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현 크래프트루트 대표 건축 디자이너, 2017년 크래프트루트 설립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김정현 크래프트루트 대표
건축 디자이너, 2017년 크래프트루트 설립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동명항 페일에일, 속초 IPA, 청초호 골든에일⋯.

강원도 속초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지명과 풍경을 맥주캔 라벨에 담은 크래프트루트의 수제 맥주들이 올해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호평을 받았다. 산뜻한 오렌지와 자몽 향이 나는 ‘동명항 페일에일’은 수제 맥주 부문 최고상인 ‘Best of 2021’ 상을, 강원도 쌀을 10% 넣은 ‘하이&드라이’는 대상을 받았다.

이들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 크래프트루트는 설악산이 ‘파노라마’로 보이는 설악산 바로 밑자락에 있다. 1층 브루펍에서는 설악산 명물인 울산바위와 대청봉을 바라보면서 맥주를 즐길 수 있다. 맥주 맛이야 개인 차이가 있겠지만, ‘전망(뷰)’만큼은 전국의 어느 수제 맥주 양조장보다 낫다고 해도 이견이 없을 듯싶다.

‘간판 상품’인 동명항 페일에일에서는 오렌지, 자몽, 라임 향을 느낄 수 있었다. 쌉싸름한 맛도 도드라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맥주의 ‘밸런스’가 뛰어난 수제 맥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 본연의 단맛, 쓴맛, 과일 맛 등이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져, 어느 하나의 맛도 요란하게 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수제 맥주 특유의 깊고 진한 풍미가 일품이었다. 알코올 도수는 5%, 술에 약한 사람도 별 거부감이 없을 만한 ‘착한 도수’다.

2017년에 세운 속초의 크래프트루트 양조장은 30년 된 식당을 개조한 건물이다. 인수하기 전에는 5년간 빈 채로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 지하에는 맥주 원료인 몰트 창고, 홉 냉동고, 캔 생산 설비들이 들어서 있다. 1층엔 양조 시설과 고객이 이용할 수 있는 펍이 있다. 이 펍에 앉으면 투명한 유리 너머로 양조 설비를 볼 수 있으며 바깥 창 너머엔 설악산의 명물 울산바위가 우뚝 서 있다.

이곳 양조장은 몰트는 독일산, 홉은 미국산을 주로 쓴다. 몰트는 단맛과 함께 알코올 도수를 좌우하며, 홉은 쌉싸래한 맛과 과일 향 등을 풍부하게 한다. 몰트가 가진 당분을 알코올로 바꾸는 발효 공정은 7~14일, 맥주의 풍미를 깊게 하고 색을 맑게 하는 숙성 기간은 한 달 이상 걸린다. 김정현 크래프트루트 대표는 “숙성을 오래 하면 맛이 깊어지지만, 제품 회전율이 떨어지는 건 단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맥주 품질을 높이기 위해 오랜 숙성을 고수하고 있다.

속초가 고향인 김정현 대표는 2016년 서울 익선동에서 맥주 사업을 시작했다. 100년 한옥을 인수해 맥주펍으로 개조했다. 건축 디자이너 출신인 그의 전공을 십분 살렸다. 원래 한옥에 있던 다락도 부수지 않고 살려, 손님들이 다락에서도 맥주를 즐기도록 했다. 그래서 이 업장의 이름은 ‘크래프트(수제 맥주) 루(다락)’다. 크래프트 루는 익선동과 강남 신사동 두 곳에 있다.


크래프트루트는 양조장이 들어선 강원도 속초의 지역명과 풍경을 담은 라벨을 사용해 현지화에 성공했다. 사진 크래프트루트
크래프트루트는 양조장이 들어선 강원도 속초의 지역명과 풍경을 담은 라벨을 사용해 현지화에 성공했다. 사진 크래프트루트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최고상을 받은 동명항 페일에일은 어떤 스타일의 맥주인가.
“아메리칸 스타일의 페일에일 맥주다. 과일 향도 많이 난다. 자몽, 오렌지, 라임 향이 난다. 작년 독일에서 열린 ‘유러피언 비어스타’ 대회에서도 페일에일 부문 은상 수상을 했다. 가장 잘 팔리는 맥주이기도 하다.”

지역명을 딴 맥주들이 많다.
“로컬라이징(현지화) 전략이다. 속초의 주요 관광지들을 수제 맥주 브랜드로 사용했다. 로컬화(지역 친화적)를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이즈의 양조장은 로컬(지역)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전국구 사이즈가 못 된다.”

맥주 만들 때 가장 유념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밸런스’다. 맥주가 가진 향, 단맛, 과일 맛, 쓴맛들이 밸런스가 맞아야 부담 없이 많이 마실 수 있다. 우리는 쓴맛을 강조하는 스타일의 맥주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레시피(제조 방법)를 디자인하고 개발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밸런스다. 밸런스에 초점을 맞춰 맥주 레시피를 만든다. 한마디로, 맥주 마니아가 아닌 대중성을 더 우선시한다는 얘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은.
“심각하다. 서울 2곳 업장의 타격이 크다. 서울을 기반으로 맥주 사업을 하는 분들은 다들 힘들어한다. 서울의 펍 매출은 70% 이상 줄었다. 직원들 월급 겨우 주는 수준이다. 반면에 속초는 현지화에 성공했기 때문에, 그나마 버티고 있다.”

크래프트루트는 캔 제품을 만드는데, 전국 편의점에 공급하나.
“전국 편의점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왜냐면 ‘네 캔에 만원’ 단가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양조장 주변인 속초, 양양, 고성 지역 편의점에는 공급한다. 공급 조건은 ‘우리가 원하는 가격에 맞춘다’는 것. 이곳 매장과 편의점 제품 가격이 똑같다. 500ml 한 캔에 7000원가량. 로컬라이징에 성공한 덕분에 이 가격도 편의점에서 먹히고 있다. 편의점 업주들이 오히려 우리 제품을 좋아한다. 마진이 ‘네 캔에 만원’ 제품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한국 수제 맥주 역사는 짧다. 외국 수제 맥주와 품질을 비교하면.
“단기간에 급성장했다. 5년 전에 한옥(익선동)에서 당시 한국 수제 맥주 15종을 취급했다. 그때만 해도 외국 수제 맥주와는 수준 차이가 좀 있었다. 국산 제품 품질이 들쑥날쑥하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좀 떨어졌다. 그런데 수제 맥주 붐이 5년 전부터 불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 수제 맥주 양조장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양조장들끼리 경쟁을 하다 보니까 품질도 급속도로 좋아졌다. 불과 3년여 만에 상향 평준화됐다. 그러다 보니 해외 맥주 대회에서 상을 받은 국내 수제 맥주들도 많아졌다. IPA, 페일에일, 바이젠 같은 맥주들은 이제 국산 맥주와 해외 제품 간에 거의 품질 차이가 없다.”

중장기 계획은.
“제2 양조장을 지어 생산량 늘릴 것을 검토하고 있지만, 결국 판로가 관건이다. 지금 속초 양조장 생산량은 거의 다 지역에서 소비가 된다. 이 때문에 생산량을 크게 늘리겠다고 하면, 유통 채널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네 캔에 만원 시장에도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편의점이나 마트에 한 번 진출하면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매출은 커지더라도 수익성은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어 고민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수출이다. 수출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사이즈를 키우려고 한다. 제2 양조장을 새로 지을 생각이다.”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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