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엔씨소프트 ‘리니지’와 넥슨 ‘바람의나라’ 게임 이미지. 두 게임 모두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사진 엔씨소프트·넥슨
왼쪽부터 엔씨소프트 ‘리니지’와 넥슨 ‘바람의나라’ 게임 이미지. 두 게임 모두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사진 엔씨소프트·넥슨

넥슨의 ‘바람의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서비스되고 있는 온라인 PC 게임이다. 만화가 김진이 1992년부터 순정만화 격주간지 ‘댕기’에서 연재를 시작한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1996년 출시된 이 게임은 김정주 넥슨 창업자이자 지주회사 NXC 대표이사가 직접 게임 개발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출시 25년이 지났음에도 ‘바람의나라’는 지금까지 넥슨에서 주요한 매출작으로 꼽힌다. 특히 지난해 선보인 모바일 게임 ‘바람의나라: 연’은 넥슨이 게임 업계에서 최초로 연매출 3조원을 거두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만화가 신일숙이 순정만화 월간지 ‘윙크’에 1993년부터 연재한 판타지 만화 ‘리니지’는 엔씨소프트의 대표 게임이다. 1998년 9월부터 유료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넥슨 ‘바람의나라’의 주요 개발진들이 만들었다. 국내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의 효시로, 이후 나온 동일 장르의 게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엔씨소프트의 든든한 ‘캐시카우’로, 현재의 엔씨소프트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지난해 엔씨소프트 전체 매출(2조4162억원)에서 리니지 시리즈의 매출 비중은 80%(1조9584억원)에 달했다.

게임사들이 제2의 바람의나라, 제2의 리니지를 찾기 위해 분주하다. 잘 키운 지식재산권(IP) 하나가 수십 년간의 매출을 책임질 수 있다는 경험이 게임 ‘바람의나라’와 ‘리니지’로 이미 입증된 때문이다. 게임 산업이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등 콘텐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게임사들은 IP를 선점하거나, 새로 개발하는 방향으로 지속가능한 수익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바람의나라’ ‘리니지’ 모두 만화 원작 기반

게임 업계가 제2의 바람의나라·리니지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관련 시장 성장에 웹툰 등 핵심 문화 콘텐츠가 이전보다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유명 콘텐츠 IP는 인지도가 높아 게임 개발 과정에서 마케팅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안정적인 시장 안착을 돕는다.

‘바람의나라’와 ‘리니지’의 경우에도 모두 당시 가장 유명했던 국산 판타지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한 번 보유한 IP는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자가 발전한다는 특징이 있다. 리니지의 경우 최초로 출시된 PC 게임과 그 후속작, 모바일 게임으로 플랫폼이 다양해졌으며, 다른 게임사에 IP를 판매해 수익을 얻는 구조를 완성했다.

그 때문에 만화, 웹툰 등 소위 핵심 문화 콘텐츠 IP 확보에 게임 업계뿐 아니라 네이버, 카카오 등 인터넷 정보기술(IT) 기업들도 주력하고 있다. 이들은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천억원을 투자하고 있는데, 역시 노리는 것은 게임과 만화,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의 영역 넓히기를 통한 수익 극대화다.

게임 ‘검은사막’으로 유명한 펄어비스가 최근 만화·애니메이션·게임·라이트노벨·영화 등 문화 콘텐츠 사업을 펼치는 일본 가도카와 지분을 확보한 일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펄어비스는 128억원을 투자, 가도카와 주식 29만900주(지분율 0.4%)를 획득했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 투자라고 하지만 (가도카와와) 협업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 제작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라며 “그게 세계적인 킬러 콘텐츠를 보유한 글로벌 문화 기업 가도카와에 투자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라고 했다.

가도카와는 일본 라이트노벨(light novel·일본에서 시작된 대중소설의 한 분류. 일본 만화풍 삽화가 들어간 작은 판형의 소설을 의미)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기업으로,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소드 아트 온라인’ 등이 주요작이다. 넥슨이 올해 출시 예정인 모바일 게임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코노스바)’도 가도카와의 라이트노벨이다. 넥슨은 반다이남코, 코나미, 세가 등 일본의 유명 게임 회사에도 투자하고 있다. 최근 웹툰·웹소설 업체들을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카카오 또한 가도카와 지분 7.63%를 확보, 이 회사의 최대 주주에 올랐다.

펄어비스는 넷마블의 글로벌 흥행작인 ‘일곱 개의 대죄: 그랜드 크로스’ 개발진이 설립한 신생 게임사 빅게임스튜디오에도 지난해 11월 30억원의 투자를 단행해 지분 27%를 확보했다. 일곱 개의 대죄 역시 일본 만화 IP를 활용한 게임으로, 현재 넷마블 전체 매출의 약 15%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빅게임스튜디오는 애니메이션풍의 그래픽을 갖춘 모바일 RPG를 개발하고 있다.


콘텐츠 제작사 직접 만드는 게임 기업들

컴투스의 경우 ‘정글스튜디오’라는 이름의 콘텐츠 회사를 웹툰 제작사인 케나즈와 합작 설립했다. 지분의 56%는 컴투스, 44%는 케나스가 보유하는 구조다. 컴투스 관계자는 “정글스튜디오는 웹툰·웹소설 등 스토리텔링 중심의 IP 사업을 전개해 나갈 예정으로, 인기 게임인 ‘서머너즈워’ 등의 게임 IP를 웹툰과 웹소설로 자체 제작해 콘텐츠를 확장할 계획이다”라며 “새로운 IP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라고 했다.

스마일게이트 역시 콘텐츠 사업 확장을 위한 합작기업을 설립했다. 지난 3월 영화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와 세운 ‘스마일게이트 리얼라이즈’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영화, 드라마 등 멀티 콘텐츠 IP를 기반으로 하는 영상 사업을 전개한다. 또 여러 IP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는 ‘유니버스화’ 작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또 스마일게이트는 게임 ‘크로스파이어’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화도 노린다. 이미 소니픽처스와 배급 계약을 마친 상태다. 앞서 지난해 7월 스마일게이트는 중국에서 e스포츠를 드라마화한 ‘천월화선’을 방영하기도 했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2014년부터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와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 등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 4월 콘텐츠 IP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서로 문피아를 인수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최근 네이버가 문피아 인수의 우선협상권을 얻었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네이버 측은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라고 밝혔다.

웹툰 또는 웹소설 등 콘텐츠 IP를 확보하기 위한 게임사의 투자 활동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다만 네이버, 카카오 등과 같은 IT 기업들도 이들 콘텐츠 기업을 노리고 있어 알짜 플랫폼을 둘러싼 맞대결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게임 회사와 IT 기업들이 같은 콘텐츠 회사에 동시에 투자하거나, 콘텐츠 기업 인수전에 함께 뛰어드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라며 “게임 사업에 있어 콘텐츠 확보는 리니지나 바람의나라 같은 선례처럼 개발 비용의 절감, 인지도 확보에 중요하기 때문에 확보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라고 했다.

박진우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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