할 때에는 긴장감이 상당했지만, 랭글러가 묵직하게 코스를 통과한 뒤에는 짜릿함이 느껴졌다.

코스 구간을 마친 후에는 상월천리 근방의 산길과 포장도로를 달리는 주행이 이어졌다. 랭글러는 오프로드에 특화된 차량이지만 공도의 일반 주행 시에도 승차감이 나쁘지 않았다. 2.0L 가솔린 터보 엔진을 장착한 랭글러는 최고 출력 272마력, 최대 토크 40.8㎏·m의 주행 성능을 낸다.


랭글러가 계단 장애물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 FCA
랭글러가 계단 장애물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 FCA

공차 중량이 2120㎏에 이르는 육중한 차체 때문에 폭발적으로 치고 나가는 주행 능력은 보여주지 않지만, 꽤 안정적으로 속도를 끌어올렸다. 일정 속도까지 끌어올리는 주행감은 다소 무거웠지만 일단 속도가 붙으면 생각보다 경쾌하게 달렸다. 가솔린 모델답게 엔진 구동음이 부담스럽지 않았고 차선을 바꾸거나 회전 구간을 지날 때 쏠림이 크지 않고 주행감도 안정적이었다. 복합연비는 1L당 8.2㎞다.

오프로드의 상징적인 모델이라고 하지만 다양한 주행 보조 기능이 탑재된 덕분에 편의성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풀-스피드 전방 추돌 경고 플러스 시스템, 알파인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 등이 적용됐다.

파워톱 트림을 포함한 올 뉴 랭글러는 CJ 모델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해 전설적인 세븐(7)-슬롯 그릴과 키스톤 모양의 그릴 윗부분, 원형 헤드램프, 사각 테일램프 등 고유한 디자인 요소를 유지하면서 일부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랭글러의 길이(전장)는 4885㎜, 전폭은 1895㎜, 높이(전고)는 1850㎜다. 실내 공간을 결정하는 휠베이스(축거)는 3010㎜다. 이전 모델보다 차체가 커지면서 실내 공간도 넓어졌다. 가격은 루비콘 파워톱 4도어 트림 기준 6740만원이다.

지프는 올해 ‘1만 대 클럽’에 재진입할 것으로 예상될 만큼 판매량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 랭글러가 판매 호조를 견인하고 있다. 지프는 지난 3월 한 달간 총 1557대를 판매하며 한국 시장 진출 이후 월 판매 최대 실적을 기록했는데, 이 중 30%인 513대가 랭글러였다.

한편 FCA는 올해 하반기 랭글러의 전동화 모델 ‘랭글러 4xe’를 국내에 출시할 예정이다. 지프는 수년 내 전 모델에 전동화 옵션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모델인 랭글러 4xe는 소음이 거의 없고 탄소 배출이 없는 순수 전기 추진력으로 최대 25마일(약 40㎞)을 주행할 수 있다. 배터리가 소모된 이후에는 엔진으로 전환돼 주행 거리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연선옥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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